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2)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2화(392/505)
392화 목욕 [1]
여기 모인 열 명의 VVIP들에게 내가 한 시술은 복어 독침 찌르기와 천연 효모 성분이 많이 있을 것으로 희망하는 발효된 쌀 반죽 문대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세안이었다.
그냥저냥 하는 고양이 세수가 아니라 깨끗이 끓인 물을 모아 만든 증류수에 비누를 써서 제대로 세안시켰다.
-네? 얼굴을 씻으라고요?
-검댕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직원 교육이 워낙에 철저했기 때문에 세안 능력은 대단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씻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해서 그랬다.
그나마 18세기보다는 씻는 것에 대해 보다 관대해지긴 했는데…….
그래 봐야 빗물 받아서 얼굴에 문대거나 하는 게 다였다.
게임 보면 중세 여관에 묵을 때 물 받아서 하잖아?
그거 다 구라다.
유럽 놈들이 나중에 역사 왜곡하는 거다, 이 말이다.
“정말 프랑스병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프랑스병 한번 걸리면 고생인데…….”
“저기…… 그거 영국병 아닌…… 켁.”
이게 무슨 대화냐.
놀랍게도 우리 일행과 장 피에르의 대화다.
현시점에서는 내 일행들이야말로 의학의 선두주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아, 프랑스병이니 뭐니 하는 게 뭔지 모를 수 있는데 매독을 말한다.
지금도 매독이 이게 아주 개같은 병이지만, 신대륙에서 처음 건너왔을 때는 훨씬 독했다고 한다.
‘뭐…… 코로나도 그렇고. 원래 감염병이 초기엔 지랄 맞지.’
바이러스나 세균도 인체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사실 걔들도 오래 살고 싶으면 숙주가 너무 빨리 죽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물론 머리를 그렇게 써서 그리되는 건 아니고, 그런 특징을 가진 애들이 오래 살아남아 우리가 아는 매독의 형태가 되는 거긴 한데, 아무튼.
증상이 참 끔찍하다 보니 유럽인들은 미워하는 나라 이름을 병 이름으로 붙인 모양이다.
사실 유럽인들이라고만 하긴 어렵다.
조선인들 말을 들어 보니 왜병이라고 한다더라고.
아니면 청병이라고 하거나.
‘씻는다고 매독에 걸린다고 믿는 게…… 참…….’
나는 한숨을 쉬다가 퍼뜩 내가 공부했던 것을 떠올렸다.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이상한 소리 하면 그냥 이 새끼들 다 미친놈이구나 싶었는데, 지내다 보니까 이 사람들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더랬다.
그래 봐야 말도 안 되는 근거라 내가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개인이고 이들은 집단 아니, 세계다.
설득을 해야 변화가 생긴다는 말이고, 그걸 하려면 우선 내가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은 페스트였을 거야. 아니면 다른 전염병이었을 거고.’
놀랍게도 로마는 대중목욕탕이 아주 잘 되어 있는 제국이지 않았나.
그냥저냥 한 제국도 아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 중 하나다 보니 당연하게도 중세 유럽에도 그들이 미친 영향이라는 것이 아주 대단했다.
이상하게 긍정적인 건 사장되고 아닌 건 잘 받아들여서 개판이 나긴 했는데…….
보통은 그럴 때 기독교가 범인이지만 씻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병원균에 대한 개념 없이 대중목욕탕을 이용했던 것이 화근이다.
거기에 더해 유럽의 물이 전반적으로 동양의 물보다 좀 더럽다는 것도 문제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병이 번졌을 것이고, 그게 와전되어서 목욕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겼을 거야.’
혹자들은 주님께서 주신 몸을 뭐 하러 씻냐는 극단적인 주장도 했다.
유태인들이 너무 미웠던 이들은 흑사병이 돌 때 그들에게 죄를 몰았는데, 그때 사용했던 소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왜?
유태인도 나쁜 놈들이지만, 우물도 원래 위험했거든.
‘목욕뿐만 아니라 물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중세 유럽 영화 보면 사람들이 막 얼굴 벌게져 가지고 술 먹으면서 농사짓고 하잖아?
