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3)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3화(393/505)
393화 목욕 [2]
“이게…….”
때밀이는 내가 직접 훈련 시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긴 세신사는커녕 물로 씻는 사람도 없으니까.
여자는 여자가 밀고, 남자는 남자가 밀어야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별 자체보다는 근지구력과 인내심이었기 때문에 피부 관리실 직원보다도 선발이 어려웠다.
인내심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만 주시면 저는 뭐…….
-죽어라 하겠습니다.
-네? 죽는 것도 아닌데 돈을 주셔요?
이런 시대라 그랬다.
거의 뭐…….
일한다고 주는 게 아니라 생명 수당 정도로 받는 게 더 일반적인 세상이다 보니…….
그런 게 아닌데도 돈을 다른 곳보다 더 준다고 하자 경쟁률이 아주 치열했다.
런던 노동자들은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내가 갱단 두목 격이다 보니 질서 통제가 되었더랬다.
아주 잘 뽑아 놨다, 이 말이다.
거기에 더해 국왕의 옥체에 손을 대는 작업이다 보니 평소보다도 더 애를 썼는지 나온 때가 거의 뭐 칼국수다.
“이게…….”
원래 세신사는 물을 뿌려서 그걸 다 바닥에 떨구지만, 우리는 충격을 줘서 앞으로도 돈을 내게 하는 것이 목표.
아니, 계속 씻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알뜰살뜰하게 다 모아 놨더니 국왕께서는 아까부터 거기서 눈을 도통 떼지 못하고 계시는 참이다.
사실 자꾸 ‘이게……’만 하길래 풍이 왔나 싶어서 잘 봤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오버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럴 수 있는 나이라 그랬다.
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하려고 해도 가능한 시대가 아니지 않나.
막말로 내 치료를 받아 봐야 고혈압이 치료가 되나 고지혈증이 치료가 되나.
기껏해야 당뇨 정도인데 그것도 수치를 재 가면서 하는 건 아니다 보니 한계가 명확하다 할 수 있다.
“이게 내 노화 덩어리란 말인가?”
“그럼요. 제가 거짓을 논하겠습니까?”
“아니, 그런 말이 아니네. 그냥 너무 놀라서 하는 말이야. 허어.”
아무튼, 왕께서는 자기 때, 그러니까 각종 노폐물과 피부 각질 그리고 런던의 오염된 공기 및 외부 물질에 더해 비눗물까지 섞인 옅은 회색 빛깔의 무엇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디선가 본 거 같아서 유심히 보니 쇼츠 보는 사람 얼굴이었다.
그중에서 막 귀 파고 피지 째고 하는 그런 거 보는…….
원래 사람이란 신분과 상관없이 좀 더러운 걸 좋아하는 면도 있는 법이긴 했다.
그런 거에 푹 빠지다 보면 이비인후과를 하고 그러는 거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솔직해져야 한다.
자기 욕망에.
“거울을 보고 싶은데.”
“아, 네. 보시죠. 이 안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고맙네.”
아무튼, 국왕께서는 자기 모습을 보고는 안에서 또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이리저리 때가 타 있다가 다 벗기고 나면 아무래도 좀 보송보송해진 느낌이 들기 마련이거든.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보기도 다르다.
여기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너무 더러우니까.
“이거야 원…….”
“목욕이라는 것도 티에피영이 하니까 달라지는구만그래.”
“확실히…… 매일 오고 싶은 지경이에요.”
“하지만 정도를 지나치면 안 된다니, 관리만 받아야겠군.”
폐하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다들 신나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인데 머리 감고 목욕하고 했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아니, 짐승들도 물 끼얹을 때는 싫어하다가도 막상 다 씻고 나면 신나 하지 않던가.
아닌가?
우리 집 개는 혀 내밀고 막 뛰어다니던데 나는 반려견 훈련사가 아니다 보니 걔가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화를 냈던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좋아한다, 이 말이다.
“이거 근데 우리만 쓸 수 있는 건가?”
