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7화(37/505)
37화 나 신문에 나왔다 [2]
일단 앉고 나니까 시신이 눈에 훅 들어왔다.
나이는 대략 30세?
성별은 남자.
고된 노동을 했는지 근육이 꽤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피하지방은 적은 게, 해부학에 정통한 나한테는 그냥 봐도 어디가 무슨 근육인지 눈에 딱 들어왔다.
‘배는 꽤 나와 있고…… 으음…… 뭔가 병리적인 소견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부검의라면 이런 생각을 보다 이어 나갈 터였다.
하지만 나는 의사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아직 의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로버트 리스턴이 있었고 주변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들도, 특히나 내게 추월당해 질투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선배들도 곁에 있었다.
‘쓸데없는 건 신경 쓰지 말자.’
나는 우선 장갑부터 꼈다.
그러자 선배 무리에서 몇 명이 비웃음을 흘렸다.
겁쟁이라거나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상에, 시신을 맨손으로 만지는 게 용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라니.
미개하기 짝이 없는 시대라고 보면 되었다.
“음.”
하여간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도 장갑을 끼고 난 후로는 비웃음은커녕 그저 조용해졌다.
기자들이야 해부 실습을 견학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보니 장갑에 반응을 보이진 못했다.
아예 몇몇은 시선을 반대로 떨구고 있을 정도니 뭐 말 다 한 셈이었다.
21세기의 해부 실습실도 일반인이 보기엔 충분히 끔찍할 텐데 여기는 뭐…….
“칼 줘.”
하여간 나는 수술방 기분을 내면서 조지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뭐 어쩌라는 건가 하는 눈으로 날 보다가 이내 칼을 건네주었다.
칼이 크기도 하고 또 날 부분으로 줘서 하마터면 베일 뻔했다.
여기서 베일 뻔했다는 건 곧 뒈질 뻔했다는 말과 다름없기에, 나는 나중에 이놈들을 따로 불러다 교육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팔을 해 볼까.”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검증된 부위부터 해 보길 원했다.
아니, 아마 거기만 하길 바랄 터였다.
이놈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할 테니까.
그것도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도 마찬가지다 보니 우선 절개를 넣었다.
지이익.
얼마 안 된 시신이다 보니, 확실히 절개 넣는 느낌이 살아 있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읍…….”
“야야, 양동이 가져다줘라.”
“네.”
그와 동시에 기자들 중에서 구역질을 시작하는 사람이 나왔다.
바닥에 해도 무방할 정도의 청결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좀 아니란 생각을 했는지, 리스턴 박사님의 말에 학생들이 부리나케 양동이를 날랐다.
“우웨에엑.”
그렇게, 나는 이상한 배경음을 깐 채 절개를 이어 나갔다.
아니, 절개는 끝났고 다음은 박리였다.
툭툭.
근막과 피하 조직 사이의 하얀 결합 조직을 칼로 밀었다.
“어…….”
“저게 어떻게…… 피가 안 나지?”
“죽었으니까 그렇지.”
그걸 보면서 나름 비위가 좋은 기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새끼들…… 난 산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결합 조직을 미는 건, 그러니까 박리 하는 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자잘한 출혈이야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정말이지 자잘한 출혈일 뿐이었다.
투두둑.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툭툭 박리를 해 나갔다.
그렇게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아마 이런 형태의 사람 근육을 보는 건 기자들에게 무척 낯선 경험일 터였다.
“와아…….”
의대생들에게도 그러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러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아까 비웃던 놈들 중 일부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정도로 놀라는 건 이르지.’
나는 거기에 더해 뭔가를 더 보여 줄 참이었는데, 돌연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일어섰다.
그제야 나는 이 인간이 내 해부를 참관했던 것이 딱 여기까지였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좀 끔찍할 수 있어서 말인데.”
로버트 리스턴 박사의 거대한 체구가 곧 나와 시신을 가렸다.
그는 내게 등을 돌린 채 기자들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하는 게 댁들한테 이로울 거야.”
“이보다 더 끔찍해집니까?”
이미 지옥에 있단 생각을 하고 있던 기자가 이렇게 물었고.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배 열어 볼 텐가? 거기서부터는 정말 장난이 아닐세.”
“아.”
로버트 리스턴은 실습실 어딘가에 있던 시신을 가리켰다.
일단 여는 놈이 해부학에 대한 이해도가 0인 채로 연 탓도 있겠지만, 부패가 진행된 탓에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서 봐도 힘든데 가까이에서 취재를 해야 한다고?
그건 좀 아니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그래. 기사 잘 부탁하네. 진짜 전도유망한 친구라고. 내 이야기도 잘 써 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것만으로 실력을 판단하긴 어렵지만,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건 잘 알았습니다.”
“그래, 그래. 내가 자네 집을 안다는 것도 유념해 주면 좋겠군.”
“그…… 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어느새 장갑을 도로 빼놓고 있었다.
어떤 주먹은 장갑을 껴야 비로소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 주먹은 아니었다.
더욱이 우리를 데리고 갔던 술집에서 어느 이름 모를 양아치 하나를 두들겨 줬던 흔적이 주먹에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기자는 압도적인 크기와 새로 생긴 상처, 그리고 이전에 새겨진 흉터 등을 감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좋아. 쓸데없이 시간을 좀 뺏겼구만그래.”
그를 시작으로 해서 나머지 기자들도 다 나갔다.
어떤 이는 아예 양동이도 들고 나갔는데, 저래서 어디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까 싶었다.