그게 이 사람들이 마냥 미개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물이 위험하기 때문에 물 대신 술을 먹는 거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수가 솟으면 그냥 맑은 물이 나오는 곳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여긴 그렇다.
급여에 술이 꼭 껴 있는 곳들이,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말 다 한 셈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월급을 받으면 일단 술부터 먹는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만 빗물이나 템스강 물 또는 그냥 골목에 흐르는 오수를 모아 마시는데, 보면 느낌 올 거다.
템스강 물하고 오수야 말할 것도 없이 위험하고, 빗물조차 런던의 끔찍한 대기 오염 때문에 산성비 수준이 아니라 아예 독극물 수준이다.
-네? 얼굴을 씻으라고요?
다시 돌아와 직원들의 불만을 보면, 이제는 좀 이해가 될 거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일도 바꿔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해서 나는 협박을 해 가면서까지 해서 우선 직원들의 얼굴부터 닦였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이게 뭡니까. 비누? 거, 거품이……!
진짜 태어나서 처음 세수를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비누칠해 놓고 자꾸 눈 뜨고 소리 지르고 해서 계속 눈으로 입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비명이 현실감 있게 변했다.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면 좀 아프긴 하거든.
하지만…….
-어…… 내 얼굴이……?
-예뻐진 거 같은데……?
다 하고 나니까 반응이 달라졌다.
런던의 악명 높은 공기에 노출이 되어 있었으니, 얼마나 더러웠겠나.
아니, 깨끗한 시골에 살았어도 드럽긴 했을 거다.
잘 닦지도 않잖아.
세수라고 해 봐야 입가나 좀 훔치고, 어디 묻은 것만 손으로 문질러 닦는 게 고작이다.
물이 더러우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한데, 아무튼, 그런 와중에 비누칠을 하고 닦았으니 뽀얗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어…… 제 얼굴이 깨끗해요.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자 얼굴에 나던 트러블들도 많이 사라졌더랬다.
내가 개발한 특제 로션, 인도산 알로에를 발라 주니 수분도 보충이 되어 더 그랬을 거다.
심지어 천연 효모도 듬뿍듬뿍 쓰고 있고…….
‘제일 중요한 건 사실 나이지.’
무엇보다 이 녀석들 다 십 대다.
30대라 속이고 있지만……!
십 대다, 십 대.
나이가 깡패다 보니 확실히 기본적인 것만 채워 줘도 피부가 막 변했다.
그렇게 우리 직원들은 단순한 직원에서 신도 비슷한 무엇이 되어 버렸고, 최선을 다해 익힌 기술로 VVIP들을 닦았다.
“어떠십니까.”
“허어…… 정말 한 번 만에 젊어진 거 같구만.”
거기에 더해 남자 손님들은 이발도 좀 하고 수염도 깎았다.
이발할 필요가 없던 손님들도 있긴 했는데, 그거야 뭐…… 본인이 감안해서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거울을 본 VVIP들은 다들 만족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은 다른 것보단 세안한 것의 효과만 있는데도 그랬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어떤……?”
“목욕이죠.”
“목욕……? 그건 아무리 자네 말이라도…….”
국왕께서는 예상했던 바대로 목욕이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
생각지 못했던 반응이었다면야 나도 당황을 했겠지만…….
이제는 19세기 짬밥이 많이 쌓였다, 이 말이다.
“폐하. 이 목욕이…… 그냥 하는 그런 목욕이 아닙니다.”
“그럼……?”
“일단 안에서 옷 갈아입고, 반대쪽 문으로 들어가 보시죠.”
“으음…….”
게다가 내 명성도 있고 하니 일단 물에 들어가 보라는 말이 아닌 옷이나 갈아입어 보라는 말은 폐하께서도 순순히 들었다.
그러곤 안쪽 탕으로 들어섰는데, 이쪽은 남탕이었다.
그냥저냥 한 탕이 아니고 여기저기 숯을 피워 증기를 냈다.
“이건……?”
폐하의 말에 나는 준비했던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아마 이비인후과 친구가 듣는다면 날 죽이려고 들겠지.
