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7화(357/505)
357화 19세기 쇼닥 [3]
“거기. 이분들께서 좀 보자시는데.”
“아니, 거기가 뭡니까. 링컨 경이라고 해야지.”
“경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랍니까. 경이라니.”
그래서 부르라고 했더니 이 양반이 너무 무례하게 구는 거다.
말렸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경은 피영시인 경과 리스턴 경이죠…… 저 사람은 그냥 레슬러예요. 요새는 뭐 변호사 하겠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래도 좀 어? 착하게 불러 봐요.”
“알겠습니다. 근데 이미 와 있는데요.”
“음.”
링컨의 나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일 거 같다.
보자마자 거기 거기 했으니 뭐…….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게다가 마부의 반응 또한 이상한 건 아니긴 하다.
내가 링컨의 생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닌데, 맨날 나오는 소리 있잖아.
젊었을 때는 진짜 고생하고 실패만 하다가 나중에 잘 풀린 케이스라고.
내가 잘은 모르지만 분위기상 남북 전쟁은 아직 한참 남은 거 같거든?
게다가 지금 본 링컨은 수염을 잘라서 그런가 엄청 젊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이신지……?”
그 링컨이 우리 마차 앞에 와서 인사를 하고 있다.
다시 봐도 키가 진짜 큰데…….
어느 정도로 크냐면 리스턴보다도 크다.
너무 말라서 체격이 좋다는 느낌보다는 꺽다리라는 느낌을 주긴 하는데…….
아무튼, 크긴 크다.
게다가 레슬러라고 들어서 그런가 팔을 보니까 나름대로 근육이…….
“이거 마음에 드는 친구로군.”
그래, 내 눈에 근육이 보였다면 리스턴 눈에는 한참 전부터 보였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근육 바보거든.
이럴 줄은 몰랐다.
왜 마차에서 뛰어 내려서 팔을 만져?
“뭐 하시는…… 그리고 대체 누구…….”
일반적인 정장, 그러니까 리스턴이 돈 좀 번 다음에 구비한 옷을 입고 있었다면 반응이 좀 달랐을 거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졸부다 보니까 은근히 부를 드러내는 옷은 절대 아니고 와 돈 많구나! 싶은 옷이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뭐라고 해야 하나.
좀 어려워지는 느낌이 든달까.
하지만 지금은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링컨도 좀 언짢아 보인다.
성질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 사람 노예 해방만 볼 게 아니라 전승 대통령이라고도 봐야 하잖아?
“눈 좀 보게. 하하. 더 마음에 들어!”
슬슬 호전적인 느낌이 일고 있는데 리스턴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고만 있었다.
“무슨 짓입니까?”
“아, 내가 부른 건 아니고. 자네를 부른 건 이 친구야.”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짓이…… 어?”
리스턴은 그러면서도 능숙하게 공을 내게로 넘겼다.
그 덕택이라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때문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링컨과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교과서에서, 또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얼굴이라 그런가 좀 뜨끔한 느낌이 있었는데, 나보다 더 격한 반응을 링컨이 보였다.
그럴 만했다.
사탕수수밭에 쿨리라 불리는 동양인 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해도, 거긴 하와이 아닌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곳이니만큼 이곳에서는 아직 동양인 보기가 쉽지 않은 게 정상이다.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할까.
‘대영제국 귀족이라고 해? 아니면 윌리엄 4세를 들먹여?’
둘 다 좀 그랬다.
뭐가 되었건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 전에 독립했거든.
어디로부터?
영국으로부터.
뿌리는 같지만 박 터지게 싸운 사이다 보니 아직은 좀 서먹하다, 이 말이다.
“런던에서 온 의사 김태평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킴…… 티에피영? 피영시인?”
“어?”
해서 심플하게 소개하고 돈이나 좀 쥐여 주고 나중에 잊지나 말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어랍쇼.
이 양반이 나를 알아본다.
