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화(35/505)
35화 수술에 써 보자! [3]
“으, 으으으으!”
마취에서 깬 환자는 비명을 질렀다.
아파서 그럴 터였다.
‘마취는 어떻게 했어도, 진통제가 아직 없구만…….’
나는 그런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진통제는 아편뿐이었다.
내가 약쟁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이 시대에 흔히 쓰였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암성 통증도 아닌데…… 그런 걸 쓸 수는 없지.’
중독이라도 되면…….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21세기에서도 쉽지 않은 게 마약 중독 치료인데 여기서 하는 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터였다.
“아프…… 너무 아픕니다.”
“다리를 잘랐는데 아프지, 그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9세기의 의료진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환자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했다.
아니, 무감하다기보다는 반쯤 체념하고 있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괜히 뭔가 해 본답시고 약을 먹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하여간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 모습이 너무 뻔뻔하다 보니, 환자는 그만 할 말이 없어졌는지 인상만 쓰고 있었다.
“그래도 이거 자를 때 안 아팠으니, 다행이지 뭔가.”
“그건…… 그건 그렇지요.”
사실 환자도 수술이 기억조차 안 난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수술이라는 게 참 말이 수술이지, 지금까진 살인이나 다름없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수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환자들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외과 병동엔 입구가 하나뿐일 지경이었다.
도망가다 잡히면 받아야 했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외과 의사를 이기면 도망칠 수 있었다.
이게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래. 너무 아프면 술도 좀 마시고.”
“네네.”
하여간 환자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시발.
‘덧난다고…….’
술의 해악은, 특히 수술 마시고 먹는 술의 해악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일단 혈관이 확장된다는 게 크나큰 단점이었다.
혈관이 확장되면 피도 더 많이 도는데, 상처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피가 돌면 어떻겠나.
아무리 수술에 도가 튼 리스턴이라 해도 혈관을 싹 다 묶었을까?
아니, 그전에 모세혈관에서도 피가 나올 수 있었다.
‘수액을 줄 수 있나? 아니…… 아니다. 내가 미쳤지.’
혈압이 떨어질 때 수액을 줄까 했으나,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일단 혈관에 꽂을 만한 주삿바늘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인데, 있다고 해도 그게 깨끗할 리는 더더욱 없었다.
게다가 물은 깨끗한가?
기껏해야 증류수 정도나 가능할 텐데 그걸…… 사람 혈관에 넣어야 했다.
‘훌륭한 살인이 되겠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본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껄껄 웃었다.
“이거 보쇼. 우리 닥터 피영도 고개를 젓잖아. 좀 참으라고.”
“네, 네.”
아마 내가 환자를 한심하게 여기는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 하고 싶었다.
특히 환자가 아파하는데 그걸 무시하는 의사가 의사냐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해 주는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봐야 시비 거는 것밖에 더 되겠나.
“하하. 그럼 내일 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다행인 건, 이 시기 사람들은 딱히 그게 의료진이 아니라 해도 다들 고통에 무감하단 점이었다.
환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술이나 홀짝거리면서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깊이 생각하면 또 혼절할 것 같은 장면이었다.
오늘 다리 자른 사람이 저 독한 술을 홀짝이고 있다니.
하지만 이제 나도 19세기 의학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참이다 보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여간 닥터 피영. 오늘 정말 잘했네.”
게다가 나는 지금 호들갑을 떨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 사람이 괜히 날 아까부터 닥터 피영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 텐데.’
다른 이들에게는 실수로라도 닥터 소리를 안 하는 사람이었다.
조수들 중에도 닥터 소리 듣는 이는 반도 안 될 지경이었다.
허나 내게는 하고 있었다.
‘여기 딱히 면허 시스템이 있지 않지…….’
그래 봐야 아직 학생이고 심지어 1학년인데 뭔 소용이냐 싶기도 한데, 여기가 그랬다.
뭔가…… 정해진 게 없다는 느낌?
학생들 나이만 해도 중구난방인데, 의사들 나이도 그랬다.
그냥 교수들이 모여서 ‘너 정도면 의사 아닐까?’ 이렇게 하면 의사가 되었다.
물론 아저씨 통해서 듣기로는 이따금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 중인 것 같다곤 하는데…… 원래 제도라는 건 자리 잡기 전에 꿀 빠는 게 장땡이었다.
‘이렇게 의사 되나요?’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교수님. 다 교수님 덕입니다.”
“하하하하. 이 친구, 형이라고 하라니까? 너랑 나랑 나이 차이 그렇게 많이 나지도 않아.”
거짓말에도 껄껄 웃었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날 리가 있냐!
“하하하하. 형이라고 하기엔 의학사에 남기신 족적이 너무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족적이라. 하긴, 그렇긴 하지. 오늘 마취는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거야. 거기에 자네 이름도 올라갈 테니 안심해.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어떤…… 문제 말씀이십니까.”
“학계라는 곳이, 그중에서도 의학계는 좀 딱딱하다네. 블런델을 보면 알겠지.”
“아…….”
나는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단 기분이 들었다.
왜냐고?
블런델도 옆에 있었거든.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하고 친한 건지 아니면 부하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거의 늘 딱 붙어 다니는 편이었다.
“나는 왜 물고 넘어지나. 아까 이 뽑는 것도 내 수업 때 뽑아 놓고.”
“아, 그런가. 그래, 자네가 나 만나고 좀 나아졌지.”
“아니, 그…….”
“하여간 이 정도만 되어도 낫다는 얘기일세. 다른 의사들은 아마 두 눈으로 이걸 보지 않는 이상에는 믿지 않을 거야. 일부러 광장에서 하긴 했지만, 우연이라 생각하는 놈들도 많겠지.”
