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4화(364/505)
364화 독살 [4]
“파라 켈수스. 낯설지만 아마 어디선가 들어 보긴 하셨을 겁니다.”
“켈수스라는 이름은 알긴 아네.”
우리 똘똘이 존 스노의 말에 원장이 얘기를 꺼냈다.
제법 정중한 태도를 하고서였다.
이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이르렀다면야 영국이나 미국 등이 우리나라보다 확실히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추고 있는 게 맞겠지만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 학생이 싸가지 없이 나대냐고 싸대기를 후려치는 사람도 많다.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마취제 하나 실험해 보겠답시고 생니 뽑는 스승이 즐비한 세상에서 싸대기 정도면 실로 신사다운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학풍이 지금의 나를…… 지금의 병원을 만든 것이지.’
엄밀히 말하면 리스턴이 우리 아저씨에게 받은 뒷돈이 리스턴을 보다 양순하게 만들었고 또 앨프리드가 살아나게 된 후로 거기 아저씨가 낸 후원금이 리스턴과 원장이 나를 아예 다시 보게 만든 덕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사실 둘의 기질이나 성격이 어느 정도 열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아니었겠나?
꽉 막힌 놈들이었으면 나는 아마 런던 뒷골목에서 구걸하고 있는 신세거나 혹은 템스강 바닥에서 썩어 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여기서 해부학 교보재 신세로 전락했거나.
“네. 로마 시대의 명의 켈수스죠.”
“그래. 나도 이상하다 하고 있었어. 그 당시 이름을 왜 가명으로 쓰는 거지? 그것도 켈수스라는…… 의사들은 다 알 만한 이름을.”
이번에는 블런델이 중얼거렸다.
이 사람도 마음 열린 것으로만 따져 보면 또 장난이 아닌 사람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내가 존 스노를 편애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참된 스승이라면 편애…… 이것을 하면 안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게 효율적이다.
-아니…… 대체 왜 존 스노만 끼고 도시는 겁니까!
-그 녀석이 하는 말을 왜 기울여 듣는 거야!
-나랑 친해 걔랑 친해!
콜린, 앨프리드, 조지프 순으로 지랄하긴 했다.
초반에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제가 더 정진하겠습니다!
-가스 밸브 더 잘 돌릴게, 내가! 아니, 소변 줄 한 번 더…… 아니다. 이건 잊어 줘.
-소독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소독이? 이게?
다들 노력하고 있다.
콜린 말고 다른 둘은 방향이 조금 엇나가 있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
뭐든 하면 된다.
19세기의 의사는 그래도 되는 자유가 있으니까.
물론 정말 아무거나 다 하면 안 되겠지만, 그건 내가 막아 줄 수 있다.
“파라는 라틴어로 ‘뛰어넘다’라는 뜻입니다. 파라 켈수스라는 이름의 뜻은 켈수스를 뛰어넘었다는 뜻이죠.”
“이런 광오한! 어떤 새끼지?”
이번에 나선 것은, 말만 들어도 알겠지만 리스턴이다.
성질 급한 것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는 저도 모르게 칼 손잡이를 더듬고 있었다.
의외로 그리스·로마 시대의 명의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나랑 백날천날 하는 짓이 그 전통의 명의를 박살 내는 일인데도 그랬다.
뭐…… 사람 성향이 그렇긴 할 거다.
신앙도 깊은데 또 조선으로는 군자를 표방하고 있지 않나.
모르긴 해도 옛것이라고 하면 저도 모르게 막 군침이 흐르고 그럴 거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선 이 환자들의 면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음.”
누가 되었건 리스턴이 화를 내고 심지어 칼을 만지작거리면 쫄아야 정상일 텐데 우리의 존 스노는 그냥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괜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똑똑한 사람은 강단도 있다는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이 시기 런던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려면 ‘아닌데? 아닌 거 같은데?’라는 말만 지껄이는 기득권층을 깔아뭉갤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된 지 오래라 그렇다.
‘아마 너도 나이가 좀 더 들면 성질이 만만치 않게 더러워지겠지…….’
섭섭한 확신이 든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십 대 초중반의 존 스노는 그저 나를 보며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하나같이 부자들입니다. 제대로 된 치료가 아니라면 받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소믈리에도 하나씩은 데리고 있었겠죠.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동의 소믈리에는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당뇨 치료는 제대로 했을 거란 얘기가 됩니다.”
“으음…… 확실히.”
“개인 소믈리에까지 있다면 치료 효과 확인은 확실하겠지.”
이 말은 나조차 부정할 수가 없다.
어쩌면 원 역사의 21세기 초중반까지의 당뇨 치료 판정보다 이게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거다.
생각보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까다롭더라고.
혹시 몰라서 설탕 농도 정말 줄인 물을 먹여 봤는데…….
런던 제일의 소믈리에라는 사람이라 그런가 개미 눈알만큼 넣은 것도 알아보더라.
‘제이미 경이니까 그런 사람을 구한 것이긴 하지.’
처음엔 죄수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인생 역전이라 할 수 있다.
사형에 준하는 벌을 받을 예정이었다가 이제는 하루 서너 번 소변만 받아먹으면 런던의 중산층도 부럽지 않을 만큼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되지 않았나.
마냥 운만 좋은 것도 아닌 게 소변 맛보는 것도 저쯤 되면 신기에 달했다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파라 켈수스는 우리 병원 소속 의사의 가명일 겁니다.”
“아…… 그렇지. 이렇게까지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놈이 다른 병원에 있을 거 같진 않아.”
이번엔 원장이었다.
