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5)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5화(385/505)
385화 불소 [2]
다행히 털이 전두엽에 박힌 건 아닌 모양인지, 리스턴은 광장을 떠난 이후로는 상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이상한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너 요새 소문 들었냐?”
“아니.”
“이렇게 떠들썩한데……?”
조지프.
내 친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에 아저씨가 와서 전달해 준 와인을 건네주면서였다.
‘음.’
나는 녀석의 말보다는 이 와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에 내추럴 와인이 유행했었지 않나.
그때도 그게 좀 호들갑처럼 보였더랬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러하듯 나도 내추럴한 것, 곧 자연적인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거든.
그 생각은 여기 와서 더 강렬해지고 있다.
“음.”
“어때, 우리 아빠 솜씨가. 더 늘었지?”
“어어. 느셨네.”
맛이 없다…….
첨가물 없는 와인은 맛이 없어.
물론 프랑스 쪽, 막 비싸고 그런 데서 나는 와인은 좀 낫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트에서 2, 3만 원 주고 사던 와인보다 맛있을 거 같진 않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박사님들이 연구실에서 최선을 다해 만든 첨가물이 자연의 산물보단 맛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아…… 매운 라면에 우유 부어 먹고 싶다…….’
지금도 제일 생각나는 게 라면이니 말 다 한 셈이다.
다른 요리는 내 돈과 지위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가 늘어남에 따라 어느 정도 재현이 될 거다.
내 생각에는 영국이 그토록 세계 경영이니 뭐니 목매는 이유도 음식 지분이 한 90%는 있을 거 같으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거다.
내가 영국 음식 얘기하면 얘 또 인터넷 밈에 편승하네 하겠지만…….
‘진짜’다, 영국 음식은.
아니, 지브롤터라고 영국이 또 혐성 짓을 해서 스페인 영토인데 뺏어 놓고 안 돌려주던 땅이 있거든?
친구가 배낭여행 중에 여긴 뭔가 하고 갔다가, 음식이 맛없어서 보니까 스페인이 아니라 영국이더래.
“그건 그렇고, 너 진짜 몰라?”
“몰라. 나 소문 안 들은 지 오래됐어.”
딴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조지프가 와인을 홀짝이다가 말을 이었다.
해서 나도 답을 해 주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였다.
명색이 수석 보조의와의 대화인데 너무 격의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집에서는 그냥 친구다.
애초에 수술장 말고는 그렇게까지 엄하게 굴지 않는다.
거기서도 편하게 해 주고 싶은데, 수술장은…… 그랬다가는 사고가 날 수 있어서 안 된다.
“왜……? 소문을 왜 안 들어.”
“안 좋은 소리가 많더라.”
“아. 너도 그걸 인지는 하고 있구나.”
“응, 그래서 그냥 무시하려고.”
아무튼, 19세기의 소문이란 건 21세기로 치면 댓글 같은 거다.
비약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19세기 와서 살아보면 안다.
스마트폰, 넷X릭스, 너튜브, 디X니 플러스에 웹툰, 웹소설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네이버 시리즈까지…….
24시간 즐길 거리가 넘쳐 나던 시대에 살던 사람이 여기 오면 딴 게 아니라 심심해서 죽는다.
아니, 그건 아니지.
19세기 의사 때문에 죽을 거 같긴 한데…….
‘더럽게 심심하니까, 다들 소문이라도 돌리는 거지.’
뒷담화만큼 재밌는 것도 잘 없지 않나.
특히나 다른 즐거움이 거세된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나에 대한 소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칭송도 많다.
국왕 폐하보다도 더 많아서 좀 민망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체 실험을 몇 번인가 수 없이 반복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마냥 좋은 얘기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역시 너는 비범하구나. 그렇게 떠들어 대는데 그게 무시가 된다니…….”
“뭐 난 바쁘잖아. 지금도 어떻게 하면 의학의 진보를 이룩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하긴, 그렇지. 그럼 이 소문도 안 듣는 게 낫겠는데.”
