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0화(350/505)
350화 금광 그리고 온천 [4]
온천은 정말이지 쉽게 넘어왔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금광은…….
“우리야 그따위 돌에 관심이 없지만…… 당신네들은 그렇지 않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네.”
“그렇죠. 선생님은 관심 없는 걸 우리가 캐 가는 건 어찌 보면 별 상관 없는 일 아닐까요?”
“아니…… 우리도 그런 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지난 일을 보게나.”
“으음.”
“자네는 잘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자들이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아무리 가지고 가져도 만족할 줄을 모르더군. 고작해야 담배, 목화솜 따위 때문에도 우리를 죽여 가면서 전진하는데 금? 말할 것도 없지.”
나는 부족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추장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한 호칭을 모르겠는…….
하지만 확실히 어르신이긴 한 상대를 다시 쳐다보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들이 좀 모자란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생학이니 하는 쓰레기 학문을 추종할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니 지능 차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만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코 베어 가도 모를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하지만 200년 넘는 수탈의 기간 동안 이들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은 좀 주제넘었던 거 같다.
오히려 내 생각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 같다.
소위 문명인이라는 이들의 습성을.
그래…….
골드러시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서부 개척 시대라는 낭만적인 말에 가리어진 인디언 학살이 얼마나 많았겠어.
아직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영국에 비하면 이게 나란가 싶을 만큼 어설픈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이곳 서부는 동부에 비하면 그냥 야생 그 자체다.
“이해합니다.”
“정말인가?”
그런 상황에서 금이 난다는 소문이 번진다면 난리가 날 거다.
일단 이 땅에 살고 있던 이들을 싹 죽이거나 내몰 건 뻔한 일이다.
100% 장담할 수 있다.
21세기 미국은 상당히 문명화된…….
그리고 세련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냥 깡패잖아.
“금이 있다는 소문이 번지게 되면 난리가 나겠죠. 흐음……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역사를 모르고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어차피 서부 개척 시대는 벌어질 미래잖아?
이제 곧 총 차고 우편 배달하는, 전형적인 카우보이들의 시대가 열릴 거다.
거기에 더해 서부의 기후와 땅덩이의 크기 그리고 금과 같은 자원을 알게 되는 순간 미국 자체가 전심전력으로 이쪽으로 오게 될 거고.
그래 봐야 구대륙의 진짜 제국주의 열강에 비하면 2류 열강이라는 말도 과분할 만큼 허약한 나라지만, 인디언 상대로는 일류 열강 저리 가라다.
“이미 소문이 어느 정도 퍼져 있지 않습니까? 여기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금에 대해 다 알고 있던데요.”
“긴가민가하고 있을걸세. 우리도 뭐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어. 게다가 딱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네.”
“오히려 소문은 불확실할 때가 더 무서운 법이죠.”
“으음…….”
진짜 그렇다.
말에 살이 붙고 와전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굳이 역사책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전설의 PD가 만든 솔로들이 출연해 짝을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 실험의 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16기는 꼭 보기를 바란다.
“오만 잡것들이 다 와서 이리저리 살피고 할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야 출신이 어디든 일단 여기 자리 잡고 살려고 온 사람들이지만…… 아닌 놈들이야 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압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전에 차라리 우리에게 완전히 맡기시면 어떻습니까. 우리도 믿을 만한 사람들로 싹 채워서 말 안 새어 나가게끔 하겠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러한 이유를 대면서 설득에 나섰다.
최대한 신뢰가 느껴질 만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으음.”
헌데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했다.
못 미덥다는 걸 몸으로 말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 16기를 직접 보여 줄 수 있었다면…… 바로 설득이 되었을 텐데.’
과거 미화는 분명 아니다.
나 그때 투병하고 있었거든.
어지간한 병도 아니고, 뇌종양으로.
말이 투병이지. 실시간으로 죽어 가고 있던 상황인데, 다음 주 내용이 부족해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었다니까?
그러다 그 생각이 곧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과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고서 흠칫하긴 했지만.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나.”
여러 가지 말들이 있었는데, 정리하자면 이랬다.
믿음을 주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족장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하나같이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리스턴 형님이 쓱 하고 나섰다.
“믿고 자시고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아아, 형님. 잠시만.”
“왜. 그냥 확…….”
“아니, 잠시만. 이쪽으로.”
어지간한 상황이었다면 나도 리스턴칼을 썼을 거다.
이게 진짜 잘 들긴 하거든.
국왕 폐하급 아니면 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금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습니까.”
해서 일단 리스턴 형님을 구석탱이로 데려왔다.
양해는 딱히 필요 없었다.
리스턴이 살기를 드러내자마자 셋 다 입을 다물고 벌벌 떨었으니까.
그걸 보고 있자니 협박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싶긴 했는데…….
‘아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자존심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어.’
당장 무서울 수는 있을 거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협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영원히 갈 수 있을까?
아닐 거다.
무엇보다 이들이 속한 대부족과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금이고 나발이고 온천물도 못 팔게 될 거다.
저 물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는 몰라도, 충치 치료의 단초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금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잖아?
“물어보면 되지.”
내 말에 리스턴은 과연 주먹 하나로 인생을 일궈 온 사람답게 답했다.
확실히…….
방금 그가 내민 주먹을 보고 있자니, 이걸로 물어보면 다들 답을 해 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알려 주고 나서 나중에 사보타주라도 하게 되면 어쩐단 말인가.
