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5화(365/505)
365화 독살 [5]
나와 리스턴의 명은 지엄했다.
이 런던 바닥에서는 감히 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거기에 더해 오늘은 경찰서장의 명까지 더해졌으니 어쩌겠나.
인권이고 나발이고 간에 원장이 지목한 세 명은 속절없이 잡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닉, 노아, 데이비드 이렇게 셋이었다.
“아니…… 이 자식들?”
셋 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사진이 없는 시절이다 보니 서류에 적혀 있는 이름만 봤을 땐 전혀 감이 오질 않았는데, 얼굴 보니까 생각난다.
“니들이였구나.”
리스턴 또한 이제야 알겠는지 후우 하고 분노를 삼켰다.
당연하게도 끌려온 사람들은 다들 공포에 떨고 있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벼, 병원 관둬서……? 이러는 법이 어딨…….”
“어어. 주먹. 주먹!”
이렇게 보면 또 좀 불쌍해 보이긴 하는데…….
애초에 잘못한 게 없다면 벌벌 떨 일도 없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 마음속에 있던 일말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중재에 나선 것은 애초에 아이디어를 냈던 똘똘이 존 스노였다.
“잠시, 잠시만요.”
“응?”
“왜.”
그렇지 않아도 대번에 주먹질을 하려고 들었던 리스턴과 저주를 걸기 위해 손을 내밀었던 나는 동시에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 또한 우리를 마주 보고 있었는데 어진지 모르게 신부님의 자애로움이 느껴지는 미소를 띤 채였다.
“교수님들. 범인은 아마 한 놈일…… 겁니다. 우리의 후원자와 공범이긴 하겠지만요. 다 죄인은 아닐 거라는 말씀입니다.”
“아, 아아.”
“맞네. 그렇네. 근데 왜 이렇게 죄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리스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먹을 쥔 채 말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심지어 원장을 제외한 우리 일행들까지 흠칫 놀랐다.
경찰들까지 다 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 또한 끌려온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 죄를 지어서 떤 게 아니로군. 하긴…… 그럴 수 있지.’
미국에서도 그러긴 했다.
도시에만 가면 사람들이 어찌나 떠는지…….
그때는 평상복이 아니라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긴 했다.
그놈의 곰 가죽이 대서양 건너오면서 해풍 맞아 썩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런던에서 또 한 번 전설을 써 내려갈 뻔했다.
“여러분. 분위기 파악하셨죠? 입 잘못 놀리면 여기 누워서 조사받을 수 있습니다.”
하여간, 우리를 진정시킨 존 스노는 신사다운 어조로 세 의사에게 말을 건넸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넌지시 주입시키는 방식이 과연 우리 병원의 미래다웠다.
리스턴이 주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잠시 잦아들었던 셋의 떨림이 다시금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나 또한 입을 열었다.
서류 하나를 내밀면서였다.
“이 사람 아는 놈 알아서 손.”
우리의 후원자이자 연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로버트 쇼 씨의 서류였다.
말이 서류지 환자 기록이 개발새발 적힌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아, 이분. 알죠.”
“알긴 압니다. 저 여기 재직할 때.”
“으음…….”
문제는 셋 다 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그게 당연했다.
우리 병원은 상당히 고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따라서 환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진 않았거든.
게다가 모든 환자들이 다 내 진료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내 얼굴을 보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의료진들은 고정된 주치의가 아니라 로테이션을 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들고 하면 주치의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한데, 아직은 그 수가 터무니없을 만치 적었다.
“너.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거 같은데.”
해서 이거 어쩐다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돌연 마지막 친구, 즉 아직 우리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데이비드를 지목했다.
“네, 네?”
그러자 데이비드가 사정없이 떨기 시작했다.
아까 같았으면 나도 덩달아 ‘옳거니 이 새끼’라고 했겠지만 이미 보지 않았나.
리스턴의 주먹은 거의 모든 사람의 떨림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나는 좀 더 차분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뭐…… 우리 형님이 또 의외로 날카로울 때가 있지.’
기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리스턴은…….
추리력보다는 직관이 좋은 편이거든.
뭐라고 해야 할까?
동물적인 감각?
뭐 이런 게 있는 사람이었다.
“너만 이 사람의 이름을 보고 모른 척을 하려고 했어.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야.”
“아니, 저는 정말 기억이 잘…….”
“웃기지 마. 우리가 월례 회의 때마다 뭘 하지? 다들 말해 봐.”
오.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추리란 걸 한 모양이었다.
상당히 그럴싸한 논리가 리스턴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었고, 리스턴의 질문을 받은 앨프리드는 즉시 답했다.
“후원자들에 대한 감사 기도를…… 아.”
“그래. 모든 의료진이 모여서 기도를 드려. 후원 금액에 따라 시간도 철저히 분배하지. 근데 뭐? 기억이 안 나?”
그래, 리스턴의 말대로다.
우리 병원은 병원비가 꽤 비싸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의 혁신을 꾸준히 이어 나가기 어렵겠다는 판단하에 자발적인 후원금 모집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절대로 강제는 아니다.
후원금을 내기 싫으면 다른 병원에 가시면 된다.
어차피 후원금이라는 것도 다 상대 재력을 봐 가면서 요구하기 때문에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그리고 그 대가라고 하기엔 뭣 하지만 이 몸…… 즉 런던 최고의 주술사이자 주님께서 심심하면 접신하시는 김태평이 직접 시간을 할애해 기도를 해 준다.
“말이 안 되는 일이야. 특히 이 후원자는 우리가 미국 다녀오기 전에도 꽤 많은 금액을 후원하고 있었단 말이지.”
