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4화(384/505)
384화 불소 [1]
리스턴 경에 대한 수술은 당연하게도 VVIP 대우로 진행되었다.
그냥 병원 차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윌리엄 4세까지 오셨다.
“폐하? 여긴 어쩐 일이신지……?”
물론 영광이긴 할 거다, 리스턴도.
하지만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일이기도 하지 않나.
진짜 여길 왜 온단 말인가?
“하하, 내 주치의가 수술받는데 보러 와야지. 당연한 일 아니겠나?”
“그…… 감사합니다.”
“그래, 하하.”
하지만 당장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윌리엄 4세께서도 이제 왕이 되신 지가 꽤 오래되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정치인이 다 되어 놔서 속내를 잘 털어놓질 않는다.
물론 아예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다른 꿍꿍이가 있으시겠지.’
이따가 수술이 다 끝나면 말씀을 하긴 할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왕에 대한 신경을 오프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리스턴…….
케이스가 이게 보통 어려운 케이스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과 탈모와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지만, 일단 탈모 유전자가 있는 상태에서 과도한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는 경우에는 머리카락에 있어 괴멸적인 결과를 초래하고는 한다.
“휴.”
“사람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한숨 쉬지 말게…….”
“얼굴을 안 보고 있습니다.”
“머리를 보면서 한숨 쉬는 건 더한 무례야.”
“공자님도 이 머리를 보고 치료하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한숨 쉬었을걸요.”
“으음.”
어찌나 심각했는지 리스턴조차 할 말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원래 사람은 합리화의 동물이기에 자기 상황에 대해서는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마련이지 않나.
허나 지금 리스턴의 머리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을 한참 넘어섰다.
“일단은…… 주무셔요.”
“그래. 방법이 있긴 한 거지?”
“뭐, 그래도 완전 민 대머리는 아니니까요. 그냥 좀 두피가 상한 거지. 안심하고 자요.”
“새로 씨를 심어야 하는데 밭이 엉망이라는 소리 아닌가. 어떻게 내가 안심할 수 있겠나.”
“대체 어떻게 안 자는 거야, 이걸.”
“걱정이 되어서 그렇네.”
“앨프리드? 뭐 해?”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한계도 넘어선 거 같다.
옆을 돌려 보니 알프레드가 가스 밸브를 막 돌리고 있는데도 리스턴은 눈을 끔뻑끔뻑 뜨고 있다.
‘이게 사람인가?’
아니, 사람이 아니긴 하다.
리스턴…….
아마도 역사에 없던 인물이 아닐까?
나보다도 더 잘 숨기고는 있지만, 그는 필시 무림인이다.
“할 수 없지.”
“읍.”
앨프리드는 그런 인간을 위해 대비한 다른 마취제를 혼용했다.
놀랍게도 이 시대에는 마취제로 쓸 수 있는 약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클로로포름(Chloroform)이다.
스릴러 영화에서 클리셰처럼 나오는 손수건에 뭐 묻혀서 기절시키는 약인데 실제로 그렇게 쓰기는 좀 어렵다.
다만 가스도 튼 상황에서 이것까지 당하면 제아무리 리스턴이라고 해도 버티기 어려운 법이라, 마침내 정신을 잃었다.
“휴. 근데 죽지는 않겠지?”
“리스턴 교수님이?”
“하긴.”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정도면 생과 사를 오갈 수 있는 용량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살짝 불안해졌지만, 앨프리드의 말에 다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말마따나 이 리스턴이 이렇게 갈 거 같진 않다.
세상에…….
-런던 최고의 외과의 리스턴, 머리 심다가 숨져.
이건 좀 너무하잖아.
아무리 봐도 신이 존재하는 거 같은데,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속절없이 그를 원망할 거 같다.
그리고 무지몽매한 이들은 나를 원망할 테고.
“좋아. 조지프?”
“응! 맡겨 주십쇼!”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수술 시간을 최소화시켜야 하는 법이었다.
해서 나는 마취가 되자마자 즉시 조지프에게 소독을 맡겼다.
다행히 머리 부분은 리스턴의 초인적인 인내로 깨어 있을 때 이미 마친 마당이라, 가슴과 사타구니 쪽만 소독하면 되었다.
여전히 소독약은 개선이 되지 못해서 드럽게 아픈 약물을 사용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콜린, 스노. 준비됐지?”
“물론입니다.”
“네, 교수님!”
그렇게 소독이 마무리되자마자 새로 차석 보조의로 승격된 존 스노가 내 보조를 맡았다.
콜린은 조지프와 함께 털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꽤나 중요한 일인데 이렇게 콜린에게 맡겨도 되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조지프는 몰라도 콜린은 손이 제법 좋은 놈이다.
무엇보다 이곳 런던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자잘한 의료사고에 있어서는 관대한 편이다 보니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늘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원래도 병원이라고 하면 가면 죽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 사안에도 그저 감사하는 사람만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지이익.
그렇게 숙련된 의사들이 털을 채취했다.
말이 채취지 아직까지는 절개법밖에 사용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메스부터 그었다.
다행히 이제는 리스턴칼은 그야말로 흉기 또는 절단용 병기로 분류되고 있고, 이러한 수술에는 메스가 완전히 자리 잡은 후였기 때문에 상당히 섬세한 절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는군그래.”
“아무래도 동료니까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건.”
