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화(39/505)
39화 나 신문에 나왔다 [4]
-호외요, 호외!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우중충한 날씨에 거지 같은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런던 칼리지에서 마취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아침?
영국 음식이다, 영국 음식이야.
21세기 영국 음식도 별론데 이때는 어땠겠나.
진짜 김치를 입에 넣어 주고 싶은 맛이라고 보면 되었다.
국뽕이 아니라 진짜로 이런 걸 왜 먹는지 모르겠어.
-이제 수술할 때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마차였다.
아저씨의 배려로, 저택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고급 마차에 탈 수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덜컹거리고 승차감도 별로긴 했지만.
이 더러운 거리를 발로 걷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심지어 대부분은 걸어 다니는 와중에 안 그래도 된다는 건 일종의 특권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가다 보니, 진짜 ‘애’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애들이 신문을 들고 뛰어다녔다.
저 나이대 애들이 일을 한다는 것도 놀랍고, 또 벌써 신문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여하간에 우리는 가는 길에 신문을 사는 편이었다.
아니, 우리라기보다는 앨프리드가 그랬다.
“아, 나는 의사 못 하면 일단 가업을 물려받아야 해서 말이지.”
이런 변명을 늘어놓으면서였는데, 아마 ‘다른 의대생들이 넌 공부할 시간에 다른 것에 관심을 두냐’ 뭐 이딴 말을 해서일 터였다.
‘의사도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지. 그리고 의학은 종합 과학의 일종이라 다른 영역의 영향을 엄청 받는다고…….’
다 뭘 모르는 새끼들이라 하는 말이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기는 했다.
어쩐지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같고 그럴 때가.
물론 그 시기가 길지는 못했다.
21세기의 의학, 그러니까 현대 의학은 진짜 미친 듯이 발전해서 좀만 공부해도 내가 좁밥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거든.
‘여기는 벼가 익을 만한 지식이 없지.’
허나 19세기는 어떤가.
당장 로버트 박사님만 해도 지식이 부족한데 학생들이야 뭐…….
“야! 너 얘기 있다! 이름도 있어!”
“응? 나? 아, 어제 그 기자들인가.”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앨프리드가 내게 신문을 보여 주었다.
말이 신문이지, 종이 한쪽이 다였다.
현대 사회처럼 별의별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그걸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종이 한 장도 과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고, 한 번 기사에 나면 며칠간 그 얘기만 하기도 했다.
근데 거기에 내가 뜨다니.
“진짜네…….”
“엄청 잘 써 줬어. 리스턴 박사님이야 런던 최고 명의니 당연한데, 너도 그 명의가 키우는 전도유망한 천재 의대생이라고 쓰여 있잖아. 심지어 곧 의사래. 너 진짜 의사 되나 보다.”
“오…….”
좋아해야 할 일이었다.
분명 그렇긴 한데, 약간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가 한국이었거나, 내가 백인이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둘 다 아니지 않나?
‘공격…… 받을 수도 있겠지?’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몸빵이 되어 주기야 하겠지만.
“와! 진짜 잘됐다!”
“내 후배 님이 벌써 의사라니. 하긴, 나도 살려 줬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어.”
속없이 좋아하고만 있는 조지프나 앨프리드처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물론 마차는 엄청난 고급품이었고, 그 안에 누가 있나 들여다볼 만큼 간 큰 인간은 적었기 때문에, 나는 일행과 함께 별 어려움 없이 학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와! 천재다!”
“네가 그 유명한 피영이구나.”
“동양놈이 대단한데? 속은 백인인가?”
막 공격하는 놈은 없었다.
중간중간 진짜 무슨 이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다 있을까 싶은 말도 있기는 했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그리고 이곳이 영국이라는 걸 감안하면 넘어가 줄 만한 일이었다.
“저 새끼…… 이는 내가 뽑았는데. 공을 자기가 가로채고…….”
아 공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콜린.
내게 처맞고, 이까지 뽑힌 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하하하! 피영!”
로버트 리스턴의 거대한 몸이 콜린과 나 사이를 가리며 나타났으니까.
“으억.”
그는 거대한 손으로 나를 잡아다 들어 올렸다.
다른 한 손에는 신문지가 들려 있었으니, 거의 한 손으로 날 들었다는 얘기였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60킬로도 안 나가는 나를 이 인간이 못 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기사 봤지? 역시 찾아가길 잘했어. 여기 보면 해부학에 정통한 피영이라는 말이 있네. 하하하하. 이상한 걸 쓰고 있길래 고쳐 줬지.”
“가, 감사합니다.”
달려온 사람은 리스턴 박사님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 하나도 있었는데, 앨프리드 덕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워, 원장님!”
“하하. 그렇게 인사할 필요는 없네. 오, 자네가 피영인가!”
“아, 네. 안녕하십니까.”
“축하하네, 축하해! 자네랑 로버트 교수 둘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어!”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거 보이나?”
원장은 껄껄 웃으면 종이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걸 보는 로버트 교수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는데, 원장은 그런 교수를 싹 무시한 채였다.
하여간 종이엔 정갈한 글씨로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름이었다.
몇에는 날짜도 쓰여 있었는데, 제일 가까운 날짜는 바로 내일이었다.
“이게……?”
“수술 희망자들일세! 마취가 된다니까, 이제 다른 병원에서 다 여기로 오는 것이지!”
“아…….”
이게 다 수술 희망자……?
못 해도 수백은 될 거 같았다.
문제는 하루에 열 명이 넘게 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술 명단이 아니라…… 자살 희망자 명단이라고 해도 좋지 않나……?’
