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7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79화(379/505)
379화 쇼닥 [4]
내가 만든 탕약의 재료란 다음과 같다.
일단 복분자.
요강 뒤집어엎는다는 요상한 이름을 지닌 이 열매가 여기도 있더라고.
물론 조선에 있는 복분자, 그러니까 내가 아는 복분자랑은 모양이 좀 많이 달라서 그냥 산딸기 같긴 한데…….
‘어차피 성분이 중요한 건 아니야.’
이게 뭔 쓰레기 같은 생각인가 싶을 텐데, 내게는 계획이 있다.
기X충의 장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계획이다.
“자 보십시오.”
나는 탕기에 복분자를 비롯해 업턴에 있을 적 주변에 널려 있던 허브들을 따다 넣었다.
뭐 어차피 이 양반들이 뭘 넣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내 태도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이들, 즉 갱단의 부하들이나 제자들을 시켜 부리나케 따온 허브를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탕약에 넣고 있었다.
그것도 대충대충 잘라 넣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라도 있는 듯이 일일이 개량을 해 가면서였다.
“후…….”
일부러 탕기 가까이에 서 있기도 했거니와 옷도 두껍게 입었기 때문에 땀이 줄줄 났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볼 때는 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이고 있구나 싶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주술을 걸고 있는 거 같군그래.”
“그래, 저 티에피영이…… 나는 수술할 때도 저렇게 고생하는 걸 본 적이 없네.”
내가 주술을 거느라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노파심에 미리 말해 두는데, 부작용이 아니라 내가 의도한 거다.
사실 맨 앞에 윌리엄 4세 전하와 스스로 고환 자른 공작과 그걸 보고도 주사를 맞으려 한 대미언과 바다 건너 여기까지 온 케임브리지 공작 전하를 앉혀 둔 것도 단순히 지위 고하에 따라서는 아니다.
이 양반들이야말로 미신 그 자체라서 그렇다.
“두 분 말씀하시는 걸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군요.”
“확실히…… 흐음. 그럼 저건 엄청 비싸겠군요…….”
저들의 말이 뒤로 번지고 있다.
후후.
그럼 여기서 끝이냐?
아니다.
화룡점정을 찍어야 한다.
“후우우…….”
나는 남은 두 개의 핵심 재료 중 하나를 들어 올렸다.
바로 홍삼이다.
색부터가 시꺼먼 것이 뭔가 영험해 보이지 않은가.
거기에 생긴 것도 사람 비슷하게 생긴 것이 효과가 없으면 주님을 원망해도 될 거 같이 생겼다.
심지어 이 안에 든 사포닌은 21세기에서도 효능이 입증된 물질이다.
뭐……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얻으려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양을 먹어야 할 테고 그렇게 먹다간 오히려 부작용에 죽겠지만.
첨벙.
나는 지금까지 지었던 표정 중에 제일 심각한 표정으로 홍삼을 넣었다.
머릿속으로 잠시 안 좋은 생각을 했지만 잊기로 했다.
실제로 우리 병원 이비인후과에서도 홍삼이랑 양파 우린 물로 코 세척액을 만들려고 했었거든.
담당했다는 교수님이 교수 마인드보다는 좀 개원의 마인드시긴 했지만, 설마하니 국내 최고의 병원 교수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짓을 했을 거 같진 않다.
‘후우.’
마지막으로 남은 건,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재료였다.
솔직히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아예 모르는 재료였음에도 그렇다.
‘설마하니 진짜로 사람들을 데리고 있을 줄은 몰랐지.’
조선 덕후 리스턴 집은 이제 빈말로도 좁다고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켄싱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좋은 위치에 저택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조선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감금되어 있었던 건 아니고, 상당히 잘 대우 받고 있었더랬다.
애초에 신부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갔다가 리스턴의 명을 받은 군인의 꾐에 넘어가 너무 멀지만 그래도 더 제대로 신학을 배울 수 있다는 일념하에 오신 분이니 독실한 신앙인인 리스턴으로서는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을 거다.
