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4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49화(349/505)
349화 금광 그리고 온천 [3]
“밀러는 잘하고 있을까요?”
“모르지, 뭐. 여차하면 내가 가야지.”
나는 리스턴을, 또 그가 들고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수술칼이라고 하기엔 진짜 너무 거대하고 투박한 칼이지만…….
곰 잡는 칼이라고 하기엔 또 너무 작고 소박한 칼이었다.
‘형님도…… 회귀자일 거야.’
저 칼을 가지고 곰을…….
그것도 마을 사람들 반응을 보아하니 네임드 곰이었던 모양인데 별 어려움도 없이 잡아 버렸지 않나.
다른 놈들이야 내가 주술을 걸어서 곰을 느리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봤을 때 그건 그냥 곰이 쫀 거다.
상식적으로 첫 격돌에서부터 단칼에 팔 자르고 시작하는 놈한테 쫄지, 안 쫄고 배기나?
‘무협지에서 온 사람일 거야, 그것도.’
아니, 어쩌면 살기를 흩뿌렸을 수도 있다.
내가 뭐 무협 세상에서 살다 온 건 아니지만…….
무협지는 또 제법 읽었단 말이다.
군의관 생활하다 보면 밤에 보통 심심한 게 아니거든.
게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나저나 이거 꽤 좋은데?”
“그…… 대마잖아요, 그건. 담배가 아니라.”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이야. 자네는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것이지, 대마는 괜찮잖아?”
“아니…….”
남은 이렇게 중요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대마나 빨고 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담배를 못 피우면 대마라도 피우라는 조언이다.
“뭐, 아무래도 담배에 비하면 대마는 좀 약하긴 하지. 담배야 이런저런 효능이 참 많지 않나.”
“그…….”
“이것 봐. 나는 청산유수인데 자네는 말도 느리고. 극복해 보는 건 어떤가. 우리 몸이라는 게 말이야 내성이라는 게 있다네.”
“아니……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내성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쓰는 의사라니.
천연기념물에 해당할 만큼 희귀한 동물이 내 앞에 있다.
뭐 담배랑 대마 권하는 의사랑 같은 사람이니 이제 와 이런 소리 하는 게 대단히 새삼스럽긴 하지만…….
들을 때마다 황당한 걸 뭐 어쩌겠어.
“어. 저기 뭐가 오는데.”
그 황당함 속에서도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한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리스턴이 돌연 피던 대마를 집어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뒤에 있던 내 일행들도 뭔 일인지도 모르면서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각자 피우던 담배니 뭐니 하는 것들을 집어 던지면서였다.
꽁초 아무 데나 버리고 있다는 건데…….
‘그래도 뭐…… 여기 다른 마을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거지.’
다른 사람들은 침도 아무 데나 뱉잖아.
심지어 집 안에서도.
여긴 밖이니 비교가 불가하다 할 수 있겠다.
“뭔데요?”
“밀러네. 그 뒤로 인디언들이 오고 있어.”
“설마 쳐들어오는 건가?”
리스턴의 말을 엿들은 전직 갱단 대장 쟝이 긴장한 기색으로 물어 왔다.
그러자 녀석 뒤에 있던 마을 사람들 또한 저마다 가까이 두고 있던 총을 꺼내 들고 나왔다.
“아니, 아닌 거 같은데. 무기가 없는 건 아닌데 수가 너무 적어. 셋이야. 밀러 빼고.”
“셋이면…… 얘기하러 오는 거 같은데요?”
“그래, 아마도?”
“그럼 뭐…… 좋네요. 얘기가 나름 잘되었나 보네. 만나러 가 보죠.”
“그래, 그러지.”
밀러 혼자서 설득이 될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대화의 물꼬만 터 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이다.
뭐…….
-번거롭게 그렇게 할 게 있습니까? 야만인 놈들…… 다 죽이고 내쫓으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놈들 그거…… 어?
-그냥 다 쳐 죽이면 됩니다.
마을 사람들의 주장은 이랬다.
