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5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59화(359/505)
359화 역학 조사의 달인 [1]
다른 놈이 조사 운운했으면 그 자리에서 뭐라고 했을 거다.
그러니까 내 선배 앨프리드나 친구 조지프 또는 콜린이 그랬다면 말이다.
얘네…….
너무 가까워져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좀 어? 그렇단 말이지.
원래 선지자는 고향에 가면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
얘네들을 선지자와 비견하는 건 좀 너무 영광스러운 일일 텐데, 아무튼, 친한 놈들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박해지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존 스노께서는…….’
이 양반은 내가 확실히 기억이 난다.
리스턴 박사님도 아마 어딘가에 이름 석 자는 남겼을 만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겠는데 반해 존 스노는 알아.
아직 현미경을 통해 균의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역학 조사만으로 수인성전염병인 콜레라의 전파 과정과 예방 방법을 어느 정도 추론해 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염내과 배울 때 이름이 딱 나온다.
주변 지식이 부족해도 의지와 끈기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구멍 숭숭 난 자료를 이어 붙일 수 있는 머리가 있다면 이런 위대한 일도 할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다.
‘그런 놈이 조사를 했다는데, 내가 어떻게 기대를 안 할 수가 있겠어.’
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따라갔더니만 이 녀석이 묵었던 숙소가 나왔다.
바닥에는 온통 무언가 끼적거린 흔적이 가득한 종이가 굴러다녔는데, 용돈으로 쥐여 주고 갔던 거 다 여기에 탕진한 듯했다.
대단히…….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종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기시감이 인달까……?
“이건데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뭔가 있어요.”
“뭔데?”
“담배입니다. 담배.”
“담배……?”
“네.”
존 스노는 그 말을 하면서 탁 침을 뱉었다.
종이 뭉텅이가 놓여 있던 바닥을 향해서였다.
그때 리스턴의 표정을 글로 표현하자면 ‘?’이었을 거다.
나라고 해서 예외였을까?
아닐 거 같다.
‘시발?’
역시 애들 앞에서는 숭늉도 못 마신다더니…….
똑똑한 애새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씹는 담배에 옮아 버릴 줄이야.
하아.
“여기 이 자료를 보시죠.”
“그래.”
“보면…… 캔자스시티 사람들 중에 남부 출신 사람들은 대부분 태우는 담배를 피웁니다. 그리고 북부 출신들이나 여기 토박이들은 씹는 담배를 애용해요.”
“어…… 그래.”
지금도 담배를 질겅질겅 씹고 있다.
되게 거슬리는데…….
보아하니 내가 뭐라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리스턴이 곧 뒤통수 후려갈길 거 같아.
그렇다면 내가 굳이 이놈과 척을 질 필요는 없지 않겠어?
“제가 여기 있으면서 잠시 클리닉을 운영했는데…… 보아하니 두 그룹 사이에 호흡기 질환 유병률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오……?”
역시 섣불리 뭐라고 안 하길 잘했다.
괜히 어?
천재한테 뭐라고 하는 건 역시 안 돼.
봐라, 여기서 있었으면 뭐 얼마나 있었다고 벌써 이런 말을 하냐고.
“그래서 더 조사를 해 봤더니…… 남부, 북부가 그런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북부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해서 씹는 담배를 애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만.”
그래, 이 사람들도 침 뱉는 게 즐거워서 씹는 담배를 쓰진 않았을 거 같다.
암만 봐도…….
어?
씹을 때 표정도 그렇게 좋지도 않다.
내가 비록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예상이 간다.
맛이 좋을 리가 있겠나…….
그랬으면 어떻게든 개선해서 21세기에도 씹는 담배를 쓰고 있을 텐데, 어떻게 됐어?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퇴근하고 나서는 연초를 태우긴 합니다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구?”
“그냥 일부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서는 아예 씹는 담배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그분들에게 물어보니 확실히 기침 유병률이 적었습니다.”
“허어! 너 정말 잘했다. 그래서 더 말해 봐.”
“네네, 교수님.”
듣다 보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소리였다.
21세기 지식이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기침 유병률만 가지고 21세기 운운하는 건 좀 오버긴 한데…….
아무튼, 담배가 무조건 건강에 더 좋다는 말이나 하는 놈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씹는 담배와 연초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파고들었는데…… 연초를 더 많이 피우면 피울수록 기침을 더 하는 거 같습니다. 뭐…… 여기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한계가 있긴 한데…….”
“이야…… 대단하다. 역시 존 스노다.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해!”
“네? 교수님도 그렇게…… 아, 하긴. 교수님께서는 담배를 아예 안 피우시죠?”
“그래. 담배가 건강에 좋을 리가 없는 것이거든. 만약 그랬다면…….”
미리 준비해 둔 논리도 있다.
어디까지 통할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우리 그룹 안에서는 통할 거다.
“주님께서 우리 영국 땅에도 버젓이 담배 나무를 만들어 두시지 않았겠나? 헌데 이것 보게나. 여기에만 있었지. 여기 원주민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나?”
미리 사과한다.
하지만 설득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
시대가 나를 인종 차별주의자로 만들고 있다구.
“코르테스 경이 남긴 기록을 보게. 자기들끼리 죽이고 그 인육을 탐하는 이들이었네. 나는 그걸 알고 나서부터 담배야말로 악마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네. 근데 자네 말을 들어 보니 역시나 그렇구만!”
“허…… 이게 주님을 통해서도 딱 알 수 있군요! 점점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 그래도 되겠네.”
