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8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86화(386/505)
386화 불소 [3]
존 스노.
그의 역사적인 업적은 굳이 말로 옮길 필요도 없다.
물론 더 유명해져 버린, 왕X의 게임에 나오는 존 스X우 때문에 검색해 봐야 나오지도 않는 신세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적어도 의사라면 그의 업적을 들어 보긴 했어야 한다.
사실 아닌데, 내가 학생 때 패스 오어 페일 과목인 의사학을 그만 공부하기 싫을 때 해당 과목만 빼고 다 재밌어지는 현상에 의해 들여다봐서 아는 거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그냥 넘어가기에 너무 대단하다.
‘역학 조사라는 말이 없을 때 역학 조사를 한 사람 아니야.’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라도 역학 조사라는 단어를 의사 아니라 그냥 전 국민이 다 알게 되었지만, 놀랍게도 그걸 이 세상 모두가 모르던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인데 존 스노가 앞으로 10년 뒤에 스스로 해냈다는 거다.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지 않나.
심지어 여기야 미아즈마 개념이 새로 잡혀서 감염에 대한 나름의 이론 체계가 만들어져 가고 있지만 원래는 그때도 여전히 독기론이 우세였다.
그 와중에 콜레라가 물을 통해 퍼진다는 것을, 단지 정황상의 증거만으로 입증한 사람이니 그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서는 그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말입니다, 교수님.”
그런 애가 지금 내게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의견을 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어째야겠나.
당연히 들어 줘야 한다.
“응. 그래, 말해 봐.”
“의학적인 소요는 아무래도…… 부자나 아닌 사람들이나 비슷할 거 같긴 합니다. 생리대처럼요.”
“그렇겠지? 근데?”
나는 잠시 생리대를 떠올렸다.
이번에 겨우 한 번 더 수입이 되었을 뿐이지만 이미 생리대는 어떤 현상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종교인들이 출혈은 주님이 주신 벌이며 이를 보다 안온하게 넘기려는 것은 그 자체로 죄라고 해 본들 별 소용은 없었다.
르네상스 이후로 종교는 계속해서 지고 있었으니까.
너 이러다 지옥 간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이슈가 아닌 이상에야 일단 편하고 안락한 게 장땡이다, 이거다.
애초에 종교적인 해석에 100% 따를 것이었으면 식민지 건설이나 노예 부리는 게 성립할 수가 있었겠나?
‘대박이 나 버렸지…….’
‘P.S.’가 브랜드화된 것도 커다란 성과다.
런던 부자치고 우리 생리대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라고 하니 말 다 한 셈이다.
얼마 전에는 윌리엄 4세께서 빅토리아 공주를 위해 친히 선물을 사 가시기도 했다.
그러니까 미래에 유럽의 할머니가 되실 분이 우리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이다.
이번 불소도 그렇게 될까?
모르겠지만, 일단 고급스러운 유리병에 ‘P.S.’를 역시나 고급스러운 필체로 박아 넣으라는 지시는 내려 둔 참이다.
이렇듯 스승은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사이, 우리 기특한 제자는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근데 물이라 너무 운송비가 많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옮기면서 썩을 염려도 있고요.”
“그렇지. 그래서 비싸. 비싸게 팔아야지, 어쩌겠니.”
연구소에 보내서 불소 성분을 분리해 보라고 지시를 해 두긴 했다.
하지만 성과가…… 날까?
아직도 페니실린의 ‘ㅍ’ 자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능력이 없는 거 같다.
그에 비해 코카인은 지시한 적도 없는데 덜컥 나온 것을 보면 이 새끼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비싸게 파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네, 그렇죠. 그래서 일단 부잣집들로 모아 봤습니다.”
“아…… 그래, 그건 아주 좋은 생각이네.”
“기왕 모으는 거 부자가 아닌 집과 비교를 해 봤더니 희한한 소견이 하나 보입니다. 부자들이 충치 위험도가 더 높은 거 같습니다. 이게 아무래도 교수님이 일전에 설탕 실험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맞을까요?”
