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3화(363/505)
363화 독살 [3]
주술이라는 오해는 금세 풀렸다.
이유가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다.
-세상에 티에피영만 한 주술사가 또 있겠나?
-그것도…… 그렇긴 하겠구만그래.
원장의 말에 리스턴이 격렬하게 동의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 나 같은 놈이 하나 더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지겠느니 뭐니 하면서 말을 거들긴 했지만, 아무튼, 주술사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행인데…… 문제는 그 대안이 없다는 점이었다.
“정말 우연 아닌가?”
우리는 서늘한 지하실에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리스턴이었다.
뒤편에 시신이, 그것도 이리저리 파헤쳐진 시신이 놓여 있는 상황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서였다.
“우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런던 경찰서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냐. 자네들이야 잘 모를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인간, 꽤 유명한 수사관이었다고.”
그 말을 받은 건 원장이었다.
리스턴 전용 억제기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롭잖아요?”
원장의 말에 용기를 얻은 블런델도 나불거렸다.
리스턴이 잠시 노려보았지만, 둘은 원래도 친한 사이 아닌가.
이제는 미국도 같이 다녀온 사이다 보니 방금 표출한 가벼운 살기만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블런델은 이곳이 런던이고, 정상적인 사법 기관이 있다는 것에 대단히 신뢰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짝 의자를 뒤로 물리긴 했지만, 아무튼, 블런델은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더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다 같은 사인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한때 이 사인에 엄청 집착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이게 제일 이상한 거예요.”
다행히 리스턴은 그런 블런델의 말에 역정을 내는 대신 관심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블런델이야말로 런던 최고의 죽음 판별사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만든 청진기 때문에 이놈 저놈 다 하겠답시고 나서고 있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 어설픈 물건으로 섣부르게 나서는 놈들 때문에 생매장 건수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았을 거다.
‘청진기도 없던 시절에 생매장 피해 보겠다고 이 시신 저 시신 다 기웃거리고 헤맸던 게 블런델이지.’
그런 얼치기들에 비하면 블런델의 의견이 훨씬 귀할 거다.
그 얼치기에 우리도 낀다는 걸 생각하면 일단 입 닫고 듣고 있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용한 가운데 오직 블런델만이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자연사라는 게 그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 사람이 그냥 죽는게…… 어디 흔한 일이라던가? 노인들도 폐렴에라도 걸려서 간단 말일지. 아니면 갑자기 가슴을 쾅쾅 치면서 죽거나…… 질식사를 하거나 말이야.”
역시 관찰은 힘이 있는 법이다.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쾅쾅 치면서 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잖아.
그게 바로 심장마비, 즉 심근경색인데…….
나중에 그렇게 죽었다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서 심장 혈관 막힌 걸 보여 줘야겠다.
그럼 우리 의학이 한 번 더 진일보할 거다.
그 말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될 거란 말도 된다.
후후.
“평…… 죽는 얘기 하는데 웃지 말게. 무서워.”
“아,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아무튼, 얘기를 들어 보면 다들 자는 듯 누워 있다가 죽었다지 않나. 다른 경찰들은 그래서 독살이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땐 다들 그렇게 갔다는 것이 제일 이상하네. 내가 본 시신 중에 그렇게 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거든. 특히 돈 많은 사람들은 생에 집착이 있어서 그런가 더 그래.”
억울함을 풀고 싶었지만, 블런델의 이어지는 말에서 느껴지는 영감이 있었기에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어도 안 될 거다.
이미 내 이미지는 틀렸다.
주술사 이미지를 내가 스스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뭐,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다면 이 영감에서 뭔가 얻는 것이 더 중요할 거다.
‘돈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간다는 건…… 집착 때문이 아니라 아마 의사 때문일 거야.’
내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1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그렇다.
이 시대 의사들은…….
심지어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나 없을 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지 않나.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인다.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수십 가지는 된다.
“온전한 시신을 더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겠나. 서류상으로라도 공통점이 있는지 알아보세.”
“잠깐,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에 깽판 친 리스턴만 아니었다면 더 이어졌을 거다.
아무튼, 리스턴이 손사래를 친 이상 그의 말을 들어 주긴 해야 하지 않겠나?
이는 억제기인 원장조차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다들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제일 중요한 건 그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포착하는 거 아니겠나?”
“아…… 그야 그렇지.”
“맞지, 그건.”
의외로 쓸모 있는 말이었기 때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같이 끄덕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포착한다는 건…… 또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거 아닌가?’
21세기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생각일 거다.
‘설마하니 그런 생각을 하려고?’ 싶을 거다.
하지만 여긴 19세기다.
다행히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약한 21세기 놈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가 리스턴임에도 불구하고 곧장 반박에 나설 수 있었다.
“포착하는 게 아니라 범죄를 예방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하. 좋은 말이지. 하지만 그럼 범죄를 증명할 수가 없지 않나.”
“아니, 그렇다고…….”
“걱정 말게. 지금 위험한 사람은 딱 하나 아닌가.”
“하나……겠죠? 아마?”