“그럼 설마 당신은 검성 리스턴?”
“아…… 그렇다네. 검성이라기보다는 의사지만.”
“이 곰은 그럼 당신이 잡은 겁니까?”
“잡긴 했는데, 의사라네.”
“역시 검성…….”
“의사라니까? 귀가 먹었나?”
리스턴도 알아본다.
생각했던 거보다도 더 우리가 거물은 거물인 모양이다.
검성이니 피영시인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별칭까지 이곳 일리노이에 번진 것을 보면 말이다.
‘일리노이라고 하면 시카고밖에 모르는데.’
주도는 아니지만 제일 큰 도시지 않나.
학회도 거기서 주로 열린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인가 가 본 것이고.
“근데 저를 아십니까?”
“아, 나는 몰랐네.”
“그럼……? 피영시인이?”
“그래. 근데 대체 어떻게 아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구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역시나 시선은 이 사람을 불러 세운 장본인인 나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아무도 이 꺽다리를 모르니까.
아, 마부 정도는 알겠지만 적어도 영국에서 온 사람 중에서는 나만 안다.
“어떻게 저를 아시는 겁니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대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답이라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때는 아니다.
내가 실은 미래에서 왔는데 교과서에서 봤습니다. 댁은 곧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니…….
이따위 말을 해 봐.
어떻게 되겠어.
지금도 충분히 주술사 취급을 받고 있는데…….
저런 말을 했다가는 아마 귀국하는 즉시 보쌈 되어서 버킹엄궁 지하 또는 의회 지하에 갇혀 미래 지식 내뱉는 자판기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그것도 그리 나쁜 인생이 아닐 수도 있긴 한데, 문제는 내 미래 지식이라는 게…….
그러니까 역사 지식이라는 게 한계가 있다, 이 말이다.
“그러게. 어떻게 아는 거야?”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도 가세했다.
두 눈에 의심이 그득하게 차 있는 채로였다.
뭐…… 억울하진 않다.
지금껏 내가 뜬금없이 안다고 했던 사람들…….
싹 다 거물이었지 않나?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그랬다.
그건 그나마 내가 평소 예술에 관심이 있었다는 거짓말로 쓱 넘기긴 했는데…….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요?
-자네가 딱히 따로 소설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러 가는 일이 없는데 어찌 그들을 알았을까?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리스턴도 알고 블런델도 알고 다 안다.
특히 제자들일수록 더 상세히 아는데 조지프 이 새끼가 친구랍시고 내 평소 생활을 다 불어서 그렇다.
-평? 걔는 뭐 의학 말고는 관심 없지. 근데 진짜 어떻게 알았을까?
이따위 소리를 했더랬다.
그것도 들통이 났는데 미국에서 링컨을 안다고, 그냥 원래 알았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안 될 일이지.’
이상한 의심을 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의혹은 더 강한 의혹으로 덮는다.
주술사 메타로 간다.
“기운이 좋아서 말을 건 건데.”
“기운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피영시인이란 이름을 아는 걸 보면 자네도 얼추 아는 거 같은데…… 사실 우리 평신이 주술사라네. 그것도 아주 뛰어난.”
“아, 아아. 네. 그렇…… 그렇죠. 그럴 거 같습니다. 헌데 기운이 좋다는 건……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집으로 오시죠. 누추하지만 그래도 잠시 앉을 만한 공간은 있습니다.”
“오, 그래도 되겠나? 근데 우리는 숙소가 필요한데.”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이래 보여도 나름대로 이곳에서는 제가 꽤 끗발이 있습니다.”
기운이 좋다는 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던가.
아무리 무신론자고 아무리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도 영험해 보이는 사람이 와서 기운 좋다고 하는데 싫어하면 좀 이상한 사람이다.
무신론자라면 그냥 ‘내가 좀 범상치 않긴 하지, 눈빛이?’ 이럴 것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복을 많이 주시긴 했지?’ 할 것이다.
