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1화(351/505)
351화 태곳적 사람들 [1]
다그닥.
결국, 부족장을 설득한 것은 밀러였다.
옆에서 대강 들은 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놈들 의술이라는 거…… 태반이 사기 같긴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달라요. 진짜 죽을 사람을 살렸어요. 심지어 얼마 전에는 총 맞은 사람도 살렸다니까요? 피도 나눠 주고. 어, 옳지. 심장도 누르고. 소문에 따르면 피를 막 머리랑 심장에서.
-의사가 아니라 주술사로군!
-네네. 그렇다니까요. 세계 최고의 주술사래요.
-흐음…… 그렇다면 믿을 수 있을지도. 하긴 전형적인 미국 놈도 아니고 영국 놈도 아니게 생겼지, 그러고 보면.
뭐…….
그래, 주술사 메타로 나가기로 한 건 암만 생각해도 잘한 거 같다.
어째 사람들이 되게 호감으로 여기는 거 같아.
의사라고 하면 싫어하는데, 주술사라고 하면 제일 안 좋은 반응이라고 해 봐야 두려워하는 거 정도?
하나 걱정이 있다면 역사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려나 정도인데…….
‘알 바냐. 일단 지금 당장 살아남고 봐야지.’
역사?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사회가 안정되었다거나 적어도 자기 상황이 안정되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름 남길 생각할 동안에 어? 돈이라도 한 푼 더 벌고…….
아니, 눈앞에 있는 환자를 살릴 생각을 해야지.
아까 말이 헛나왔는데 내가 이러는 것은 진짜 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이러는 거다.
다그닥.
아무튼, 마차 타고는 못 가는 곳이라 해서 말을 타고 가고 있다.
덴버에서 살짝 남쪽에 있다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가고 있었는데, 확실히 이놈들의 ‘살짝’은 일반적인 의미의 ‘살짝’은 아닌 거 같다.
멀다…….
하긴 가까웠으면 밀러가 바로 다음 날에 왔을 거다.
그러지 못하고 이틀 이상 걸렸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풍광이 좋군.”
“그런 말이 나옵니까? 노숙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날씨도 좋고.”
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인 리스턴을 포기하고 블런델을 바라보았다.
블런델은 역시나 내 기대에 부응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이런 망할. 풍경이고 나발이고 길이 너무 험하지 않나.”
“그러니까요.”
“저도 런던 근교에서 말깨나 타는 사람인데 이런 길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앨프리드와 조지프 그리고 콜린 모두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길이…… 진짜 야생 들판 그 자체였다.
들판이라고 하면 막 달리기 좋을 거 같지?
아니다.
잡초가…….
이 분위기에서는 우리가 잡초고 얘네가 원래 있던 분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뭔 놈의 풀이 이렇게 억세게 자라 있는지…….
그나마 인디언분들이 기막히게 길눈이 좋아 그 뒤를 종종 따라가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말 넘어지고 난리 났을 거다.
‘생각보다 말이…… 약한 동물이더라고.’
말은 안 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말 두 마리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더랬다.
사람 골절도 고치기 어렵지만 말은 더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나도 뭔가 좀 해 보겠다고 깔짝거렸지만, 말 주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눈물을 머금고 총을 쏴서 죽여 버렸다.
어차피 낫지도 않을 텐데 굳이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였다.
그러고 보니 우마X스메를 즐겨 하던 내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긴 하다.
말은 다리 부러지면 보통은 안락사를 하게 된다고 했던가.
“저기입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앞의 사람만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별거 아닌 여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거의 새벽녘에 출발했는데 이제 밤이었다.
횃불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코앞도 보기 어려울 만큼 어두웠다.
그래서 그런가, 저 멀리 피어오르는 여러 줄기의 연기가 눈에 확 들어오긴 했다.
“마중 나오는군요.”
그걸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랬을 텐데, 마중 나온단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꽤 많은 인디언들이 횃불을 들고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옆을 보니 리스턴은 이미 칼 손잡이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을 뜬 채였는데…….
역시 무협지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이쪽으로. 조심조심. 말고삐를 아예 주세요.”
“아, 네.”
물론 경계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이나 부족민들은 우리를 친절하게 그들의 영역으로 이끌어 주었다.
확실히 아직 한 입으로 두말하는 풍습은 자리 잡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 멀리 밀러가 몸짓으로 내가 그러지 않았냐고 하는 것이 보였다.
-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불쌍하고 안쓰럽지만…… 좋은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몸짓만이 아니라 틈만 나면 이렇게 말하긴 했더랬다.
그리고 부족민들은 그런 밀러의 말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우리의 말을 끌고 가 밥을 먹이고 쉬게 해 주었다.
우리에게 해 준 것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원래 전통주인지 아니면 전래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름 마시면 취할 것 같은 곡주와 함께 맛있게 구운 사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조금 슬퍼지는 것은 그냥 이렇게 먹는 게 영국에서 먹는 어지간한 식사보다 낫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영국 음식을 무시하는 것같이 느껴지겠지만…….
그런 거 아니다.
“아니…… 이 고기가 왜 이렇게 맛있지?”
“영국 돌아가면 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아…….”
“기다려 봐. 내가 돌아가면 손수 사냥이라도 할 테니까.”
