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8화(358/505)
358화 19세기 쇼닥 [4]
“아니…….”
내가 웃거나 말거나 레슬링은 시작되었다.
흔히 생각하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은 아니고 약간 뭐라고 해야 하나……?
그것과 프로레슬링의 중간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 거 같은 경기였다.
“으…….”
“하하 괜찮나?”
사실 말이 좋아서 경기지 반쯤은 싸움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래도 링컨이 어느 정도 리스턴과 맞붙어 버텼다는 점이었다.
키가 더 크긴 해도 체격 차이가 있다 보니 한 방에 날아갈 줄 알았는데 힘이 나름 센 모양이었다.
“역시 검성…….”
근데 내 뒤에 있던 마부 반응이 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놀랐다고 해야 할까?
“왜 그래요?”
“네? 아, 아니…… 저 링컨…… 무패의 레슬러거든요.”
“무패? 정말요?”
“네.”
“아니…….”
해서 물어봤더니 정말이지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다시 봤는데 역시나 에이브러햄 링컨이 맞다.
이름이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맞다.
설마하니 똑같은 이름이 또 있진 않을 거다.
한국에서는 동명이인을 꽤 본 경험이 있는데 이쪽 문화권은 딱히 그렇진 않더라고.
일단 성이 어찌나 다양한지 다 외우지도 못할 지경이다.
빠삭한 사람들은 이름이나 성씨만 보고도 출신이나 신분을 알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근데 왜 레슬러야? 그것도 무패?’
그러니 이 사람이 후에 미국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완전한 통일 미국을 이끌게 되는 그 에이브러햄 링컨이 맞다는 건데…….
레슬러라는 게 신기하다.
생긴 것만 봐서는 피죽도 못 먹었을 것처럼 생겼잖아.
물론 팔 걷어붙이고 있는 걸 보니 근육 자체는 꽤 우람하게 잘 발달되어 있긴 하다.
‘진짜…… 여기가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지구가 아닌가?’
이곳에서의 링컨은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레슬러로 대성하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려는 찰나, 쓰러져 있던 링컨을 리스턴이 일으켜 세웠다.
링컨은 그때까지도 충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안쓰러운 건지 아니면, 나름의 호적수라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리스턴이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신기하다, 정말로.
“이보게. 그렇게 침울할 일이 아니야. 상대가 나지 않나.”
물론 그 위로라는 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긴 했다.
상대가 나니까 괜찮다니.
무슨 원X스에 나오는 미X크도 아니고…….
“검성이시라고 했죠?”
“그래. 이 곰도 죽였네. 사실 칼이 없었으면 그냥 주먹으로 죽였을 거야.”
“그……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대화는 더더욱 가관이었다.
곰을 때려죽일 수도 있었을 거라니…….
허세 가득한 아재도 안 할 법한 얘기지 않은가.
하지만 둘은 진지했다.
“그러니 부끄러워 말게. 여태 한 번도 안 졌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그럴 만해. 확실히…… 나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자네를 이기긴 어려워 보여.”
“그것이 참말입니까?”
“그래. 내가 본 사내 중 자네가 제일 강하다네.”
“허…… 그렇다면 역시 저는 레슬러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진지한 거 좋다.
레슬러의 길?
그것도 좋다.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미래의 위대한 정치인이 레슬러가 되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우연히 그냥 그렇게 되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이건 약간 나 때문인 거 같잖아.
이건 좀 그렇다.
“그래, 세계 챔피언이 될 거야.”
“하하. 용기가 샘솟습니다.”
어째 점점 더욱더 파이팅 느낌이 나서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 내가 본 기운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응? 자네가 본 기운은 이게 아냐? 이번엔 틀린 거 아닌가? 이 힘을 보게나.”
“네, 저도 말씀을 듣다 보니…… 사실 정치……하고 싶지만 재능이 없는 거 같아서요. 공부도…… 너무 힘들고요. 이래서야 대체 언제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
안 된다.
더 수렁에 빠지고 있다.
링컨 이놈! 흑인 노예를 해방해야 할 사람이 이게 무슨 약한 모습이란 말인가!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갈 하고 외치고 꾸짖고 싶지만…….
마냥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지금 링컨의 집 안 풍경이 꼭 21세기 다큐 같다.
우리네 청춘들이 대체 얼마나 힘들었나.
3포 세대니 4포 세대니 이상한 말 만들면서 돌리는데…….
‘베스트셀러…… 떠올라라!’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아냐, 이런 거 말고.’
이게 도움이 될 사람도 있겠지만 링컨은 아니다.
“링컨 군.”
“아, 네.”
머릿속을 뒤적거려 보니 그나마 건질 만한 말들이 있긴 했다.
해서 나는 점점 더 레슬러의 길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 링컨을 급히 불러 세웠다.
눈이 흐리멍덩한 게 벌써 자기가 누구인지 잊은 거 같다.
과연 검성 리스턴이다.
어쩌면 마공을 썼을는지도 모른다.
무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정파의 고수라 여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사파 고수인 모양이다.
하긴 생긴 거나 하는 짓으로나 어떻게 봐도 사파 쪽이 더 어울리긴 하다.
“왜 정치를 하고 싶은 겁니까?”
“아…….”
아무튼, 일단 나는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들었는데 조언을 할 때 무작정 설명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게 더 좋다더라고.
심지어 상대가 그 링컨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나.
이 사람은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이니까.
어?
나 같은 미물과는 달라요!
“레슬러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있기는 합니까?”
