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3화(383/505)
383화 생리대 쓰면 얼마나 좋게요? [3]
여성들을 위한 탕약은 사실 붉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장미도 넣고 해 봤는데 그래 봐야 향만 나지 색은 변하는 것이 없더라고.
뭐……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었다.
색은 남자들의 탕약처럼 검지만 향이 좋잖아?
이것저것 대강 넣어 봤는데 장미 향에 더해지면서 뭔가 세련된 향이 나는 탕약이 되었다.
나도 모르던 사실인데, 조향사의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어쩜…….”
“향이 정말 좋네.”
“건강에 참 좋겠어.”
“남편 말에 먹기엔 좀 쓰다고 하던데…….”
“그래서 안 먹는데?”
“아니, 효과가 좋잖아!”
게다가 플라세보 효과겠지만 미리 판 남성용 탕약의 효과를 본 사람들이 꽤 있다 보니 귀부인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비단으로 ‘P.S.’가 자수된 생리대와 더불어 여성용 탕약 또한 미친 듯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가격이 진짜 비싼데도 그랬다.
사실 생리대를 이렇게까지 비싸게 파는 건 양심에 찔리는 일이긴 했다.
‘이건 대한민국에서도 면세 상품이었지……?’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해 보이는 산업, 즉 출판이나 아주 필수적이라고 평가되는 물건, 즉 기저귀나 생리대 같은 것들에는 부가세를 면세해 주는 법이 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보니 당연히 그러한 국제 흐름을 따라 생리대를 면세 상품으로 해 주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라면 또 모르겠는데 아는 상태에서 이러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좀…….
“이렇게 팔리면…… 면화보다 훨씬 비싼 거지 않나.”
“그렇죠.”
“그럼 진짜로 다음번엔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겠는데? 그거 뭐 어차피 생산하는 데 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지천으로 깔린 거 주워 오면 되는 거잖아.”
“네, 그렇죠. 인건비가 좀 들기야 하겠지만.”
“인건비는 무슨. 막말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걸로 내 환자들도 저렴한 가격에 좋은 생리대를 쓸 수 있겠어. 하하. 고맙네, 평.”
“뭐……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이런 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블런델이 찾아와 내게 면죄부를 주었다.
주님의 사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무튼, 이런 생각도 들게 되었다.
‘내가…… 나야말로 19세기 홍길동 아닌가?’
21세기에는 제도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이루게 되었다.
소득세와 4대 보험료 그리고 상속세 등을 통해서 말이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 덕분에 어려운 사람들이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뭐…… 대한민국에서는 딱히 그런다고 감사해하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긴 하다.
대한민국은 너무 빠르게 발전한 나머지 성숙한 자본주의가 자리 잡지 못했고 졸부가 많아서, 존경할 만한 부자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인터넷 댓글을 통해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 부자들이 그래도 19세기 영국 부자들보다는 훨씬 낫다.
‘그런 인간들 돈을, 강제로도 아니고 이렇게 뜯어서 분배하는 건 정말 선한 일 아닐까?’
그래, 이건 선한 일이다.
선한 일이어야 하고.
그래야 내가 계속 달릴 수 있다.
아무튼, 진짜 잘 팔리기는 해서 곧 대량의 생리대를 만들어 팔 수 있었더랬다.
그렇게 팔다 보니 생리대가 왜 면세 대상품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막말로 귀부인들이야 이런 거 없어서 되는 사람들이지 않나.
뭐…… 좀 편해지긴 했을 거다.
그냥 천으로 대다가 진짜 흡수력도 좋고, 살균력도 있는 생리대를 댄 것이니.
하지만 아예 없이 살다가 댄 사람들은 차이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거 하니까 정말 살겠어요. 일단 쉬는 날이 줄어서…… 먹고 살기 나아졌습니다.”
제일 큰 건 이거다.
아무리 19세기 사람들이 강인하다고 해도, 피 흘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고된 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생리대를 한다고 해서 피가 안 나는 것도 아니고 덜 피곤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광고처럼 생리대를 차면 안 할 때보다 더 힘이 나는 건 아니라는 얘기.
그렇더라도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피로감은 확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냄새가 안 나니까…… 제가 다 속이 후련해요.”
거기에 더해 감염 예방 효과도 더 절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감염의 증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시기 사람들에게 제일 절실한 건 아마 냄새일 거다.
안 그래도 오만 악취가 풍기는 환경에 살고 있는데 몸에서까지 악취가 난다면 얼마나 힘들겠나.
뭐…… 생리대를 차면 피비린내도 훨씬 덜할 테니, 그것만으로도 이점이 있을 거다.
거기에 더해 감염으로 인한 역한 냄새까지 잡아 준다면?
“근데 이거 우리 애 기저귀로도 쓸 수 있을까요? 한번 써 보니까 좋던데…….”
거기에 더해 다른 용례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인디언들도 이 물건을 기저귀로도 쓰지 않았나.
뭐 대변을 보면 한 방에 버려야 되므로 낭비가 되기야 하겠지만…….
소변에는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이 지금 시점에는 아마 없을 거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평, 내가 지금껏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일세.”
블런델이 나를 찾아왔다.
생리대와 여성용 탕약이 불티나게 팔려서 더더욱 돈방석에 앉게 된지라 기분이 무척 좋은 마당이었던 나는 그를 좋게 응대했다.
무엇보다 감염 개념을 딱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블런델에 대한 내 평가가 확 올라간 덕도 있었다.
“자 보게나. 임산부 해부를 해 보면…… 태아가 양수에 둘러싸여 있지 않나?”