미 대륙 정착 초기에는 나름 사이가 좋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서부 개척 시대 초창기이니만큼 이미 인디언들과는 틀어질 만큼 틀어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자신도 있을 거다.
사실 활에 비하면 총이 훨씬 강하니까.
나름 강선이 박힌 총도 있는 모양이고.
하지만…….
‘전에 보니까 인디언들도 총 들었던데.’
장이 끌고 다니던 놈들.
걔네 보니까 총 있더라고.
게다가 여긴 뉴욕 근처도 아니고 콜로라도다.
미국이 개척해 낸 서쪽의 끝자락이란 말이다.
백인들보다는 인디언이 훨씬 많을 거다.
그 상황에서 전쟁?
아무리 리스턴이 있다 한들 뭔 소용이 있겠나.
몰살 엔딩이다, 몰살.
-정당한 거래를 해 봐야죠. 그게 옳아요.
-거래라니. 그놈들은 돈도 마다하는 놈들인데 뭔 놈의 거래란 말인가.
-지금 내 동료에게 대드는 건가?
-아니, 아니. 죽여 주십쇼…….
물론 전쟁 대신 협박이라는 선택지도 있긴 하다.
마을 애들 말 잘드는 것 좀 봐.
리스턴이 뭐라고 하면 그냥 납작 엎드린다.
따지고 보면 이 양반들도 다들 거친 사내들인데도 별 소용은 없다.
오히려 거친 사람들일수록 리스턴의 강함을 더 잘 캐치하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자신 있어요. 의술로 거래하면 돼. 호감작은 내가 최고라니까?
-의술이라…… 아프게 하고 고쳐 준다, 이 말인가?
-아니, 아니. 아픈 사람이 무조건 있죠.
-그렇게 만들었어? 이미?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물리고 리스턴과 나눈 대화다.
어째 대화의 방향이 조금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도 있긴 했는데…….
저 부족에 아픈 사람 꽤 있을 거라는 데에 내 모든 것을 걸어 본다.
주술을 걸어서가 아니라…….
원래 현대 의학이 미치지 못한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아픈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몸은 쓸수록 망가질 수밖에 없지.’
암만 환경이 좋다 한들 아픔을 피할 수 있겠나.
그래, 북아메리카 대륙.
여기 진짜 좋긴 하다.
날씨도 좋고, 습도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벌레도 별로 없다.
아마 자연 상태에서의 수명이 밀림이나 사막에 비하면 훨씬 길 수밖에 없기는 할 거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늙지 않는 건 아니고, 모든 늙는 동물은 아픈 곳이 하나둘씩 늘어 갈 수밖에 없다.
“좋아. 오는군. 아픈 사람이 꽤 많겠지?”
“많을걸요.”
“어제 안 자고 뭐 하나 했더니…… 자네도 참 대단한 사람이야.”
“어제요? 아 어제는 그냥 별 보다가 잔 건데.”
“점성술도 하는구만그래.”
“아니…….”
오해는 풀리지 않았다.
나도 지쳐서 딱히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요즘 보면 오해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때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내 말이 무조건 정답이거나 혹은 정답에 무한히 가깝긴 하잖아?
그러니 이유 묻지 말고 그냥 따르면 되긴 한다.
그렇게 하는데 주술적인 힘이 꽤 효과적이고.
“안녕하십니까.”
하여간, 우리는 인디언 부족장과 그 일행을 밀러와 미리 말 맞춘 곳에서 마주했다.
마을 어귀라고 하기엔 좀 멀고 그렇다고 해서 마을에서 떨어져 있다고 하기엔 꽤 가까운 어딘가였다.
주변에 나무하러 가거나 사냥 가는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오두막 같은 곳이었는데 벽이나 천장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보니 사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안녕하시오.”
상대는 나에 대해서도 들었는지, 보기 드문 외양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리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로군.’
가까이에서 보니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백내장…….’
그냥 뵈는 게 거의 없는 거 같았다.
사실 내가 안과는 아니다 보니 백내장을 실제로 볼 일은 적었는데, 그럼에도 이걸 알아보는 건 딱 한 번 나갔던 해외 봉사 덕이다.