“무섭기도 하겠죠. 리스턴 아닙니까.”
“그렇구만. 그게 더 설득력이 있어.”
참관하러 들어온 왕과 원장님의 대화를 배경음 삼아서, 나는 내 조수들이 채취한 털을 리스턴의 머리에 심기 시작했다.
‘눈 감고도 심을 수 있다.’
슬램X크의 서X웅처럼 몇백만 번을 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털로 최대한 풍성하게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어떤 경로를 따라 어떤 식으로 심어야 할지…….
리스턴이 구해 온, 자신과 비슷한 환자들에게 먼저 수술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말 그대로 몸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허…….”
“왜 피영신을 두고 신이라 하는지 알겠군…….”
이제부터 내 손에서 펼쳐질 것은 흔한 수술이 아니라 마법이다.
텅 비었던 황무지에 풀이 돋아난다.
전혀 다른 곳에서 자라던 것들이기에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진부한 말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렇다.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리스턴도 그랬다.
이미 황무지를 넘어 사막화되어 버린 자신의 두피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달팽이 크림…….’
나는 기억한다.
리스턴이 비 오는 날마다 풀밭을 서성이던 일을.
내가 언젠가 조선에서는 달팽이가 분비하는 점액질을 이용해 크림을 만든다고 했던 다음 날부터, 그는 달팽이의 발자취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분비물을 그대로 손으로 쓱 모아서, 남들이 볼 새라 머리에 발랐다.
장기 보관이 불가한 시대이기에 오히려 21세기의 사람들보다 더 신선한 달팽이 크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말이다.
‘효과는…… 별로였던 거 같지만.’
아쉽게도 두피가 많이 개선된 거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건조하지는 않다.
습기를 머금고 있다.
이게 달팽이 때문인지 아니면 맨날 비를 맞아서 그런 것이지 혹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신께서 내린 은혜인지는 알 수 없다.
‘형님…….’
나는 마침내 마지막 털을 심고는 리스턴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가리였던 것이 어느새 훌륭한 머리가 되어 있다.
“허…….”
“이건…….”
구경하던 왕과 원장마저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부여잡고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교수님…….”
“이럴 수가…….”
콜린과 존 스노도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에…… 아니, 앞으로도 이건…….”
“소독한…… 보람이 있다…… 주여.”
앨프리드와 조지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둘은 지금까지 내 수술에 참여한 경험이 제일 많기도 하거니와 이제 슬슬 집도도 하는 몸이었기에 더욱더 강한 감동에 잠겨 있는 듯했다.
이해한다.
이건 정말이지 기적이었으니.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이번 수술에서는 나중에 이 털들이 머리카락처럼 가늘어질 것까지 다 대비했다…….’
아마 아돌푸스 전하께서 이 모습을 보신다면 다시 해 달라고 무릎 꿇고 빌 거다.
하지만 아돌푸스 아니라 폐하께서 그렇게 빈다고 해도 재연이 가능할는지는 모르겠다.
이건 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신과 리스턴이 함께한 결과물이니까.
“주께 기도드리죠.”
“감사합니다, 주님.”
해서 나는 꽤 오랜만에 진심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했다.
최근 교과서 집필을 위해 수술 광경을 그리라고 불러 둔 화가는 이날 내 머리 위에 동그란 링을 함께 그려 놓았는데, 수술장에 있던 어느 누구도 이를 두고 불경하다 하지 못했다.
왕께서는 오히려 티에피영은 진정한 신의 사자라고 천명하셨을 정도다.
그러한 와중이니 리스턴은 어떻겠나.
“태평!”
그는 거울을 확인하자마자 우선 입고 있던 옷을 찢고, 주님께 기도드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바로 내게 달려왔다.
그러니까 알몸이다, 이 말이다.
아, 문명인이 되었기 때문에 속옷은 입고 있다.
그래 봐야 흉악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상상하는 그런 방향의 흉악한 모습은 아니라 다행이다.
“혀, 형님.”
흉악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이미 리스턴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나도 모르게 메스를 뽑아 들고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물론 리스턴은 눈이 완전히 돌아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내 모습은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보인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거 같긴 하다.
호랑이가 치와와 앵앵거리는 걸 두려워하겠나?
“어어, 일어나세요.”
게다가 해치려고 온 게 아니라…….
내게 절을 하고 있다.
그것도 큰절을.
“이거 이거 너무 과례예요.”
“아닐세!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어어.”
“내려, 내려놔…….”
그러곤 그는 나를 무슨 솜뭉치나 된다는 듯 들어 올려 무등을 태우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쿵 소리를 내며 달리는 리스턴은 거의 한 마리 말처럼 빨랐다.
어 하는 순간에 그는 이미 광장에 있었다.
전에 우리가 독일에서 온 의사를 패퇴시켰던, 미래에 트래펄가 광장이 될 그곳이었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대단히 많았는데, 그곳에서 리스턴은 고래고래 외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기 전에도 이미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 만큼 괴이한 형상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우리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김태평과 나…… 리스턴! 오늘부터 지지 관계에서 벗어나 김태평과 나는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김태평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사이 리스턴은 말을 더 이었다.
“김태평, 나의 사랑.
김태평, 나의 빛.
김태평, 나의 어둠.
김태평, 나의 삶.
김태평, 나.”
머리카락이 전두엽에 박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