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8화(348/505)
348화 금광 그리고 온천 [2]
“여긴 웬일인가?”
한때 가족이었던 이들이 영 꺼림칙하다는 얼굴로 밀러 커티스를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사실상 부족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인들과 같이 살겠답시고 터전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적대시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뭐…… 내가 이것저것 선물을 보냈으니까.’
선물이라고 해 봐야 영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물건들뿐이었다.
기껏해야 증류주나 잘 만든 엽궐련이나 도자기 또는 따뜻한 면화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이 어느 순간 딱 멈춰 버린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그것도 제법 훌륭한 선물이었다.
무엇보다…….
“그건 쓸 만합니까?”
“아, 이거? 이건 좋지. 저놈들이 만든 물건 중에 이게 최고야.”
총은 훌륭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선물이었을 터였다.
제아무리 활쏘기의 명수들이라 해도 총의 위력을 모를 수는 없지 않겠나.
게다가 활 또한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 가축과 밀, 쌀, 보리 등과 같은 작물의 부재로 인해 국가 단위의 문명 탄생이 어려웠던 관계로 원시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다 보니 명중률은 물론이거니와 그 위력도 비교하는 게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죠.”
“그래, 좋아. 들어와. 그래도 길 안 잃고 잘 왔군그래.”
이런 선물을 이런저런 핑계로 쥐여 주었던 덕일까.
아니면 그냥 그의 부족이 밀러를 여전히 가족으로 대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밀러는 일단 부족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또 독한 증류주를 들고 온 덕도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일단 한두 잔만 들어가도 취기가 확 도는 독주 덕에 벌써 밀러 곁에 있는 중늙은이 몇은 추억 얘기만 늘어놓기 시작했으니까.
‘그 인간들한테 일을 맡길 수는 없어.’
밀러라고 해서 어찌 저 유럽 놈들에 대한 감정이 좋기만 하겠나.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들보단 영국인들이 나았다.
그놈들도 기회만 있다면 나섰겠지만, 뭐가 되었건 식민지인들의 서부 진출을 막아섰던 것이 영국인들이라는 걸 밀러는 모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헨리의 상단 쪽은 꽤 유한 편이지 않던가?
그쪽 집안과 연관이 되어 있는…….
심지어 의사들이라면 훨씬 더 유할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었다, 시발…….’
여유로운 척하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의사 놈 중 하나는 검성이었다.
에이 좀 과장하는 거겠거니 했다, 밀러도 처음에는.
하지만 이 무식한 미국 놈들조차 한 수 접어 주는 것을 보고 나서는 좀 쎄했다.
막말로 미국인들은 영국인들과는 아예 다른 놈들이잖아?
일단 바닥에, 그것도 집 바닥에 침 뱉으면서 사는 것만 봐도 야만에 몇 발자국 걸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법이다.
‘곰을…… 뎅강…….’
그냥 곰도 아니고…….
“아, 이것 좀 보시겠어요?”
밀러는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던 주제에 마치 지금 생각 난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크기도 거대했지만 무게도 상당한지 내려놓을 때 쿵 소리가 났다.
다들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문명의 충돌이 일어난 지도 벌써 200년도 넘지 않았나.
이놈들이 꺼내는 것 중에 신기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드물다는 것쯤은 부족 어른이라 해도 인정하는 바였다.
“이게 뭔가?”
“뭐야?”
“뭘까?”
해서 밀러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뜨린 무언가를 싸고 있던 것을 푸는 동안에도 추임새가 이어지고 있었다.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있구만.’
그래, 그럴 수 있지.
밀러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자기를 다 풀었다.
“아니…….”
“이건…….”
“이놈……? 이거 낯이 익은데?”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문명의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태고부터 이어져 내려온 야만 그 자체였다.
리스턴이 단칼에 쳐 죽인 바 있던 곰 대가리가 들어 있었다, 이 말이었다.
그리고 이 곰은 부족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근처에 있는 모두에게 꽤 유명한 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 고기 맛을 알게 되었는지 혹은 사냥하는 재미를 배웠는지는 몰라도 떠돌아다니는 이들을 습격했기 때문이었다.
“어, 어. 틀림없어. 그놈이야. 눈가에 이거…… 전에 누군가 총으로…… 아니, 근데 이걸…….”
“이걸 자네가 잡았나?”
“뭘로 잡았나? 저놈들에게는 대포라는 것이 있다던데 그걸로?”
당연하게도 이 부족을 포함한 여러 부족과 갱 등에서 이놈을 사냥하려고 사람들을 풀었더랬다.
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만 늘렸을 뿐이었다.
그나마 상처 정도는 입힐 수 있었는데, 그게 독이었다.
총 무서운 것을 배운 까닭에 밤에 뒤에서 습격하는 패턴만 익히게 해 줬으니까.
헌데 그놈 머리가 떡하니 여기에서 뒹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밀러가 들고 온 증류주에 취해 있던 이들 태반이 술이 확 깼을 정도였다.
“아뇨. 리스턴이라는 사람이 잡았습니다.”
“리스턴……?”
“양놈 이름이로군.”
“뭐, 보나 마나 대포나 총으로 잡았겠지.”
“칼로 잡았습니다.”
“뭐?”
“사람 농담도. 이런 걸 어떻게 칼로…… 아니…… 진짜라고?”
밀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리스턴이 역시나 귀신같은 솜씨로 벗겨 낸 곰 가죽을 말에서 끌러 내렸다.
가죽뿐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무거웠던지 말 표정이 좋아질 지경이었다.