하지만 안 좋은 얘기는 못 쓸 거라는 데 돈도 걸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집 안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다들 앉게. 오늘부터 당분간 나는 여기 닥터 피영과 함께 짝을 이룰 거야. 견본을 보고 싶으면 여기 와서 보고, 각자 시신을 두고 해부하게. 잘 안 되는 거 같으면 아예 부르고. 망가뜨리는 건 안 돼.”
“네!”
“네…….”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방금까지 입 벌리고 보던 놈들이 쳇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입 모양은 쳇인데 소리는 네라고 났다.
저게 로버트 교수님과 오래 지낸 짬바인가 싶었다.
“자, 그럼…… 계속하지.”
“아, 네.”
면상을 좀 더 두고 보고 싶었는데, 로버트 박사님이 앉아서 나도 앉았다.
“자, 여기를 잘라 보게.”
“네?”
그러곤, 박사는 내게 영 이상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는…… 이두 사이인데요?’
멀쩡한 근육을 반으로 가르라는 뜻인가.
그렇다고 해서 감히 뭐라 할 수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려니 그가 말을 이었다.
“조심해서 베게. 이 안으로 혈관이 있어. 동맥이 있지.”
“아, 네.”
다 아는 소리를 이렇게 하다니.
생각 같아서는 이두만 딱 떠서 발라 주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반으로 가르라는데 딴짓을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적어도 아직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닥터가 되면…… 내 마음대로다.’
잠시만 참기로 하고 칼을 집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충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근막을 따라서 가르는 게 훨씬 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근육 자르는 게 처음은 아니지.’
배를 가르는 것도 다 근육을 가르는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물론 근섬유의 절단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세로로 절개를 넣게끔 되어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럴 수 있을 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이익.
나는 집중한 채로 절개를 넣었다.
칼이 쓸데없이 커서 좀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숙련도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자르다 보면 생긴 게 다르건 느낌이 다르건, 하여간 뭔가 다른 게 나오게 되어 있었다.
‘음. 여기다.’
그렇게 나는 근육의 끝을 확인했다.
이 밑이다.
이 밑은 이제 다른 영역이다.
그렇다면…….
“핀셋.”
“핀셋?”
“어. 핀셋.”
“어…… 그건 수술할 때나 쓰는 걸 텐데.”
나는 너무 집중한 나머지 조지프에게 영 과한 것을 요구하고 말았다.
조지프는 그런 나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로버트 박사님도 그랬다.
어이가 없다기보다는 의문에 찬 얼굴이긴 했지만.
“그건 왜?”
“이거 잡아서 자르려고요. 그럼 밑에 구조물이 안 다치니까요.”
사실 어이없는 건 나였다.
지금 내가 말하는 건 딱히 의학적인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상식이었다.
“아……!”
허나 이들에게는 상식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이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긴 했다.
이 인간들이 핀셋을 쓰던 순간은 오직 하나뿐이니까.
다리나 팔을 자르고, 안으로 쏙 들어간 혈관을 묶기 위해 잡아 뺄 때.
그러니까 무언가를 안 상하게 하거나 덜 상하게 하기 위해 핀셋을 쓴 적은 없다는 얘기였다.
“넌 정말 천재구나. 발상이 아예 달라!”
로버트 교수님은 껄껄 웃으며 일어났다.
“이걸 기자 놈들한테 보여 줘야 했는데! 넌 늘 내 기대를 벗어나는구나! 하하하하!”
그러곤 부리나케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보조를 위해선지 뭐를 위해서였는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해부용 칼을 쥔 채였다.
‘잡아 오나?’
아무리 봐도 기자를 잡아 올 것 같았다.
이것도 쓰라고 하려고.
하지만 잠시 뒤 모습을 드러낸 로버트 교수는 자신의 수술 기구가 담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아, 그래. 이 사람 바이킹이 아니지.’
그래, 의사긴 의사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핀셋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이거 갖게나. 나는 하나 새로 맞추면 돼.”
오, 선물이었다.
“감, 감사합니다.”
“그럴 거 없어. 이 발상이 최고의 선물이야. 그래, 아래를 보호한다…… 좋군, 좋아. 아주 좋아.”
감사를 표하니 묘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여 댔다.
연신 좋다고 하는데, 그래서 긴장이 됐다.
이런 류의 인간이 좋다고 할 때는 진짜 당사자 말고는 안 좋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랬다.
‘마취제가 나왔다고 설마 다음부터 바로 배 째는 건 아니겠지.’
그럼 진짜 큰일이었다.
이따위 두꺼운 장갑으로 수술까지는 무리거든.
그럼 맨손으로 해야 하는데, 아무리 염화석회고 나발이고 소독을 한다 한들 손은 완전히 깨끗해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기구와 손까지 다 소독을 할는지도 의문이었고.
내가 이 양반과 24시간 같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해 보게.”
“아, 네.”
물론 이런 걱정은 지금 내 상황에서 다 주제넘은 짓이었다.
해서 나는 그저 시키는 것이나 하기로 했다.
아주 잘.
다시 말하면, 핀셋으로 근육을 집어 들고 절개를 넣었단 말이었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이두가 쩍 하고 갈라졌고, 밑으로 혈관이 보였다.
일반인이 기대하는 것처럼 붉은 혈관은 아니었다.
하얬다.
나름 피를 그대로 빼긴 한 모양이었다.
“하…… 이렇게 하면 진짜 쉽게 자를 수 있겠구만. 늘 요행에 기대었는데 말이야…….”
내가 심드렁한 감상에 젖어 있는 동안 로버트 리스턴, 그리고 주변에 있던 의대생들은 꿈에 젖었다.
그들 중 일부가 나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