남은 주주가 하나뿐이니 그럴 거다.
상식에 의거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말을 이었다.
“아직은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는지 몰라. 하지만 외상 여부를 보면 폭력적인 방법은 아닐 거란 말일세.”
“그건 그럴 거 같습니다.”
나도 리스턴을 따라 시신을 돌아보았다.
비록 저 시신은 끔찍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렇게 만든 건 원장과 우리지, 범인은 아니었다.
‘뭔 수를 쓴 거야, 대체?’
다시금 궁금해지는 가운데 리스턴이 말을 이었다.
“독살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신종 독일 가능성이 높네.”
“하지만 위장에서 나온 게 없는 시신도 있었네.”
원장이 그 말에 반박했지만 리스턴은 고개를 흔들었다.
“독을 반드시 먹이리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물처럼 먹이면 뭐 방법이 없죠.”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죽은 사람들이 바보 병신도 아닌데 뻔히 자기들 죽어 나가는 거 아는 상황에서 용의자가 주는 걸 순순히 먹었겠나?”
“공범이 있겠죠. 순진하시긴.”
“공범…… 경찰에서도 그 생각은 했지. 근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게나. 죽은 사람들 다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이야. 내가 듣기로 사람 둘 죽어 나가는 순간 밖에서는 식사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설마하니 이 사람이 죽은 사람들 집에 모두 공범을 심어 두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유일한 억제기인 원장님은 빈약한 리스턴의 논리에 마구 태클을 걸었다.
나는 뭐 했냐고?
사실 의학 말고는 아는 게 많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그냥 듣고 있었다.
리스턴의 말이 이어질 때는 ‘아아, 그렇구나’ 하다가 블런델이 말하면 또 ‘아, 그렇구나’ 하다가 원장님이 말하면 또 ‘아’ 하는 식이었다.
줏대 없다고 욕할 수도 있는데, 원래 학문하는 사람은 너무 고집이 세면 안 되는 법이다.
오늘 내가 진리로 여기고 있던 지식이 당장 내일 쓰레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 꼭 먹어야 하나?”
“그럼 독을 무슨 수로 써?”
“조선에서는 독을 뿌리기도 하던데…….”
“그런 독도 있나?”
그러다 공이 내게로 넘어왔다.
조선 얘기를 하면서였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전혀 모르는 얘기였다.
“네?”
“뿌리 공부도 하고 그러게. 나중에 조상님 얼굴을 어떻게 뵈려고 그러나. 자네 설마 제사도 안 드리고 하는 건 아니겠지?”
“뭔 소리를 하는 건가?”
“그런 게 있습니다. 무식한 양코쟁이들은 모르는 소리죠.”
“못 알아듣겠지만 되게 기분 나쁜 말이로구만.”
별 기대는 없었는지 그냥 넘어갔다.
그 후로도 비슷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아무 의미 없는 그런 대화만 이어지고 있다, 이 말이었다.
“저…….”
이제 슬슬 지겹기도 하고, 여독에 피곤해지기도 하려는 순간에 우리의 똘똘이 존 스노가 손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경찰에게서 받아온 서류를 들고 있었다.
나도 본 서류고 블런델도 본 서류다 보니 뭔가 새로운 것이 나왔을 거 같진 않았다.
하지만, 저 녀석이야말로 역학 조사의 달인이지 않나.
“어, 말해 봐.”
아직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건 나뿐인 거 같지만, 내 인정은 현시점 런던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감히 조선의 주술사이자 영혼 강탈자인 내 말을 누가 무시하겠나.
당연하게도 다들 존 스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비록 녀석이 이 자리에서 제일 어리고 또 직급도 낮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람들 잘 보니 다 당뇨가 있습니다.”
“아, 그건 봤네.”
“부자병이지 않나. 당연한 일이지.”
“그럼 다 우리 병원에 다니나?”
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 있긴 했지만, 존 스노 자체도 강단 있는 사람이다 보니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뇨, 다들 병원에 다니지 않고…… 왕진을 받고 있어요.”
“왕진……? 우리 병원은 그런 거 안 하는데?”
“돌팔이들인가?”
“이상하네? 돈 많은 놈들이 아무렇게나 치료받진 않았을 거 같은데……? 그리고 거기 왕진 내용은 없었는데?”
게다가 내용이 흥미롭다 보니 슬슬 토를 다는 게 아니라, 그저 반응만 하고 있었다.
존 스노는 그런 걸 다 예상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이 사람들. 후원하고 있는…… 그 용의자 말고는요. 다른 교수님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음. 그러고 보니…….”
“그렇다고 왕진이라고 할 수 있나?”
“여기 진료했다는 의사 이름을 보세요.”
“응? 파라 켈수스?”
“이게 누구야? 아니, 사람 이름은 맞나?”
우리 똘똘이의 언변이 제법 뛰어났다.
약간 날 보는 거 같기도 했다.
‘설마…… 너도 구라 마스터니?’
사실 뛰어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덕목이긴 했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들어 보시죠.”
우리는 그 덕목을 차고 넘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존 스노의 썰 풀이를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