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4화(354/505)
354화 태고적 사람들 [4]
유레카를 외치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별로 유쾌한 사실은 아니었다.
‘불소라는 것이 마냥 약으로만 쓸 수 있는 물질이 아니……지?’
세상 모든 약들이 다 그렇지만은…….
어?
불소는 그중에서도 꽤나 독성이 강한 녀석이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불소 관련한 질환만 해도 여러 가지가 될 정도다.
만약 지금 이 물에 있는 불소 농도가 지나치게 높다면 이 부족들에게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거다.
‘일단 치아 불소증.’
이건 너무 어린애가 사용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치아에 착색이 된다.
갈색이 남게 된다, 이 말이다.
그 외에 딴 게 있냐고?
없다.
그냥 착색만 된다.
이따 애들 어떤가 좀 봐야겠다.
아무래도 내가 외지인이라 그런가 너무 경계를 해서 애들을 못 봤어, 그러고 보니.
‘그리고 골격 불소증.’
불소에 너무 노출이 많이 되면 뼈가 단단해진다.
뼈가 단단해지면 좋은 거 아닌가 싶을 텐데, 지나치게 경도만 올라가게 되면 탄력이 적어지면서 오히려 골절이 더 잘 일어나게 된다.
바람 세게 불 때 낭창낭창한 나무는 잘 버티는 데 반해 너무 곧은 나무는 부러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이건…… 골절 환자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 좀 봐야겠다.
문제는 봐도 좀 헷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워낙에 골절이 흔한 세상이니까.
‘갑상선, 뇌질환도 가능하지? 여드름이나 심근경색도 생길 수 있고…….’
그 정도를 넘어가게 되면 이제 별의별 병이 다 생기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치아우식증을 막아 낸다는 건 충치균을 죽인다는 거잖아.
유독성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적정 농도를 유지하면…… 보건 위생학적으로 어마어마한 유익이 있지.’
우리나라는 내가 알기로 아마 더 이상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고 있진 않을 거다.
애초에 제대로 그렇게 한 적도 없긴 할 거다.
불소의 독성에 대한 우려 때문인데…….
사실 이것도 약간 오해긴 하다.
지나치게 많으면 당연히 제거를 하긴 해야겠지만…….
실제로 60개국에서는 불소를 첨가하고 있다.
첨가하는 국가와 아닌 국가의 유·소아 충치 유병률의 차이가 있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하다가 안 하게 된 국가들 또한 유·소아 충치 유병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다시 말하면 이 불소 온천의 농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단 화학 연구소에 보내서 안에 든 물질 성분 의뢰를 하긴 할 텐데…… 그거야 뭐…….’
불소 분리가 실제 역사에서는 대체 언제쯤 이루어졌을까?
어마어마하게 오래 걸렸을 거 같다.
이상하게 19세기 과학자들은 쓸모 있는 물질은 못 분리하고 마약 같은 건 귀신같이 분리하고 그러더라고.
아무튼, 다시 원주민들에게로 돌아갈 시간인 듯했다.
이들의 상태를 보고 또 이들은 이 물을 어찌 사용하고 있는지를 좀 봐야겠다.
‘어찌 사용하고 있는지야…… 뭐…… 별로 참고가 되진 않을 성싶긴 한데.’
19세기 런던 사람들조차 야만의 극치를 달리는데 이 사람들이라고 다르겠나?
뭐…… 문자도 없을 줄 알았는데 있으니 어느 정도 기록에 따라 축적된 지식이 있긴 하겠지만…….
아무리 문명 발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던 환경에 처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그래도 런던이라는 벨 에포크 시대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 있다가 온 내게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 원시적으로만 느껴지고 있었다.
이런 느낌을 감안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배울 게 있을 거라 여기고 오늘 하루 이 부족민들을 쭉 관찰하기로 한 블런델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이 엄청 열려 있어.
나 같은 젊은 꼰대랑은 달라.
하지만 의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꼰대적인 기질도 필요하긴 하다.
누군가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안전해진다니까?
‘진짜 의학에 있어서는 너무 실험 정신 미쳐 버리는 것도 좋진 않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19세기 놈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얘기를 자세히 안 해서 그렇지…….
내가 일구어 놓은 그 많은 업적들에서 파생하고 있는 수많은 부작용들이 있거든.
일단 수혈이 가장 대표적이다.
런던에서 왕과 국회에 의해 공인받은 수혈 기관은 우리 병원과 블런델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경찰, 군부대 수혈소뿐이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분들 월급이 대단치가 않다 보니 뒷골목에서 부업을 뛴다더라고.
‘하.’
지금 자세히 말해 봐야 별 소용은 없을 거 같다.
나중에 런던 돌아가서 다 뒤집어엎을 때, 그때 자세히 읊어야겠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면한 과제잖아?
불소.
“음…… 입 안이 영 찝찝하구만그래.”
내가 이렇게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일행은 부족민들이 거하는 곳으로 열심히 발걸음을 놀리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엔 물가 근처에 있지 왜 멀리서 지내나 싶었는데, 온천에서 나는 냄새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저희도요.”
“네, 저도.”
“저도 영…….”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을 만큼 멀었다.
말 타고도 거의 30분 정도나 걸릴 만큼이나 떨어져 있었다.
뭐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거의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다 보니 거리로 보자면 기껏해야 4, 5킬로 정도나 될 거 같긴 한데…….
그렇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놈들 말처럼 입 안이 좀 텁텁했다.
마냥 답답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이게 불소 때문이라는 걸 아니까.
