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6화(356/505)
356화 19세기 쇼닥 [2]
쇼닥.
이게 어감이 좀 그래서 그렇지 사실 쇼맨십이 있는 닥터가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남들 앞에서 떠들 생각에 막 설레고 그런다.
사실…….
-나 이번에 ‘닥터프렌즈’라는 너튜브 나가게 됐네, 하하.
-나 이번에 방송 타잖아.
-하하, 또? 어디래?
우리 교수님들도 안 그런 척하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거 다들 좋아했더랬다.
아니…… 생전 안 하던 넥타이를 막 매더라니까?
심지어 어떤 교수님은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나왔다.
특히 맨 앞에 얘기했던 ‘닥터프렌즈’라는 곳은 재미와 품위 모두 놓치지 않는 훌륭한 채널이다 보니 더더욱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내가 좀 아는 친구가 거기 운영자라 잘 아는데 그 친구가 좀 괜찮아서 가능한 일일 거다.
아무튼, 콜로라도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눈 대화 끝에 정해진 주제는 다음과 같다.
-닥터 평신의 더 나은 여성 건강을 위한 세미나
-닥터 평신의 더 강한 남성을 위한 세미나
-닥터 평신의 미신 타파, 이것만은 제발 하지 마세요
-닥터 평신의 건강 보조 식품 길라잡이
-닥터 평신의 100세 살기 세미나
뭐 여기서 상황에 따라 좀 더 바뀌거나 추가되거나 줄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렇다.
“아…… 경치 좋네. 여기가 어디라고?”
“일리노이입니다. 저번엔 약간 남쪽으로 가서 통과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이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왜?”
“그냥 가다 보니 길이 그렇게 됐습니다.”
“아.”
나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이 다 잘 풀렸으니까.
심지어 기대도 안 했던 샘플까지 이고 지고 가고 있다.
몇 명 치료해 줬더니만 금도 결국엔 좀 캐게 해 주더라고.
그래 봐야 금광을 캔 건 아니고 사금에 불과했지만, 지난 몇천 년 동안 딱히 문명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 그런가 잠깐 했는데 킬로그램 단위의 금을 구할 수 있었다.
다들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 말이다.
‘부족장의 백내장…….’
그래서 하나 걸리는 게 있긴 하다.
백내장.
아마 부족장의 시력은 지금 기껏해야 0.1, 0.2 정도일 거다.
그것도 글씨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기지 선명하게 보이진 않을 거다.
수정체가 간유리처럼 변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얘기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백내장이 발생한 수정체를 제거하고 거기에 인공 수정체를 끼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되겠냐, 상식적으로.’
내가 비록 의학 외적으로는 좀 무지한 편이지만 그래도 의학과 관련한 역사는 몇 개 아는데…….
그중 하나가 인공 수정체에 관한 거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조종사를 치료하다가 그 힌트를 발견했을 거다.
전투기 뚜껑을 캐노피라고 하는데, 그 캐노피 조각이 깨져서 눈알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염증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한 안과 군의관이 이거다 해서 그 소재로 첫 인공 수정체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그거 화학식이라도 봐 뒀지.’
그게 다다.
화학식은커녕 이름도 모른다.
그거 말고 또 생각하는 게 있다면 모네에 대한 일화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화가잖아?
나도 예술의 전당인지 시립 미술관인지 초대전 할 때 한번 가서 봤는데 그 양반이 말년에 진짜 심각한 백내장으로 고생했다더라고.
‘그냥 제거만 했다고 하는데…… 밀어 넣었다고 했지?’
그 당시 의학이…….
아니, 이렇게 말하면 되게 실례가 되겠다.
그 사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든.
20세기 초에 돌아가시는데, 그때까지도 백내장 치료라고 하면 참 한심한 수준이었던 거 같다.
‘뭐, 이거야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나도 백내장 발생한 수정체 제거해 주는 건 할 수 있다.
자랑은 아닌데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안구 적출을 할 때도 있단 말이지.
심지어 안과 인턴 돌 때는 각막 기증자들 대상으로 적출하는 거 보조한 적도 있다.
안구 적출이랑 수정체 제거랑 아주 같지는 않겠지만 연습 좀 하다 보면 아마 될걸?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아, 그냥. 부족장 눈 때문에요.”
“아…… 그 사람 눈이 하얗더군.”
“네, 그거 어떻게 해 줄 수 없나 해서요.”
“뭐…… 런던에 몇 명 있긴 할 거야. 근데 영 신통치 않을걸?”
“아마 그렇겠죠.”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리스턴이 나를 불렀다.
그는 떠나오는 내내 표정이 아주 좋았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음이 푸근하겠지만 리스턴에 비할 수는 없을 거거든.
이 양반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근데 그거 안 덥습니까?”
“덥긴 한데, 그래도 좋아.”
곰 가죽을 통으로 써서 만든 옷이다.
사람 덩치가 워낙 커서 그런가 진짜 곰 같아 보인다.
마을 사람들 기술로는 절대 무리였고, 부족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솜씨를 십분 발휘해 주었다.
덕분에 리스턴은 인간 곰이 되었고, 그 안에서 헤벌쭉 웃고 있다.
“아무튼, 성과가 아주 대단했네.”
“그러니까요. 쟝도 잘됐죠.”
“그렇지. 런던 같았으면 지금쯤 이의 절반은 뽑았을 거야.”
“온천수의 효능이 대단해요. 물론 과용하면 안되겠지만.”
실험도 잘됐다.
부족민들이 오랜 경험에 따라 축적된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더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위험하진 않으면서 동시에 효과가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바로 시행할 수 있었다.
하루 딱 한 번만 가글을 하는데, 그 기간을 한 달을 넘기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열흘 정도만 머물다 왔으니 한 달을 넘기기도 어렵긴 했지만…….
