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7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70화(370/505)
370화 우리 국왕 폐하 [4]
국왕의 명예가 저렇게 함부로 걸릴 건가 싶었다.
그놈의 정력이 뭐라고 저러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태화 의료원 출신이다 보니 한줄기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이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세계 경제 순위 13위, 명실공히 선진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VIP께서 응급실로 오신답니다!
-사고라도 난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저는 왜……?
-의전 몰라? 중외상 센터 의사들 쫙 서 있으면 어? 기자들까지 다 오고 할 텐데. 병원에서 최선을 다했구나 싶은, 그런 게 있어야지.
-아.
이 기억 또한 어느 정도 한심스러운 기억이긴 한데, 놀랍게도 이게 메인이 아니다.
그날 실려 오신 전 대통령께서는 정력에 좋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개구리를 생으로 드셨다가 심각한 기생충 감염이 발생해서 중환자실로 향했더랬다.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외과적으로 제거 가능한 기생충은 다 제거한 후 시행한 약물 치료에서 패혈증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덕분에 살아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서 가셨는데…….
-VIP께서 응급실로 오신답니다!
-사고라도 난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저는 왜?
-자세한 건 가면서 얘기해.
불행 중 다행으로 같은 분 얘기는 아니다.
다른 전 대통령 얘긴데…….
이 양반은 확대술을 받았다가 감염되어서 절반가량을 절제해야만 했다.
거기에 내가 왜 갔냐고?
의전이지 뭐.
솔직히 그렇게까지 화가 나거나 억울하진 않았다.
세상에 전 대통령이 그렇게 실려 온 것을 어디 가서 보겠나.
‘그런 거 생각해 보면 19세기 영국 왕이 이러는 것 정도는 애교지 뭐…….’
이러한 다소 충격적인 일화 덕에 나는 여전히 윌리엄 4세를 자애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리스턴과 원장님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으리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럴까?
왕께서는 거의 나만 보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날 이후로 정말로 강해졌다네. 일단 잘 선단 말일세. 자네 생각은 어떤가.”
느닷없이 배턴을 이어받게 된 경비병은 잠시 당황했으나 대영제국 최정예 레드 코트의 일원임을 자각했는지 이내 또박또박 답을 해내었다.
“네, 정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왕비 폐하의 침실에 드시는 횟수가 느셨습니다. 그 외에 다른 여성들도…….”
“그 이상은 좀.”
“죄송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듣긴 했지만, 아무튼, 의미 있는 정보였다.
동시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정보이기도 했다.
“효과가 있었다고요?”
“그렇다니까? 그것만이 아닐세. 자, 이것 보라고.”
“으음?”
이게 정말 효과가 있다고?
말도 이렇게 했지만, 머리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9세기로 돌아온 이후 거의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온 내게 이건 꽤나 특별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왕께서는 그런 내게 자신의 팔뚝을 들이밀었다.
그래봐야 앙상한…….
앙상한…….
“보게나. 젊은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어…….”
“하하. 자네도 놀랐구만! 리스턴 경. 자네도 보게나!”
내 기억 속 윌리엄 4세의 체형은 전형적인 거미였다.
운동은 안 하고 먹는 것과 술을 좋아하는 늙은 사내 특유의 체형 말이다.
헌데 지금 국왕 폐하의 팔은 제법 두꺼워져 있었다.
그래 봐야 뱃사람들이나 리스턴과 같은 괴물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19세기 노인의 그것은 아니었다.
“으음. 정말…… 두꺼워지셨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나보다 훨씬 눈썰미가 좋은 리스턴마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진실에 가깝다는 얘기였다.
“흠흠.”
우리의 놀란 표정을 읽어 낸 탓일까.
위축되어 있던 장 피에르가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수염도 안 깎고 여장한 꼴이 나아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학자는 그런 법이었다.
더 아는 사람이 강자다.
“일단 호전된 모습을 보았으니, 듣게.”
“네.”
“그러지.”
특히 나와 리스턴은 진리 앞에 고집을 피우지 않는, 지조 없는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에 그저 들었다.
“그냥 막 한 게 아니야. 실험을 하면서 동시에 자료 조사도 했네. 우리 프랑스 왕립 외과 아카데미에는 거대한 서고가 있거든.”
“으음.”
“으으음.”
물론 프랑스 운운하는 건 그리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프랑스가 우리 영국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기껏해야 와인이나 좀 잘 담그고 음식이나 잘하는 것 정도 아닌가?
허나 폐하의 팔뚝이 굵어진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일단 닥치고 있었다.
리스턴도 부들거렸지만 입술만 실룩일 뿐 조용히 있었다.
“서고를 뒤져 보니 고대 그리스 시절…… 올림픽을 했었는데 그건 알고 있나?”
“알고 있지요.”
“그럼 알고 있지.”
“당시 출전하던 선수들이 남성성을 키우기 위해 소의 고환을 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네?”
“아니…… 그런짓을?”
프랑스와는 달리 고대 그리스는 이미지가 많이 좋았다.
철학과 사상의 아버지라는 느낌이지 않나.
심지어 중세 유럽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르네상스부터가 그리스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으니…….
헌데 그 고상했던 조상들이 소불알을 생으로 씹어 먹었다고 하니 이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나.
리스턴은 물론이거니와 원장님 또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우리의 폐하께서는 이미 이 얘기가 익숙한 것인지 그저 자애로운 미소만 띠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한 사람들이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기록도 있네.”
