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6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69화(369/505)
369화 우리 국왕 폐하 [3]
장 피에르.
프랑스 왕립 외과 아카데미의 교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하인 복장을 한 채로 의자 하나를 청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비틀거리다 언제고 넘어질 거 같았기 때문에, 또 우리의 국왕께서는 나름대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직접 한 것은 아니고 같이 온 경비병이 가져왔다.
내가 볼 때는 주사 맞고 어쩌고 하는 거보다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는 편이 정력에 도움이 될 거 같았지만…….
‘아까도 혼냈는데 또 혼내면 아무리 윌리엄 4세가 호인이라고 해도 좀 그렇긴 하지?’
일단 주둥아리를 잠시 닫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새로운 먹잇감이 있었다.
장 피에르.
내 친구.
“대체 이게 뭐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이미 물어뜯는 이가 있었다.
바로 리스턴이었다.
친구긴 하지만 일단은 닥터 빠게뜨이지 않은가.
심지어 우리 국왕을 건드린 프랑스 놈이었다.
말이 좋게 좋게 나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진료…… 요청이 있었네.”
허나 장 피에르도 역시 거물은 거물이었다.
프랑스 파리가 나름 뭐, 런던을 제외하고는 제일 큰 도시인 데다 거기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하인복에 찻잔 세트를 들고 온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허나 일반적인 하인복도 아니고 여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이상해 보였다.
“여장하고?”
“들킬 수 없지 않나. 런던 놈들이 얼마나 편협한지 자네가 더 잘 알면서. 자네와 닥펴 피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놈들이 있긴 한가?”
“으음.”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우스꽝스러운 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절절한 고백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확실히 런던 놈들…….
섬나라 놈들이라 그런가 진짜 앞뒤가 꽉 막혔다.
아니, 진취적일 때는 진취적인데 이상한 방향으로만 그렇고 우리 말은 들어 처먹질 않는다.
“이 가루 요법도 그렇지.”
“가루?”
“마땅한 용어가 없어서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게나. 자네들 국왕께서 괜히 이 요법을 사용하게 된 게 아니야.”
하여간, 장 피에르는 비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과연 프랑스 놈이라 그런가 혀에 버터라도 바른 듯 말이 줄줄 나왔다.
‘우리 국왕 폐하…… 이해해 줘야겠네.’
구라 마스터인 나조차 홀렸을 정도이니 저 순진한 양반이야 방법이 없었을 거 같다.
아무튼, 우리는 윌리엄 4세까지 포함해서 탁자 앞에 모여 앉았다.
“아, 그거 차 아닐세.”
“맞네.”
나는 나도 모르게 홍차를 따르려다가 장 피에르의 제지에 의해 멈추었다.
주전자 안을 보니 주사기 하나가 얼음에 둘러싸인 채 담겨 있었다.
‘얼씨구…… 주사기가 꽤…… 그럴싸하잖아?’
적어도 우리가 병원에서 쓰고 있는 양산형 주사기보다는 더 나은 듯했다.
어쩐지 달그락거린다 싶었다.
“자네들이 파리에 왔다 간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군그래.”
“그 얘기는 왜 나오나, 갑자기.”
“들어 보게. 자네들에겐 좋은 얘기야.”
“으음.”
리스턴은 좋다는 말에 일단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칭찬을 적게 들으면서 사는 양반도 아닌데 언제나 칭찬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장 피에르는 그렇게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네. 사실 콜레라 하면 다 죽는 병인데…… 항간에서는 닥터 피영, 자네가 일으킨 저주라는데 그건…… 아니지?”
“아니죠. 그게 되겠습니까?”
“그래, 그러리라고 믿네. 나야 자네가 얼마나 열심히 치료하려고 했는지 아니까. 게다가 실제로 치료가 되지 않았나. 듣도 보도 못한…… 치료법이었는데도 말일세.”
“그렇긴 했죠.”
“그때 전 파리 의사들이 고민에 빠졌네. 우리가 멈춰 있는 동안 런던의 의사들은 이렇게 진보했구나 싶어서 말일세.”
장 피에르의 말에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 영국인들의 뛰어남은…….”
“알았으니까 듣게. 그 뛰어난 영국의 공작께서 스스로 고환을 잘랐다던데, 아닌가?”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공공연한 비밀이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의 고환이 사라졌다는 것을 어찌 비밀로 하겠나.”
“허어. 이런 제기랄.”
그러나 그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 영국의 약점인 제이미 공작의 고환을 들먹였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위해서라면 역시 제이미 경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스턴 또한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나를 보며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털었다.
그 덕에 원하던 침묵을 얻어 낸 장 피에르는 부리나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부터였네. 파리에 실험 붐이 인 것이.”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이 시기 실험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일지 대강 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콜레라 사태처럼 대규모로 죽어 나가진 않았겠지만, 그에 준할 만큼 죽어 나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장 피에르도 몇몇 좋지 못했던 사례를 떠올렸는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분연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바게뜨인 특유의 활달함으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또 많은 성과가 있었네. 그 와중에도 자네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네.”
“응? 어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이미 경이지.”
“아…… 그 사람이 뭔 도움을 줬죠?”
리스턴은 대리 수치심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주로 내 몫이 되었다.
