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1)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1화(381/505)
381화 생리대 쓰면 얼마나 좋게요? [1]
피.
인류는 이 붉은 액체가 심장과 혈관을 통해 온몸을 순환하는 연료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도 상서롭게 생각했던 거 같다.
-생리는 부정한 것이오! 생리하는 여자도 부정하오! 이것이야말로 여자가 먼저 원죄를 저질렀다는 존재하는 증거인데, 어찌…… 어찌 티에피영 경께서는 그런 말을 하시오!
도와달라는 블런델의 말에 나는 또 내 구라 마스터로서의 위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그를 따라나섰다.
환자 설득하는 거, 내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것 중 하나였거든.
솔직히 외상외과라는 게…….
수술해도 죽고, 안 하면 반드시 죽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나 참 거칠거든.
소송도 자주 당하고…….
그런 곳에 있다 보면 좋건 싫건 화술이라는 게 늘 수밖에 없다.
-저기, 형님? 왜 주교님이……?
-생리대 판매를 반대하시거든.
-그러니까 왜……?
허나 종교인을 설득하는 건 평생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생리에 대해 저렇게 나올 줄은 정말로 몰랐다.
아니…….
부정하다고?
-자네…… 왜 어버버하다가 나와 버렸나.
-이번엔 무효입니다. 다음엔 제가 진짜 제대로 준비해서…….
-아니, 어차피 설득하길 바라는 건 아니야. 저분이 우리가 뭐라고 한다고 말을 바꾸겠나?
-그럼 왜 데려왔어요.
-저 사람 때문에 꺼림칙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니까. 지금이 뭐 미개했던 14, 15세기는 아니지 않나. 생리대 한다고 죽이진 않아. 하지만 안 살 수는 있지.
-아하.
그 논리는 진짜 처음 들어 봤다.
내가 아는 생리란…… 가임기 여성의 자궁내막은 주기적으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해 증식되어 배아의 착상을 준비하는데, 임신이 되지 않으면 자궁내막이 저절로 탈락되는 현상이기에 그랬다.
이건 그냥 생물학적인 현상이며 그 어디에도 가치 판단이 들어갈 데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이 만고불변의 진리에 나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몸이다.
게다가 나름 옛 서적들을 공부하다 보면 재미도 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알려지게 된 과정은 절대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거든.
‘아무튼, 이 상서로운 피가…… 몸에서 빠져나오면 죽는다는 것은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지.’
그래서 공부했더니 왜 주교님을 비롯해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도 대강은 알 거 같다.
요는 피 자체보다는 출혈에 있다.
피를 흘리면 죽는다는 건 말마따나 고대인 그러니까 원시인들도 알지 않았겠나.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니까.
그런데 여성은 어느 시점이 되면 출혈이 생긴다.
저절로 멎기도 하지만, 아무튼, 출혈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좀 부정적으로 여겨졌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주교의 반응은 좀 이상해.’
부정적인 것과 부정한 것은 좀 다르잖아.
해서 들여다보니 역시나 범인은 중세 기독교였다.
이 유럽의 치료법이 좀 이상하잖아?
물론 내가 역사 전문가는 아닌 만큼 다른 데서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러진 않았을 거 같다.
이건 아픈 것, 즉 고통이 어떤 범죄에 대한 벌이라는 중세 기독교의 인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딱 그렇다고 하는 건 지나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런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아픈 치료를 일반적으로 했을 리가 없어.
‘출혈은 아픈 거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니까…… 출혈이 있는 여성은 죄를 지은 거라고 봤을 거야.’
중세 기독교의 남존여비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었더랬다.
거기에 더해 이런 인식까지 있으면 이건 정말…….
그런 와중에 생리로 인한 불편을 해소해 주는 생리대를 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는데 그 벌을 자의로 이상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중세 유럽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붉은 치마가 많은데, 이는 생리대가 따로 없어 그 피 색깔이라도 가리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뭐 더 자세히 연구를 해 봐야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래 보인다.
“그런데 말이야. 생리 중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더 약한 것 같다네. 더 잘 아프다고 해야 하나……?”
여기까지는 내가 연구한 것이고, 지금은 런던 최고의 산부인과 명의 블런델과의 대화다.
혁신의 아이콘인 이자는 생리의 기전을 모르면서도 현상에 대한 관찰은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그래도 꽤나 그럴싸한 말을 했다.
“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입니다.”
“어어, 그래! 그거야. 그리고…… 이건 좀 이해가 안 가는데, 성격도 변하는 거 같네.”
뭐…….
인간은 호르몬에 의해 지배당하는 동물이지 않겠나.
당연히 그 성격이 변하는 것처럼도 보일 수 있었다.
그 정도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하지만 그건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다.
생리대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도 절대 아니고.
“또 뭐가 있던가요?”
“제일 심한 거야 뭐…… 감염이지. 생각해 보게나. 출혈이 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상처가 났다는 거 아닌가. 이전에는 몰랐지만, 자네 덕에 미아즈마의 존재가 규명이 되었으니 하는 말인데…… 상처가 있으면 아무래도 미아즈마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가기 쉽겠지.”
“허.”
“왜 그러나.”
“아니, 좀 놀랐어요. 역시 형님은 명의이십니다.”
“하하,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좀 놀랐다.
아직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즉 병원균이라는 말 대신 미아즈마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리긴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인식이지 않겠나.
상처가 있으면 감염에 취약할 수 있다는 발상이라니…….
