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7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76화(376/505)
376화 쇼닥 [1]
어디서 들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어디 유명한 방송국일 로고 송일 터였다.
왜 티브이도 잘 보지도 않던 내가 이런 걸 떠올리느냐.
지금 방 안으로 제자들이 옮기고 있는 실험대 덕분일 터였다.
“오…… 이건……?”
“저희 연구실에 특별히 의뢰해서 만든 거죠.”
원래 별 의미 없는 거 막 보여 주면서 역시나 별 의미 없는 거 팔아먹고 그러지 않나.
시청률이 엄청 잘 나오는 것도 아닌데 대체 저런 걸 왜 하나 했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까 광고비가 장난이 아니게 들어온다고 하더라.
의사?
의사는 거기서 직접 뭐가 있진 않은데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은 티브이 나온 의사에 대한 신뢰가 있다 보니 병원이 잘된다고 했다.
뭐 방송 몇 번 나간 적 있는 친구들 보면 요새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거 같긴 했지만, 아무튼, 이번 실험대는 대단했다.
“으음…… 신기하게 생겼군. 이게 뭔가?”
“이게 심장 대용이죠.”
19세기 기준으로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놓고 봐도 그럴싸했다.
실험이라고 하기는 좀 모자랄지언정 방송국에서 매주 내놓고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이건……?”
“이게 이제 우리 사람 몸에 있는 혈관입니다. 그걸 유리관으로 대신한 것이죠.”
“그렇구만.”
왕께서는 ‘그렇구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리 봐도 정말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다.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지금껏 모시면서 겪은 바에 따르면 그리 영민한 분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나보다 못한 분을 모시고 있다, 이 말인데…….
사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심지어 21세기에도 그런 일이 지금보다야 덜하겠지만 있긴 하지 않던가.
수저 물고 태어나는 사람을 어찌…….
“우리 심장이 펌프라면 혈관은 이 수도처럼 온몸에 퍼져 있어 피를 모든 장기에 보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당연히 우리 몸의 혈관은 이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간단하게 만든 게 이 정도라니, 과연 주님께서는 대단하시군.”
“네, 그렇죠. 말 나온 김에 기도 한번 하고 실험에 들어가죠.”
“그러지. 내가 하겠네.”
“네.”
당연한 말이겠지만 대영제국의 국왕은 21세기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랑은 좀 다르다.
물론 명예혁명 때 막강한 권력이 좀 인수 분해 당하긴 했지만, 아직은 완전히 왕권이 다 날라간 게 아닌 데다가 국민들부터가 우리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왕의 손이다.
주님께서 직접 이 나라를 통치할 권한을 주신 것이 바로 이 윌리엄 4세 아니겠나?
그렇다 보니 왕의 손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신의 대리인의 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핵 환자들을 비롯한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왕에게 가서 안수 기도 받는 것을 최고의 치료라 여기고 있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주여,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의 종들이 모였습니다. 우리에게 보다 나은 건강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대영제국과 주님께 더더욱 커다란 영광 돌릴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왕에게 있어 기도란 일종의 업이다, 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되게 길었다.
지금 내가 전하는 건 정말……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 그래도 될 거 같다.
어차피 하고자 하는 말은 ‘이번 실험 잘 되어 우리 정력 세지게 해 주세요’니까.
지금 말도 그렇지 않은가.
왕과 공작 전하 그리고 백작님의 정력이 강해지는 것과 대영제국의 영광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주님의 영광과는…… 더 모르겠고.
“자, 그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게.”
“저도 시연하는 건 처음이라 떨리는군요.”
내 천연덕스러운 말에 제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 결괏값이 아예 내가 원하는 값으로 나오도록 몇 번 고무풍선의 굵기를 조절하기까지 했다.
21세기였다면 이런 거 걸리게 되면 바로 학계에서 매장되고 하겠지만…….
19세기 런던은 심지어 살인을 의뢰해서 시신을 생산한 후 해부를 진행했던 교수가 아직도 학회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보니 마음에 가책 따위는 전혀 없었다.
물론 우리 연약한 제자들은 왕께 거짓을 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콩닥거리는 모양인데, 이 김태평은 수시로 주님도 이용해 먹는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태연하게 고무에 붉은 물감, 즉 수은을 탄 물을 풍선에 부어다가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엔 가장 작은 풍선이었다.
주우욱.
당연하게도 풍선은 그 자체의 탄성력만으로 수도에 물을 뚝 쏠 수 있었다.
순환까지 하게 만들면 진짜 멋지겠지만 그럴 재주는 내가 없어서 그냥 일방향이었다.
그러나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게끔 만들어 놨기 때문에 양동이가 구비된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의 양은 그리 많진 않았다.
“아무래도 작으니까 안 되는구만그래.”
“하하…… 이제 이걸로 갑니다.”
나는 왕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보다 두꺼운 풍선을 준비했다.
여기에 물의 양을 더 많이 넣게 되면 사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사람의 혈액량은 정해져 있다.
거기서 더 많아지면 혈압이 더 올라가면서 진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을 하는 건 내게도 좀 어려운 일일뿐더러 이들을 이해시킬 만큼 유려한 설명을 해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장난질을 했다.
같은 양의 물을 부었다, 이 말이다.
“으음?”
당연히 풍선의 압력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었고, 양동이로 떨어지는 물의 양은 더더욱 줄어 버렸다.
왕을 비롯한 우리 높으신 양반들은 예상했던 바와 너무나 다른 결과에 의문을 표했다.
근육이 크면 힘이 더 강해진다는 것은, 놀랍게도 19세기 때도 상식이라 그랬다.
“이게 왜……?”
“심장이 하는 일 때문인데…… 일단 이것도 보시죠.”