우리 일행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오죽하면 돌아갈 날을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겠나.
아무튼, 첫날은 그냥 그렇게 먹고 잤다.
인디언 텐트에서 자다 보니 아무래도 좀 잠자리가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는 길이 너무 험하고 생소해서 그런가 피곤했는지 아주 잘 잤다.
“흐아암…….”
그렇게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부족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제도 좀 느꼈는데 햇살 아래서 보니 더더욱 그랬다.
적어도 이 부족의 생활상은 우리가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모양과 아주 흡사했다.
일단 원뿔형의 동물 가죽으로 만든 텐트에서 자는 것도 그렇고, 치장하는 방식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하지만 내 지식은 딱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 이상은…….
내가 알 게 뭐란 말인가.
‘막말로 우리 조상도 아니고.’
사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수천 년 동안 그들의 생활 양식을 지켜 온 사람들 아닌가.
한반도로 치면 고조선 시절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라는 건데…….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도 잘 모른다.
고인돌 정도나 알지 뭐…….
해서 일단 나는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발전이 없는지 원.”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참…….
들을 때마다 뜨악한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 백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긴 할 터였다.
“뭐…… 그래도 혹시 모르네. 이대로 지금까지 생존했다는 건…… 그만큼 장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블런델도 말이 좀 부드러울 뿐이지, 별반 다르지 않잖아?
우리의 제자들?
이 녀석들도 똑같다.
특히…….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얼굴 붉은 것들이 흑인보단 조금 낫지만…… 역시나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거 말입니다.”
우리 콜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쉴 새 없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고 있다.
나를 지칭했을 리는 없으니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겠지만…….
“얼굴에 색이 있는 놈들은 아무래도 좀 열등하다, 이건가?”
“네? 아니, 아니.”
“노랭이가 붉은 놈보다는 좀 나아?”
“아니, 아니. 교수님! 그런 말이 아니라.”
심술이 좀 났다.
그래서 마구 긁다 보니 좀 애매해졌다.
결론을 대체 어떻게 내야 한단 말인가.
‘인종에 차이가 없다?’
이게 사실 참이다.
설익은 지식을 가지고 역사를 들여다보면, 대체 왜 이 인간들은 이 좋은 땅을 두고 아무것도 못 했을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문명이라는 게 땅과 사람만 가지고서 발전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가축화시킬 수 있는 동물과 곡식 그리고 기후와 지정학적인 위치 그리고 광물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여기?
여긴 일단 가축도 없고 곡식도 모자라는데, 철도 오대호 근방에서만 많이 나서 더더욱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을 거다.
“밀러 보면 모르냐? 지능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능 차이가 없다고 하기엔 좀 용기가 달린다.
이 안에서야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김태평이 그놈이 검둥이랑 우리랑 차이가 없다고 했다던데?
이 지랄 하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아도 런던에서 돈 벌고 권력 누리게 되면서 차츰 적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이건 좀 위험하다.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밀러는 명예 백인!”
한 대 치고 싶긴 한데…….
어쩌겠어.
시대 분위기가 이러한 것을.
얘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인다.
다들 인디언 부족을 관찰하고 있긴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동물원 보듯 하고 있다.
와 신기하네.
저렇게 사네.
이렇게?
“아무튼, 저는 아픈 사람들이 있는지 좀 보고 올게요. 부족장이 모아 둔다고 했어요.”
“어, 같이 가세.”
“네, 형님.”
“블런델 교수님은요?”
“나? 나는 일단 좀 더 보겠네. 혹시 모를 일이라.”
“아…… 네, 너무 무례하게만 하지 마세요.”
“하하. 내가 자네 같은 줄 아나. 밀러랑 같이 다닐 거야.”
그나마 블런델은 좀 다르긴 했다.
그는 진짜로 타산지석 삼을 만한 일이 있는지 보기 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런던 의학 즉 19세기 의학에 문제가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않나.
지금이야 내가 여러 가지를 고쳐 준 덕에 나아지긴 했지만…….
리스턴과 같이 단순한 사람은 딱 현 상태를 19세기 의학이라고 정의하지만, 블런델은 나름 메타 인지가 있다 보니 내가 고쳐 주기 전을 19세기 의학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뭐…… 그 상태에서라면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아마 영국이 식민지 삼은 곳들…….
그중에서 특히 인도 같은 곳은 지금 19세기 의학보다 뛰어난 의학 지식들이 있을 거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근데 여기도 있으려나?’
편견은 아니다.
난 이 문명이 왜 정체되었는지 배웠으니까.
다만 그 정체된 문명에서 지금의 우리가 배울 만큼 대단한 것이 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인 거다.
“다녀와!”
“네.”
아무튼, 나는 블런델을 제외한 나머지를 데리고 부족장에게로 향했다.
부족장이 있는 텐트라고 해서 막 엄청 크고 그러진 않았다.
다만 몇 개를 이어 붙이긴 해서 안에 들어가 보니 의외로 공간이 꽤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넓은 건 아니었는데…….
“이게 다예요?”
“아무래도 믿음이…….”
“아.”
그것도 다 못채 울 정도로 적은 환자들만 와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도 이럴 거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좀 다를 터였다.
딱 봐도 어? 내가 고칠 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