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8화(368/505)
368화 우리 국왕 폐하 [2]
그냥 죽는 것이 낫지 않나.
일국의 왕이라는 사람이…….
아니, 일국의 왕도 아니지.
대영제국의 왕이 짊어지고 있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가.
뭐 딱히 짊어지고 있다기보다는 대개의 식민지에서 착취나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정력 때문에 포경 수술받고, 소의 고환을 갈아서 팔에 찔러 넣는 건…….’
여러모로 생각을 해 봐도 역시 죽는 게 나을 거 같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네? 무슨 말씀이신지. 소의 고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만.”
“그럴 리가…… 왕께 거짓을 고하는 건 중죄라네.”
“팔에 소불알 간 거 찔러 넣는 것도…… 주님이 그리 좋게 생각하시진 않을 거 같은데요. 아, 저 이거 말로 했습니까?”
“허어…….”
“말이 나온 김에 더하겠습니다, 폐하. 대체 무슨 생각을…… 아니, 생각을 하시긴 하는 겁니까?”
“허어…….”
내 논리적인 말에 우리 윌리엄 4세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나 지을 법한 표정이 되고야 말았다.
저대로 꼴까닥하면 어떨까 싶었지만, 곧 나의 냉철한 이성이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러다가 켄트 공작부인과 그 상간남 존 콘로이가 섭정을 하게 되면…….’
곤란해질 거다.
물론 내 의술을 이용한다면야 둘을 구워삶을 수 있겠지만…….
역사에 없던 지배자를, 그것도 딱히 인품으로나 실력으로나 검증되지 않은 지배자를 맞이하는 건 모험이다.
불현듯 벤처 기업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내 친구가 떠오른다.
-야, 벤처가 왜 벤처인 줄 아냐? 진짜 모험이라 그래. 시발.
그때 결정했다.
내 인생에 모험이란 없을 거라고.
“아무튼, 소불알이라…….”
“고환이라는 훨씬 고상한 표현이 있네만.”
“그거 누가 제안한 겁니까?”
“으음.”
해서 우리의 윌리엄 4세의 명줄을 좀 더 붙잡고 있기로 했다.
그게 순리에 맞는 일 아니겠나?
게다가 이 김태평이 관여했는데 원 역사보다도 더 못 살고 가게 된다면, 그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해서 물어보니 왕께서는 잠시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으시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주위를 무르지.”
“폐하!”
뭔가 많이 부끄러운 말을 하려는지 경비부터 치웠다.
당연하게도 여러 반발이 있었지만, 리스턴이 나서자 단박에 정리가 되었다.
무력으로 어떻게 했다는 건 아니다.
“하긴…… 리스턴 경이 딴마음을 품었으면 저희들이야 있으나 마나죠.”
“딴마음이라니. 나의 충심은 흔들리지 않네.”
“네, 알겠습니다.”
놀랍게도 설득이란 걸 했다.
내가 듣기에도 설득력이 대단했으니 경비병들이야 오죽하겠나.
심지어 국왕께서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마침내 방 안에는 나와 리스턴, 원장님 그리고 국왕 폐하만이 남게 되었다.
“원장.”
“네, 폐하.”
“자네는 프랑스 출신이지?”
“네? 런던 태생이옵니다, 폐하.”
“뿌리가 프랑스에 있지 않나.”
“아……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이해해 줄 거라 믿네.”
그러자 우리의 대영제국 국왕께서 말씀을 이어 나갔다.
상당히 뜬금없는 말씀이셨는데, 막판에 이르자 찜찜해졌다.
‘형님…… 설마…….’
‘그럴리가. 빠게뜨 놈의 말을 들었겠나?’
‘인간이란 정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기 마련입니다.’
‘허어…….’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인지 리스턴의 얼굴도 조금 일그러졌다.