“그래, 그렇지. 맞네.”
리스턴의 말에 원장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끌려온, 이제는 약간 타깃에서 벗어난 거 같단 생각이 든 나머지 두 의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중간에 병원 관두고 나간 우리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다른 곳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타깃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사실상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에 둘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좀 성급한 일이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살인에는 연관이 없다고 치자.
근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병원을 그렇게 막 관두고 나가는 건 괜찮은 일인가?
들어올 때는 자유지만 나갈 땐 아니다.
“뭐 좋다고 웃고 있어. 너네 우리 노하우로 당뇨 환자 본 기록만 있어 봐라.”
“히익.”
“힉.”
해서 미리 예방 주사를 놔 주었다.
그랬더니 둘 다 다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물론 그래 봐야 리스턴의 메인 타깃이 된 데이비드에 비할 바는 아니다.
녀석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거의 눈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저거 저러다 또 심폐소생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리스턴이 말을 이었다.
“네가 직접 찔렀어?”
“네?”
“이 사람들 직접 찔렀냐고. 이 사람들도 소액이긴 해도 우리 후원자였고, 환자였는데…… 네가 직접 했냐고.”
아까 경찰서장에게 받았던 살해당한 이들의 명단을 들이밀면서였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손사래를 치면서 외쳤다.
“아니, 아닙니다! 저는 안 그랬어요!”
“그럼 이 사람들이 왜 죽었지?”
리스턴의 말에 데이비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
주변을 살피면서였는데, 아마 대한민국 경찰서였다면 ‘야, 말 안 해?’ 하면서 시간 꽤나 흘러갔을 거다.
“억.”
여기?
여긴 아니다.
딱히 리스턴이 아니어도 정황상 증거만 있으면, 아직 범인으로 확정 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쥐어팰 사람이 수두룩하다.
지금도 그렇다.
놀랍게도 데이비드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멱살을 잡은 이는 아까 서장 앞에서 이게 살인 사건일 가능성은 없다고 강변했던 수사관이었다.
“뭘 눈치를 봐. 빨리 말 안 해? 진짜 누워서 말할래?”
“아니, 아닙니다. 지금. 지금! 말하겠습니다!”
“분위기 파악 못 하지? 저 지금 내가 안 팼으면 리스턴 경이 때렸어. 그럼 죽어, 인마!”
“네, 네!”
더 놀라운 건 때린 게 좋은 뜻이었다는 점이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리스턴이 때렸으면 죽었다.
“그…… 제가 병원…… 인슐린을 좀 빼돌렸습니다.”
“빼돌려? 일단 절도네.”
“그…… 이 사람이 돈을……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해서요. 죄, 죄송합니다.”
“이 새끼 월급도 적게 받는 거 아닌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제가…… 욕심에…….”
“일단 이 새끼는 감방에 넣고.”
“사, 살려 주십쇼!”
그걸 모르지 않는 데이비드는 형사를 보면서 술술 불었다.
연신 리스턴의 눈치를 살피면서였는데, 다행히 리스턴은 이미 주먹을 푼 지 오래였다.
예전 같았으면 저러다 또 때리지 않을까 싶었겠지만 이젠 아니다.
리스턴학 박사 학위가 있다면 내가 땄을 거다.
“형님. 중요한 질문이 아직 있는데.”
“음, 그렇지.”
이 사람…….
나름 의사다.
사람 패고 승부 가르는 데 있어 진심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사람 생명.
“오늘도 넘겼어? 말 잘해야 돼, 지금.”
“아…… 네. 그…… 마지막이라고. 이제 더는 이런 무리한 부탁 안 할 거라고…… 근데 저는 이 사람이 사람 죽이고 할지는 몰랐습니다!”
“뭘 몰라! 그때 개 죽는 실험할 때 있었어, 없었어?”
“그…….”
“이 시발놈.”
“으억.”
마지막 희생자가 발생하기 직전이었다.
열받은 리스턴은 데이비드의 어깨를 후려치고는 형사 쪽을 바라보았다.
눈치가 빠른 건지 지금 여기서 말 잘하지 않으면 뒈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서장 앞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가자고.”
“네!”
해서 우리는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근데 평.”
“네, 형님.”
“그건 뭔가?”
“설탕물이요.”
“아…… 이미 찔렀을까 봐?”
“네. 뭐 의식을 잃었다면…….”
21세기였으면 저혈당으로 의식을 잃는다 해도 수액으로 포도당을 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다.
팔팔 끓였다가 식힌 물도 수액으로 주는 과정에 오염이 되곤 하는데 이런 설탕물은 오죽하겠나.
오직 의식을 잃기 전에 입으로 먹여야만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전에 개나 다른 야생 동물들을 가지고 무리해서 실험을 강행한 거다.
인슐린을 적게 줘서 당뇨 치료가 잘 안되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대로 너무 많이 주는 것은 진짜로 위험할 수 있으니 다들 치료 시에 주의하라고.
‘근데 그걸 이런 식으로 악용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면서, 또 그리 늦지 않았길 바라면서 말 타고 달려가고 있으려니 어느새 선두에 있던 경찰이 여기라고 외치고 있었다.
다행히 저택은 교외가 아니라 켄싱턴에 있었다.
금방 도착했다, 이 말인데…….
아침에 넘겼으니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여전히 높았다.
“어…… 병원에서 또 어쩐 일입니까?”
“병원? 무슨 말이지?”
“방금 병원에서 왕진 오신 선생님이…….”
“그 새끼 잡아!”
해서 서둘러 입구로 향했더니 경비를 서던 사람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에서 뛰어 내려 저택 안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제일 빠른 이는 우리의 무림 고수, 리스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