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화(38/505)
38화 나 신문에 나왔다 [3]
“저 새끼…….”
“잘난 듯이 고개나 쳐들고…….”
누군가 선망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건, 또 누군가가 질투심 어린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망을 받으면서 질투심을 억누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신 아니겠나.
헌데 나는 신이기는커녕 노란 얼굴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
되겠냐?
그런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기에,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좋아. 이렇게 따라가 보게.”
“네.”
게다가 내 앞엔 더없이 든든한 로버트 리스턴이 있었다.
저따위 놈들이 아무리 까불어 봐야 눈 한번 부라리면 날려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 동맥이 이렇게 쭉 가는구나.”
“이렇게 온전한 건 처음 보네.”
또 조지프와 앨프리드 둘 다 내 곁을 지켜 주고 있었다.
이런 것이 인복일까?
전생에 쌓은 덕을 보는 걸까?
그런 건 모르겠는데, 하여간 운이 좋다, 이 말이었다.
“이 밑에. 이건 정맥이겠죠?”
물론 실력이 개쩔긴 했다.
잘난 척할 대상이 이들뿐이라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솔직히 이 정도면 어? 21세기에서도 충분히 먹힌다고.
“그렇네. 보이나? 더 두꺼운 거?”
“네.”
“이게 의문일세. 어떻게 동맥이 더 가늘 수 있을까.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곳인데 말이지.”
“아.”
머릿속으로 잠시 화려했던 내 전생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로버트 박사님이 순식간에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것도 모르는구나.’
동맥은 상대적으로 훨씬 두꺼웠다.
“두껍긴 하지만…… 압력에 의해서라도 늘어나야 정상 아니겠나?”
아, 이건 아는구나.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해부학은…… 그래, 굳이 따지자면 거시해부학이라고 해야 할까?
현미경을 동원해야 알 수 있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진짜로 아무도.
솔직히 말해 로버트 리스턴 박사의 위상은 21세기의 나와 비할 바는 아닌데도 그랬다.
“네, 뭔가…… 혈관벽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음, 그럴 테지. 확실히 자네는 머리가 좋아.”
교수는 내 말에 잠시 감탄을 하다가 이내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토론을 했으면 이젠 가르칠 시간이었다.
“하여간 차이가 있기는 할 텐데, 아직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네. 아무튼, 오히려 이렇게 늘어져 있는 혈관이 정맥이야. 지금까지는 몰랐어도 될걸세. 마취를 못 하는데 이렇게까지 혈관을 고려한 수술이 가능했겠나? 하지만 이젠 되지. 그러니 알아두게. 난 마취제가 없을 때도 구조는 알고 있었네.”
듣다 보니, 전에 없던 존경심이 조금 차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공부는 했구나.’
여러모로 부족한 시대이지 않나.
아니, 부족하다는 말로도 좀 모자랄 정도로 야만적인 시대였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 줄 만큼이나.
그럼에도 로버트 교수는 노력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보람이 차고 넘치게 해 주마.’
난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픈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형이라 부르라 했고 실제로 동생처럼 대하고 있긴 한데…….
이 인간은 웃는 얼굴도 무섭단 말이지.
게다가 지금은 냄새를 막을 요량으로 코를 막아 놔서 더 무서웠다.
솜이 무섭게 생긴 건 아니었다.
오히려 웃기게 생겼다.
솜을 양쪽 코에 박았는데 그게 무서우면 사람인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자. 그럼 밑으로 더 파 볼까.”
그렇게 참고 있으려니, 더 파 보라는 말이 나왔다.
정맥 말고 더 찾을 게 있는데도 그랬다.
‘신경은 안 찾냐…….’
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임상적으로 중요하지 않았을 테니.
아무리 혹시 모를 일에 대비했다고 해도, 이미 벌어진 일에 대응하는 것과 상상으로만 대응하는 건 아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래도 신경의 존재는 알고 있지. 모양도.’
놀랍게도 뇌나 척수의 생김새를 묘사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그 척수신경에서 뻗어 나오는 신경들이 어디로 어떻게 분포하고 어디를 지배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대강의 생김새는 알고 있었다.
뭔지도 모르면서 단지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탐구하며 진행된 학문이 해부학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인간이라는 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아직 해부학은 탐구의 영역에 남아 있을 뿐, 임상의학과의 접점은 얄팍하기 그지없었다.
양측이 완전히 결합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어쩌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어.’
물론,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역사’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얘기였다.
거기에 개인을 낑겨 넣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는지 대강이나마 예상이 갈 것이었다.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것이 순전히 우연은 아니지 않겠나.
어쩌면 지구가 아닌 다른 어딘가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런 생각을 요즘 들어 더 하게 되었다.
해서 난 대충 모르는 척, 갈라진 이두와 그 밑에 있는 상완근 사이를 벌렸다.
“여기요?”
“아니, 그 아래로.”
그러면서 또 하나 알았다.
이 인간들 아직 해부학적인 위치 확인도 안 된 상황이었다.
위, 아래.
이따위 말로 소통이 되겠나?
막말로 위가 천장 쪽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머리 쪽을 말하는 건지 정해 놓지도 않지 않았나.
‘하긴…… 여기 보면 시신들 자세도 제각각이긴 해.’
이제 와서 보니 진짜로 시신을 그냥 들고 와서 놓은 그대로 해부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끔찍해 보였구나.’
안 그래도 포르말린 처리를 안 해서 생생해 보이는데 자세까지 다르니, 진짜 시신들 사이에 놓인 느낌이지 않나.
