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0)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0화(380/505)
380화 쇼닥 [5]
약이 잘 안 듣는 사람에게는 운동 처방을 내리고 있다.
근데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냥 운동하라고 하면 절대, 절대 듣지 않는다는 걸 지금까지 쌓인 경험을 통해 절실히 알게 되지 않았나.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이 김태평, 천재다.
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약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자세를 반복적으로 취해야 하는데, 이 봉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으면 더더욱 효율이 좋고요.
-오…….
해서 뭔가 기믹을 섞었다.
동양의 신비로움을 끼얹었다, 이 말이다.
물론 말이 동양인 것이지 지금 시대의 서양인들도 한 미신 하는 놈들이다.
맨날 기독교네 주님이네 하지만 알고 보면 미신과 주술의 자식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청교도인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간 이들조차 바다는 무서워서 그런가 뱃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부적들을 다 들고 갔다고 들었다.
그런 시절에 신비로운 색과 향을 지닌 탕약에, 소화시키기 위해 취해야만 하는 특별한 자세의 장양 강장법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미쳤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21세기 의사들은 참 나약한 존재들이다.
허구한 날 모여서 한다는 얘기가 환자들이 너무 말을 안 듣네 어쩌네, 생활 습관 개선은 허상이네 하는 한탄이지 않았나.
내가 21세기로 돌아간다면 진짜 다 어? 고쳐 줄 수 있을 거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시킨다는 건, 어떻게 봐도 힘든 일 아니겠나.
그걸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최고다, 이 말이다.
“제 말 듣고 있습니까?”
하지만 의학이란 사실상 통계에 기반한 학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자연 과학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겠나.
물론 뭐 양자 역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더 발전하고 하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말 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제 말…… 듣고 있느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치료를 제대로 해 준다고 한들 다 치료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서 당장이라도 바지를 내릴 듯한 기세로 울부짖고 있는 사내가 그렇다.
그냥 사내라고, 너무 먼 단어로 지칭하기엔 무리가 있는 사내이기도 하다.
지체가 꽤 높으신 양반이다.
폴 카펠.
예전에 장티푸스 보균자에게 죽을 뻔한 걸 살려 드린 분이다.
무려 백작인데, 공작에 비하면 좀 밀리지만 이미 영국은 신분제에 더해 자본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시기 아닌가.
애초에 나나 앨프리드나 콜린네 집안이나 다 제대로 된 귀족 집안이 아닌데도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허어! 티에피영경! 자꾸 이러면 나 정말로…….”
“쉬잇. 말씀을 낮추십시오. 다 방법이 있습니다.”
하여간 우리 카펠 백작가는 무려 감자 산업의 대가다.
우리 21세기 분들이야 감자……?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거다.
나만 해도 감자라고 하면 김동인의 <감자>와 강원도만 떠오르긴 하는데…….
19세기 유럽의 감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식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 감자는 무려 구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자 마름병 같은 것이 돌게 되었을 때 거의 흑사병에 준하는 비극이 도래하는 거긴 한데…….
“저, 정말인가?”
하여간, 그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폴 카펠, 에식스 백작은 어마어마한 거물이라는 말이다.
이 양반이 없으면 런던 절반이 굶주리게 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실제로 우리 국왕께서도 살뜰히 신경을 쓰고 있다.
뭐 내가 윌리엄 4세를 좀 무시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영제국의 왕이지 않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꽤나 잘 챙기는 편이었다.
“그럼요.”
그 일환으로 했던 것이 소 고환 간 액을 공유한 것이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원래 선물이라는 건 받는 사람이 제일 원하는 것을 줘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지 않았나 싶다.
“자, 이걸 보십쇼.”
하여간, 나는 절규하는 백작님에게 카탈로그를 보여 주었다.
런던에서 꽤나 잘 나간다는 화가가 그린 그림인데, 위엄 있는 수소를 배경으로 해서 깔끔한 주사기에 담긴 액체가 그 주인공이었다.
옆에는 자그마한 글씨로 체중에 따라 맞아 볼 수 있는 용량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사실 발기부전이라는 게 운동한다고, 금연한다고 다 좋아지는 게 아니지 않나.
어떤 사람은 정말 약이 필요했다.
‘이것도 뭐…… 미봉책이거나 효과가 없을 수 있지.’
비아그라라는 전설의 약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삶의 한 축을 포기하고 살았나.
이는 비단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파트너에게도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나야 결혼을 안 해 봤지만, 주변에 결혼한 동기나 선배들 보면 생각보다 그게 결혼 생활에 꽤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더라고.
‘하지만 해 볼 수 있는 게 이거뿐이다.’
내가 권하는 이 약은 당연히 그런 약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긴 할 거다.
물론 위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험을 계속한 결과, 어느 정도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실험의 결과죠.”
“실험…… 아니, 그럼? 그 짓을 계속했다고?”
“부작용이 일어나는 용량을 확인했으니 좀 줄여 가면서 봤죠. 어차피 나쁜 놈들이야 넘쳐나는 곳이 이곳 런던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백작님은 자신이 먹여 살리는 이들 중 어느 정도는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인지하고 있는지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여기 죄수들도 어느 정도는 억울하긴 할 거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그렇게까지 나락에 빠지진 않았을 놈들이 더 많을 테니까.
이 19세기 런던의 잔악할 정도로 끔찍한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건 아니라는 걸 보면, 확실히…… 정상 참작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무작정 용서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나.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이렇게까지 그림을 그린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구만.”
