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7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75화(375/505)
375화 호르몬 [5]
우리의 실험실.
곧 자비로우신 윌리엄 4세의 명에 따라 사설 수용소가 될 이곳은 오늘 평소와는 달리 꽤나 들뜬 분위기였다.
런던 근교라 해도 걸어서 가기엔 멀기도 하고 험하기도 해서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경관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우리 일행 중 어린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왕께서 직접 행차하시기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나나 리스턴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왕을 들여다보고 해서 그렇지…….
대영제국의 국왕을 알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겠나.
“와…… 레드 코트…….”
“멋있다.”
“우리 대영제국의 정예들이죠.”
“전 세계만방에 우수한 우리 영국의 문명을 퍼뜨리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고요.”
국왕이라는 게 혼자 막 오진 않는 법이었다.
물론 자기 동생이 대머리 수술받을 땐 요란을 떨면 떨수록 동생이 대머리라는 걸 소문내는 꼴이었다 보니 단출하게 오긴 했었지만…….
여긴 엄밀히 말해 런던 시내도 아니다 보니 군대가 왔다.
그것도 세계 최강의 군대라 평가받는 레드 코트가.
“나도 예전에 군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원래 남자들이란 평소엔 군인 욕을 하다가도 특수 부대처럼 강한 이들을 보면 가슴이 들끓는 법이지 않은가.
21세기도 그랬는데 여긴 어떻겠나.
요즘 들어 생리대 실험의 가능 여부를 원장님 포함 여러 유력자들과 상의하느라 존재감이 옅어진 블런델조차 이런 말을 했다.
뭐…….
중년의 위기가 찾아오기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아도, 시대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
어마어마한 사람들조차 40, 50에도 픽픽 쓰러지는 세상에서 블런델은 30대를 넘겼으니 훌륭한 중년이라 할 수 있겠다.
“군인이요? 군의관?”
“아니. 진짜 군인. 내 이래 봬도 꽤 힘이 세다네.”
갑자기 안쓰럽단 생각이 들어서 그럭저럭 받아 주기로 했다.
더욱이 이 김태평, 당당한 대한민국의 건아로서 공군 군의관 대위로 3년 2개월 동안 복무를 마친 바 있다.
그냥저냥 한 군의관도 아니었다.
1년 차는 진주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그 해 입소하는 모든 공군 훈련병의 비전투 손실을 책임졌다.
자리만 지킨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표창도 받았다.
‘청주에 가서는 비행 군의관이 됐지.’
비행 청소년 같은 개념의 비행이 아니다.
여기서는 ‘날 비(飛)’ 자를 쓴다.
실제로 난다는 얘기다.
파일럿처럼 중력 6배를 견디는 훈련을 통과해야 하고, 그 외에도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착각을 견뎌야 한다.
“내 말 듣고 있나? 내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알아주는 대장이었다고.”
“하하, 네. 대단하군요.”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실제로 3년 넘게, 무려 대위로 복무했던 내게는 군대의 ‘ㄱ’ 자에도 가까이 가 보지 못했던 블런델의 이 주절거림이 그저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하하.”
물론 나보다 더 귀엽게 보는 이도 있었다.
군 경력만 따지고 보면 블런델이랑 마찬가지였다.
아편 전쟁 종군을 군 경력으로 쳐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거기서 한 건 전쟁이 아니라 구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비웃기가 어려웠다.
“난 왕이 되고 싶었지.”
염연히 존재하는 왕께서 직접 찾아오는 자리에 칼 차고 저딴 소리를 하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너무 현실감이 있었다.
이 인간은…….
실제로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것을 힘으로 할 수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형은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역적모의로 끌려가요. 너무 그럴싸하잖아.”
“아니, 뭐…… 한 200, 300년 전에 태어났으면 해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지금은요?”
“지금은…… 어렵지. 아무래도 탕탕 쏘면 죽을 수 있으니.”
“죽긴 죽죠?”