“이걸 보세요.”
“허어…….”
“정말…… 자국이 없어.”
“이, 이걸 보여 주는 저의가 뭔가.”
그걸 한참 살피던, 부족 제일의 연장자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농업 혁명 이후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던 조선이 그러했듯 인디언들 사이에서도 연장자의 위치는 꽤나 지엄한 것이었기에 사위는 조용해졌다.
괜한 소리를 할 사람도 아니거니와 곰 가죽을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 이미 한차례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어찌 사람이 칼로 잡는단 말인가.
“선물입니다. 리스턴 경의.”
“선물……? 당치도 않은 소리. 그놈들은 선물이랍시고 뭐 던져 주고 우리의 터전을 빼앗아 가던 놈들이야!”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밀러가 속한 이 부족 또한 원래 살던 터전이 이 근처가 아니었으니.
담배니 목화니 농사지어야 된다면서 계속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진해 오는 미국인들에 의해 내쫓겨 온 곳이 이곳이지 않던가.
밀러야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내용일 뿐이지만, 이 어른은 아마 경험했을 거다.
그 무자비한 폭거를 말이다.
“이들은 다릅니다.”
“달라? 다른 놈은 없었네.”
“아뇨, 정말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물이에요.”
“물……?”
“여기 온천 말입니다.”
“온천은 위에도 있는데.”
밀러는 그렇게 답하는 어르신의 입 안을 들여다보았다.
밤이라 잘은 안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커먼 이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 그랬다.
왜 이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 부족 사람들도 딱히 자각은 없었다.
이곳에 있다가 떠난 밀러만이 알고 있는 사실일 뿐이었다.
‘나도 딱히 뭐……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지.’
그러다 헨리를 통해 영국에서 이 썩지 않게 만드는 원료나 풍습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실로 오랜만에 이 특성을 떠올렸더랬다.
그러고 보면 밀러 또한 정말 간혹 이 지역에 오가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하면 이가 확실히 좀 덜 썩는 느낌이었다.
“여기 온천물이 필요하답니다.”
“와서 살려고?”
“아뇨. 길어 가려고요. 어차피 물은 계속 나는 거 아닙니까. 그 대가로 돈을 준다고 합니다.”
“돈은 필요 없네.”
어르신의 이 말은 단순히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말은 아닐 터였다.
이들은 여전히 물물 교환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말 그대로 돈이 필요 없다, 이 말이었다.
“그럼 필요한 것을 사 달라 하겠습니다.”
“으음…….”
“아, 그리고 또.”
“또?”
“번쩍이는 돌이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돌? 아, 그거. 알기야 알지. 근데 그건 또 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부족이기도 했다.
뭐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이들에게 황금은 말 그대로 번쩍이는 돌일 뿐이었으니.
비단 이 부족뿐 아니라 다른 부족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란 말이었다.
허나 그 번쩍이는 돌, 즉 금이 유럽인들에게는 보물이지 않나.
“그것도 좀 캐 가고 싶다는데요.”
“으음…….”
밀러의 말에 어르신은 턱 밑을 쓸었다.
그러곤 어지러운 머리를 다스릴 요량인지 뭔지 담배를 물고 연기를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 터였다.
그 신이라는 게 있었다면 부족이 이런 꼴이 되었을 것 같진 않지만…….
밀러는 굳이 그따위 말을 하진 않았다.
그가 보기엔 저들 유럽인들이 믿는 신도 영 신통치 않기는 매한가지였기에 그랬다.
반대편에 섰을 때 본 그들은 침략자를 넘어선 무언가…….
신의 사자들처럼 강인한 이들이었지만.
안에 들어가 본 그들은 그저 연약한 인간들이었다.
거기에도 비극은 차고 넘칠 만큼 있다, 이 말이었다.
“거부하면 그 리스턴인지 뭔지가 오겠지?”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어르신이 담배를 곰 대가리를 향해 내뿜으며 말했다.
곰이 와도 큰일인데 곰을 이렇게 만든 놈이 온다면 더더욱 큰일이지 않겠나.
얼굴이 당연하게도 그리 좋지 못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때는 저처럼 평화롭지만은 않겠죠.”
“그럼 만나 보긴 해야겠군. 다른 도리가 없겠어.”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가 본 그놈들 아니, 그들은…….”
리스턴이 검성이라면 김태평은…….
그건 주술사였다.
그것도 어느 부족 주술사라 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영험한.
거의 예언에 가까운 진료를 하고 있지 않나.
무지몽매한 것들이야 지들 의사처럼 하는 줄 알겠지만…….
그건 그걸 넘어선 무언가였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다 뺏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전설 속의 주술사가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헌데 하는 짓을 보면 나름 선이 있었다.
일단 흑인 노예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인성이 꽤 괜찮아 보였달까?
자신에 대한 태도도 제일 유하기도 했고.
가끔 담배 피울 때마다 와서 그러다가 죽을 거라는 둥 저주를 하긴 했지만…….
원래 뛰어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좀 이상한 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다른 놈들보다는 훨씬 나아요.”
“으음…….”
“직접 가 보시겠습니까?”
“그래야지. 니들도 채비해라. 내일 날이 밝자마자 가 보도록 하자.”
“아…… 네, 어르신.”
밀러의 말에 어르신도 오랜만에 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놈들도 있었고 오히려 호기심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가 되었던 확실한 건 있었다.
‘그놈들하고 만나게 되면…… 무조건 계약은 성사되겠지.’
밀러는 리스턴과 김태평을 떠올리다가, 잠을 설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