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4)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4화(394/505)
394화 백내장 [1]
나의 충직한 부하 아니, 제자 존 스노.
녀석의 노력 덕에 우리는 런던의 부유층 중 이가 잘 썩는 집안 50여 가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의 임상실험에서는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실험 진행이 안 되기 마련이지만 내가 누군가.
런던을 한 손에 쥐고 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 주술사 김태평이다.
심지어 여러 가지 정황상 주님이 심심하면 접신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마당인데 어느 누가 감히 내 ‘초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나.
“이것 참……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나도 어려운 걸음을 해 주신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단 행사 때만 입는 비단 장포를 걸쳤다.
원래는 여기에 갓도 써 볼까 했는데, 말총을 구하기가 어려울뿐더러 구해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어 관두었다.
우리 아버지도 말만 양반 출신이라고 하셨지 실제로 조선에서는 갓을 써 보신 적이 없다 보니 더더욱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있다.
이제 와 내가 실은 상놈의 자식이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보면 별일도 아니긴 했다.
높은 확률로 전생의 나도 족보를 샀을 테니까.
-자 다음 시간에는 각자 자기 조상 중 위인전에 있는 분에 대해 조사해 오세요.
돌이켜 보면 이런 숙제 내주던 선생님이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양반 비율이 조선 초기에는 고작해야 1, 2%지 않았나.
후기에 가면 이런저런 루트로 족보를 사는 바람에 70%에 육박했다고는 하지만, 족보를 산다고 남의 조상이 내 조상이 되는 건 아니잖아.
아무튼, 이야기가 샜는데…….
나는 복장부터 예의를 갖춘 채, 몰려온 임상 시험 대상자들에게 손수 불소수를 따라 주었다.
“이건…….”
“남들에게는 비밀로 하십쇼. 이걸로 가글하면 앞으로 충치가 찾아올 틈이 없을 겁니다.”
“허어…… 진짜 성수로군요!”
“하하. 성수는 무슨.”
“이런 게 성수가 아니면 대체 뭐가 성수란 말입니까.”
“비밀입니다, 비밀.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네네.”
VVIP 행사에서도 느낀 바 있는데, 사람들은 내가 이런 복장하고 그럴싸하게 떠들면 다 믿는 경향이 있다.
이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믿음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었다.
바로 지속될 가능성이 좀 적다는 건데…….
나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다만 가글의 효과를…… 그러니까 축복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님 앞에서 약속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 네네. 물론이죠. 기도를 하면 됩니까?”
“기도를 하되 그냥 하면 안 됩니다.”
“그, 그렇군요.”
“우선 중요한 것이 시간입니다. 다들 적으세요. 주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심산입니까?”
“아, 아닙니다!”
내 말에 각 집안 대표 격으로 들어와 있던 이들이 종이와 펜을 집어 들고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진중한 태도를 보고 있자니 조금 미안해졌다.
사실 주님의 말씀은 아니어서 그랬다.
하지만 그에 준할 만큼 중요한 말씀이기는 해서, 나는 이내 곧 뻔뻔한 얼굴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드리십시오.”
“네네. 좋은 말씀입니다.”
“저희는 이미 식전 기도를…….”
“씁. 끝까지 들으셔야지.”
“죄송합니다.”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면서였다.
얼마 전 앨프리드네 아버지 그러니까 패트릭 아저씨와의 대화였다.
-아무리 그래도…… 물을 길어 오는 건 좀 아닐세. 거기 금광이 터져서 금이 줄줄 나오는데 그 자리에 물을 싣자니. 그게 무슨 소린가.
불소 그러니까 축복이 깃든 물이고, 그로 인해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물이란 말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하긴 했다.
세상에 그 어떤 축복이 감히 금과 비빌 수 있겠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런던 시민들의 충치를 생각하면…….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수를 생각해 보게. 일단 대외적으로 물은 계속 들여오는 것으로 할 거니까.
-무슨 말인지?
-물이야 뭐…… 생긴 것만 봐서는 구분이 안 되지 않나.
대화 끝에 큰 깨달음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긴 했다.
물은 다 같은 물이었다.
뭐…….
불소가 있냐 없냐가 핵심이 되기야 하겠지만.
양치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썩는 사람에게라면 몰라도 양치도 안 하는 사람에게 불소수가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을 거 같지만, 일단 뒤로 치워 두고.’
좋게 좋게 생각해 보니 뭐가 되었건 간에 사람들의 충치를 예방하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불소수가 아니라!
“식후에 기도를 합니다. 식전 기도에 더해서 하는 것이죠.”
“그건 좀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닐까요……?”
“의미가 다릅니다. 식전 기도는 음식을 주심에 대한 감사고, 식후 기도는 충치 예방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 아하.”
“그래서 기도의 절차도 다릅니다. 우선 이걸 받으시죠. 원래는 돈 받고 파는 건데, 오늘만 드립니다.”
“어…….”
해서 나는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칫솔을 나누어 주었다.
다들 부유한 사람들이고, 칫솔은 사실상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또 지금 기술로는 오래 쓸 수 있는 칫솔은 아예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곧 다시 살 거라는 생각에 좋은 칫솔을 주었다.
품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이거…… P.S. 물건 아닙니까?”
“여기서 이런 것도 만듭니까?”
“네. 만들죠.”
“가,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상표 얘기다.
브랜드 하나 달았다고 좋은 칫솔이라고 주장하는 거, 그거 너무하는 거 아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똑같은 짓이 21세기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 아주 잘 먹힌다는 걸 감안하면 나만 욕하면 안 되는 일이다.
이건 그냥 인간 본성과 관련된 일인 거 같으니까.
