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1화(361/505)
361화 독살 [1]
‘하, 이게 뭐야.’
‘너무 힘든데…….’
‘집에 가고 싶은데…….’
‘도착하자마자 경찰서라니. 이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선배님들.’
뒤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환청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역시나 다들 조용했다.
‘내가 피곤하기는 한가 보다.’
하긴…….
이게 대체 무슨 망할 놈의 일정이란 말인가.
배 타고 2주 넘게 와서 바로 경찰서?
그것으로도 모자라 교육까지?
미쳤다.
‘이거 끝내고도…… 바로 집으로 못 가잖아.’
마음 같아서는 사실 나야말로 집에 가고 싶다.
아마 애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스스로 들은 건, 내면의 목소리 때문일 거다.
환청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할까…….
그래, 꿈이다.
너무 피곤해서 꾸는 꿈.
‘궁도 들렀다 가야 되네. 망할.’
우리 국왕.
지난 석 달 좀 넘는 시간 동안 건강하게 잘 있었을까?
21세기 대통령이었다면 석 달 아니라 3년을 두고 가도 별걱정 안 해도 되었겠지만…….
19세기 국왕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나마 뉴욕항에 들어섰을 때 아직 건강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또 경찰들도 멀쩡하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이 자식들 기준으로 멀쩡하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숨넘어가지 않는 수준 정도만 되어도 멀쩡하네 어쩌네 할 놈들이다.
게다가 나 없는 동안 이상한 짓 하고 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주술을 걸어 두었으니 꽤 참긴 했겠지만…….
사람이란 원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약간 표현이 이상한데, 알아들을 거라 믿는다.
“아, 잘 왔네. 바쁜 사람 붙잡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궁에 어차피 가는 길 아닌가.”
하여간, 우리는 경찰의 호위를 받아가면서 경찰서 안에 들어갔다.
그러자 서장이 버선발로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고…….
아무리 조선의 위상이 좀 있다고 해도 그런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적당히 숨겨서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아는 나라가 된 지 오래다.
“이따 따로 데려다줄 테니 잠깐만 시간을 내어 주게.”
“알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에요?”
“그러니까. 뭔 일이야?”
경찰서장.
그냥저냥 한 사람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영제국의 수도를 지키는 사람이지 않나.
하지만 리스턴은 이제 말을 그냥 편하게 하고 있었다.
상대도 그걸 자연스레 여기고 있었고.
당연했다.
리스턴의 명망과 직위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내 영혼에는 유교의 별이 흐른다.
장유유서에 따라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함부로 굴기가 좀 어렵다는 얘기다.
“이걸 봐 주게나.”
하여간, 우리는 서장의 안내에 따라 그의 집무실 안에 들어섰다.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놓인 종이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전이랑 딱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요리사 아저씨가 장티푸스로 사람 죽이던 때랑 같다, 이 말이다.
“으음…….”
“이게 뭡니까?”
살인의 냄새를 맡은 나와 리스턴은 누가 먼저랄 거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각기 희생자의 신상 명세가 적힌 종이였는데 이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적어도 8명은 되었다.
연쇄 살인이라는 얘기였다.
‘내가 알기로 연쇄 살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온 게 1900년대 중후반일 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악의 마음을 읽는 범죄 심리학을 다룬 미드에서 본 거 같다.
쌓인 지식의 기반이 미드라는 게 좀 불안하지만…….
여튼, 지금은 아마 그런 일이 없을 거다.
“범행 수법이 같은 거 같아서 말일세.”
“제가 볼 때는 그냥…… 죽은 겁니다. 범행 수법이 아니라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다 그렇게 죽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하지만…… 전혀 흔적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종이를, 그러니까 죽은 사람의 신상 명세를 살피는 동안 서장과 부서장은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저번과 정확히 같은 양상이었다.
“느낌이 온단 말이야.”
“아이…….”
“그 느낌 덕에 백작님을 살렸던 걸 상기하게나.”
“그러니까 저도 달리 말씀을 못 드리는 거 아닙니까.”
“아이 정도면 상사에 대한 불만 표출로 충분한 거 같은데.”
“우리 사이에 뭘 또 그런 걸로 그럽니까.”
“거참.”
내가 느끼기에도 전처럼 밑에 놈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는 않았다.
느낌 가지고 수사한다고 뭐라 하기엔 전에 진짜로 범인을 잡지 않았나.
이 사람들이야 그 범인이 지금쯤 수용소 아니, 수도원에 갇혀 죽었겠거니 하고 있겠지만…….
지금도 그 범인은 버젓이 살아서 시신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남몰래 갈무리하고서, 찬찬히 다른 서류도 바라보았다.
확실히 서장이 왜 이들의 죽음이 부자연스럽다고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일단 대부분이 젊다.
“이 사람을 제외하면 젊네요?”
“아, 그래. 나는 그 사람의 죽음도 의심이 가긴 하네만…… 뭐, 72세였으니 사실 어떻게 죽어도 이상할 게 없긴 하지.”
“제가 범인이었다면 굳이 손을 더럽히진 않았을 거 같네요. 우리 센터 다니던 사람이잖아요?”
“그래, 당뇨가 있었네. 근데 치료받고 있으면 안 죽는 거 아닌가?”
“영원히 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아, 그렇구만. 공작님이 실망하시겠네.”
공작님이라고만 했지만 누군지 알 거 같다.
제이미일 거다.
스스로 고환을 자른 사나이이니만큼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을 만도 하다.