“그렇죠. 양수가 없으면 살…… 아니, 양수가 있죠.”
그 바람에 실수할 뻔하기도 했다.
약간 동료랑 얘기하는 느낌이 들어서 21세기 상식을 얘기할 뻔했다, 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뭉개고 지나가는 데 고수가 된 지 오래였고, 블런델을 비롯한 이들 또한 그러한 내게 익숙해진 지 오래다 보니 별문제는 없었다.
아무튼, 블런델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막이 유지되다가 어떤 연유에서건 간에 출산이 임박해지면 양수가 터져서 흐르지 않나.”
“그렇죠. 양수가 흐르죠.”
지금도 그렇지만 21세기에서도 양수가 터지는 것으로 출산이 가까웠다는 걸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거다.
그렇다 보니 나는 좀 답답해졌다.
이런 얘기를 굳이 왜 나한테 하나 싶어져서 그랬다.
하지만 블런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참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길 잘한 거 같다.
덕분에 또 하나의 성장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볼 수 있었으니.
“그 말은 이 막. 태아를 싸고 있는 막이 터지면 말이야. 외부랑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잖아.”
“오…… 그렇죠.”
외부랑 연결이라니…….
나는 나도 모르게 블런델을 향해 몸을 숙였다.
다시 한번 21세기 동료와 마주 앉은 기분을 느끼면서였다.
“그럼 이게 미아즈마가 침범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오호…….”
“그래서 씻지 않은 손으로 만지면 감염이 생겼던 것이고. 양수가 터지기 전에는 괜찮고 말이야. 아, 그렇다고 내가 안 씻는다는 건 아니야. 조지프 그 새끼 때문에라도 씻고 있다네.”
“네네, 알고 있죠.”
손 소독의 망령이라는 별명을 얻은 조지프의 악명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다.
딱히 손만 소독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다.
잘못 걸리면 목욕까지 해야 한다고…….
목욕하면 매독 걸릴 수 있다는 속설이 아직도 가득한 세상에서 이럴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신념뿐만 아니라 조지프의 피지컬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말이야. 양수가 터진 산모를 병원으로 옮기거나 또는 왕진을 기다릴 때 우리 생리대로 덮으면 어떨 거 같나? 이것도 뭐 조지프가 원하는 것만큼 미아즈마가 제거되어 있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감염 위험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건 증명이 되지 않았나.”
“어…….”
“왜. 아닌가? 자네 생각을 말해 주게.”
블런델.
괄목상대의 표본인 건가?
요즘 들어 자꾸만 나를 놀라게 한다.
세상에, 생리대를 팔아먹을 생각을 했던 나조차 이런 용례는 상상도 못 했다.
“아, 아뇨. 이건 좋은데요?”
“좋아?”
“네. 아주 좋아요. 도움이 될 겁니다.”
“하, 하하. 기분이 좋구만. 자네가 그렇게 말해 준 건 처음 아닌가?”
“정말 놀랐어요. 이론적으로…… 들어맞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하하하하. 얼굴에 너무 금칠해 주는 거 아닌가. 하하.”
블런델은 내 칭찬에 깔깔 웃으며 돌아갔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가 되는 일은 없었다.
다음은 리스턴이었다.
그는 모자를 쓰고 들어왔다가 이내 벗어 던졌다.
그러자 청나라까지의 항해와 미국으로의 항해 또 그 험난했던 내륙 탐험으로 인해 손상된 머리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너무 그러지 말게…….”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 나의 반응에도 리스턴은 화를 내는 대신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일전에 아돌푸스 전하를 보니 심어 놓은 머리가 그래도 많이 남았더구만. 하노버 공국에서 여기까지 뱃길로 와야 하는데……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겠나?”
“음.”
나는 그 말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대신 아돌푸스 전하, 즉 윌리엄 4세의 동생을 떠올렸다.
내가 처음 심어 주었던 것은 그것보다는 더 굵직한 머리카락들이었더랬다.
애초에 머리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모은 털을 심은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장 달려와서 내 멱살을 잡겠지만, 아무튼, 그 수도 줄었다.
빠졌다, 이 말인데…….
그것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변화는 모발 굵기의 변화였다.
‘원래 사람 몸은 적응을 참 잘하지.’
혀에 암이 생겼다고 해 보자.
그거 자르고 생긴 결손 부위를 허벅지 근육으로 보충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처음에는 진짜 완전 다른 조직처럼 보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혀처럼 변한다.
뭐, 완전히 혀처럼 되진 않지만.
그것보다 더한 적응이 머리에서는 일어난다는 것을 전하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머리카락이 되어 버렸어, 사타구니 털이!
‘좋은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지…….’
털은 굵으면 굵을수록 같은 개수일 때 가릴 수 있는 면적이 넓다.
얇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가릴 수 있는 면적이 적어진다는 의미다.
“자네 왜 말이 없나.”
“아니, 형님은 그걸로 좋나 싶어서요.”
“당연하지! 당연히 좋지!”
“아.”
참담했다, 솔직히.
그런데 이렇게 나오니까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리스턴인데.
해 줄 수밖에 없다.
옛날 같았으면 무서워서, 지금은 불쌍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그럼 할까요?”
“그래. 모처럼 자네도 나도 시간이 있잖아.”
“그건 그렇죠. 아직 충치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요.”
“그래, 그래. 그럼 나 어디 누우면 되나.”
“아니…… 나 혼자서는 안 되죠. 팀을 부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모시죠.”
“고맙네. 내 이 은혜는…….”
“그냥 아무 말 말아요. 나 울려서 뭐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