“아닙니다. 일일 최대 100명까지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홍보해 주시면 뭐…… 저야 좋죠.”
“100명이라. 그래, 좋은 건 추천해야지.”
“그러문입죠.”
나는 그들 앞에서 악덕 상인이라도 된 것처럼 두 손을 싹싹 비볐다.
보람은 있었다.
일단 리스턴도 씻기 시작했다.
제자들의 경우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그건 조지프 때문이다.
녀석이 이미 말도 안 되는 걸로 몸을 씻기고 있었기에 거기서 더 씻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미친놈도 리스턴은 무서웠는지 감히 건드리지 못했었는데, 그런 리스턴이 스스로 씻기 시작했다.
다만 머리는 아직이었다.
-아직은 좀 불안해서요.
-그럼 안 되지. 절대로 안 되지.
해서 머리는 우리가 수술용 모자로 따로 개발한 면화 모자로 덮은 채로 몸만 씻었다.
덩치가 산만 한 데다가 평소 활동이 적은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 때도 산더미만큼 나왔다.
“음…… 확실히 피부가 뽀얀데?”
“네, 근데 매일 미는 건 절대 안 되고, 2주에 한 번씩이 적당해요. 너무 밀면…….”
“어떻게 되는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명령하신 항상성이 깨질 수가 있어요. 아무래도 때를 밀 때 피부의 미세한 조직도 떨어져 나갈 수 있어서.”
“그럴 수가 있나? 그냥 좀 빨개지는 게 단데.”
“아프지 않았어요?”
“사내가 그 정도는 참아야지.”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튼 자네 말은 들어야지.”
목욕을 혐오하던 이들이 갑자기 목욕 예찬론자가 되어 왜 더 자주 못 씻느냐고 아우성인 상황.
그 꼴을 보고 있다 보면 약간 열받긴 하는데…….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다 보니 흐뭇한 것이 더 크다.
무엇보다 사회 지도층의 변화라는 게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요새 목욕이라는 것이 유행이라던데……?”
“프랑스병 걸려 뒈질 일 있나?”
“그러다 흑사병 걸려…… 프랑스병이면 차라리 낫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던데? 높은 분들은 다 씻는대.”
“예끼 이 사람. 실없는 소리 하지 말게.”
“그러니까 말이야. 구라 치다 걸리면 뒈져. 더더군다나 이건 공중보건과 관련된 말이 아닌가!”
뒷골목에서 이러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지경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여러 반발에 부딪혔을 거다.
워낙에 단단한 편견이 있으니까.
아니, 편견이라기보다 이건 차라리…….
관습이나 법에 가깝다고 보는 게 나을 지경이다.
“진짜지?”
“그렇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요새 아주 자주 못 씻어서 안달이시라는데?”
“근데 그러다 높으신 분들 다 돌아가시면 나라 망하는 거 아닌가?”
“그 유명한 피영시인이 하는 일인데 그럴 리가 있나.”
“하긴…… 돈 없는 게 죄지.”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거기서 말하는 목욕이라는 걸 해 보고 싶은데…….”
하지만 높은 사람들이 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단단한 법과 관습이라 해도 깨지기 마련이다.
이건 대단히 나쁜 예이지만, 담배가 처음 유럽에 번질 때도 그러했다.
사실 신대륙에서야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겠지만 여기서는 아니지 않았겠나?
애초에 이교도들의 문화이니 처음에는 악마의 연기라는 평도 자자했더랬다.
하지만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흡연을 시작하면서 그러한 담배에 대한 시선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이걸 생각하면 차라리 그 시절로 돌아갔으면 어떨까 싶어지는데, 아마 그랬다간 벌써 죽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지금도 이런데 그땐 더 했겠지.
아무튼, 이제 목욕은 적어도 런던에서만큼은 배척받는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시대를 읽어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다.
-K 목욕탕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둔 건물에 목욕탕을 열었다.
