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7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74화(374/505)
374화 호르몬 [4]
찢었다.
진짜로…….
항상성에 대한 강의에 주님을 섞어 넣을 줄은, 외람되지만 주님께서도 몰랐을 거다.
제아무리 전지전능하시다지만 이것까지 알고 계셨다고 하면 내가 좀 그럴 거 같아.
아닌가?
그걸 알아서 날 여기로 보내셨을까?
‘그렇다면 더더욱 마음 놓고 구라 쳐도 된다는 건가?’
이러한 나의 사고 흐름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실지 어떠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19세기 의사들이 드디어 이 소 고환 갈아 찔러 넣는 행위에 대해 일말의 찜찜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찔러 넣기 시작한 만큼이나 그랬다.
“그럼…… 이것도 부작용이 있을 거다, 이 말인가.”
“아마도…… 그럴 걸세. 평의 말이 의학적인 말이라면 정말 그럴싸하거든.”
“아무리 그래도…… 어찌 사람이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처음엔 그게 이상했는데, 이젠 그냥 주의 사자라고 여기기로 했네.”
“조선 주술사라던데……?”
“주술이건 뭐건 결과적으로 불러내는 건 주님 아니겠나. 잡신이 어찌 이렇게 신통하겠나.”
대화의 흐름 전체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이미 누구나 다 나를 주술사로 여기고 또 주님 접신자로 여기고 있다는 건 확실히 과학자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겠나.
사실 내가 대학병원 있을 때 제일 싫어했던 것이 미신 같은 것에 휘말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였거든?
비단 나뿐만 아니라 아마 모든 의사들이 그럴 거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잠자코 듣고 있는 건 이미 늦었기도 했거니와 절대적인 흐름이 내가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정말 부작용이…… 흐음.”
장 피에르도 불안한지 자꾸 자신의 사타구니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남들 앞에서 저런 짓을 한다는 건 어떻게 봐도 신사적인 행동은 아니겠지만 빠게뜨 놈들이니 하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배우고 또 배워도 사라지지 않는 자국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니.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센강에서 풍겨 오던 똥내에 아득해지는데, 빠게뜨 놈들이라 그런가 역시 독하다.
“슬슬 저놈들 볼 때 부작용에 대해 묻긴 해야겠는데. 이봐, 스노우.”
“네, 교수님!”
불안한 장 피에르와는 달리 저따위 거 찌를 일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스턴은 당당하기만 했다.
덕분에 그는 통계 산출기인 스노우를 불러 보다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속으로 인공 지능 탑재된 전자계산기 취급을 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르는 데다가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나와 리스턴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는 녀석이기에 뭘 요구해도 열심이었다.
“일단 이 불알과 관련된 질환이 뭐가 있지?”
“태평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발기부전, 고자, 전립선비대증이 있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지식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거다.
세상에 불알과 관련된 질환이 저 셋뿐이라면 살기가 얼마나 좋겠나.
물론 저 셋만 해도 골 아프긴 하다.
실제 메인 질환들이기도 하고.
“흠. 아직 어리군. 탈모도 있네. 아주 무서운 질환이지.”
“아.”
리스턴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고 다니면서 해풍을 맞느라 본격적인 시술을 뒤로 미루지 않았나.
그사이에 점점 더 진행을 해 버린 탓에 리스턴의 머리는 이제 심어서 되려나 싶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말은 안 해도 내심 포기라도 한 건지 요새는 기도도 안 하는 거 같았다.
대신 한숨만 쉬는데, 깊은 탄식이 배여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에 잠기게 하기 충분했다.
아직 어린 존 스노조차 그런 리스턴을 보면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이제부터 이것에 기초해서 설문지를 만들어 보게.”
오히려 당사자인 리스턴은 담담했다.
이미 오래된 탓인지 아니면 나 아니어도 가뿐히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위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이의 목소리에는 깊은 호소력이 있었다.
존 스노는 원래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리스턴 때문에라도 한계를 뛰어넘는 출력을 보여 주었다.
그래 봐야 현대 의학 논문 작성에 쓰이는 설문지 수준에 비하면 근거도 형식도 한참 모자랐지만, 내가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니, 내가 하려면야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수준으로는 나왔다.
그 시간에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일이란 말인가.
이번에는 아쉽게도 내가 한 일이라는 게 단지 산책과 죄수 구경에 불과하긴 했지만, 언제라도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봐.”
“네, 네!”
21세기 대학병원이었다면 실험체 아니, 환자들에게 설문지 나눠 주고 결과 받는 건 아래 연차의 일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극한의 효율을 위해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기 때문에 험악한 죄수들에게 설문 받는 건 리스턴과 조지프가 맡았다.
리스턴에게 밀리다 보니 오직 소독광으로만 통하는 조지프지만, 애초에 녀석이 싫다는 사람의 손을 강제로 씻길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당장 우리 병원만 해도 리스턴 외에는 조지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다.
범위를 병원 아니라 조직으로 넓혀도 비슷하다.
도축장에 있는 놈들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으로 있는 놈이나 맨손 격투로 비벼 볼 만할 정도다.
“이거 써. 솔직하게 써야 해. 안 그럼…….”
“히익.”
둘 다 생긴 것만으로도 ‘위압’ 스킬을 시전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거기에 더해 둘은 ‘주술사 힐끔거리기’ 스킬도 시전하고 있었다.