“그래, 그렇지! 맞지! 통계적으로 입증이 되는구나!”
부자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설탕 접근성이 훨씬 높다는 건 굳이 둘 다 언급하지 않았다.
그걸 해야 하는 수준은 예전에 이미 넘어섰기에 그랬다.
존 스노는 천재고, 나는 회귀자니까.
‘이래서 교수님들이 공부 잘하는 애들을 이뻐했구나.’
배울 때는 명색이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람을 차별해도 되는 건가 싶었었는데…….
이제 보니까 이게 차별이라기보단 그냥 자연스레 가는 마음이다.
뭔 말 할 때마다 찰떡같이 알아듣는 놈하고 ‘네?’ 하는 놈하고 어찌 똑같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겠나.
아니, 존 스노는 내가 딱히 말하지 않은 것조차 알아듣고 있다.
일단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젤 위에서 노닐고 있을 정도다.
‘진짜 다른 놈들이 나랑 인연이 있는 게 아니었다면 나…… ‘차별’해 버렸을지도 몰라.’
앨프리드 선배는 숙식을 제공하고 있을뿐더러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콘돔 사업 파트너의 자식이다.
조지프?
얘 없었으면 업턴에서 죽었다.
인종 차별 하는 놈들한테 맞아 죽었든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외지인처럼 굶어 죽었든지.
콜린?
얘가 좀 애매하지만…….
일단 성실하게 이도 뽑히고, 똥물도 먹은 데다가 태도가 제일 깍듯할뿐더러 손이 좋다.
리스턴이 내 외과 동료라면 이 녀석이야말로 내 외과 제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온천수. 교수님께서 불소수라고 부르기로 명명하신 물을 조금 고액으로 판매하는 것도 온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문구에 그걸 넣자.”
“네네. 그리고 제가 몇몇 집을 방문해 보았는데, 과연 설탕을 많이 먹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단 디저트를 내놓는 것도 그렇고요.”
“색깔은?”
“파랑, 초록, 빨강이었습니다.”
“그래…….”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렇게만 말하면 좀 너무 약한 거고, 런던은 그냥 통으로 그렇다고 해도 억울하진 않을 거 같다.
내가 왕실 갈 때마다 간식 다 버리라고 하는데도 아직도 먹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더 강하게 말하는 것도 어렵긴 하다.
-내가 자네가 말하는 대로 이 약 소화시키느라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게다가 간식도 반의반으로 줄였단 말일세. 이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겠나!
왕께서 내게 이토록 저자세로 하소연을 하시는데 더 뭐라고 하다가 목 잘리면 어쩌나.
물론 김태평은 잘린 목으로도 저주를 내릴 수 있을 거란 소문이 돌고 있으니 그것도 어렵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뼛속 깊이 유교 사상이 박힌 나로서는 아무래도 왕이라는 사람에게 너무 뭐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 그럼 일단 이렇게 하도록 할까?”
“네. 근데, 제 생각에는 가족을 전부 다 끌어들이는 것보다는요.”
“응? 말해 봐.”
존 스노 말고 다른 놈이 내 앞에서 자기 생각을 말한다면 어떻게 할까.
저주를 걸거나 리스턴을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존 스노.
내가 인정한 천재다.
절대로 내가 해야 할 공부 안 하고 존 스노를 들이 팠던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그냥 한두 명씩만 불소 치료를 하게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다른 가족들과 비교가 될 거 같아서요.”
“아. 그래. 그게 더 낫겠구나. 이미 뽑힌 사람이야…… 그래, 그렇게만 해서는 설득이 안 될 거야.”
“네, 그럼 이렇게 준비해서 진행할까요?”
“응. 근데 너만 가도 말을 듣니?”
과연 들을 만한 의견이 나왔다.
그래, 확실히 같은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대로 그 습관은 가져가는데 불소수를 쓰는 사람만 더 좋은 결과를 보인다면 설득이 더 쉬울 거다.
‘물론, 여기 와서 물 받아갈 때, 확인 면목으로 양치를 시키긴 할 거지만.’