“왜…… P.S.가 아닌가? 그 문구만 박으면 막 팔리지 않나.”
작명을 두고 우리 우매한 블런델이 이렇게 물었다.
하긴 멀리 피부 관리실, 그러니까 항노화 센터도 정식 명칭이 P.S. 황노화 센터지 않나.
평신 항노화 센터라고 읽으면 되는데, 갑자기 후대의 한국에서 나를 어찌 생각할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무튼, 블런델의 말대로 탕약도, 운동기구도 P.S.만 박으면 정말이지 사람들이 주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비싼 돈을 주고 사 가고 있다.
샤X이나 루이비X, 에르메X 마케팅이 사실은 주술이었나 싶을 정도로 흡사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목욕탕은 서민을 위한 거잖아요. 싼 데다가 그런 걸 박으면 안 되지.”
“왜……? 그래도 인기가 많을 텐데.”
“아무나 향유할 수 없는 마크라는 게 마케팅의 핵심입니다. 지금도 짝퉁 잡아내느라 우리 애들이 얼마나 고생입니까.”
“그…… 그런가?”
“그렇죠. 마크가 비단 자수라 망정이지 싼 실로 했으면 진짜 다 속았을 거예요.”
아예 명품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이 말이다.
블런델의 말처럼 아무 데나 박았다가는 명품으로서의 힘을 잃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 비밀을 알아낸 잡놈들이 짝퉁을 만들고 있는데, 다행히 잘 팔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팔린다 해도 상류층보다는 상류층 흉내를 내고 싶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팔리고 있다.
왜?
사실 우리 제품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상표라 그렇다.
비단실을 사용하기로 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역시나 주님께서 나를 보우하고 계신단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혹 벼락 맞지 않을까 방금 하늘을 보긴 했는데 조용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보우하시는 거 맞는 거 같다.
“그리고 보십쇼. 어차피…… 대중들은 상류층을 따라 하고 싶기 마련이에요. 다들 오지 않습니까.”
“근데 좀 후지던데…….”
“아니, 그럼 이 돈 받고 바닥에 대리석 깔길 바랍니까? 그건 도둑놈이지.”
“왜 나한테 화를 내나. 자네 논리가…… 돈 많은 사람에게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말도 안 되는 물건을 팔고 그렇게 얻은 이익으로 서민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거 아니었나.”
오.
듣다 보니 맞는 말인데 너무 맞는 말이라 그런가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해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더니 당황한 블런델이 주절대기 시작했다.
“아니…… 명백히 더 후지…… 후지잖나. 일단 사람들이 너무 한꺼번에 탕에 들어가던데…….”
“밖에서 안 닦으면 사형이니까 괜찮아요. 물은 깨끗하게 유지가 됩니다.”
“그래도 이러다 거기서 병이라도 번지면 어떻게 하나.”
“그럼 페이션트 제로. 즉 병을 갖고 온 놈을 찾아서 조져야죠.”
“자네…… 책임은 없고?”
“미아즈마 들고 온 놈이 잘못이지. 왜 제 잘못입니까. 목욕하고 더 건강해졌다는 느낌, 못 받아요?”
“받긴 받네만.”
“그럼 돈이나 법시다.”
나는 블런델을 완벽하게 논파하고는 꾸역꾸역 밀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합리적인 가격이라지만 런던 평균 임금을 고려해 보면 그리 싼 가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많이도 오고 있다.
심지어 들어가기 전에 홀딱 벗기고 병이 있나 없나 육안으로 체크하고, 통과 못 하면 나가야 되는…….
사실상 손님이 아니라 손놈 대우를 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만큼 목욕 문화가 강력하고 빠르게 자리하고 있다, 이 말이었고 동시에 전체 위생 상태가 개선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좋구만…….’
세상에 씻기 위해 줄 선 런던 놈들이라니.
처음 런던에 온 내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군가 말해 줬다면, 메스로 사지를 찢어 놨을 텐데.
정말이지 감개무량한 날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