그게 19세기 사람이라면?
“자…… 여기 커피입니다. 차가 있으면 좋은데, 죄송합니다. 이곳에서는 홍차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요새.”
“아니, 좋아요. 오히려 좋습니다.”
집에 초대해서 커피까지 내오게 된다.
두근거리는 얼굴을 하고서다.
‘그래도 좀 지나치긴 한데……?’
아무리 비문명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는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해도 이건 좀 빡세다.
게다가 이 사람이 이거 그냥 아무 사람인 것도 아니고 링컨이다, 링컨.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1832년 일리노이주 선거 8위
어떤 문구였는데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8위가 얼마나 높은지 낮은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낙선했을 거라는 거 정도는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지 않나?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초청받아서 온 주제에 할 소리는 아니긴 한데…….
집이 진짜 누추하다.
우리가 으레 누추하지만……이라고 말할 때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사방에서 곤궁함이 넘쳐 흐르는 느낌이다.
‘그래, 자신감이 확 떨어졌구만…….’
당장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야 뭐 나라도 의기소침해지긴 할 거 같다.
책장 가득한 법에 관련한 책들에 비해 변호사에 대한 얘기도 없고 자격증도 안 걸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 시험 통과도 못 한 모양이니 더더욱 그렇다.
뭐 그래 봐야 23살이니 한창때이지만 그거야 21세기 기준이고 주어진 시간이 훨씬 짧은 편인 19세기에서 23살이면 될 놈이면 이미 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만 봐도 그렇잖아.
아직 20살도 안 되었는데 교수다, 교수.
“내 고향 조선에는…….”
“조선이요?”
“선비들의 나라일세. 대단한 지혜가 담겨 있는 말일 테니 새겨듣게나.”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나는 교순데 너는 뭐 했냐고 하겠냐?
그런 미친놈은 아니다.
용기를 쥐여 주려고 한다.
정신과가 별건가.
약도 없는 시대에 이 정도면 아마 이 시대 제일의 정신과 의사일 거다.
나름대로 내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하나가 정신과거든.
주워들은 게 많아요.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기만성……?”
나는 설명이 마려워 입술을 달싹이는 리스턴을 애써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미친놈이 언제 이것도 공부했대.’
런던에 돌아가면 반드시 저 집 지하실이라도 뒤져야겠다.
아마 잡혀 오신 선비 한둘은 있을 거야.
“그릇이 너무 커서 다 차는 데 오래 걸린다는 뜻인데…… 이는 후에 크게 될 사람이 인생 초반에 좀 굴곡을 겪는다는 해석이 됩니다.”
“아…….”
“내 보기에 링컨…… 뭐라고 하죠, 제가?”
“군이라고 해 주십쇼.”
“그래, 링컨 군.”
미국 대통령한테, 그것도 나이도 더 많은 사람한테 군이라니.
김태평! 출세했다!
나는 애써 미소를 감춘 채 말을 이었다.
“링컨 군의 기운을 보건대…… 이건 정말 보기 드문 기운이에요. 이보세요, 형님. 제가 어디 가다가 갑자기 ‘저 사람 보십쇼’ 한 적이 있습니까?”
“있기는 하지.”
“그 사람들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지.”
“그래. 그래요. 근데 이 사람이 제일입니다, 그중에서.”
“허…… 그래? 빅토르 위고나 뒤마보다도?”
“네, 그 둘보다도.”
프랑스 미안하다.
근데 어쩌겠냐.
빠게뜨 놈들인데 참아야지.
그에 비해 미국 애들은 좀 촌스럽긴 해도 뭐가 되었건 우리 핏줄…… 아, 나는 조선인이지.
아무튼, 어?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거든.
“허…… 그럼 정말 대단한 건데? 미리 사인이나 받아 둘까?”
“그러시죠.”
“아니, 아냐. 레슬링을 하세.”
“응?”
대화가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
우리 링컨이 다시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