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7화(367/505)
367화 우리 국왕 폐하 [1]
뭐 나나 리스턴이나 이제 귀족이지 않나.
돈도 사실 남은 평생 넉넉히 쓸 만큼은 벌어 놓았다.
평균 수명이 짧아서 가능한 계산이라는 것이 좀 슬프긴 한데, 그렇다고 뭐 당장 다음 주 토요일에 죽으면 된다는 식의 그런 얄팍한 재산은 아니다.
“으음…… 이 정도로, 그럼?”
“그래, 좋군.”
“우리는…….”
“경찰이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긴 하니까. 근데 이번에 보니까 이거 왕진, 이게 되겠나? 위험하다고. 모든 시설이 있는 병원에서 해야지.”
“그…… 적발하겠네.”
“그래. 근데 우리 병원에서 나가는 왕진은 예외야.”
“그래…….”
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주었다.
일단 후원자 대신이라고 하면 뭣한데, 살아남은 환자가 돈을 꽤 내기로 했다.
그 외에 그쪽 인맥으로 통하는 사람들도 좀 데려오고, 무엇보다 미국에서 왔다 갔다 하는 화물도 배 부족하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말이 도움이지 차출이 될 거다, 우리 힘이라면.
‘근데 좀 내로남불 아닙니까?’
‘내로남불?’
‘아, 이거 한자 아니지.’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사자성어인 줄 알았다.
사자성어라면 우리 런던의 대군자 리스턴께서 모를 리가 없어서 그냥 썼는데 아니었다.
‘뭐 이런 겁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로고…… 그런 놈들 많지. 헌데 우리가 그렇다고?’
‘다른 놈들 왕진은 위험하니까 막고 우리는 하겠다고 하면 좀 그렇죠.’
‘하하. 근데 사실이잖아. 우리는 괜찮아.’
‘하긴, 뭐. 우리는 그렇긴 하죠.’
조금 양심에 찔리는 내용도 있긴 했지만, 리스턴과 말하다 보니 딱히 또 그렇게 양심에 가책 느낄 만한 일은 아닌 듯했다.
해서 마음이 편해진 우리는 일단 사망진단서를 가라로 써 준 후, 궁으로 향했다.
배가 도착한 건 오전이었는데 범인 잡느라 시간을 보냈더니만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국왕 폐하는 그래도 다들 같이 봐야지?”
“아, 네.”
피곤하다.
하지만…… 세상엔 피곤해도 가야 하는 자리가 있는 법이다.
그게 바로 궁이다.
다 내가 제자들 생각해서 이러는 거다, 이 말이다.
‘하아…….’
‘시발…….’
뒤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건 내 착각일 거다.
하도 배를 오래 타서 그런가 내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배에 있는 듯 몸이 출렁인다.
‘땅 멀미라고 하지.’
지식의 저주일까?
21세기 현대 의학의 세례를 세게 받은 나로서는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자동적으로 딱딱 진단명이 떠오른다.
이건 뭐 내가 따로 공부한 건 아니고 같은 방 쓰던 이비인후과 펠로우 친구에게 들은 거긴 하다.
‘머리에서 인식하는 내장 위치랑 실제 내장 위치가 달라서 생기는 것이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나.
어디에서건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동물이다, 이 말인데 바다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 있다 보면 머리가 바다의 흔들림에 적응을 한다는 얘기다.
괜히 뱃사람이랑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싸우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는 게 아니란 거다.
적응한 사람과 멀미를 할락 말락 한 사람이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
리스턴 말고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
반대로 뱃사람이 원X스 제외하면 땅에서는 좀 약하잖아?
삼국지 게임을 해도 수군은 땅에서는 약한데, 그 이유가 바로 이거다.
머리가 바다의 흔들림에 적응해 있다 보니 그거 보정한다고 멀쩡한 땅 위에 있는데도 머리가 흔들린다고 인식하는 사람이야 약해지는 게 당연하지.
“형님은 안 어지러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역시나 성큼성큼 발길을 내디디고 있는 리스턴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사람 메다꽂으려고 뛰어갈 때가 사실 더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땐 경황이 없었다.