수술은 이제 진보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 역사가 증명한 것처럼, 마취제의 발견과 함께 수술은 진짜 엄청난 속도로 발달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수술이라고 해 봐야 절단밖에 더 있나?
그러니 달리 말하면, 이제 런던에 팔다리 잘린 사람만 수백 명이 늘어날 거란 얘기였다.
문제는 이것조차 희망 어린 낙관이라는 점이었다.
사람이 늘지 시신이 늘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 비슷한 생각을 로버트 박사님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무 급한 거 같습니다만?”
그는 진중한 얼굴로 원장에게 말했다.
평소라면 아마 박사님이 이렇게 말하면 누구라도 물러섰을 텐데, 원장은 정상이 아니었다.
“급하다니? 환자들이 있으면 달려가는 게 의사일세.”
“아니…….”
눈이 정상이 아니었다.
수술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렴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게다가 세계 최초로 마취에 성공한 의사의 수술이라면 비쌀 게 분명했다.
‘아니, 무슨 코인 슈킹하는 것도 아니고. 수술로 떼돈을 벌려고 그래…….’
완전히 도취된 눈이었다.
이걸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하여간 준비하게. 자네도 보조로 나서야 할 테니.”
로버트 박사님 혼자면 또 모르겠는데, 나까지 도매급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로버트 박사가 나섰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시죠. 학생들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추태라니! 의학의 진보를 논하고 있는데!”
“그 진보를 위해 강의를 해야 하니, 일단 물러가시죠.”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 언성이 어떤 임계를 넘어가는 순간, 원장은 현실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드디어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울 만한 높이에 달린 로버트 박사의 험상궂은 얼굴과 두꺼운 목, 그리고 한 방에 마취가 아니라 죽음을 선사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팔뚝을 슥 둘러보는 게 옆에서도 다 느껴졌다.
“그, 그러지. 이따가 얘기하세. 아무튼, 잘된 일이지 않나? 이제 아프지 않게 팔과 다리를 자를 수 있네!”
“알겠으니까, 가시라고.”
“알았네.”
원장은 그렇게 내쫓기듯 자리를 떠났고, 로버트 박사는 그런 원장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쩐다.”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잘된 일이었다.
이 인간까지 와서 지랄했으면 나로서도 도리가 없었을 테니까.
꼼짝없이 붙잡혀서 남의 팔다리를 잘라야 했다는 얘기였다.
높은 확률로 로버트 박사님의 칼에는 연륜이 빠르게 쌓였을 테니, 후에 수술받는 사람일수록 팔다리만 잘리는 게 아니라 목숨줄도 잘렸겠지.
“와…….”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박사님과는 달리 내 것은 안도의 한숨이었지만, 박사님은 다들 알다시피 그리 섬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동류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야 원…… 원장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만…….”
로버트 박사는 나를 보다가, 이내 나머지 인원을 둘러 보았다.
“이럴 때가 아니군. 일단 해부 실습실로 가지.”
“아, 네.”
강의 핑계로 원장을 내몰았으니, 강의를 하긴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렇다고 칠판 앞에 설 기분은 아니었는지 모두를 해부 실습실로 내몰았다.
현명한 판단이기도 했다.
어제 들어온 시신들이 썩기 전에 빨리 뭐라도 봐야 했으니까.
게다가 어제 위에 팔만 보다가 나오지 않았나.
나머지도 봐야 했다.
“피영, 내 앞에 앉지.”
“네.”
당연히 나는 박사님과 앉았다.
칼을 집어 들자, 박사님은 해부는 뒷전인지 입부터 열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깡패라 해도 상대는 원장이지 않나.
아니지, 이 사람 깡패가 아니라 의사지.
“이거 이러다가 팔다리만 수백 개 자르게 생겼네.”
“교수님은 지금 더 좋은 수술법이 없나 찾고 계신 거죠?”
“그렇지! 역시 자네는 날 이해할 줄 알았네! 나라고 뭐 좋아서 그렇게 무식하게 팔다리 자르면서 살았겠나.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네. 기왕 아플 거라면 짧은 게 낫지 않겠나.”
“하지만 이젠 마취제가 있죠. 그렇다면…….”
“그래, 찬찬히 아픈 환부만 도려낼 수도 있다 이걸세!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면 아무리 내가 천재라도 시간이 필요해.”
오.
이렇게 대놓고 천재임을 어필하다니.
‘뭐…… 천재는 천재지.’
다리를 30초에 자르는 사람을 천재라고 안 하면 달리 누가 천재일까.
해서 나는 인정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좀 무서워서 격하게 끄덕인 것도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들어줄 줄 알았는데…… 원장은 미쳤어. 돈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 버렸네.”
“으음…… 대체 얼마를 부르길래…….”
“과장 조금 보태면, 지금 잡힌 수술만 해도 이만한 병원 하나는 더 지을 수 있을 정도네.”
“아.”
오…….
이건 나도 좀 혹하는데?
기껏해야 한 달, 길어도 두 달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거로 병원 하나?
‘아니, 아니지…… 난 의사야…….’
나는 고개를 저어 마음에 낀 마구니를 털어 내고는 입을 열었다.
“아예 방법이 없나요?”
“있기야 하지.”
내 물음에 리스턴 박사는 자신의 팔, 그리고 내 팔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불길했다.
“어떤……?”
그럼에도 나는 물었고.
“부러뜨리면 돼. 설마 팔 부러진 사람한테 수술하라 하겠나.”
이따위 답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