해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말을 저렇게 하고 있으니까 마냥 무시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라고 해서 뭐 초인적인 인내가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막말로 21세기에서 연예인 생활하면서 단련 받은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너튜브라도 했으면 얘기가 달라지긴 했을 거다.
이비인후과 친구가 너튜브를 하는데 악플 보고 놀라서 이런 건 차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이게 악플이야?’ 하더라고.
내가 그때 알았다.
멘탈도 단련이 되긴 하는구나…….
“아니, 나 궁금한데.”
반대로 내 멘탈은 아직 단련을 거치지 못해서 이렇게 되묻고 말았다.
녀석이었다면 아마 관심도 두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서도 물었다는 얘기다.
“그…… 진짜는 아니겠지?”
“뭔데. 인마, 들어야 알지.”
“아니, 리스턴 교수님하고 너하고 결혼한다는 소문이…….”
“뭐? 이런 미친놈들이. 왜 그런 말을…… 아니…… 알긴 하겠다.”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 나가서 ‘나랑 리스턴은 결혼 안 할 거고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라고 떠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나.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응? 그런 소문이 돈다고? 하하하하! 별일 다 보겠구만.
리스턴은 이렇게 넘어갈 것이 뻔했다.
어차피 아무도 그 앞에서는 이상한 소리를 못 하지 않겠나?
아마 열 살 언저리 때부터 이미 어지간한 성인보다 더 셌을 테니 평생 그런 경험이 없을 거다.
그렇다 보니 이상한 데서 대범해서 이럴 때 대처가 안 됐다.
“아니라는 거지……?”
“아니지. 당연히!”
“아니…… 네가 연애를 안 하니까. 취향은 존중할게, 나는.”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마. 우리 엄마 아빠가 들으면 진짜 기절할걸.”
“아…… 알지. 조선은 훨씬 엄격하잖아. 다행히 선배네 아버지랑 요새 와인 팔러 다니시느라 런던에 계시지도 않잖아.”
“그렇긴 하지. 우리 엄마까지 데리고…….”
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뜬금없이 이게 웬 불효인가 싶을 텐데, 정말이다.
자기는 한국 음식 없으면 못 산다고 엄마를 데리고 가 버렸다.
엄마도 아버지가 이따금 빚어 주시는 막걸리 없이는 못 살겠다고 따라가 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영국 음식 먹고 있다.
‘진짜 맛이 없네…….’
맨날 하는 말이지만, 정말 맛대가리가 없다.
“안 되겠다. 설탕이라도 부어야지.”
그렇다 보니 지금 조지프가 하는 것처럼 설탕이나 후추와 같은 향신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데, 아무래도 후추는 활용 난이도가 있다 보니 설탕을 주로 쓴다.
설탕.
21세기 인류만큼 쓰는 건 아니다.
아직 액상 과당이 나오지 못한 시대라 이거 하나만큼은 19세기보다 낫다.
무엇보다 신체 활동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는 시대라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 유병률도 낮다.
고위층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운동을 안 하는 것이지 활동 자체는 많아서 그렇다.
“야, 너 이 아프다며.”
“아…… 그렇긴 한데. 정 안 되면 뽑아야지.”
“설탕을 참고 이를 잘 닦으면 안 그래도 되는데……?”
“잘 안 돼. 그리고 불필요해진 치아는 뽑아야지. 다들 그렇게 하잖아.”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나 충치다.
일단 양치에 대해 그리 열심을 내는 문화가 없다.
양놈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씻는 데 열심을 안 낸다.
열심을 낸다고 해도 아직은 칫솔도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치약이야 먹고 뒈지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라고 하면 좀 슬퍼지지만, 발치가 일상화되어 있다.
“어차피 이젠 마취도 돼서 안 아프잖아. 엘리자베스 여왕님보다 이건 더 낫다구. 하하.”
“그…… 이를 안 뽑을 생각을 해야지.”