“네. 물론 주사를 맞기 전에 몇 가지 검사를 해 보긴 해야 합니다.”
“그래그래. 다 해 보게…… 아니, 근데 많이 아픈가?”
“으음…… 아프진 않을 겁니다. 좀 불편한 정도죠.”
“그 정도면 내 감수하지.”
무엇보다 백작님은 다시 한번 강해질 수 있단 생각에 딱 그것만 보이는 상태였다.
남들이 어떻게 되건 말건 상관 안 하고 있었다.
검사한다는데도 신경 안 쓰는데 뭐 그런 것이 중요하겠나.
“그럼 일단 바지를 내리시죠.”
“응……?”
“제일 중요합니다. 이 검사 결과에 따라 맞으실 수 있는 용량이 정해집니다.”
“아…… 그,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지금도 봐라.
바지도 훌렁 내린다.
나는 장갑을 낀 채 백작님의 전립선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다행히 그렇게 크진 않았다.
‘원래도 남성 호르몬이 적었나. 아니면 리셉터가 적었나……?’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지만, 겉으로는 껄껄 웃었다.
“하하. 좋군요. 자 그럼 다음은 청진입니다.”
“그, 그래. 뭔가 많이 하니 신뢰가 가는군그래.”
다음은 심장이다.
호흡음도 아니고 심장 소리 듣는 건 내게도 썩 자신 있는 일은 아니긴 했다.
솔직히 말하면 호흡음도 듣기 어렵다.
21세기 의사가 뭐…… 언제 청진을 진지하게 해 보겠나.
그나마 호흡음을 어지간히 듣게 된 것은 대학병원에서 배워서가 아니라 군대를 가서 그렇다.
아무것도 없이, 제대로 된 간호사는커녕 보조 인력도 없이, 심지어 과도 상관없이 흩뿌린 채로 니들은 의사니까 지금부터 각종 훈련과 단체 생활로 인해 사회에서보다 훨씬 심각하게 다치고 아픈 아이들을 보라고 하는…….
19세기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20세기 초의 느낌으로 진료하게 되는 그곳에서 배웠다.
‘대학병원에서 날고 기던 애들이 돌팔이가 되는 기적의 공간이지.’
현대 의학은 방대하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너무나 방대해진 지 오래라 과를 마흔 개 넘게 나누는 거다.
그렇게 나눈 과가 끝이 아니라 거기서 또 분과 전문의로 나뉘기에 다 고려하면 100개가 뭔가, 훨씬 더 많아진다.
그러나 군대는 그걸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다 던지고 다 보라고 한다.
‘지금 가면 어느 부대에 던져도 명의 소리 들을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심장 소리를 들었다.
‘잘 모르겠네.’
들리긴 한다.
근데 이것만으로 심장 크기가 어떤지는 진짜 모르겠다.
누군가 짜잔 하고 초음파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아니, 엑스레이라도.
잠시 눈을 감고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혹시 몰라 상태창도 또 외쳤지만 역시나 없다.
하긴, 내 말발이나 의학 실력이 이미 상태창보다 더 뛰어난 수준이긴 하다.
“어, 어떤가?”
백작님은 어찌 되었건 눈도 감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날 보고 있으니 불안한지, 자꾸 물어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할까 하다가,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쌓인 내 명성에 누가 될 거 같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작다, 크다가 아니라 좋다고 했다.
그럼 거짓말은 아니지 않겠나.
지금 뛰잖아.
그럼 좋은 거지.
“다행이군!”
“네. 주사 치료를 해 보죠. 용량을 극도로 낮추었기 때문에 매일 맞아야 합니다.”
“아…… 매일?”
“네. 효과는 대략 2주 정도 뒤에 보실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만, 일단 약 먹고 소화시키는 자세는 꾸준히 해 보도록 하죠. 이 두 개는 같이해야 효과가 시너지가 나거든요.”
“그, 그렇구만. 그럼 그렇게 해야지.”
지금도 봐라.
우리…… 백작님 얼마나 기뻐해.
“2주. 2주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저 높으신 양반이 저토록 날뛰면서 뛰는 걸 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하하.”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지경이다.
절대 치료비로 받은 비용이 두둑해서 웃는 건 아니다.
“저기.”
그렇게 웃고 있으려니, 혁신의 아이콘 블런델이 다가왔다.
손에는 미국에서 들고 온 생리대가 들려 있었다.
“네, 교수님.”
“이것도 좀 어떻게 해 줄 수 있나. 분명히 도움이 될 텐데…… 아무도 안 쓰려고 해서 말일세.”
잘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당신은 대체 산부인과 교수라는 사람이 생리대 하나 못 팔아서 빌빌 싸고 있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거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병신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와서 생리에 대한 인식을 공부하다 보니 블런델이 왜 저렇게 어려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요. 생리를 저주받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게 저라고 해서…….”
“자네는 할 수 있네. 이번에도 보게나. 온 런던이 시끌시끌해지지 않았나. 당뇨 때는 치료가 비싸 받을 수 없는 서민들은 조용했는데 이번에는…… 난리도 아닐세. 어차피 그러나 먹을 게 없어서 흩어졌지만, 자네의 영업력을 좀…… 이번에도 활용해 주게나.”
나는 블런델의 칭송에 흡족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시기 생리에 대한 인식을 떠올리면서 얼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