“아니…….”
“그 어찌…….”
“자네들이 왜 그러는지 도통 모르겠군그래. 고환을 제거하면 남성성이 제거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은 자네 둘이 아닌가.”
“그건…….”
“그, 그, 그렇긴 하지만…….”
리스턴은 말을 많이 더듬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냈던 친우가 여장을 하고 자기 국왕에게 소불알 간 것을 주사 맞혔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 아닌가.
심지어 이 말도 안 되어 보이는 행위에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니.
천하의 리스턴이 스턴에 걸려서 어버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환이라……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건 정자와 정액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이지.’
나?
나는 좀 달랐다.
처음에 갈아 만든 고환을 맞았다고 했을 땐 다분히 주술적인 행위를 떠올리긴 했더랬다.
그, 왜 있지 않나.
원시인들이 더 강한 사람이나 동물을 생으로 씹으면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에서 하는 짓 말이다.
실제로 아무 데나 쑤셔 박았다는 추정도 있다.
‘하지만…… 효과가 있어. 그 말은 곧 근육주사 또는 정맥 주사를 했다는 얘기야. 정맥은 좀 위험하니 근육주사를 했겠지. 원래 그렇게 되면 괴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보통 그러면 죽는다.
죽은 동물의 피나 살에는 균이 엄청나게 많이 살거든.
하지만 우리 병원에서 하고 있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그건 해결했을 거다.
실제로 주전자 안에 담긴 주사기를 보면 약간 진득해 보일지언정 액체는 액체였다.
아마 얼음에 넣고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저렇게 된 것일 터였다.
아니었으면 이미 우리 국왕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까.
‘세상에…… 그럼 나 없는 동안 켄트 공작부인의 섭정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었단 말이잖아?’
이런 끔찍한…….
그럼 다음 왕이 빅토리아 여왕이 될지 안 될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그건 안 되지.’
내 해부 쇼의 팬인 빅토리아 여왕은 반드시 왕위를 이어야만 한다.
내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영국을 성공적으로 이끈 빅토리아 여왕이 그냥 스러지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 않나.
그래.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람 곁을 비우는 건 안 될 거 같다.
‘아무튼, 테스토스테론 추출에 성공했다는 말이잖아.’
호르몬 박사는 아니니 정확하진 않겠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인류가 호르몬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헌데 이 미친놈들이 그걸 이만큼이나 당겨 버렸다.
내가 췌장에서 인슐린을 빼내 썼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그렇잖아?
방법을 모르면 또 모르겠는데 아는 상황에서 환자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잖아.
“이러한 이론적 근거에 따라…… 자네들이 썼던 방법을 차용해서 이 액을 만든 걸세.”
“허어…….”
“어, 어, 어떤가. 평. 이놈의 의견이 그럴싸한 건가?”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리스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빠게뜨 놈들이…….
우리보다 앞서서 테스토스테론을 발견했다는 충격을 간신히 이겨 내면서였다.
“네. 그럴싸해요.”
“허어.”
“확실히…… 남성성을 나타내는 어떤 물질을 고환에서 만들어 낸다는 증거는 충분히 있지 않습니까.”
“그, 그건…… 우리의 제이미 경께서 몸소 희생하여 증명하긴 했지.”
의연한 동생을 본 덕일까.
리스턴 또한 여전히 말을 좀 더듬긴 할지언정 금세 대화에 끼어들 정도로는 정신을 차렸다.
“결국, 우리가 당뇨병 치료에 췌장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겁니다.”
“그렇군…… 췌장이 손상되면 당뇨가 발생하니, 이를 보충하면 치료할 수 있다……라는 것이 우리의 이론적 근거였지. 그러니 고환이 손상되면 남성성이 훼손되니 이를 보충하면 치료할 수 있다…… 허.”
“네, 정확해요. 프랑스에서 이런 걸 해내다니…… 우리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습니다.”
“그렇군. 하필이면 그 프랑스에서.”
“우리 탓이에요. 우리가 거기서 너무 많은 혁신을 보여 버렸습니다.”
“그것도 그렇군…… 하긴, 천재의 발자취는 범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기 마련이지.”
심지어 자연스레 우리 자랑을 끼워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과연 리스턴이다 싶었는데, 아쉽게도 우리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했다.
나와 리스턴의 동조에 용기백배한 왕께서 끼어든 탓이었다.
“그럼 계속 맞아도 되겠나?!”
홍조까지 띤 것이 요새 확실히 살맛 나는 모양이었다.
하긴 남성 호르몬이 떨어져 있다가 오르면 그러긴 할 터였다.
비단 근육량이나 발기력뿐만 아니라 그저 삶의 활기 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그렇다.
하지만…….
‘왜 21세기에서도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이 대중화되지 못했는가를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해.’
여성 호르몬은 대체요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여성 호르몬과 관련된 암들, 대표적으로 유방암 확률이 올라가지만 그래도 한다.
갱년기 증상 조절부터 해서 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은 어떤가.
긍정적인 효과가 있긴 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 원인으로 남성 호르몬을 꼽는 의사들이 굉장히 많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다.
그것도 목숨이라는 대가를.
당연하게도 그만 맞게 해야 했다.
쉽진 않을 거 같았다.
안 서다 서게 된 왕의 마음을 꺾어야 하는 일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