“안 맞아 봤는데, 맞으면 죽지 않겠나. 나라고 별수 있겠어?”
뭐, 리스턴 덕분에 블런델이 입을 다문 것은 다행이었다.
귀엽게 봐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거든.
그렇게 좀 더 시간을 죽이고 있다 보니 드디어 멀리서부터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아직 자동차가 없는 시절인 데다가 아스팔트도 없는 시절이다 보니 이렇게 누군가의 접근을 알 수 있었다.
“꽤 화려하게 행차하시는데?”
“그러게요. 이거나 대머리나 저는 그게 그거 같은데.”
“자꾸 대머리 보고 뭐라 하지 말게.”
“아. 형님은 근데 잘 어울립니다. 두상이 매끈해서.”
“칼 뽑고 싶게 만들지 말게. 이 칼로는 치료만 하고 싶어.”
“넵.”
무서워서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생각은 같았다.
아니…….
대머리나 정력 때문에 고환 갈아 만든 액 맞는 거나 그게 그거 아닌가?
오히려 대머리 치료는 자기 걸로 어떻게든 해서 심은 것이니만큼 훨씬 나은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마차가…….”
“6개…….”
“설마 더미가 있을까요?”
“아니, 그럴 게 있나. 여긴 영국이야. 적진이 아닐세. 애초에 지금 우리랑 전쟁 중인 나라가 있나.”
이 벅벅 갈고 있을 나라는 많겠지만, 그 얘기를 굳이 꺼내진 않았다.
막말로 영국에 원한이 있는 나라 대부분은…… 아쉽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기술도 부족할뿐더러 설령 기술이 있다 한들 고기밥이 될 터였다.
대영제국 해군의 위력은 정말 미쳤거든.
아직 우리가 해상전 하면 떠올리는 철갑선, 그러니까 보다 현대적인 군함은 없지만, 전열함만 해도 말이 안 된다 그냥.
증기선으로 분류되는 철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저게 다 다른 유력인사들……?”
“잘 보면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네.”
“그게 보여요?”
“안 보이나? 눈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이런 말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실제로 대꾸할 가치가 없을뿐더러 리스턴이야말로 성질 급한 사람이다 보니 조금만 조용히 있어도 입을 놀리기 때문이었다.
“제이미 경에…… 대미언 경도 오고, 수상님도 오시는군. 폴 카펠 백작에…….”
“아이고.”
아예 대영제국의 수뇌부가 다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이 미친 작자들.
여기까지만 해도 더 이상 놀랄 것이 없을 거 같았는데, 리스턴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응? 저 마지막에 있는 마차는……?”
“왜요? 나 아는 사람이에요?”
궁금증이 크게 일어서 지켜보니 리스턴의 표정이 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서 물어보니 더더욱 묘해졌다.
“아는 사람이네. 그것도 아주 잘.”
“누군데요?”
“케임브리지 공작 전하.”
“케임브리지 공작……?”
케임브리지……?
어디서 들어 봤다.
그것도 꽤 많이 들어 봤는데…….
“설마…… 아돌푸스 프레더릭 왕자 전하?”
“그렇지. 왕자가 아니라 공작이지만.”
아니, 이 양반은 머리 심는 걸로 자기 왕국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비우고 여길 온단 말인가.
미친놈인가?
‘미친놈은 맞지.’
그렇게 지체 높은 사람이 머리 하나 심겠다고 그 당시 나에게 온 것만 봐도 미친놈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왕 주치의도 하고 경 소리도 듣게 됐으니 나에게는 은인이긴 한데…….
그런 사람이 여길 오고 있으니 마음이 참 착잡해진다.
“왕께서 내리십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네.”
“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었다.
미리 천을 바닥에 대 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 비싼 옷이 또 엉망이 될 뻔했다.
빨래하면 되지 않냐는 소리는 집어치우기 바란다.
그렇게 좋은 세제가 있으면 나부터 팔았으니까.
“오, 자네들.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전하.”