그가 영국인이고 나름 충성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퍽 잔인하게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에는 이비인후과가 없다.
그렇잖아.
“숨을 들이쉬십시오. 코로.”
“흐으읍.”
“이 증기가 폐하의 코부터 해서 호흡기를 소독합니다.”
안 된다.
소독하면 죽는다.
하지만 뭐 습기가 코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 맞다.
한국에서는 비염 때문에 맨날 고생하던 사람이 하와이 같은 데 갔다 와서 싹 낫는 걸 봤다고 이비인후과 친구가 떠들어 댔던 것이 기억난다.
“정말…… 좀 개운해지는 거 같은데?”
“네, 비밀은 이 물에 있습니다. 얼굴을 닦아 냈던 그 물인데…… 제가 개발한 것입니다.”
“허어…… 확실히 물의 색도 신기하구만…….”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여느 대중목욕탕에 가면 한쪽 벽면에 무슨 무슨 물의 효과라고 해서 한 바닥씩 쓰여 있는 걸 본 기억이 있을 거다.
그것만 보면 목욕탕 물이야말로 무안단물 그 자체인데…….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목욕탕 사장님도 알 거다.
하지만 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뭔가 이 구수한 향이 나는 물을 보고 있노라면 건강에 좋아 보이지 않나.
“허어. 이것 참. 나도 모르게.”
폐하께서도 발을 담그고 계신다.
온도를 딱 맞추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센터가 약간 산지에 있는 바람에 춥기도 해서 한번 담그면 나오기가 쉽지가 않다.
알지만 입은 털어야 하기에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 들어가셔서 15분을 계셔야 합니다.”
“15분?”
“네, 그래야 이 약물에 있는 성분이 몸 안으로 침투해 더 젊어지십니다.”
“그 이상 있으면? 그럴수록 좋은 거 아닌가?”
“약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죠. 소 고환의 예를 보십시오.”
“아, 하하. 이해했네. 그래. 알겠네.”
15분.
그 정도는 있어야 이 더러운 영국 국왕의 피부 겉에 붙은 땟국물이 좀 말랑말랑해지지 않겠나.
‘오늘은 때를 밀 참이야.’
때밀이.
피부 건강에는 당연하게도 딱히 좋지 않은 행위다.
피부를 보호해 주는 성분까지 그냥 싹 다 깎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으로 뭔가 보여 주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
비용 효과를 생각해 봤을 때, 이 사람들이 위생을 지키게 된다면 때를 미는 게 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으음…….’
멀리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리스턴의 얼굴이 그리 밝지 못했다.
그 또한 아직 목욕을 하지 않는 인간이기에 그랬다.
가뜩이나 남성 호르몬이 넘쳐나는 사람이다 보니 냄새가 상당했는데, 그걸 향수로 덮는 데 도가 튼 인간이기도 했다.
-효과를 보면 닦는 겁니다?
-아니…….
-머리도 심어 줬는데 씻는 것도 못 해?
-그렇게 말하면…… 크윽…….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VVIP들의 결과를 보고 목욕재계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큰 희생이요 결심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건 리스턴의 입장이고 내게는 그냥 당연한 거다.
“험험. 15분이 다 됐네.”
고개를 돌려 보자 국왕께서 젖은 수건을 걸친 채 걸어 나오고 계셨다.
몸 생각은 끔찍하게 하는 양반이다 보니 모래시계만 보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폐하를 탕 옆에 마련된, 조선의 뛰어난 온돌 기술이 가미된 뜨끈한 돌침대 위에 엎드리게 했다.
“어어, 돌이 따뜻하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디서도 보지 못한 비방을 여기서 맛볼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하기야 자네가 허튼 소리할 사람이 아니지.”
“여기 엎드리시면, 이제 폐하의 피부에 붙어 있던 노화 덩어리들을 벗겨 드릴 겁니다.”
“그게 되나?”
“됩니다, 여기서는.”
그러곤 때밀이에 대해 설명했다.
어차피 다 거짓말이라 딱히 알 필요는 없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