예전의 인디언들이 아님은 방금 나눈 대화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나.
한참 굴 파고 들어갔는데 다이너마이트라도 까 던지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전폭적인 협조가 중요할 거예요.”
“왜.”
“일단 금광 캐는 데 인력이 얼마나 들겠어요. 사금 채취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쉽지 않을 텐데. 저 양반들 협조를 구하게 되면 말이 일단 동부로 돌 가능성이 적을 거 아닙니까.”
“광부로 부려 먹겠다고? 그런 일을 할까?”
“대가를 팍팍 주면 되지. 그리고 금…… 저기 저쪽을 좀 보세요.”
나는 그나마 높은 지형에 올라 서쪽을 가리켰다.
말 그대로 장대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만한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저게 로키산맥일 거다.
어마어마하다, 진짜로.
“저게 뭐. 곰이나 있겠지.”
“아니…… 저기 금맥이 대체 얼마나 더 있겠어요.”
“아…….”
“이 사람들 잘 구슬려다가 일하기 시작하면…… 어? 노다지라고요.”
“노다지?”
“노 난다고.”
“노가 나……?”
“아니, 그러니까 횡재한다고!”
“아, 아아.”
어쩌다 보니 노 터치에서 유래한 말을 거꾸로 전파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내 의중을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전달한 듯했다.
“좋군…… 여기서 한번 굽히고…… 골수까지 뽑아 먹겠다, 이건가.”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그렇지 않나. 나는 자네가 이래서 참 좋다네.”
“그…… 좋다니까 저도 좋기는 한데. 그렇게 악랄한 건 아니라고요.”
“하하하. 또 이러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리스턴은 껄껄 웃으면서 내 어깨를 치더니만 다시 목소리를 죽였다.
그러고는 흉악한 일이라도 꾸미는 얼굴을 했다.
뭐…….
얼굴이야 대개 그렇긴 한데 나 정도로 가까워지고 나면 어느 정도 분간이 가기 시작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그러니까 내 제자들은 바로 옆에 있다고 해도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나저나 경계심이 너무 높은데…….”
“아픈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 아하. 그렇구만. 정말 철저하구만…… 무서워.”
“무섭다뇨. 원래 사람들이 있으면 아픈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에헤이. 막말로 일도 거의 안 하고 놀고먹는 것들인데 뭐 아플 일이 있단 말인가.”
“아니…….”
이런 말 들으면 우리 원주민분들이 어떤 표정이 될까.
세상에 놀고먹는다니?
“생각해 보게. 우리 백인들이 피땀 흘려 문명의 발전에…… 아, 그래. 자네 동양인도 어?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동안…… 그 수천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은 사람들이 뭔 걱정이 있고 뭔 아픔이 있겠나.”
“그…….”
“지금도 보게나. 아무것도 안 한 주제에 우리가 전파해 준 문명을 즐기고 있지 않나. 그거 아나? 여기 사람들, 말도 길들이지 못했었다네.”
“그…….”
총 균 쇠 얘기를 해야만 할까나?
나는 너무나도 확고한 식민지적 사관으로 떠들어 대고 있는 리스턴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이거랑 완전히 같은 논조는 아니지만…….
일본이 우리나라 침략하고 떠들어 댔던 거랑도 어느 정도 비슷하잖아?
‘아니다, 됐다…….’
주술사 취급은 지금 정도가 딱이다.
의학적으로 쓸모가 있는 주술사가 좋다, 이 말이다.
여기서 괜히 더 커다란 시야를 가지고 있음을 어필하는 건 분란을 조장할 뿐이다.
심지어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잖아?
말 그대로 책 몇 권 본 게 다니까.
“그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 자네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아니…… 당장 저 부족장 말입니다.”
“부족장? 저 사람은 꽤 건강해 보이는데?”
“눈이 잘 안 보일걸요?”
“허어…… 주술로 그런 것도 가능한가?”
“아니, 이건 오래된 거라니까.”
“그걸 어찌…… 난 잘 모르겠던데.”
나도 아마 그냥 봤으면 몰랐을 거다.
백내장은 정말 심해지기 전까지는 아예 실명은 아니거든.
뿌옇긴 해도 사람들의 실루엣은 볼 수 있다.
문자를 자주 봐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지금 내가 마주했던 사람처럼 지체가 꽤 높은 사람이라면야 말할 것도 없을 거다.
“일단 다시 가죠. 아픈 사람들 치료해 주면서 신뢰도 높이고, 그걸 바탕으로…….”
“저 산맥의 금광을 싹 우리가 먹자 이거지?”
“그…… 뭐 어떻게 보면 그렇죠.”
“좋아, 역시 자네야.”
아무튼, 나는 리스턴과 입을 맞춘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꽤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으나 그사이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참이라 그런가 딱히 오래 기다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바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픈 사람들 있죠? 부족에.”
“으응?”
“그 사람들 치료해 주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믿을 수 있는지 어떤지 평가해 주시죠.”
“아니…… 치료라니. 그것도 자네를 어떻게 믿고…….”
“제가 영국 왕의 주치의입니다.”
“왕?”
“네. 영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으음…….”
말하면서 느낀 건데, 역시 사람은 자리 욕심을 내고 봐야 하는 것 같다.
왕이니 뭐니 하는 개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디언들의 얼굴조차 흔들리고 있는 걸 보면 진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