“아…… 아뇨. 이건 그냥 돈을 벌려고.”
“돈을 왜 벌려고 합니까?”
“정치를 하고 싶어서…….”
물론 약간 의도가 있는 질문을 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게 통할 수 있는 건 다 링컨이 이미 그쪽으로 가려는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술술 정치 얘기가 나오지 않나.
“그러니까 왜 하고 싶은 거죠?”
“미국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노예 해방을 위해서요.”
“노예가 어떻게 사는지 본 적이 있어요?”
“루이지애나에서요.”
“그렇군요. 저도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비참하더군요. 미국이 열강으로 발돋움하려면 그런 악습은 떨쳐 버려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고작해야 지역 의원으로는 무리입니다. 더 위로 가야 할 텐데…… 고작해야 변호사 시험도 떨어지는 제가 어찌.”
문제는 자신감이다.
계속되는 실패가 이 강인해 보이는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대화하면서 느낀 건데, 그냥 둬도 스스로 회복할 거 같긴 했다.
그런 친구들 있지 않나.
괜히 한번 엄살 부리는 애들.
그러나 기어코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해내는 애들.
링컨은 그런 친구들보다도 열 곱절은 더 강한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모름지기 조선 주술사라면 이럴 때 베팅을 걸어야 하는 법이었다.
“대통령. 제가 느낀 기운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네에?”
“무슨 소린가? 자네?”
내 말에 링컨은 물론이거니와 리스턴 또한 눈을 끔뻑였다.
자기도 모르게 방 안을 두리번거리면서였는데, 그럴수록 역시나 내 말이 틀렸을 거란 생각이 드는지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봐도 그럴 만한 공간이긴 했다.
참 후졌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안다.
“대통령이 될 겁니다. 믿기지 않으면 내기라도 하죠. 음…… 자, 이것!”
해서 나는 품 안에 있던 금덩이 하나를 꺼내 놓았다.
호기롭게 쿵 책상을 친 것 치고는 좀 작긴 한데…… 그래도 금이지 않나.
이 금이라는 게 참 묘한 것이라 눈앞의 사람을 현혹하는 힘이 있었다.
가난한 링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게…….”
“이걸 드리지.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100배로 갚아요, 링컨 군.”
“아니…… 이렇게 비싼 물건을…….”
“마음 놓고 공부하라고 주는 거니 받아요.”
“그…….”
리스턴은 그런 나와 링컨을 보다가 한마디 했다.
“평이 금을 거는 거 보니까 진짜 확실한 모양일세. 이 친구가 보기엔 이래 보여도 정말 인색한 사람이거든. 자린고비야, 자린고비.”
누가 조선 사람 납치한 놈 아니랄까 봐 고사성어까지 섞어 가면서였다.
문맥상 못 알아들을 만한 말이 아닌 데다가 링컨은 뭐가 되었건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니만큼 그게 뭐냐는 둥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렇다니까!”
“잘 알겠습니다. 제가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가 아니라 내기를 잊으면 안 되는 거죠.”
“하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요. 하하. 응원하겠습니다. 추후에도 후원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나는 멋지게 금덩이 옆에 내 명함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작은 명함은 아니었다.
그냥 내 주소와 직함 등이 적혀 있는 종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무튼, 귀족의 명함이니만큼 링컨은 그것도 크게 좋아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미국 귀족도 아닌데도 그랬다.
뭐…….
미국이야 근본 없는 식민지인들이 세운 나라이니만큼 귀족 같은 것도 없겠지만…….
“근데 말이야.”
“네.”
우리는 그렇게 일리노이를 떠나 캔자스로 향했다.
내 애제자 존 스노를 챙겨 가기 위함이었다.
사실 간단한 서한은 주고받았기 때문에 잘 지내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만리타향에 어린애 두고 온 생각을 하면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해서 꽤 서두르고 있는 참이었다.
“진짜 그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될 거 같나?”
“미국 뭐 별거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근데 보면 볼수록…… 이 땅을 보게나. 넓고 풍족한 땅이야. 따지고 보면 식민지인들이 이런 곳이니 그렇게 번성해서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앞으로는 더 대단해질 텐데…….”
“그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힘은 세더라만.”
“그게 아니라 심지가 곧은 사람이에요.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마차를 타고 거의 날듯이 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리스턴 덕이었다.
그는 내 몸이 정도 이상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꽉 잡아 주고 있었다.
참 대단한 양반이다, 진짜로.
“뭐…… 친구 없을 거 같긴 하던데. 근데 나이 들고 총 조심하라고 한 건 뭔가?”
“나중에 또 말해 주긴 할 건데. 타협을 모르는 사람만큼 미움받을 사람도 없지 않겠어요? 막말로 흑인 노예 이용해서 돈 벌고 있는 사람들한테 노예 해방하라고 하면…….”
“하긴 그렇겠네.”
그 덕분에 좀 덜 지루하게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캔자스는 여전히 너저분했다.
입구 쪽에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는데, 그게 우리가 아는 사람이었다.
“잉.”
“뭔가 알아낸 것이 있다더니 목 빠지게 기다린 모양이로군그래.”
존 스노, 그리고 그와 함께 남겨 둔 경호원들 그리고 일부 마을 사람들이 같이 있었다.
환자가 죽지는 않았겠다 싶었다.
그랬으면 저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없었을 테니.
“어서 오십쇼, 스승님!”
“어어. 그래.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일단 전에 말씀드린 대로 환자는 다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우선 이쪽으로…… 제가 여기 있으면서 조사를 한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