이런 미약한 수준의 조작은 눈 감아 줘야만 한다.
워낙 엉망이지 않나.
이 인간들…….
특히 왕께서는 지금도 치아가 엉망이다 보니 이러다 충치로 훅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21세기 사람들이야 충치로 사람이 죽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그럴 수 있다.
사실 21세기에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주로 이비인후과에서 받아 갔는데, 깊은 경부감염이라 하고 사망률이 무려 40%에 달하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아, 저만 가진 않죠.”
하여간 노파심에 물었더니, 존 스노가 뭔 소리냐는 얼굴로 되물어 왔다.
사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도 우리 스노는 꽤 인상파가 될 거 같긴 했다.
그러니까 이 험한 런던 바닥에서 역학 조사를 하고도 살아남았지 않겠나.
내가 너무 마굴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더 괜찮게 말하는 거다.
일단 나는 이제 엄청 잘 사는 동네에 구분되어 살고 있잖아.
그래 봐야 21세기에는 비할 바가 아니게 지저분하지만, 그런데도 간혹 빈민촌 지나가면 진짜로 헛구역질이 나올 때가 있다.
비단 위생 때문만이 아니라 그 위험성 때문이다.
아니, 진짜로 눈앞에서 막 사람을 죽이고 그런다니까.
“그럼?”
그런 곳까지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길거리를 이런 어린 애가 다닌다는 건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일이었다.
납치라는 게 21세기에도 심각한 범죄지만 여기서는 납치당했다가는 죽어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해부당한 채로 템스강 밑으로 가라앉거나 남의 관을 쉐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 십상이거든.
“아저씨들이랑 가요. 그 왜…….”
“아, 그 아저씨들. 그럼 걱정이 없겠군.”
하지만 내 기우였다.
그런 짓 하는 사람들과 같은 편이라는 걸 잠시 잊었다.
어쩐지 그 험한 사람들이 얘가 오라면 오고 아니라면 안 오는 게 좀 이상하긴 했다.
그래, 뭐…….
좋은 일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주님께서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지.”
“네!”
“자, 다음은…….”
나는 존 스노를 보내곤, 리스턴과 더불어 상의해야 할 안건을 떠올렸다.
워낙 엉망진창인 부분이 많은 시대다 보니 사실 할 일이 없을 때란 있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원래도 우선순위 정해 놓고 차례차례 일 처리하는 데 달인이었고, 여기 와서는 타의에 의해 더더욱 훈련받게 된 사람이었다.
해서 기가 막히게 제일 급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이게 워낙 알음알음 벌어지는 일이라 경찰들도 아는 게 많진 않더구만.”
내 부름에 응한 리스턴과 블런델이 찾아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우리 덕에 이제 경찰과 끈이 끈끈해져 버린 블런델이었다.
수혈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데, 생체 피 주머니를 활용해야 하다 보니 경찰의 협조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랬다.
거기에 더해 다친 경찰들은 공짜로 치료해 주고 있고 또 수익금의 일부를 상납 아니, 공유하고 있다 보니 뭐 거의 형제다.
그런 형제가 하는 말이니만큼 거짓은 없을 터였다.
“뒷골목 쪽이 더 낫긴 한데…… 아예 피 팔아먹는 놈들을 들이파는 게 빠를 거야. 얘들도 소문만 알 뿐이지 잘 모르던데.”
그에 비해 리스턴은 경찰과도 친분이 두터운 편이지만 아무래도 갱들과 더 두터웠다.
일단 그쪽에서 알아서 큰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스턴도 그걸 더 편해하고 있었고.
“젠장. 아니…… 피를 받으면 미아즈마도 같이 올 수 있다는 걸 모르나?”
“그걸 어찌 알겠나?”
“실험해 본 적도 없잖아. 그럼 이번에 실험할 건가?”
둘은 내 말에 또 인체 실험이 마려워졌는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살짝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 도덕성을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질환이 매독 같은 건데, 죽일 놈들이 그거 하나 없을 거 같아요?”
“아.”
“과연.”
둘은 큰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다른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