속삭이는 대화야 조선말로 한 데다가, 우리의 왕께서는 연세를 자실 대로 자신 상황이고 귀에 안 좋을 만한 짓을 많이 저지르신 탓에 우리의 불경스러운 대화를 눈치채시는 일은 없었다.
아주 작은 확률로 눈치채셨을 수도 있는데, 우리의 국왕께서는 생각이 다 드러나는 사람이다 보니 무시해도 좋을 확률일 거다.
“프랑스에서 유행 중인 치료가 있다고 들었네.”
“그…… 프랑스는 저희 위그노를 핍박한 이래 무지의 국가가 된 지 오래입니다, 폐하.”
약간 모순적인 일일 수도 있는데 우리 중에 프랑스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우리 원장님이다.
리스턴도 미워하긴 하지만 실제로 뭔가 당한 적은 없지 않나.
국왕 폐하도 그럴 거다.
나야 애초에 뿌리가 한국에 있고.
하지만 원장님은 조상님 중에 프랑스인들 손에 죽어 나간 이가 하나 가득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들은 적은 없었지만 오죽하면 그토록 꺼려 하던 영국으로 대거 이주를 왔겠나.
우리의 폐하께서는 안타깝게도 전대 국왕이셨던 형님이 자식 없이 요절하신 덕에 얻어걸려서 국왕이 되신 분이다 보니 다소 판단력이 흐릴 때가 있으시다.
‘차라리 나한테 말씀하시지. 원장님을 붙잡으시네.’
그나마 눈치는 있으셔서 원장님의 반응이 예상과 달리 공격적이자 뒤로 물러서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미 다 말을 한 거나 마찬가진데.
“설마 프랑스 의사를 궁에 들이신 겁니까?”
원장님의 말에 국왕께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리스턴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매국노가 여기 있었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조선과 주님을 팔아먹는 데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물론 이 인간이 저지른 일과는 말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긴 하다.
속 깊은 이가 보면 아 우리 김태평 선생이 한 일이야말로 애국이고 신앙이구나 할 거다.
아무튼, 뭐…….
‘그래, 비아그라 나왔을 때 교수님들 생각해 보면…….’
교수는 점잖은 직업이다.
겉으로 보기엔 진짜 그렇다.
뒤로는 구린 일 하는 인간들도 꽤 있긴 하지만…….
적어도 자기 실력과 권위가 흔들릴 만큼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존경할 만한 구석이 다들 하나쯤은 있으신 분들이라 이건데, 그러한 분들이 하나같이 비아그라를 대리 처방 받아서 훈방 조치 되었던 적이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사라는 샌드백을 참 좋아하는 정부에서조차 아, 이건 좀 해서 덮였더랬다.
‘19세기 대영제국 왕이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가지.’
해서 손을 내밀어 주었다.
결코 이 사람이 대영제국 왕이라서가 아니다.
콩고물을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폐하. 저는 이해합니다. 조선에 영웅은 호색한이라는 말이 있죠.”
“허, 그런 훌륭한 말이 있단 말인가.”
“네. 영웅을 논할 때 아랫도리는 제외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허어. 조선이라는 나라가 옳게 된 나라로구만.”
오로지 조국만 생각한다, 나는.
우리의 왕께서 조선을 좋게 보면 이보다 좋은 일이 있겠나?
너무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당시 영국은 진짜 무서운 X새끼들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저 미친 프랑스의 악업조차 다 덮어 버리고 세계사에 뭔가 X같은 일이 있으면 고개를 들어 영국을 보라는 진리를 남긴 놈들이다.
“한 수 배웠네. 그 말은 나도 처음 듣는군그래.”
고개를 돌려 보니 리스턴도 과연 조선이라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프랑스 생각에 분노하고 있던 원장님도 비슷한 얼굴이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 말에 감명받았다기보다는 면죄부를 받아서 이러는 거 같긴 하다.
막말로 19세기 영국에서 아랫도리 문제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다들 쉬쉬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 병원에 매독 걸려 온 사람 중에 신부님들도 꽤 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의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궁 안에…… 있네.”