이제 블런델은 참으로 19세기 의사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일기에 적어 놔야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진지하게 후대의 평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별 거리낌 없이 주술로 알 수 있다고 했다는 걸 집에 와서야 깨닫는 등…….
요즘 들어 뭔가 좀 이상해졌다.
점검해 보건대…….
아무리 봐도 역사는 내게 그리 호의적인 기록을 할 거 같지 않다.
그러나 그건 다 오해지 않은가.
난…… 참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진심을 전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생리혈이 흐르면 움직이는 게 얼마나 불편하겠나. 생각해 보게. 바지를 적시기만 해도 찝찝한데…….”
“그렇죠. 특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일세. 문제는 일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건데…… 그들이 싸게 이 물건을 사서 쓸 수 있으려면 지금처럼 깨작깨작 들여와서는 안 되네.”
“하지만 더 들여오려면 지금 상회에서 취급하는 것 이상으로 잘 팔려야 해요.”
“어려운 일이지. 목화…… 이거 어마어마한 물건 아닌가. 이거보다 잘…… 비싸게 어떻게 판단 말이야. 그리고 비싸게 팔면…….”
블런델은 착한 사람이다.
너무 진취적이다 보니 그 모습에 그의 성품이 가려질 때가 있을 뿐이다.
막말로 수혈하겠답시고 이 사람 저 사람 피 다 섞어서 넣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양수 터진 산모 음부를 만지는 등의 기행을 일삼으니 나빠 보일 뿐이지…….
사실은 좋은 사람이다.
지금도 돈 벌 생각보다는 일단 자기 환자들, 그러니까 이 런던을 온통 메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걱정만 하고 있지 않나.
‘주님. 당신의 선택은 탁월했군요.’
문제가 있다면, 이 양반의 머리로는 절대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내가 있다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일단 천을 고급으로 만들고, 모양을 그럴싸하게 해서 상류층부터 뚫죠. 그리고 비싸게 파는 겁니다.”
“내 환자들은?”
“그 사람들한테는 나중에 더 들여올 때 싸게 팔면 되죠.”
“재료가 같은데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재료 표시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나는 21세기 명품 산업을 떠올렸다.
프라다, 구찌, 샤넬, 에르메스 기타 등등.
솔직히 별 관심 없는 내가 볼 때는 다 거기서 거기다.
가죽이 다르다는데, 나는 일단 왜 가방을 가죽으로 들어야 하는지부터가 궁금했던 사람이다.
가죽은 무겁잖아.
노트북 넣고 다니려면 패브릭에 충전재 들어가 있는 게 짱이다.
‘하지만…… 메이커 효과는 어마어마하지.’
품질?
기능성?
회의적이다.
내가 나름 교수 임용이 되긴 했지 않나.
그때 동기들이 축하한다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외래에서 신으라고 명품 신발을 사 주었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한두 번 신고 신발장에 고이 모셨다.
너무 귀해서가 아니라 발이 아파서였다.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렸어.’
심지어 비싸면 비쌀수록 더 팔렸다.
“이거 어떻게 보입니까.”
“피영신.”
“그래요. Pyoung Shin. 지금 런던에서 제일 유명한…… 그리고 제일 뜻이 좋은 단어죠?”
“그렇지. 병 걸리면 일단 평신부터 찾는다니까.”
“상류층에 납품하는 물건에는 이걸 멋진 필기체로 자수를 놓죠. 비단실로. 우리 어차피 청나라 박살 내고 좀 싸게 들어오는 거 있잖아요.”
“어……? 근데 그건 생리대랑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는 일 아닌가.”
이것 봐라.
19세기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이렇게 기능성 제품에서 기능만 중요한 줄 알아.
“김태평이 만들고 보증한다는 뜻인데 어찌 중요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이 비단 자수는 평범한 사람은 감히 엄두도 안 날 만큼 비쌀 예정이란 말입니다.”
“그럼…… 그걸 사람들이 사겠나? 비싼데?”
“남들은 못 사게 한다고 하면 사죠.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이것도.”
“그 이름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아뇨, 아뇨. 그리고 생리대를 사용하면 어떻게 좋은지 설명하면 됩니다.”
“내가 생각해 본 건, 일단 위생과 감염 예방…… 생리 시에 활동에 편한 것 정도일세. 어…… 자네 뭐 쓰나. 아니…… 이게 다 뭔가.”
마케팅이라는 말.
나랑은 인연이 없던 단어라고 생각했다.
병원 의사가 뭐 그런 거랑 상관이 있겠나.
개원을 하면 이제 사업의 영역이니 또 모르겠지만.
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호구였다.
참 별의별 마케팅에 다 당했는데, 그게 다 쓸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생리대를 사면 이걸 드립니다.”
“이게 뭔데?”
“여성 건강에 좋은 약이죠.”
“그…… 그런 게 있나?”
“지금부터 만들 겁니다.”
“너……?”
“씁. 생리대 보급 안 할 겁니까? 여성들의 건강, 안 챙길 거예요?”
“아니…… 챙겨야지. 챙겨야 되는데…… 이게…… 이게 맞나?”
“맞습니다. 저에게는 보다 원대한 꿈이 있어요. 있어 봐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허.”
나는 그렇게 깽뚱한 얼굴이 된 블런델을 두고, 마케팅 플랜을 세우기 시작했다.
21세기 같으면 너튜브에도 광고 돌리고, 티브이도 돌리고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냥 불러다 강연하는 게 최고다.
무엇보다 19세기 런던 최고의 쇼닥 김태평이가 있으니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