“하하. 이, 이까짓 게 뭐라고.”
“조선에서는 오복에 치아가 꼭 들어가.”
사실은 아니다.
오복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으로 치아 같은 것은 없다.
요약하면 오래 고통 없이 부유하고 선하게 잘 사는 것이 오복인데…….
리스턴도 없는데 뭐 상관 있겠나.
“그렇긴 할 텐데, 타고나길 이렇게 난 걸 어쩌겠어.”
“아니…….”
“아니면 그때 그 물. 그걸로 어떻게 해 봐. 맨날 의료의 진보를 고민한다며.”
“그래야겠다, 하루빨리.”
해서 질렀지만 딱히 소용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 탓을 했다.
하여간 섬나라 놈들 인성은 알아줘야 한다.
친구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아니었으면 저주라도 걸었다.
그럼 바로 심장 멎을 텐데…….
‘내게 목숨 한번 빚졌다, 조지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런던 치과 의사들에게 아까 부탁했던 일을 떠올렸다.
-환자 가족들 명단 추려서 가져와요.
-다 죽이시려고요?
-아니…… 내가 미친놈입니까?
-아, 아니군요. 그럼 왜……?
이유를 묻길래 답을 해 주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갖고 오라고 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래도요 하면서 질척거렸겠지만, 지금 내 위엄은 사자왕 저리 가라다.
심지어 리스턴과 결혼 발표까지 한 상황이지 않나.
헛소문이지만…….
이제 보니 녀석이 왜 내 말에 그렇게 흠칫 놀라며 뛰어나갔는지 알겠다.
-히익, 알겠습니다. 살려 주십쇼!
뭐, 그런 거 생각하면 어차피 난 당장 장가들 생각도 없는데 굳이 정정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편하잖아.
100% 확신하는데, 내일이면 아마 바로 명단을 받아 볼 수 있을 거다.
명단이 왜 중요한가 하면, 거기 환자라는 건 결국, 이 뽑은 사람이지 않겠나?
충치가 심각했던 사람이라는 말인데, 다들 알다시피 가족은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산다.
즉, 환자의 가족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는 얘기다.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면, 불소의 예방 효과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알기 쉬울 거다.
‘죄수들을 활용하기가 어려워, 이 실험은.’
여느 때처럼 죄수들을 활용하면 아마 더 쉽고 빠르긴 했을 거다.
아, 마치 안 해 본 거처럼 말했는데 해 봤다.
근데 어렵더라고…….
설탕 먹여서 억지로 만드는 충치는 불소로는 예방이 안 된다는 것만 확인했다.
일부는 생니를 갈아 내야만 했고, 일부는 뽑았고, 일부는 그냥 견디고 있다.
-이렇게 됐으니 불소로 가글하십쇼.
라고 하면 우리 런던 사람들이 하겠냐.
설탕 먹으면 이 썩는다는 걸 보여 줘도…….
-오케이, 그럼 제때 뽑아야겠군!
이러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 런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고안한 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자연스레 이 썩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이건 놀랍게도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다.
세상에 이런 실험이 가능할 줄이야…….
21세기에서 돌아와 거의 처음인 거 같다.
절그럭.
어젯밤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조지프와 옛날얘기를 하다가 늦게 잠들었다.
그래도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출근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할 게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
지역 유지, 권력자라는 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에요.
“피, 피영시인 님.”
하여간, 그렇게 출근해서 할 일을 하고 있으려니 썩은 이로 목걸이를 만든 발치사가 찾아왔다.
개발새발 적은 명단을 들고서였다.
“꽤 많네?”
“네, 런던 발치사란 발치사는 다 참여했습니다요.”
양이 상당한 데다가 필체가 다 다른 것을 보니 과연 일은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이제 이 중에서 실험 대상이 될 사람들을 골라야 했다.
내가 할 필요는 없었다.
“스노?”
“네.”
“여기서 100명만 추리자.”
“네!”
시킬 사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