우리나라에는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할 텐데, 실론티를 생산하는 바로 그 섬에 갔더랬다.
실론은 예전 이름이고 지금 이름은 스리랑카인데, 그중에서도 내가 갔던 곳은 빛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누와라엘리야였다.
이름처럼 해가 잘 비치는, 유럽인들에게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해 때문에 백내장에 걸린 현지인들이 참 많았더랬다.
나야 외과다 보니 고된 노동에 의해 발생한 탈장 수술에 갈려 나갔지만, 그런 사람이 백내장도 있었기 때문에 동시 수술이었다.
‘역시 경험이라는 게 괜히 하는 게 없구나.’
진짜…….
그때 뭐 나름 보람찬 기억이기는 했어도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보니 또 새록새록 뭔가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수술…… 어찌 하는지는 대강 알지.’
그렇다고 해서 바로 부족장 눈알 잡고 덤비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이 사람은 좀…….
어?
뭔가 주변에서 대하는 것만 봐도 꽤 높은 사람 같잖아.
-작은 부족은 아니에요. 게다가…… 전체적으로는 샤이엔족에 속해 있어서…… 그 수가 몇천은 족히 될 겁니다.
밀러 커티스의 말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의사가 돼 가지고 환자를 가려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싶겠지만…….
상대가 날 죽일 수 있다면 가려 받는 게 맞다.
‘아무튼, 백내장 하나 적립.’
나는 섣불리 나서는 대신 고개를 끄덕인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쉽지 않을 거라더니 과연 그랬다.
“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니 원하는 대로 퍼 가도 좋소.”
아, 물은 쉬웠다.
온천 귀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랬다.
“아…… 적당히 퍼 갈 겁니다. 마르지 않게요. 그보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입안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입안을?”
“네.”
“뭐…… 어려운 일은 아닌데…… 아.”
“으음.”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여기 물은 진짜 귀한 물이다.
‘미친……? 진짜잖아?’
그냥 19세기 미국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 온 것도 있다.
온천이 대단하다는데 그게 뭐 설마 진짜겠어 싶었거든.
근데 진짜다.
여기 같이 온 세 명 모두 충치가 거의 없다.
인디언들이 원래 백인들에 비하면 좀 더 적긴 한데…….
그래 봐야 식생활의 차이 때문일 뿐이지, 없는 건 아니었거든?
쟝이랑 다니던 놈들 복귀했길래 다 들여다봤는데 마을 사람들이랑 비슷했어.
‘뭐지……? 왜지?’
나도 어쩔 수 없는 과학자이다 보니 우선 이론적인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21세기 애송이가 아니지 않나.
‘원인은 후대에 맡긴다.’
모르겠는 건 모르겠는 채로 남기는 것도 미덕이다.
너무 혼자서 어? 다 하려고 하다 보면 이도 저도 못 해요.
나는 그냥 온천물 파고 팔아서 돈 벌면 되는 거라고.
“이 온천물에 대한 대가로는 원하시는 물품을 얼마든지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허어…… 우리 소유물도 아닌데.”
“그래도, 거주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땅도 우리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런 말 행여나 다른 놈들 앞에서는 하지 마십쇼. 사기당해.”
“사기……?”
“자, 일단 여기 그래요. 지장이나 찍으세요. 나는 믿어도 됩니다.”
“허어…….”
해서 냉큼 도장부터 찍었다.
물이 꽝이면 더 안 파면 될 일 아닌가.
‘뭐…… 내 명성 팔아서 팔면 팔리긴 할 거야.’
19세기 사람들이야 비소도 약이라 하면 약인 줄 알잖아.
그에 비하면 온천수야 뭐 너무 좋지.
해서 도장을 찍었다.
리스턴이 나를 사기꾼 보듯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남은 과업, 그러니까 금에 대해서는 이렇게 얼렁뚱땅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아픈 사람들 공짜로 치료해 줘서 절대로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뭐 공짜라기엔 금광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가가 있긴 할 텐데…….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자꾸 그러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