우리 둘이 이렇게 신나서 떠들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불만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습관처럼 엽담배를 꺼냈다가 집어넣으면서였다.
“이거 그냥 우연 아니겠나? 이 좋은 물건이 왜 건강에 나쁘다는 건가.”
“통계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통계가 뭔데?”
“그러니까…… 어? 확률이 있다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 말 한대로 인구가 너무 적지 않나. 게다가 담배 외에 기침을 유발할 만한 요소가 얼마나 많을 텐데…… 그거 다 고려한 건가?”
“허어.”
리스턴…….
역시 이 사람은 힘만 센 괴물이 아니다.
통제 변수에 대한 개념을 배우지도 않고 떠들고 있지 않나.
아마 담배 피우고 싶은데 자꾸 못 피울 만한 근거를 찾고 있으니 짜증 나서 저러는 거긴 하겠지만, 아무튼 똑똑하니 이런 핑계도 댈 수 있는 거다.
“왜 그러나.”
“역시 똑똑하긴 해서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닙니다.”
“그…… 담배 자꾸 건드리다가는 난리 날 거라니까 그러네?”
“아예 못 피우게 하지 않으면 되죠? 막말로 건강에 안 좋다고 하면 안 피울 겁니까?”
“으음.”
중독이 이래서 무섭다.
심지어 담배처럼, 그러니까 니코틴처럼 의존성이 아주 강한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놈의 담배는 문화와 관습에 의해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
이걸 내가 없앤다고?
‘말이 되냐…….’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못 했던 일이다.
아니, 세상에 존재하던 그 어떤 나라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근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하나?
다만 조금 찝찝하게는 할 수 있을 거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긴 할 거다.
심지어 지금은 아군으로 인식되는, 우리 법인의 우군들까지 나를 저버리게 될 수도 있다.
막말로 기분 나쁜 소리를 하는 나 하나 그대로 묻어 버리고 가면 깔끔하잖아?
담배 산업이…….
이게 어마무시한 돈을 벌고 있으니 그럴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찝찝함을 내가 해결해 준다면?’
다시 말해 담배의 해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면 어떻게 될까.
뭐…….
이것도 말이 안 되긴 한다.
담배를 피우는데 해악이 없어져?
뭐 연초 태우는 거 보다 씹는 담배로 전환하면 더 낫긴 하겠지만…….
가뜩이나 식민지인들이 하는 짓은 다 색안경 끼고 보는 우리 영국인들이 씹는 담배를 할까?
보기에 좋아 보이면 또 모르겠는데 아무 데나 침 뱉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훌륭한 문명인의 자세는 아니다.
바야흐로 벨 에포크 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대영제국의 신민들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거다.
‘필터…….’
하지만 연초 뒤에 다는 필터를 만들어 판다면?
그걸로 나쁜 연기를 걸러 주어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한다면?
실제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할 거다.
그랬으니까 21세기 담배에는 다 필터가 달려 있겠지.
이론적인 근거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필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작은 도움은 될 거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돈도 벌 수 있다면 이게 최고 아니겠나.
“어떻습니까?”
“으으음…… 필터라……?”
“네. 그렇지 않아도 길게 내어 피는 거, 이게 왜 유행입니까. 담배 부스러기가 자꾸 입에 들어오는데 이렇게 하면 걸려서 안 들어오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걸 우리가 의학적으로 더 신뢰감 가게 만들어 보자, 이거죠.”
“으음…… 이건 좋은 생각인 거 같군.”
나와 비슷하게 인류와 돈을 생각할 줄 아는 리스턴은 역시나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유행하는 지궐련에 쓰면 아주 좋겠는데?”
블런델도 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가서 생리대를 만들어 올 생각을 하는 거다.
“우리 존 스노도 끼워 주죠, 이번에는.”
“아, 그럴까? 근데 무슨 명목으로?”
교수들이지만 돈 앞에서는 제자고 뭐고 얄짤없어지는 것도 똑같다.
아니, 역학 조사를 통해 담배, 즉 흡연 행위가 위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무슨 명목이냐니?
이것만큼 사람들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또 몇이나 있다고?
“영국에서도 역학 조사를 하는 겁니다. 이 친구 만든 자료를 보세요.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아…… 하긴. 필터 안 쓴 쪽이 더 안 좋다는 식으로 연구를 하면…….”
“그렇게 말하니까 꼭 조작할 거 같잖아요.”
“안 할 건가. 아예?”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면 할 필요가 없죠.”
“그야 그렇지. 아무튼, 음. 그래. 끼워 주지.”
하지만 존 스노는 아마 이것 말고도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녀석일 거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런던 초유의 콜레라 감염 사태를 조사했던 사람인데 지금 런던 최고의 흑막인 나와 리스턴이 후원해 준다면 대체 얼마나 더 대단한 일들을 해낼 수 있겠어.
어쩌면 화학 연구소보다 이쪽이 더 든든할 수도 있을 거다.
해서 나는 선심 쓰듯 존 스노가 다 한 연구를 챙기면서 그에게 이득의 부스러기를 던져 주기로 했다.
“가, 감사합니다!”
이 녀석이 나를 존경해서 다행이다.
세계 최고의 주술사가 되었건 의사가 되었건 간에 존경한다니 좋은 일 아닌가.
뭔가 뺏으면서 감사 인사도 듣고, 참 좋은 일이다.
아무튼, 우리는 뜻밖에 소득을 한 아름 안고서 다시 영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필 떠나는 날 날씨도 너무 좋고 공기도 너무 좋아서 좀 우울했다.
눈을 감으면 선명해지는 우리 런던의 완두콩 대기 상태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