원장이니만큼 자기 병원에 부심을 부리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당뇨에 있어서는 아니다.
아니, 내가 관여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니다.
왜?
진짜 세계 최고니까.
“네, 그럴 겁니다. 원장님. 요새 큰돈 만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 없습니까?”
“으음…….”
우리의 시선은 일단 원장에게로 모였다.
제일 큰돈 만진 사람들이 바로 우리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범인이 될 필요도 없지 않겠나.
심지어 우리는 미국에 있었다 보니 아예 전후 사정도 모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원장은 조금 정신없는 사람이기는 할지언정 한 조직의 진정한 장이었다.
병원 굴러가는 일에 있어서는 큰일 작은 일 할 거 없이 다 알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병원 관둔 놈이 있긴 한데.”
“병원을 관둬요? 근데 그랬으면 소 췌장을 얻을 방법이 없을 텐데……?”
이번엔 나다.
말 그대로의 이유 때문이다.
소 췌장은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시피 하고 있지 않나.
그런 험하면서도 돈 되는 일이야말로 갱단이 나서기 좋은 일이고, 자랑은 아니지만 나와 리스턴이 이 런던 바닥 갱단들의 대부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다.
“아니, 아냐. 요새 더 늘었거든. 게다가 런던 교외에서만 도축하는 게 아니지 않나. 대량으로 하면 어렵겠지만…….”
“소량으로요? 근데 그럼 단가가 맞나?”
“단가야 맞겠지. 우리가 얼마나 벌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귀족 말고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가격이야. 근데 병원에 와야 하지. 하지만 왕진을 한다면 얼마를 받을 수 있겠나.”
“으음…….”
“게다가 병원에 상납, 아니, 그…… 월급 의사가 아니라 다 먹을 수 있다면?”
“그럼 확실히 적은 금액은 아니겠네요.”
“근데 말이야. 그 파라 켈수스라는 쥐새끼가 우리 환자들을 몰래 왕진용으로 빼돌려서 치료하고 있다고 치세. 그게 지금 이 살인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지?”
원장에 대한 말을 조금 정정해야겠다.
병원이 크고 작은 일 모두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병원의 경영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을 다 알고 있다고 해야 할 거다.
달리 말하면 경영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면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이다.
존 스노를 비롯한 우리 제자들과 함께 저지른 일 같은 거 말이다.
“아…… 그게. 저는 사실 이 시신을 보면서 처음부터 우리 실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아…… 나도 알겠다, 이제.”
리스턴, 블런델처럼 나도 존 스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우리가 죽인 가엾은 동물들은 버림받은 개들이나 붙잡혀 온 쥐들이었지만…….
시신 상태만 딱 놓고 보면 이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렇다 할 외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독살의 징후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의식이 가라앉으면서 가 버린, 그러니까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시신이다.
물론 죽기 전에 경련을 하는 경우도 있고 헛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건 다른 죽음에서도 너무 많이 관찰되는 특징이다 보니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다고 한들 별반 도움이 안 될 거다.
“우리 스승님께서 인슐린이라고 부르기로 한 그 물질을 너무 과량 맞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아……? 그걸 어찌 알았나?”
“해 봤으니까요?”
“사람……한테? 그건 아니지……? 그치?”
“아닙니다. 동물한테 했습니다.”
“어어, 그래. 다행이로구만.”
존 스노는 머리가 좋은 만큼 그 당시 봤던 것을 머릿속에 온전히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설명을 들은 원장이 왜인지 모르게 나를 굉장히 불안하단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이내 오해는 풀렸다.
풀렸다고 한들 내 기분도 바로 풀리진 않았다.
“다행? 제가 미친놈입니까? 궁금하다고 사람 죽여 보게?”
“그런 적도 있지 않나.”
“런던의 허술한 경찰력에 잡힐 정도로 나쁜 놈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 그렇군. 그렇게 생각하면 또 가능하긴 하겠어.”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게도 다 기준이 있어요.”
“어어. 알겠네. 이해했어. 내 평생 죄짓지 않도록 노력하지.”
해서 항변했고, 다행히 원장님은 죄를 뉘우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착하게 살란 말이다.
나처럼.
“응, 그럼. 이 주삿바늘 자국이 역시 당뇨 치료인데…… 이때 살인이 이루어졌을 거다, 이 말이로구만?”
“네, 그렇죠.”
“그럼, 일이 쉬워졌군그래. 일 관둔 놈 포함해서 우리 병원에서 당뇨 이거 다룰 수 있는 놈들 다 뒤져 보면 되겠어.”
그렇게 원장이 떨고 있는 동안 리스턴이 분연히 나섰다.
의사도 잘하긴 하지만 의사보단 다른 직업을 아무래도 훨씬 잘했을 거 같은 사람이지 않나.
그중에는 경찰도 있다.
벌써 신이 나서 원장의 멱살을 잡고 명단을 달라고 하는 것만 봐도 천직이다.
깡패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시기 경찰들은 깡패보다 더한 경우도 있으니 천직 맞다.
“좋아. 여깄네.”
“이 중에서 제일 수상한 놈은?”
“아무래도 이 셋이지. 하나는 아직 병원에 있지만 씀씀이가 좀 커졌어.”
“좋아…… 잡아 올게요.”
“이렇게 바로? 증거도 없이?”
“증거는 잡아 놓고 찾아야죠. 나중에 찾겠다고 하다가 숨기기라도 하면 어찌합니까?”
인권이고 뭐고 다 개나 줘 버린 수사 방식이었지만.
“그럴싸한데?”
뭔가 맞는 말 같았다.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