“응? 어지러워?”
“하긴…… 뱃멀미도 없지, 형님은.”
“그러고 보니 평, 자넨 좀 비틀거리는구만. 아니, 자네도?”
“힘들어서 그래…… 자고 나면 나아질 거야.”
“그렇다기엔 다들 그러는구만. 다들 나약해.”
리스턴은 나뿐만 아니라 블런델 그리고 제자들까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원장님을 바라보았다.
이미 궁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방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긴장한 기색 따위는 없었다.
이제 와 새삼스레 왕을 무서워하는 것도 좀 이상하거니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다.
‘오히려 잘못은 왕이 했을 가능성이 높지.’
리스턴이 추궁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쪽이었다.
“원장.”
“응? 왜.”
“우리 없는 동안 왕 주치의였잖아요.”
“응, 그렇지.”
“왜 눈을 피하지? 설마 이상한 짓을 한 거 아닌가?”
“아니, 아냐. 내가 많이 힘들었네, 정말. 처음 한두 달은 괜찮았어. 닥터 평이 저주를 걸어 놨으니까.”
그랬더니 화살이 이상하게 나한테 돌아왔다.
미친 양반인가 싶었다.
“저주라니…… 왕한테. 큰일 날 소리 하시네. 그냥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조언한 거죠.”
“본인은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래서 아마 지금 좀 무서워하고 있을걸? 생각해 보게. 왕의 주치의가 어디 갔다 왔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은 없었는데 바로 오지 않는 걸 찾지도 않잖아.”
“뭔가 했겠구나, 이 인간.”
“그랬을 거야. 나 몰래 자꾸 누굴 만나는 거 같더라고.”
“하아…….”
진짜 미친 양반은 우리 국왕 폐하였다.
세상에 내가 그렇게 말을 해 놨는데 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했다니.
“아, 근데 포경은 내가 해 드렸네.”
“아니, 원장님!”
“정력 강해지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럼 어쩌겠나. 왕비 폐하께서도 같이 오셨단 말일세.”
“아…… 약하시긴 하구나.”
“그래, 그런 거 같더라고.”
“그래서 도움을 좀 받았대요?”
“그런 거 같진 않네. 표정이 늘 어두워, 왕비 폐하께서.”
하여간, 이놈의 정력이 문제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것은 순리에 가까운 일 아니겠나.
슬픈 일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나야 뭐 전생에서도 천수를 누리진 못했기 때문에 나이 듦에 대해 딱히 공감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받아들여야지 뭐 어쩌겠나.
오히려 이런 짓 저런 짓 하다 보면 더 약해진다.
“자세를 바로 하게.”
아무튼, 우리는 드디어 국왕 폐하가 계시는 곳에 다다랐다.
전에 작위 받을 때와는 달리 왕좌가 있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경비병들도 그렇고 다들 좀 편안해 보였다.
사실 우리 사이가 뭐 보통 사이는 아니지 않나.
그렇다 보니 딱히 몸수색도 심하게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으음. 피영. 오랜만이네!”
그러자 왕께서, 그러니까 윌리엄 4세께서는 애써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번 미국행에서 제법 소득이 있었다지?”
“네, 그렇사옵니다.”
“잘했네. 하하.”
소득 운운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왕께서도 자기 호주머니가 따로 있어야 하지 않겠나?
조선 같은 완전한 전제 군주 제도에서라면 그럴 필요가 없긴 할 거다.
나라가 다 왕의 것이니까.
하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그렇지가 못하다 보니 놀랍게도 왕도 이리저리 사업체를 굴리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다.
약간 삥 뜯기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대영제국의 국왕이 함께하는 사업이라는 데서 오는 이득이 훨씬 크다.
“건강검진을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어어. 그러게.”
“웃옷을 다 벗으시죠.”
“옷을? 아니, 그건 왜 그러나. 나는 일국의 국왕일세.”
의외로 순순히 왼쪽 팔을 걷으며 나서길래 다 벗으라고 했더니 역시나 뒤로 물러서고 있다.