정말이지 너무 뭐가 안 되어 있다 보니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지.’
허나 또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날 어필할 구석이 많다는 뜻 아니겠나?
‘일단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게 해 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품은 채 교수님을 돌아보았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 있을까 싶었다.
코에 솜 틀어막은 주제에 무섭다니.
하여간, 그 때문에 지금까지 불편함을 거의 겪지 못했을 터였다.
이런 얼굴을 보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배려심이 엄청 샘솟게 되거든.
“아래……요?”
멍청한 얼굴로, 정상적인 해부학에서는 보다 깊은 쪽, 그러니까 근육 아래쪽으로 칼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로버트 교수 아니, 형님은 콧김을 내뿜었다.
“아니, 그 아래 말고.”
“아. 여기?”
아직 때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 답답해하는 정도?
해서 나는 환자의 머리 쪽으로 칼을 가져갔다.
정상 해부학에서는 그쪽이 위였다.
“아니! 아래!”
“어…… 여기……?”
다음엔 내 배 쪽으로 움직였다.
엄밀히 따져 보면 이것도 아래가 되지 않나?
여하간에 어? 밖으로 내보내는 방향은 아니잖아.
물론 난 환자의 우측 팔 옆에 서 있었고, 정상 해부에서는 방금 내가 움직인 방향을 밖이라 칭했다.
배로 향하면 안, 그 반대로 향하면 밖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
원래는 한 번 더 답답하게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말이 아닌 무언가를 내뱉는 걸 보니, 이미 내 목숨이 경각에 달한 듯했다.
해서 눈치껏 움직여 주었다.
“여기……?”
“그래!”
“아, 근데…….”
“근데 뭐!”
물론 나는 이 인간의 화를 즉시 풀어 줄 만한 방법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뭐죠?”
나는 혈관 옆으로 지나는, 팽팽한 구조물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서 당겼다.
이게 신경인데, 우리 몸이 움직일 때 끊어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장력에 의해 눌려도 기능을 어지간하면 지킬 수 있게끔 탱탱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막 손으로 좀 당긴다고 해서 끊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단 얘기였다.
심지어 칼로 딱 자르려 해도 실력이 없으면 잘 안 잘릴 정도였다.
“아…… 그건 신경이야.”
“이게 신경이군요. 우리 몸을 움직이는 데 쓰이는 기관이죠?”
“그렇지. 어떤 원리로 그렇게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럼 정말 중요한 기관 아닐까요?”
“음.”
“마취를 하게 되면 절단술이 아니라 다른 수술이 될 수도 있으니…… 살려 두는 게 어떨까 싶은데…….”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 로버트를 살폈다.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눈치는 아까 충분히 봤다.
‘이 인간…… 분명히 수술의 진보를 꿈꾸고 있어.’
절단술의 대가이다 못해 거의 왕인 이 인간은 이제 다른 수술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마 아직 어떤 술식을 써야 할는지에 대한 감도 없긴 할 터였다.
생각 없이 병변이 생긴 부위를 잘라 내는 것과 딱 필요한 부분만 절제하거나 교정하는 건 얼핏 들어도 많이 다르지 않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렇군. 그렇겠어. 그래…… 신경 해부학은 이제 임상적으로도 꽤 중요하겠네.”
이전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혈관을 자르면 피가 나오지 않나.
그리고 피가 나오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 정도는 고대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에 비해, 신경은 잘려도 뭐 그냥 그랬다.
실제로 절단술에서 신경을 묶어 주는 건 취향의 영역이지, 의학의 영역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자네는 정말 세심하구만.”
“처음 해 보는 것이다 보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서요.”
“의사의 덕목일세. 앞으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테지.”
아무튼, 나는 로버트 교수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두에게 신경의 중요성을 각인하고 실습을 이어 나갔다.
무려 세 시간이 넘어가는 긴 실습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가 들이판 구간은 위팔 부근에 머물 뿐이었다.
사실 로버트나 다른 이들의 속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느렸다.
허나 그 누구도 불평을 늘어놓진 못했다.
“신경이 그렇게 복잡하게 분포해 있을 줄은 몰랐네.”
“작정하고 파다 보니 그렇던데…… 어떤 건 피부로 향하고 어떤 건 근육으로 향하더군요.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알 수 없지. 다만…… 괜히 그렇게 만들어 두진 않으셨을 걸세.”
오늘 이들은 위팔에 위치한 신경 도해를 거의 완성했다.
굳이 ‘거의’라는 말을 쓴 건, 나조차 손에 익지 않은 칼을 써서 다 확인하기엔 신경의 분포가 너무 복잡해서 그랬다.
세세한 것은 거의 다 잘려 나갔다고 봐도 좋았다.
그럼에도 19세기의 관점으로 보면 신기원이었다.
로버트는, 신실한 신자인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밤이었기에 내 눈엔 그저 새카만, 매연에 가린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허나 그는 그 너머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자네는 정말 신께서 보낸 선물이 아닌가 싶더군. 우리 피부는 움직이지 않으니…… 신경이 단순히 움직이는 데만 관여하는 건 아닐 거야. 원래도 잘 아는 기관은 아니었지만, 정말 미지의 기관이로구만그래. 그걸 고민한 자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아뇨, 전 뭐……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근데…… 집은 저쪽 아니십니까?”
“아, 기자 집에 가네.”
“네?”
기분도 좋아 보이는데 더 좋으려고 패러 가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어지는 말은 예상 밖에 있었다.
“신경 얘기도 실으라 할 작정이야. 자네는 그냥 닥터가 아니니. 천재임을 강조하라고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