하여간 로버트 리스턴 박사의 말은 얼마간 타당한 편이었다.
지금까지 그냥 파티에서나 쓰던 가스가 알고 보니 갓-마취제였다는 걸 인정하고 싶을까?
인정하기 싫을 거다.
지들이 병신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마취제가 없어서 개고생을 했는데 갑자기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 놈이 조언을 해 줬다고 하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차라리 리스턴 박사가 혼자 떠올린 거라고 하면 얘기하기도 쉽겠지만, 다행히 이 양반은 의리가 있었다.
“게다가 자네 이름을 걸고넘어질 거야. 자격도 없는 놈이 뭘 했다고 하면 난리를 피우거든. 사실 지들도 자격이 없는 주제에 말이야.”
게다가 로버트 리스턴은 의과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아니, 좀 지나치다고 할까?
“다리 자르는 데 몇 분씩 걸리는 게 의사란 말인가?”
자기는 30초면 자른다 이건데.
마취가 없는 시대에는 어마어마한 장점이긴 했다.
몇 분 아플 거 30초만 아프면 되지 않나.
귀족 중에 일부러 로버트 리스턴을 찾는 사람도 많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허나 마취제가 발견된 이상 그러한 장점은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아직 교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자네가 의사가 되어야겠네. 그래도 지랄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좀 낫겠지.”
로버트 리스턴의 말은 나름 폭탄 발언이었다.
듣고 있던 모두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이가 뽑힌 공으로 그나마 이 시간까지 병동에 남아 있던 콜린도 그랬다.
당연히 조지프나 앨프리드도 그랬는데, 그 와중에 입을 연 것은 역시나 같은 교수인 블런델뿐이었다.
그는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응? 뭐라고? 이 친구가 들어온 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네.”
“그 한 달간 이 친구가 해낸 일을 보게나.”
“뭐가 있지?”
“멍청한…… 자네 병동 사망률을 돌아보게나.”
“아, 그건 근데…… 딱히 의학적인 발견이라고 할 만한 게…….”
병신인가 싶었다.
왜 로버트 리스턴이 편협한 인간이라고 했는지도 알 거 같았고.
손 씻기가 환자 살리는 데 도움이 된 게 왜 의학적인 발견이 아니냐.
“그럼에도 환자는 살았지. 게다가 오늘 일을 보게. 마취야. 마취가 됐어. 이건 인류의 위대한 진보일세.”
“그건…… 그건 나도 부정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바로 의사 자격을 준다니…… 이건 좀 반발이 있을 텐데…….”
허나 그런 인간마저도 마취제를 들먹이자 꼬리를 말았다.
그만큼 대단한 발견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19세기 의사들이 보기에도 그랬다.
“반발이 있겠지. 나도 뭐 오늘 당장 주겠다는 건 아니야.”
“아, 그런 줄 알았네. 난 또.”
“내가 그렇게 막무가내인 줄 아나.”
“그…….”
다짜고짜 와서 학생 이를 뽑았는데 막무가내가 아니라고?
블런델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사이에 로버트 박사는 말을 이었다.
“지식을 증명해야 하네. 일단 시험을 봐야겠지.”
“시험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히죽 웃었다.
엄밀히 말해 19세기 학자들도 열심히 노력하는 건 맞았다.
그 학자가 되기 위해 학생들도 꽤 열심히 했고.
하지만…….
난 대한민국 사람이다.
그 어마어마한 교육 과정을 견뎌 냈을뿐더러, 전교 1등으로 의대에 들어간 사람이다 이 말이었다.
즉 시험이라면 자신 있다는 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무슨 시험인 줄 알고?”
허나 그러한 내막을 모르는 로버트는 웃었다.
블런델은 숫제 비웃었다.
한 달밖에 안 된 놈이 시험에 자신 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두고 봐라, 이놈아.’
내가 속으로 껄껄 웃고 있으려니 리스턴 박사가 말했다.
“일단 해부. 아무리 자네가 천재라 해도 몸 안을 다 알지는 못하지 않나.”
웃음이 그냥 계속 나왔다.
몸 안을 다 알지 못한다니.
내가 외과 교수였는데.
“그러니 내일부터는 나와 특훈을 해야 할 걸세. 힘들 거야.”
“아뇨. 해야죠. 하겠습니다.”
“좋아. 일단 나는 그걸로 시험을 대신하겠네. 블런델은…… 손 씻기로 대신할 거고.”
“응?”
“대신 안 할 건가?”
“아니, 대신할게.”
하여간 그렇게 두 개의 시험을 날로 먹게 되었다.
“나머진 면접인데…… 뭐, 자네 말 잘하지 않나. 게다가 나도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될걸세.”
“아, 네.”
아니, 모든 시험을 날로 먹게 된 거 같았다.
면접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 자리에 리스턴 박사님이 계신다면야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겠나.
말이 면접이지, 숫제 협박이 될 터였다.
벌써 눈에 선했다.
-말귀 못 알아먹나 본데…… 찬성 안 하면 오늘 여기서 못 나간다고~
이렇게 외치는 리스턴…….
다시 말하자면 내게 남은 시험은 해부 하나뿐이란 얘기였다.
그리고 난 학생 때부터 해부를 잘했다.
의사 면허 따기 전부터 잘했다는 얘긴데, 지금은 더 잘할 터였다.
“그럼 오늘은 수고 많았네. 가서 술이나 한잔하지.”
“네? 이 밤에요?”
“나랑 같이 가면 안전하네.”
“아, 네. 그렇긴 하겠네요.”
“그럼 콜린, 조지프, 앨드리프. 자네들도 가세. 오늘은 내가 아주 기분이 좋아. 내가 다 쏘지. 닥터 피영의 탄생을 미리 축하하기도 할 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