“근데 이 물이 진짜 도움이 될까요?”
“모르겠는데…… 오히려 이상한데.”
뭣도 모르는 놈들이 하는 소리는 무시해도 좋았다.
“아니, 될걸세. 어제오늘 쭉 봤는데 확실히 충치가 적더구만.”
리스턴을 봐라.
이론은 전혀 몰라도 벌어지는 현상만으로도 뭔가 알아차리는 머리가 있잖아.
이 사람의 말대로다.
효과는 분명히 있을 거다.
문제는 부작용이 있는지 여부인데…….
“어, 이제 오나!”
그걸 알아보기 전에 마주치게 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블런델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밀러가 붙여 준 사람과 함께 부족 내부를 관찰하고 다녔을 텐데도 불구하고 표정이 아주 밝았다.
뭐……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다.
21세기에서조차 체력은 대단한 경쟁력이잖아?
19세기에서는 그 정도가 아니라 그냥 위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내 이런저런 불평불만 때문에 와전되었을 수도 있는데, 블런델 정도면 사실 런던에서 위인 소리 듣고도 남을 사람이거든.
그 말은 곧 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낯선 곳에서 시달렸다면 지친 기색이 역력해야 옳았다.
내 옆에 있는 리스턴이야 인간이 아니니 넘어간다 치더라도, 새파랗게 젊은 나나 조지프 등등도 지쳐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헌데 블런델은 그런 기미가 아예 없었다.
해서 이렇게 물으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왔다.
무언가 이상한 더미를 내밀면서였다.
“이거 뭔지 아는가?”
“으음…….”
우리는 일단 말을 맡기고, 우리에게 배정되어 있던 텐트에 앉았다.
그러곤 블런델이 들이밀었던 더미를 바라보았다.
‘쓰레기…… 아닌가?’
쓰레기라고 해서 21세기식 쓰레기는 아니다.
플라스틱이나 이런 게 있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버려야 할 거 같은 물건이다, 이 말이었다.
“이건 물이끼로군?”
허나 역시 내가 잘못이었다.
21세기 현대 촌놈이라 그런 것이었다.
리스턴은 딱 보자마자 이게 뭔지 알아맞혔다.
“바짝 말렸는데…… 이건 인위적으로 말린 거 같은데?”
“그래, 그래. 용케 알아보는구만?”
“근데 영국에서 보던 것하고는 많이 다르군그래. 엄청 커.”
“그래, 크지? 그리고 보게나. 이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블런델은 그런 리스턴의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면서 텐트 안에 있던 무언가를 들고 와서 들이부었다.
물이었다.
온천수야 멀리 있지만 그냥 물은 이름 모를 강의 지류가 근처에 있어서 쉬이 구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어…….”
그거야 뭐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을 마른 물이끼에 부은 다음에 벌어진 일은 꽤나 대단한 일이었다.
“이거 무슨…….”
물이끼가 스펀지처럼 물을 쫙 빨아들이고 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만 봐도 물을 적지 않게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끼를 올려 두었던 그릇이 거의 젖지 않았을 정도였다.
물이끼의 양이라고 해 봐야 그렇게 많지도 않았음에도 이렇다니…….
“신기하네요?”
말 그대로 신기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블런델이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거뿐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거뿐이었다.
신기하지, 뭐.
스펀지…….
그거 일상생활에 쓰면 얼마나 쓴다고.
설거지?
근데 설거지하기에는 물이끼가 그렇게까지 끈끈해 보이지 않았다.
‘근데 저렇게 보니까 뭔가 다른 말을 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블런델이야 실망과 경멸이 섞인 얼굴이지만 리스턴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은 기대감에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한마디는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하지만…….
구라 마스터인 나조차 이 물 빨아들이는 마른 이끼를 보면서 뭔가 그럴싸한 말을 하는 건 무리였다.
“진짜 없는데.”
“허어…… 하긴 자네야 뭐…… 거의 수도승이니.”
“네?”
“여자를 안 만나지 않나. 자네 명성에 독특한 외모면 그래도 찾는 여자들이 있기는 했을 텐데 말이야. 뭐 언제라도 취향을 밝히고 싶으면 얘기하게. 소개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이걸 이 부족민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참으로 놀라웠네.”
그래서 모르겠다고 했더니 블런델이 또다시 내 모쏠을 공격했다.
뭐라 하고 싶었는데, 블런델은 이런 식의 대화에 능숙한 만큼이나 서둘러서 다음 화제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화제라는 게 꽤 놀라워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우선 기저귀.”
“아!”
기저귀!
19세기 서민들의 육아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지옥이 따로 없다, 진짜로.
대부분이 강제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갓난쟁이가 태어난다니…….
괜히 산모들 자살률이 나날이 치솟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 와중에 기저귀?
그런 게 어딨나.
그냥 바닥에 싼다.
헌데 이걸 이용하게 되면 적어도 소변은 깔끔하게 해결이 가능할 거다.
심지어…….
“이거 내가 벌써 열 번도 더 썼다는 걸 얻어 온 거야. 근데 말리면 다시 쭉쭉 흡수를 한다네. 적어도 스무 번은 너끈하다더구만.”
“오…….”
“그리고 또 있네. 이게 사실 더 대박이야.”
“뭐죠?”
“생리대.”
“생리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영국인들은 생리 처리를 어떻게 하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생리대가 보편화 되어 있는 물건이지 않나.
심지어 부가세 면세다.
필수 산업용품이니까.
헌데 그에 비해 여기서는 그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다.
궁금해서 물으니 블런델의 표정이 좀 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