-조선에 있을 땐 훈장이었죠. 아…… 뭐, 간혹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치료도 해 주었습니다.
그는 조선에서도 지식인이었더랬다.
해서 탕약의 색을 내는 것을 물었을 때도 막힘 없이 답을 해 줄 수 있었다.
그게 영국에도 있냐고 했더니, 놀랍게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약다운 약이 없는 시대 아닌가.
물론 너무 아프면 아편도 도움이 되고 모르핀도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호흡이 억제되어 그 자리에서 가기 일쑤인 데다가, 그렇게 되진 않더라도 남은 평생 그 약 없이는 못 살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뭐 남은 평생이 그리 길지 않게 된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테고.
‘청에서 이런저런 약재를 많이 수입해 오고 있다지.’
그렇다 보니 그게 어디건 간에 약재라고 하면 사 오는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우리 앵글로·색슨족 특유의 오만함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현지인에게 약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묻는 일은 없어서 거의 재고로 남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남아 있던 지황이라는 약재를 싹쓸이했다.
-이걸 넣고 끓이면 탕약이 아주 시커멓게 변합니다.
장차 선교사가 되실 분의 말씀이었으니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 보니까 과연 그렇게 되었더랬다.
“후…….”
이번에도 역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분자와 허브 때문에 차의 빛을 띠다가 홍삼이 들어가자 홍차 느낌이 나던 탕약은 이제야 비로소 내가 아는 그 시커먼 국물로 화하고 있었다.
나는 폴폴 검은 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탕약을 흰 천으로 덮은 후, 몸을 일으켰다.
“와아아아아!”
일종의 공연이었기 때문일까?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었다.
아마 저것만 먹으면 ‘나도 다시 한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탕약이 완전히 우러나올 때까지 정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읊었다.
금연해야 한다, 술도 줄여야 한다, 앉았다 일어나기 즉 스쿼트를 해야 한다, 당뇨 조절을 해야 한다 등등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였는데 당연하게도 청중들은 그러한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탕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괜찮다.
나중에라도 입을 털 기회가 있을 테니.
그냥저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숫제 예언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끓인 탕약을 살짝 식힌 후 왕께 먹였다.
“허어…….”
“어떻습니까, 폐하.”
“힘이…… 힘이 나는 것 같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절대 그를 비웃지 않았다.
사람이란 생각보다도 더 강하게 정신의 지배를 받는 존재 아닌가.
이렇게 판 깔아 놓고, 속 따땃해지는 국물을 먹이는데 그 맛이 도무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그 대가로 인해 반드시 몸이 좋아지기는 하겠구나 하는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은 거의 맹탕이랍니다, 전하.’
내가 아무리 21세기 현대 의학의 세례를 받은 몸이라고 해도, 허브의 효능을 완전히 다 부정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약으로 쓰일 만한 것도 있다.
그 말은 곧 부작용도 심상치 않게 있다는 말이다.
그걸 우리 국왕에게 먹이는데 과용량을 쓸 수가 있겠나?
‘아까 잘라 놓은 거, 다른 그릇에 들어가 있습죠.’
그렇다 보니 이 탕약은 색만 이렇지 거의 뭐가 없는 거다.
“허어…… 오늘 밤은 길 거 같구만그래!”
그걸 먹고 우리 국왕께서는 체통을 내려놓은 채 이러고 있다.
문제는 우리 영국의 귀하신 분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책망하기는커녕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애초에 그럴 만한 사람들만 불러 모으긴 했더랬다.
누가 봐도 깐깐해 보이는 사람들은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단 말이다.
“폐하, 감축드립니다.”
“허어, 정말 부럽습니다.”
“그래서, 닥터 피영신! 이건 언제부터 시판이 되나!”
그렇다 보니 정말이지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다.
내가 정말 자제해서 쓰는 거고, 실제로는 난리도 아니다.
막 어?
박수 치고…… 환호성 지르고 휘파람 불고 막…….
“그게 말일세.”