뒤에 떡하니 서 있는 나를, 일부러 묘한 눈을 한 채 좋아하던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보는 건 죄수들에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생긴 것부터가 그렇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노랗다고 하기엔 묘하게 흰 피부에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입고 있는 건 대영제국 귀족들의 그것이지 않나.
묘한 앙상블이 주는 충격은 아무것도 모르는 죄수들에게조차 위력이 있는 법이었다.
“다 모였네. 생각했던 것보다…… 소변 증상이 많군.”
“그 정도가 아니라, 아까 평이 말해 줘서 추가했던 숨찬 증상도 있습니다.”
“소변 때문인가? 소변을 못 보면 숨차잖아?”
“평이 말로는 다른 근육 말고 심장 근육도 커지면 이렇게 될 거라는데요?”
“어리석은 소리. 심장 근육도 커지면 좋은 거 아니겠나. 오히려 더 잘 뛰게 될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평이가 고집을 부려서요.”
모를까 봐 말해 주는데 이 대화가 나 없는 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조선 주술사인 내가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데도 이러고 있다.
‘아무리 봐도 리스턴…… 내가 단순한 주술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거 같단 말이지.’
내가 리스턴 입장이면, 아무리 힘에 자신이 있어도 상대가 진짜 주술사란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저러진 못할 거 같거든.
가만 보면 중간중간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묘한 기운이 있다.
하지만 굳이 그걸 물어보고 싶진 않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라면 또 모를까…….
살다 보면 그냥 덮어 두고 있는 편이 나은 일도 많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은가.
“아무튼, 신기하군. 숨찬 놈들이 나오다니.”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요.”
둘은 이외에도 꽤나 많은 양의 잡담을 나누었다.
이 둘뿐만 아니라 아무리 봐도 괜히 놀러 온 것처럼 보이는 블런델을 포함해 앨프리드, 콜린 그리고 똘똘이 존 스노까지 가세해서 그랬다.
녀석들 모두 나름의 이론과 가설을 침 튀겨 가며 설명했다.
그걸 굳이 옮겨 적지 않는 이유는 다들 알리라 믿는다.
많이 가르쳤지만, 아직도 모자람이 있다.
-좀 외람된 말이지만…… 젊고 팔팔한 죄수의 고환을 갈아서 맞히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제일 정확한 실험은 인간의 것으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중에서 딱 하나, 제일 기억에 남는 것만 적어 보았다.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뻔했다.
세상에…….
실험을 위해 고환을 자르겠다니.
인정한다, 나도 인체 실험 꽤나 한 놈이다.
아마 21세기 기준으로 법을 들이밀면 유죄를 피할 수 없겠지.
물론 내게는 숭고한 뜻이 있었고, 또 대상이 된 이들 모두 죽어 마땅한 이들이었음을 부정하진 않겠지만서도…….
‘아무리 그래도 맨정신에 저런 발언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19세기인들조차 이 말에는 난색을 표하긴 했다.
-뭐, 사형당할 놈 중 집행 전에 미리 빼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겠구만.
물론 그 와중에 이런 미친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살짝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뭐…….
어차피 죽을 놈이잖아.
어찌 보면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장기 기증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일단 전체적으로 그건 좀…… 하는 분위기라서 괜히 말을 보태거나 하진 않았다.
나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다.
“그럼 어쩌지? 실험은 속행하는 것으로 할 텐데…… 부작용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는 놈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양을 늘리죠. 어차피 도축장에 말하면 더 가져오는 건 일도 아니잖아요. 전에 보니까 째는 건 엄청 빨리하던데.”
“더 늘리자고?”
“네. 부작용을 보는 게 목표니까요. 더 많이 줘 버리는 거예요.”
“음. 그럴까? 근데 가져와서 그거 추출해서 찌르려면 귀찮은데. 지금 일주일에 두 번 오는 것도 귀찮아 죽겠네.”
“뭐…… 귀찮을 기간이 줄지 않겠습니까?”
“아…… 자네는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구만.”
확신하냐고?
당연하다.
남성 호르몬을 지나치게 많이 맞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많이 봤기에 그렇다.
많은 이들이 자기네들은 안전하게 조절해서 맞는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의학은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그냥 팩트에 가까운 학문이지 않나.
그러한 사실을 그렇게 주장하던 이들조차 하나둘 심근경색으로 죽어 나가는 것을 피하지 못함으로써 굳이 몸으로 증명하고야 말았다.
“네, 100%.”
“그런데도 양을 늘리자고 하다니. 확실히 자네는 악당이야.”
“아니, 저는 우리 국왕 폐하를 단념시키기 위해 하는 일인데.”
“궁에서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을 봐 놓고도 단념시키려고 하다니. 그것도 악당이네.”
“죽게 둘 수는 없잖아요.”
“그야 뭐……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아니…… 그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나는 조선에서 말하는 하늘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네.”
나는 이단의 탄생을 보다 못해 고개를 털었다.
이러다 조선 가서 뭔가 하게 되면 어쩐단 말인가.
‘아니, 잘된 일일 수도……?’
저 리스턴이라면 동학 운동이고 뭐고 다 성공시킬 수도 있지 않겠나?
뭐 시대가 맞질 않으니 안 될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상한 소리 말고 이제부터 양 두 배로 늘립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근데 그러다 죽으면?”
“죽으면요? 기록해야죠.”
“그,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