그사이에 이가 썩은 놈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건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생리대도 이거…… 효과도 그렇고 꽤 있어 보이지 않나?”
“면으로 싸니까 더 있어 보이긴 해요. 확실히.”
아, 돌아오는 길에 생리대 또는 기저귀에 대한 개선도 있었다.
캔자스에 있던 농장에 들러 또다시 물품과 아이디어를 강탈한 덕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남부야 목화가 그냥 널려 있는 곳이잖아?
애초에 흑인 노예가 계속 필요한 것도 목화 따는 게 워낙에 노동 집약적인 일이라 그런 거다.
해서 거기 들려서 면직물로 물이끼 말린 것을 싼 제품을 대강이나마 만들어 봤는데 이게 대박이다.
농장에 지내던 이들 중 마침 생리 중이던 이들에게 사용해 보라고 했더니 만족도도 어마어마했다.
“그럼 이번 미국행으로…… 금, 온천수, 생리대. 이렇게 세 가지를 획득한 건가?”
“그렇죠. 뭐 이득을 많이 나누긴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죠.”
“그래. 앨프리드네가 뒤통수 칠 사람도 아니고.”
“그러니까요. 밀러란 사람이 귀한 사람이죠.”
“확실히…… 인디언 중에도 그런 걸물이 있구만.”
나와 리스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의 인디언 친구 밀러 커티스가 남은 쪽이었다.
그는 콜로라도에 남았다.
캔자스에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두긴 했다지만 일단 왔다 갔다 하면서 사업을 중개할 생각인 듯했다.
상단 쪽도 밀러 정도면 오래 일을 같이 한데다, 부족민들의 협조가 어찌 되었건 간에 필요한 상황이다 보니 이득을 좀 나누어 주면서 일도 시키기로 했다.
같이 온 직원이 거의 전권을 가지고 있던 데다 앨프리드도 상단 아들이니만큼 현장에서 거의 다 결정할 수 있었다.
“뭐…… 특별한 일 없으면 잘되겠죠.”
“그래. 잘되겠지. 아주 좋구만.”
“그나저나 미국…… 진짜 넓긴 넓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허허벌판이라는 게 문제지만…… 내가 잠깐 보니 농사도 아주 잘되는 거 같고. 이대로면 어쩌면 미국이 영국을 추월할 수도 있겠어. 하하하.”
리스턴은 주변을 돌아보더니 이렇게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는 식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21세기의 대영제국은 해가 져 버린 지 오래지 않나.
뭐,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살 만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에 비빌 수는 없는 나라가 된다.
‘그 꼴 보기 전에 죽기야 하겠지.’
내가 어느 정도 관리를 해 준다고 해도 19세기에서는 60세 넘어가는 순간 매년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하는 수준이다.
진짜 아차 하면 죽잖아.
우리 윌리엄 4세께서도 어?
아직 60도 채 안 된 양반인데 벌써 죽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어디 노동자도 아니고 대영제국의 국왕인데도 그렇다.
‘그래, 그럼 그냥 조용히 있자.’
리스턴에게 괜히 주술사가 하는 말이니 잘 들으쇼 하면서 기분 잡치는 소리 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다른 때면 또 모르겠는데 단칼에 때려잡은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을 땐 피하는 것이 좋다.
“가는 길에 스프링필드나 들러서 갈까요?”
“스프링필드?”
“일리노이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좀 모여 사는 곳입니다. 거기서 정비를 하고 또 가시죠.”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도란도란 떠들고 있으려니 마부가 말을 걸어왔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마적이니 곰이니 뭐니 하면서 바짝 얼어 있더니 이젠 제법 여유롭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바로 뒤에 곰 인간이 타고 있는데 어떤 미친놈들이 시비를 걸겠나.
심지어 쟝이 소문을 낸 건지 뭔지 오다가 마주친 갱단은 알아서 돈을 좀 바치고 사라져 갔다.
그 지경이니 이토록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한 것도 이상할 건 아니다.
‘심슨?’
아무튼, 나는 불행히도 그렇게 박학다식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
조선사로 들어가도 그럴 진데 미국으로 가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스프링필드란 말에 심슨이란 단어만 떠올랐다.
‘진짜 여기가 모델인가?’
알 수가 있어야지.
누가 근본 없는 나라 아니랄까 봐 같은 지명의 도시가 전국 곳곳에 있는 나라잖아.
내가 첨에 학회차 가게 된 메이요 클리닉이 로체스터에 있다고 해서 뉴욕에 있나 하고 비행기표 알아보다가 큰일 날 뻔했던 거 생각하면 등줄기가 오싹하다.
미친놈들이 왜 세계 최고의 병원을 중부 시골 미네소타에 만들어 두었단 말인가.
아니, 대체 어떻게 거기 있는 병원이 세계 최고의 병원이 되었는지를 먼저 궁금해해야 할 거 같긴 하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인데…….
“어, 잠시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스프링필드였다.
21세기에는 어엿한 도시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나무 베어다가 그거 가공하느라 정신없는 곳이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휘영청 키가 큰 사내였다.
그냥 그런 거라면 모르겠는데 어디서 본 거 같다,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방금 저 사람……?”
“링컨 말입니까?”
“아, 그래. 링컨!”
“어떻게…… 아, 혹시 레슬링을 좋아하시나?”
“응?”
뭔 소리야.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랑 레슬링이 대체 뭔 상관이 있어.
딴 사람인가 해서 돌아봤는데 역시 그 사람이다.
“그건 모르겠고. 한번 얘기나 해 봅시다.”
“어…… 그러시죠.”
어?
그래도 19세기 와서 미국까지 왔는데 우연히 마주친 게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라면 인사는 나눠 봐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