그러니 어찌 되었겠나.
대박이 났다, 이 말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당뇨보다도 더한 대박이 났다.
막말로 이건 진단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막 주면 되지 않나.
여기까지 와서 이 탕약을 이 가격 주고 사 먹는 사람이 설마하니 정력이 좋겠나?
다 안 되니까, 절박하니까 와서 먹는 거다.
무엇보다 당뇨 치료처럼 최소한의 시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켜볼 필요도 없이 약만 팔면 되는 것이다 보니 인력만 갈면 약이 나왔다.
그 말은 곧 돈이 나온다, 이 말이다.
‘이거 뭐…… 굳이 미국 가서 그 지랄 안 했어도 되었을 거 같은데?’
쇼닥이 되겠단 마음을 거기서 먹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잘되리란 생각은 못 했다.
‘이래서 쇼닥을 했구나, 우리 선배님들이.’
욕을 좀 더 할 걸 그랬다.
나는 그냥 적당히 번 줄 알았지.
이렇게 잘 벌었으면, 어차피 뒤에서 하느라 들리지도 않았을 거 뒈지게 더 할 걸 그랬다.
“이걸 먹어도 그닥일세.”
아무튼, 너무 잘 벌면 당연하게도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하는 법이다.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이랄까.
나 같아도 그 돈을 내고, 이 맛대가리 없는 걸 먹었는데 효과가 없었다면 아무리 영국 놈들이라 해도 열이 나긴 할 거다.
“어디 보죠.”
물론 난 이미 생각이 다 있었다.
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 주게.”
“흐음…… 옳거니. 담배를 피우시는군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나!”
흠칫 놀라는 상대, 곧 의원님을 보며 나는 런던의 흡연율을 생각했다.
이 시기 영국 남성의 흡연율을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류층이다?
근데 담배를 안 피워?
이건 좀 모자란 놈이라고 봐도 될 지경이다.
게다가 우리가 아는 담배랑 지금 담배는 많이 달라서 피운다면 도무지 티를 안 낼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마치 청진기를 통해 그리고 다른 진찰을 통해 알아차린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하하…… 제 앞에서 의학적인 비밀을 간직하실 수 있을 줄 아셨습니까.”
“아, 하긴, 영국 최고의 명의 앞에서…….”
“아무튼, 이 담배가 말입니다. 탕약과 충돌합니다.”
“응?”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말이죠.”
“아…… 아니, 그럼?”
“아쉽지만 담배를 줄이시거나 끊으셔야 합니다.”
“허.”
나라 잃은 표정이 됐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담배 태우지?’ 했을 때 ‘아니요’ 하면 이 새끼 좀 남성성이 모자란다고 했다고 하는데, 이 시기 런던은 더해서 그렇다.
아, 저 양반이 갈 때가 됐구나. 다음엔 안 뽑아야지 할 정도다.
“그게 어려우시다면 이거라도 하시죠.”
“앉았다 일어나기? 이거 힘들던데…….”
“맨몸으로 했는데도 힘들면 안 됩니다. 이 탕약의 성분은 이 행동을 할 때만 소화가 된단 말입니다.”
“하아…….”
그렇기에 나도 빠져나갈 구멍을 주었다.
‘스쿼트…… 진짜 성기 자체의 문제로 발기가 안 되는 것만 제외하면 거의 다 해결할 수 있는 놈이지.’
어차피 당뇨와 같은 질환은 치료하고 있다.
그 치료가 정말 제대로 된 치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전보다는 나을 거다, 이 말이다.
애초에 심각한 상태로 가면 다시 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를 염려해야 하니 여기까지 왔다면 괜찮다고 보면 된다.
“여기. 이거 사서 가시죠.”
“이게…… 너무 무거운데?”
“그거 어깨에 이런 식으로 얹고 하루 세 번 30번씩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비로소 탕약이 완전히 소화가 될 겁니다. 그럼…….”
“그럼 나도 다시?”
“그렇죠.”
“알겠네. 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