중간중간 국왕 폐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 궁금해서 돌아보았는데 의외로 덤덤해 보였다.
하긴 이미 다 들은 얘기일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제이미 경이 프랑스 것이라면 환장하는 건 알고 있겠지? 벽지며 뭐며…… 그렇지 않나. 그렇다 보니 파티에 늘상 초대받는, 거의 식객같이 지내는 음악가들도 많았는데, 그들 말에 따르면…… 해리라는 의사를 초빙하고 나서 제이미 경의 수염이 빠지고, 머리가 나고…… 무엇보다 침실에 여자 부르는 일이 아예 뚝 끊겼다고 하더군.”
“아…….”
그래.
수염은 가짜 수염으로 가릴 수 있다.
머리가 다시 나는 건 가릴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자 문제는 숨길 수가 없지 않겠나?
‘아니, 근데 그 나이에 계속하고 있었다고……?’
뭔가 다른 의문도 함께 들었지만 그 의문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장 피에르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가 고환을 자르는 사람이라는 건 유명한 일이었지. 그래서…… 파리의 의사들 중 일부가 죄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본 모양이야.”
“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자네도 별짓 다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그냥 궁금해서 자른 거잖아요.”
“자네는 다른가?”
“다르죠? 저는 의학의 진보를 위해 한 겁니다. 그리고 고환은 안 잘랐어요.”
“그…… 뭐, 그렇다고 하지.”
장 피에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 했는데, 소변이라는 단어와 줄 그리고 이, 비소 등의 단어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난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거든.
“아무튼, 잘랐더니만 글쎄 발기가 안 되더라, 이 말일세.”
“그렇……겠죠?”
“그래. 자네는 알고 있어서 안 잘라 봤겠지만 우리는 몰라서 잘라 봤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르지. 그걸 알아야 하나? 아마 몇몇은 시신 전시회에 있을 거 같긴 한데.”
“아, 네.”
런던은 험악하다.
하지만 19세기 파리 또한 만만치 않은 곳이 아닌가.
아직도 가끔 꿈에 시신 안치소가 나온다.
미친놈들.
“자, 고환이 없으면 발기가 안 되네. 그럼 고환이 더 있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나.”
“아니…… 당신들 설마?”
“나는 아니고 그 교도소에서 진행한 실험일세.”
“아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짓이지. 하지만 자네가 우리의 눈을 깨워 준 걸세. 인체 실험이라고 해도, 그것이 좀 악독해 보이더라도 의학의 진보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것이지.”
“아니…….”
말을 듣다 보니 욕도 안 나온다.
대신 ‘과연 나는 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록이 될까’ 하는 걱정만 들기 시작했다.
오해가 이렇게 무섭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정답을 알고 있기에……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것일 뿐인데…….
‘주여…… 이 무지한 이들이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오직 나만이 답을 알고 있다니.
예수님이 된 심정이다.
“불행히도 불알을 이식받은 사람들은 다 죽었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다 죽었어. 하지만 우리 프랑스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무슨 말을 원해서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욕설은 아닐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빠게뜨 놈들이니 망설임 없이 욕을 했을 테지만…….
나에게 배워서 남의 고환 자르고 붙였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가 그럴 수도 없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족이다.”
“아니, 그게 무슨 상관…….”
하지만 저런 숭고한 단어들이 불알 이식 뒤에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허나 장 피에르는 뻔뻔한 사람이었다.
“실험의 자유가 있으며 결과를 평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고…… 그것을 대가 없이 퍼뜨리는 박애가 있는 민족이지 않나.”
“아니…….”
“그래, 교도소 의사들이 그 결과를 완전무결한 상태로 파리의 의사들 전원에게 공유해 주었네. 덕분에…… 새 시대가 열렸네.”
표정만 보면 프랑스 대혁명이라도 일으킨 장본인 같다.
하지만 이 사람이 단두대로 자른 건 왕의 목이 아니라 무고한 시민의 고환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의사다, 이 말이다.
“모든 의사들이 이 고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죄수의 수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아무리 죽일 놈들이 많다고 해도 말이야.”
“그…… 그렇죠.”
역시 바게뜨 놈들보다는 런던 놈들이 낫다는 생각이 들 무렵 장 피에르가 눈을 빛내며 주전자 안에 들어 있던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안에 남긴 액은 붉었다.
마구 찰랑거리진 않았다.
약간 진득한 느낌이 있었다.
“아까운 고환액이 굳었군그래. 아무튼, 나는 자네가 동물 실험도 한다는 걸…… 그중에서도 특히 소의 췌장을 아껴 쓴다는 걸 전해 들었네.”
“아니, 대체 그걸 누가 말해 준 겁니까…… 형님?”
“그냥 자랑한 거야. 자세한 얘기는 안 했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우리 먹거리를 저쪽에 공유한 게 리스턴일 줄이야.
부들부들하고 있으려니 장 피에르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뻔뻔한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도 소의 고환을 이용해 보았네. 이식은 안 되더군. 그래서 어쩐다 하다가, 자네가 췌장을 갈아서 처리한다는 얘기를 떠올렸지. 그래서 갈아서 찔러 넣었지. 그랬더니…… 폐하 어떻습니까?”
“국왕의 명예를 걸고 말하겠네. 한 치의 거짓도 없으니 잘 듣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