그런 공작이라면 차라리 빨리 가 주는 것이 대영제국의 미래에 있어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랬다가는 또 내 입지가 흔들릴 수 있으니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 외에 이 사람들…… 내가 정리해 놨으니 봤겠지만 다 같은 상단 사람들이야.”
“여기 꽤 유명한 곳인데…….”
“그래. 동인도 회사에서 생산하는 후추를 주로 거래하는 쪽인데, 어마어마한 부를 쌓고 있는 곳이야. 당연히 힘깨나 쓰는 집안 사람들이 같이 세운 상단이지.”
같이 세운 상단 운운하면 뭔 소린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놀랍게도 19세기 런던에는 법인도 있고, 심지어 주식도 사고팔 수 있다.
의학은 개판인데 나름 경제 쪽으로는 또 엄청 발전한 나라다, 이 말이다.
배운 사람들에게는 뭐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야 자본주의 맛을 보게 된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괜히 이 나라가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죽었어. 차례차례 죽었다네.”
“그렇게 해서 이득 본 사람이 있나요?”
“있지. 모든 사람의 지분을 취득해서 이 상단의 최대 주주가 된 사람.”
“아…….”
나와 리스턴은 말을 안 했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씨익 웃었다.
증거도 뭣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통해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억울하겠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우리 마음속에서는 유죄다.
“문제는 내가 볼 때 이 살인이 끝이 아니라는 걸세.”
“네?”
“여기 이 사람. 이 사람도 주주야.”
“아…….”
“최대 주주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어 보인단 말일세. 사실 그럴 거면 여기 이 사람 둘은 안 죽어도 됐거든.”
“다 죽이고 유일한 주주가 될 거다?”
“그래, 그게 내 생각이야.”
경찰서장은 우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초상화 한 장을 내밀었다.
“어…….”
“이 사람……?”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우리 환자다, 이 사람.
정확히 말하면 환자였다.
한국 같았으면 하루에도 너무 많은 환자를 보다 보니 기억도 하지 못했겠지만, 여긴 아니지 않나.
심지어 귀족이거나 그에 준하는 사람은 기억에 잘 남기 마련이었다.
내가 속물이라서가 아니라 일단 옷차림이나 이런 게 이 시절 가난한 사람들은 개성이랄 게 없어서 그렇다.
물론 우리에게 꽤 거액의 후원금을 낸 사람이기도 하다.
“어쩐지. 상단 이름이 낯이 익더니만…….”
“그래, 꽤 후한…… 나는 인상이 좋았는데.”
리스턴도 기억하는 듯했다.
심지어 좋은 방향으로.
사실 나도 그렇다.
돈 많이 내는 사람은 좋은 사람 아닐까?
그 돈으로 우리도 좋지만, 어? 돈 못 내는 다른 가난한 환자들 치료도 하기 마련이잖아.
다른 병원은 몰라도 우리 병원은 지침이 그렇다.
후원금 받으면 무조건 80% 이상은 환자를 위해 쓴다.
“범인이…… 아니지 않을까요?”
“내 생각도 그런데.”
문제는 이 환자가 단순히 한 번만 후원금을 낸 게 아니라는 거다.
매 분기마다 내고 있다.
그것도 꽤 많은 돈을…….
앞으로도 내겠다고 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뭐 내겠다고 하고 낸 건 아니니, 우리 멋대로 앞으로도 기대해봐도 될 거다.
‘더 부자가 되었다면.’
‘더 많은 돈을……?’
나와 리스턴은 이번에도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악당의 미소를 지으면서였다.
불온한 기운을 느꼈는지 서장이 끼어들었다.
“돈이 우선인가? 사람이 우선이지.”
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서장이야말로 저런 말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
아니, 범인 잡는 것도 상대 돈 고려해 가면서 잡는 양반이지 않나.
빈민가와 부촌의 범인 검거율부터가 비교가 안 되는데…….
“음.”
지도 말해 놓고 좀 찔리는지 음음거리고 있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그래, 사람 낳고 돈 낳지 돈 낳고 사람 낳았나.
“아무튼, 이 사람이 의심이 된다는 거죠? 근데 살아남은 이 사람도 의심이 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우리 후원자를 범인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마음이 그렇잖아.
역시 생판 모르는 놈이 범인인 편이 좋다.
“그래. 딱 봐도 이름이 불길하잖아. 프랑스계 같은데?”
“빠게뜨 출신이긴 해. 근데 내가 아는데, 사람이 좋네.”
“그게…… 근거?”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건가.”
19세기 경찰서장이요.
라고 말할 뻔했지만, 참았다.
19세기 와서 가장 크게 는 것이 있다면 인내 아니겠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조용히 있으려니 서장이 말을 이었다.
“이거 내가 부탁해서 떼 온 증명서일세. 보면…….”
무언가를 내밀면서였는데 같은 문구가 여러 번 반복되는 문서였다.
그 상단 법인에 관한 문서였는데, 정확히 말하면 주주 명부였다.
누군가 죽어 나갈 때마다 이름이 지워진 채로 새로 발급이 된 모양인데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만 주식이 늘고 있군…….”
“그래. 이놈들이야 우연이라고 하고 있지만 살아남았던 사람들 모두 불안해했다네.”
“그렇겠죠. 다 죽어 나가는데…… 그게 우연으로 보인다 해도.”
“근데 이놈은 신나서 주식을 다 사들이고 있어. 이게 뭐겠나.”
범인…….
우리 후원자가 범인인가 보다.
확실히 이건 진짜…….
아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