아무튼, 나는 사실 살면서 이 비슷한 물건을 한 번쯤은 봤지만 무시하며 살아왔을 것이 뻔한 인간들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여기에 이걸 묻히세요.”
“이건……?”
“저희가 만든 특제 소금입니다.”
“소금이 다 같은 소금 아닌가요?”
“죽염입니다. 아예 달라요. 향을 맡아 보세요.”
“오…… 향긋합니다.”
“성스러운 향이죠.”
“그, 그렇군요.”
아까 살짝 말한 대로 칫솔 자체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나름 치과 쪽에도 선구자들이 있어서, 양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하지만 돼지 털 같은 걸로 만든 칫솔은 아무래도 세계 정복을 위해 뛰어들고 있는, 백인들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벨 에포크 시대의 상류층에게 어필하기엔 너무 후졌다.
반면에 빈민들에게 어필하기에는, 그들에게 있어 충치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치약이 없다.
계면 활성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지만 그게 있어야 깨끗이 닦이지 않는가.
허나 먹고 뒈지려도 없더라고.
해서 이번에도 나는 광고에서 힌트를 얻어 죽염 치약을 만들어 보았다.
“이걸로 이렇게 문질러 닦아 보세요. 옳지.”
“이게 양치…… 아닙니까?”
“양치? 비슷하게 보일 수 있죠. 하지만 방법이 다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올바른 방법이고 남들이 하는 건 틀렸습니다. 그래서 이가 계속 썩는 것이죠.”
“오…….”
사실 나는 ‘양치는 목자요 너희는 양이니’라는 말씀을 인용해서 양치질을 설명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더랬다.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인데, 양 치는 것과 양치질을 연결하는 건 좀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그게 가능할 거 같지도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는 단어 자체가 다르거든.
뭐…… 그래도 내가 우기면 이제 와서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긴 할 거다.
-수녀님이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십니다.
추기경이 반대하던, 아니, 지금도 반대하는 생리대 그거…….
수녀님들부터가 적극적으로 쓰고 계신다.
사실 성경에 생리대 차지 말라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생리하는 여자 건드리지 말라는 구절이 나오는 걸 가지고 확대 해석 했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생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지 않나.
뭔가 애매모호하다, 이 말인데 그에 비해 생리대의 편리성은 아주 직관적이니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수녀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봉사하느라 바빠서 의외로 활동성이 아주 중요한데, 생리대가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주님께서도 나와 함께하시지.’
그 수녀님들이 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데, 설마하니 조금 죄짓는다고 뭐 어떻게 되겠나 싶기도 하다.
“옳지. 잘하네.”
“이렇게 하면 되나요?”
“네. 이렇게 하면 이 성수 가글이 온전히 효과를 보일 수 있게 됩니다.”
“허어…… 좀 어렵긴 하네요.”
“그럼 성수가 어디 그렇게 간편하기만 한 줄 알았습니까? 그런 건 저기 뭐야, 중세 시절에나 가졌을 법한 믿음이죠. 때가 어느 땐데.”
“하긴…… 그렇긴 하네요.”
하여간, 그런 식으로 나는 처음 실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는 불소수를 주고 가글을 시킨 후 양치까지 가르쳐서 아침저녁으로 철저히 닦도록 교육했다.
안 그러면 밤에 주님 혹은 내 부하가 찾아갈 거라고 협박도 했다.
주님이야 의사소통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보니 아무래도 부하를 주로 보냈는데, 의외로 양치 안 한 날 꿈에 주님께서 현몽하시어 혼냈다는 간증도 이어졌다.
사실 의외는 아니고 내 끄나풀들이 한 말인데 효과가 역시나 있었다.
“실험한 사람들…… 이렇게 안 하는 가족 구성원들에 비해 충치 발생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존 스노가 결과를 보고 흥분해서 달려왔을 정도였다.
뭐…….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더랬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똑같은 걸 먹는데 누구는 양치를 하고 누구는 양치를 하지 않는다면, 양치를 안 하는 사람의 이가 엉망이 되는 것은 신의 섭리다.
“자자, 그럼 물을 팔죠.”
“이건…… 그냥 업턴에서 길어 온 물 아닌가.”
“적어도 런던 물은 아니죠.”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나…….”
“제가 손 얹고 기도했으니까 이제 성수입니다.”
“근데 우리 미국 갔던 게…… 이가 잘 안 썩게 만드는 물 때문에 갔던 거 아닌가? 이럴 거면 미국은 왜 갔나.”
마음 같아서는 계속 성수 아니 불소수를 공급하고 싶었지만, 금 대신 물 실어 오는 건 미친 소리라는데 어쩌겠나.
나라도 다른 생각이 들었다면야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듣다 보니 역시 금이 좋지 싶긴 했다.
막말로 내 전생에 불소를 막 끼얹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양치만 잘해도 이 안 썩고 잘 살 수 있다, 이 말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는 100세 시대가 아니라 좀 적당히 관리해도 이 썩기 전에 갈 수 있다.
“왜 대답을 안 해.”
“네?”
“아휴.”
나는 답답해하는, 그러나 머리 심어 준 이후로 내게 감히 대들지 못하게 된 리스턴을 두고서 맹물 아니, 성수를 팔았다.
이 축복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양치질을 아니, 식후 기도를 해야 한다고 알려 주면서였다.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된 나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고, 옆에 있던 리스턴도 기분이 풀렸는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윌리엄 터너가 다가왔다.
장 피에르를 분장시켜 주었던 화간데, 생각보다 더 거물이었던지라 나는 최선을 다해 환영해 주었다.
“오, 어쩐 일이에요?”
“고민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파서?”
“네.”
“잘 오셨네. 들어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