“이쪽은 알지? 제이미 경, 대미언 경, 폴 카펠 경 그리고…… 내 친애하는 아우일세.”
“네, 오랜만입니다, 전하.”
“하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네.”
인사를 축약하고 또 축약한 게 이 정도다.
원래 높으신 분들 모이면 소리가 길어지기에 그랬다.
이 시절이야 달리 할 만한 것들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부 인사가 고상한 티타임으로 이어졌다가 저녁까지 먹고 다음 날 조식하다가 헤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기준 자체는 음식으로 잡혀 있지만 이곳이 영국이다 보니 ‘영국 음식’이 나오지 않겠나?
당연히 주가 되는 것은 수다였다.
“실험 결과 보셔야죠?”
“그렇지.”
“가세.”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다들 수다 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실험 결과다.
다 늙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심장 뛰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늙었으니까 이 실험에 이토록 가슴 뛰는 것이긴 하겠지만…….
“왜 이렇게 수가 줄었지?”
“죽어서요.”
“죽어……? 하긴 원래 죄수들은 죽지.”
“아뇨. 여긴 보시면 아시겠지만 따뜻하고 밥도 잘 줍니다. 무엇보다 우리 조지프 군이 청소 감독을 하고 있는 만큼 켄싱턴 저택들보다도 더 깨끗하죠.”
“하하.”
내 말에 조지프가 얼굴을 붉혔다.
아닌 게 아니라 수용소 내부는 먼지 한 톨 없었다.
공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감자들 또한 수염도 깎여 있었고, 수염도 깎여 있었다.
이는 누렜지만 그건 아직 조지프의 소독 영역에 구강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것만 해도 상당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긴 하군.”
“이렇게까지 할 게 있나?”
“실험실은 원래 우리가 의도한 것 말고는 영향을 미칠 것이 없도록 해야 하죠.”
“아하…… 근데도 죽었다?”
“네. 심장마비로요.”
두 배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겁주기 충분할 만큼 결과가 뜨는 데에 걸린 시간은 무려 두 달이었다.
말이 두 달이지 두 달이면 치과 실험도 하고 생리대 실험도 했을 시간인데…….
내가 머리도 복잡하고 죄수들 수급도 좀 빡세서 이것만 했다.
물론 이렇게 보니까 오래 걸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 실제로 두 달은 짧은 시간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특히 어떤 의학적인 실험을 하는 데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놀랐지.’
단 두 달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만큼 짧은 시간 만에 죽은 죄수들의 심장은 꽤나 비대해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립선도 거대해져 있었다.
죽기 전에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게 그들입니다.”
난 일행을 끌고서 일단 수용소의 한 방으로 향했다.
얼핏 보면 빈방이지만, 제일 중요한 방이라 할 수 있었다.
온 벽면에 장식장이 놓여 있었고, 그 장식장에는 포르말린에 담긴 장기들이 있었다.
“그들?”
“그들의 심장과 전립선입니다. 해부해서 여기에 놨죠.”
“어…….”
의학을 좀 아는 사람이 봤다면 기함했을 광경이었다.
일반 심장에 비해 거의 2배가량 큰 심장도 있었으니까.
전립선도 그랬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그저 정력에나 관심이 있을 뿐 의학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었다.
“이게 일반인의 심장과 전립선입니다.”
그럴 줄 알고 일반인의 것도 가져왔다.
아, 죽인 건 아니고 죽은 사람의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이 사람들 것은 왜 이렇게 큰가?”
“고환…… 이제 우리는 그걸 테스토스테론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그거 때문입니다.”
“근데 심장은 크면 클수록 좋은 거 아니겠나?”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죠. 스노!”
“네!”
거기에 더해 실험 장치도 준비했다.
설득 준비는 끝났다.
대신 정력 증진에 진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권할 생각이다.
아니, 말이 잘못 나왔다.
내게는 돈이 되고, 이들에게도 딱히 해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을 권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