“아니, 그럼 계속 맞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그렇네.”
“불러와 주시죠.”
“죽이려고 그러나?”
이번엔 내가 좀 충격을 받았다.
나를 대체 어떤 사람으로 보길래 대뜸 죽이겠냐는 말을 한단 말인가.
“그래야죠, 그럼 살려 둡니까.”
“오늘은 그럼 닥터 평이 하나?”
“그게 깔끔하죠. 피도 안 나고.”
“하긴…… 주술이 깔끔하지.”
더 충격인 것은 리스턴도 원장님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거참…….
나 같이 선량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
‘이게 영국식 블랙 유머인가.’
하긴, 영국 유머가 악명 높지 않던가.
맛대가리 없는 음식의 영향을 받았을 거란 설도 있다.
미각이 잘못된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라 해도 어떻게든 먹긴 해야 하니 안주로 독한 유머라도 장착했다는, 그런 얘기다.
‘마음이 편해지는군.’
그래.
그런 거다.
우리 영국인 친구들…….
해서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그들의 농담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죽여야죠. 근데 그 전에 통성명은 해야 하니까 불러 주십쇼.”
“그…… 알겠네. 근데 시간이 걸려.”
“왜 그럽니까?”
“극비니까.”
“아.”
하긴 영국 왕이 프랑스 의사를 몰래 불러다가 정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소불알을 갈아 맞았다는 소문이 번지게 되면…….
우리 런던 시민들이 파리 시민들처럼 레볼루숑 정신을 탑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영국은 왕 대가리를 한번 뎅강 한 적이 있잖아?
“이해해 줘서 고맙네.”
나의 바다와 같은 이해심에 왕은 한 번 더 감사를 표한 후 방 안의 구석으로 향했다.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 웬 밧줄 같은 것이 천장에 달려 있었다.
왕은 그 밧줄을 잡아당겼다.
“이게 신호가 되네. 윗방에서 대기 중이거든. 이따 경비들과 하인 차림을 한 채로 올 거야. 차를 들고.”
“그…… 치밀하시네요?”
“일국의 왕을 뭘로 보는 겐가.”
‘방금 전까지는 몰라도 지금부터는 X으로 보일 거 같습니다’라는 말을 나는 간신히 삼켰다.
좌우를 돌아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다들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마 심경이 복잡하긴 할 거다.
원장님은 기껏 고국을 버리고 온 곳의 왕이 이런 사람이구나 싶을 것이고, 리스턴은 평생 자부심이 영국인이라는 것이니 한심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복도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똑똑.
그러곤 능숙하게 노크를 하고 안으로 지체 없이 들어섰다.
“오늘은 좀 늦……엇.”
그러나 낯선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물론 소용은 없었다.
바람보다 빠른 리스턴이 있었으니까.
쾅.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물러서던 닥터 빠게뜨는 속절없이 리스턴에게 막혀 멈춰 섰다.
그제야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니……?”
아는 얼굴이었다.
“왜 그러나?”
“형님, 얼굴을 보세요.”
“음? 아니……?”
당황스러웠다.
나뿐 아니라 리스턴도 그랬다.
“피에르……? 자네가 왜.”
우리가 파리 갔을 때 견학도 시켜 주고 우리 편도 들어주었던 프랑스 왕립 외과 아카데미의 장 피에르가 여기 있었다.
하인 복장에 주전자와 찻잔이 올려진 트레이를 끌고서.
“역시 명의들끼리는 통하는구만.”
우리의 국왕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철없이 이따위 말이나 지껄였다.
그 말에 장 피에르의 얼굴은 더더욱 새카맣게 변했다.
그럴 만했다.
이보다 치욕스러운 재회가 있겠나?
“뭔가 말이라도 해 보게.”
“네, 말을 해 보세요. 대체 왜 여기에 이런 꼴로…….”
그러니 내 걱정스러운 말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일 터였다.
마음이 영 좋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