“으음.”
마지막 풍선은 정말 두꺼운 녀석이었다.
여기에 같은 양의 물을 붓고 그 힘으로 뭐가 되길 바라는 건 솔직히 말해서 사기꾼이나 할 만한 발상이었다.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얇은 녀석으로 진행했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좀 임팩트가 적은 거 같아서 이걸로 바꾸었다.
“아니…….”
그렇다 보니 아예 양동이로 떨어지는 물이 없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반도 못 갔다.
심부전증을 이렇게 무섭게 보여 주는 실험도 없긴 할 거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심장과 순환기계의 메커니즘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뭐 알게 뭐란 말인가.
내 은사님이랑도 여러 차례 얘기 나눴던 적이 있는데, 환자에게 자신의 상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면 과감한 생략이나 왜곡도 감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는 좀 내 편의에 의해서 이렇게 된 거긴 하지만, 아무튼.
“심장이 두꺼워지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몸의 다른 근육들은…… 특히 사지의 근육은 기능이 간단합니다. 굽히거나, 피거나. 보십쇼.”
“으음…… 확실히.”
근육의 이름을 잘 살펴보면 뭔 굽힘근, 뭔 폄근이라고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회전근이나 기타 다른 근육들도 있기야 하지만, 그거까지 말하면 머리에 과부하들이 올 거다.
“그에 반해 심장은 쥐어짜는 형태의 근육입니다. 근데 이것이 두꺼워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음.”
봐라.
지금도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혈액의 양이 줄어요. 이렇게까지 두꺼워지면 더더욱 극단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혈액의 양이 줄죠. 그럼 아무리 세게 짜도…….”
“안 가는구나…… 허. 그럼 근육이 크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 테스토르테론을 맞게 되면, 왕께서도 그러하셨듯이 다른 곳의 근육도 두꺼워 집니다. 그 근육은 당연히 피를 필요로 하겠죠? 필요량은 올라가는데 보낼 수 있는 혈액량은 줄어들었으니…… 어찌 되겠습니까?”
“으음.”
어떻게 하면 지금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꽤 온유한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진짜 하마터면 화낼 뻔했다.
하지만 국왕 앞에서는, 심지어 다른 유력자들도 있는 곳에서는 나 아니라 리스턴도 분노 조절 잘해가 될 수밖에 없다.
“굶어 죽게 됩니다. 조직들이. 근육은 그래도 버티겠지만…… 이 안에 있는 다른 장기들까지 굶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숱한 심장과 전립선의 주인들처럼 사망하게 되는 것이죠.”
“허…… 나는 괜찮은 건가?”
불안해하는 국왕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장 피에르를 돌아보게 되었다.
저 도둑놈이 감히 국왕 폐하에게 바칠 갈아 만든 액을 나눠 맞은 덕에 국왕은 오히려 살아남은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냥 나눠 맞기만 한 게 아니라 고가의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으음.”
“흐음.”
내 눈길이 닿자 제이미가 고개를 돌렸다.
대미언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고환 자른 자와 그의 절친은 사이좋게 국왕 폐하의 고환을 훔쳐 맞았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제이미 경만은 당당할 수 있지.’
고환 자른 자는 고환이 없지 않나.
그 말은 곧 남성 호르몬이 없다는 말이다.
대체 요법의 적응증이 되는 사람이다, 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내가 여기서 하는 게 내게 도움이 되겠나?
사회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반드시 가려 해야 하는 법이다.
옳은 말이라고 해서 함부로 했다가는 곤란하게 된다, 이 말이다.
“괜찮으십니다. 장 피에르가 좀 불안했는지 이 양을 다 찌르지 않아서요.”
“오, 그렇군. 하긴 소불알에 비해 액이 좀 적다 싶긴 했네.”
“네, 그것이 천운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끊으시면 훨씬 나을 겁니다.”
“그렇군…… 그래도 아쉬운데…….”
“걱정 마십쇼. 제게 방법이 다 있으니. 아무튼, 이제 다음 방으로 가시죠.”
그렇게 나는 장 피에르를 비롯한 여러 명의 목숨을 부지 시켜 준 후, 죄수들이 모인 방으로 이동했다.
이 시기 죄수라고 하면 더럽고 냄새나는 인간의 군상과 같은 말이겠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우리 조지프 덕이다.
“다들 깨끗하군?”
“소독했죠.”
물론 자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딱히 인도적인 방법으로 닦은 것도 아니다 보니 다들 표정이 좋진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변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실 수술을 해 줘야 했는데 왕께 보여야 해서 미루고 미룬 거다.
보통 그럼 죽겠지만, 우리에게는 앨프리드가 있다.
“앨프리드?”
“하.”
“하?”
“아닙니다.”
그는 체념한 얼굴로 가서, 뜬금없이 놓여 있던 빈 탁자 위로 죄수 하나를 눕혔다.
보통 이렇게 하면 다들 싫어해야겠지만 이미 몇 번이나 소변줄로 소변을 빼 본 경험이 있는 죄수들은 하나같이 반길 뿐이었다.
마치 고문을 즐기는 듯한 기이한 광경 속에서 왕과 다른 이들은 하나같이 할 말을 잃었다.
“전립선 때문에 수술을 받아 보신 분들이 있으실 텐데, 이걸 너무 맞으면 전립선이 더 커집니다. 고환을 제거하면 나아지는 것처럼 그 내용물을 맞게 되면 더 심해지는 것이죠. 보십쇼.”
나는 그 앞에 서서 앨프리드가 줄을 꼽자 콸콸 쏟아지기 시작한 소변 줄기를 가리켰다.
양동이를 꽤 커다란 놈으로 갖다 놨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줄기가 세찬지 이리저리 튀는 양이 많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