원래 나이가 어느 정도 이상 들고 나면 남들 앞에서 옷 벗고 하는 게 좀 그렇게 되긴 한다.
딱히 관리 안 한 할아버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왕이라면 더 그렇겠지?
하지만…….
이 사람이 이러는 건 다른 이유 같다.
확신이 들어.
‘요샌 내가 진짜 주술력이 있는 거 아닌가 싶거든?’
촉 운운하면서 사람 괴롭히는 인간들 내가 별로 안 좋아했는데…….
나는 예외다.
내 촉은 무려 200년 가까운 시간을 되돌려 보내 준 신께서 주셨다는 게 요새 내 생각이다.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빅토리아 공주를 생각하십시오.”
“아, 아니…….”
“제 맹세를 잊으셨습니까? 국왕 폐하. 제 말만 들으시면 여왕 만드실 수 있습니다. 저 간악한 무리들을 생각하십시오.”
“이런 제길. 알겠네.”
켄트 공작부인과 내연남 존 콘로이.
윌리엄 4세가 빨리 죽게 되면 이 두 연놈들이 섭정을 맡게 될 거다.
그저 예상이 아니라 이미 그 문제로 윌리엄 4세와 부딪친 전적이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내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고 있는, 평생 왕이 될 거라 생각을 못 한 덕에 그냥 물려받은 재산 쓰면서 한량처럼 산 성격 좋은 이 양반이 거기서는 버럭 사자후를 질렀다더라고.
그만큼 빅토리아 공주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걸 건드리는 내가 좀 치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다 사람 살리자고 하는 거다.
절대 어?
빅토리아 공주도 나랑 인연이 있으니 그 사람이 여왕이 되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 더 탄탄대로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건…… 사실 맞다.
“흐음. 일단 혈압을 잴까요.”
“그러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다 벗은 왕의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물론 혈압이 주는 아니었다.
재면서 여기저기를 면밀히 살폈다.
이 시기 의학은 대단히 침습적이어서 뭔 짓을 하면 다 티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뭡니까?”
“아…… 이건…….”
“원장님?”
“아니, 나는 아닐세. 폐하께서 멋대로…….”
“자네!”
“폐하?”
“아니, 뻐근해서…… 피를 좀 뽑은 걸세. 이건 건강에 좋은 거 아닌가! 자네도 맨날 머리나 심장에서 뽑고 그러면서.”
“하…….”
이놈의 사혈을 이거 어쩔까?
“어어.”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하지만 사혈이 제일 낫긴 하다.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는 그렇다.
눈꺼풀 뒤집어 보니까 빈혈이 아주 심하진 않아 보여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나도 몇 개월 동안 이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거든.
“그렇지? 사혈은 괜찮지?”
이것도 언제 한번 세미나 형식으로 풀어야겠다.
-정력이 더 좋아지는 방법, 닥터 김태평의 천기누설
쇼닥…….
간다……!
“그럼 청진을 좀 해 보겠습니다.”
“아, 그래.”
아무튼, 나는 청진도 했다.
물론 다른 곳도 면밀히 살피면서였는데…….
잘 보니 아까 내밀었던 팔의 반대편 팔에 뭔가 상처가 있었다.
“이거?”
“아…….”
“저건 나도 모르네. 나 몰래 하신 거야.”
“뭐죠?”
“아…… 아니, 내가 그게.”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성기 쪽이다.
X 같은 짓을 했으니 미안하다는 뜻일까?
아니, 아니다.
“또 정력입니까? 근데 뭘 맞은 거예요?”
“그…… 역시 자네는 속일 수 없구만.”
내 주술력을 속일 수는 없지, 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을 종용했다.
그러자 국왕 폐하께서 말을 이었다.
“포경을 했는데도…… 하아…… 소용이 없지 않겠나?”
“소용없을 거라고, 제가 그러고 떠나지 않았습니까.”
“난 자네만 좋아지려고 그러나 했지. 자네는 받았잖아.”
“그건…….”
으윽.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긍정 회로를 돌려서 극복했다.
“그건 아닙니다. 아무튼, 뭐예요? 이거?”
“소의 고환을 갈아서…….”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