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6)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6화(396/505)
396화 백내장 [3]
백내장.
쉽게 말하면 수정체가 자외선 등에 의해 하얗게 변색이 되고 또 굳어지면서 앞이 안 보이게 되는 질환이다.
실명이 된다, 이 말이다.
유병률이 낮으면 또 모르겠는데 더럽게 높다.
50세 이상에서 50%, 60세 이상이 되면 70% 이상이 백내장에 걸리고, 80대 이상이 되면 그냥 100%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3대 실명 질환은커녕 주요 순위에도 못 끼는데, 그 이유는 백내장 수술이 워낙에 발달을 해서 그렇다.
내 주변을 봐도 그랬다.
백내장 걸렸다고 해도 교수님들 반응은 대개 이러했다.
-아, 수술해야겠네. 귀찮게.
뭐 보통 의사들이 수술에 있어 더 덤덤한 편이긴 하지만, 아무리 의사들이라 해도 큰 수술을 앞두게 되면 오히려 더 떠는 경우도 있거든.
그걸 감안할 때, 확실히 백내장에 대한 인식은 그리 심각했던 거 같진 않다.
내 친구야 뭐 30대 초중반에 백내장 수술을 했으니, 수술 자체보다는 자신이 이렇게 늙었나 싶어서 충격을 받았었지만 아무튼.
“백내장…….”
지금 눈앞에 있는 윌리엄 터너가 보이고 있는 반응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 말이다.
“하나님 맙소사. 주님……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그는 거의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굴고 있었다.
수정체 빼고 렌즈 끼면 좀 불편하기 해도 다시 앞을 볼 수 있는데도 그랬다.
물론 이따위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왜?
나도 이제 19세기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거든.
이 시기 과학은 말 그대로 중구난방으로 튀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바다와 철도에는 벌써 증기선과 증기 기관차가 달리고 있지만 의학적인 부분에서는 중세 시절 또는 그보다도 못한 수준의 행위가 성행하는 기기묘묘한 시대라는 얘기다.
‘수정체 대신 낄 만한 게…… 없겠지?’
무엇보다 우리 몸에 무언가를 낑겨 넣는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게 뭐건 간에 이물질이지 않나.
놀랍게도 21세기 이전의 인류에게 있어 이물질은 무조건적으로 몸에 해롭거나 위험한 물질이었기 때문에 면역 반응이라는 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푸직 하고 넣어 준 부위가 박살이 난다, 이 말이다.
‘아니…… 그 전에 감염이 문제가 될 거야.’
소독…….
조지프가 뭔가에 홀린 놈처럼 소독을 하고 있지만 그게 정말 멸균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멸균이라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운 개념의 일이라 그랬다.
특히 눈처럼 예민한 곳에 박아 넣기 위해서는 더 특별한 행위가 필요할 텐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우리의 소독은 많이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아…… 아아. 안 돼…….”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윌리엄 터너는 절규하고 있었다.
이게 뭐 방법이 있으면 절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는 뭐가 안되지 않은가.
해서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자, 일단 기운 차리시고.”
“선생은 모릅니다, 선생은. 나는 눈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소용은 없었다.
눈이다 보니 이해는 갔다.
그리고 직업도 화가지 않나.
사실 눈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마는서도, 화가는 말 그대로 보이는 걸 그리는 직업이지 않나.
그나마 윌리엄 터너는 낭만파의 거장으로 딱 보이는 것만 그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아직 입체파는커녕 인상파도 등장하기 전인 시대다 보니 위에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닐 거다.
“일단 제가 수를 내 보겠습니다.”
“수를……? 주술을?”
“뭐가 되었건 말이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려요.”
“으으음…… 주술이라…….”
“주술이 아니라 수술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피영시인의 주술이라면…… 마음이 좀 놓이는군요.”
안과는 내가 진짜 자신 없는 분야긴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 탓일까?
어쩐지 지금 시점에는 그래도 내가 제일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자감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순리가 그랬으니까.
해서 뭔가 해 보겠다고 하니, 그제야 윌리엄 터너는 만족한 얼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왔던 때처럼 하인들에게 있는 대로 성질을 내면서였다.
보통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더 성질을 낼 텐데, 저 사람은 강자 앞에서만 얌전할 뿐 약자 앞에서는 늘 지랄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별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요란하게 사라져 가는 윌리엄 터너 마차를 돌아보다가, 이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네이.”
갱단 녀석들 중에서도 꽤 똑똑한 놈들로 가려 뽑은, 이른바 내 친위대 같은 놈들이었다.
그래 봐야 고등 교육이 희박한 시대이니만큼 머리 쓰는 일에 써먹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시키면 그 일을 곧이곧대로 해내는 재주는 있는 놈들이었다.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해야 할까?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닌 시대니 꽤 귀한 놈들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런던에 안과 의사들도 있나?”
아무튼,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다 보니 아예 기본적인 것부터 물었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눈은 별문제가 없었더랬다.
“아…… 있죠.”
“눈이 불편하십니까? 제일 잘하는 놈으로 모셔오겠습니다요.”
내 말에 몇몇이 과잉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놈들이긴 했다.
우리가 월급이 좀 후한 편이거든.
심지어 일도 그리 험하지도 않다.
가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긴 한데, 리스턴 덕에 확률이 극히 낮다.
런던 제일검, 소드 마스터와 함께하는데 어느 누가 감히 대적을 하겠나.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이들은 돈도 많이 받고 죽을 염려도 일반적인 공장 노동자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개꿀 직장인이다.
“아니, 안내해 봐. 차례차례 가 보자. 어떻게 진료하는지, 그 모습을 봐야겠어.”
“아하. 네,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놈들을 따라 마차에 올랐다.
이전엔 런던 거리에 나설 때마다 과하다 싶을 만큼 주변을 돌아봐야 안심이 되었었는데, 요새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안 된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히익.”
“살려 주십쇼.”
이상하게 눈만 마주치면 쫄아서 튀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엔 교육깨나 받은 이들도 있는데, 그냥 튀기만 하면 모를까 도망가다 넘어져서 응급실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요새는 나도 좀 주의를 하는 편이다.
어차피 사방 경계는 부하 놈들이 하고 있으니 별 염려는 없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업보를 쌓으면서 사는 사람도 아니기도 하고.
당장 거리에 도는 소문들만 해도 대부분 나를 찬송하는 얘기들이지 않나.
물론 일이 이렇게 되면 위정자들 입장에서는 불안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이상한 짓 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는데 나는 공교롭게도 처음부터 그들과 손을 잡은 마당이다.
다그닥.
그렇게 나는 런던 거리를 달렸다.
최근엔 바로 교외로 달리거나 아니면 켄싱턴 안에서만 돌아다녀 버릇해서 그런가, 유독 거리가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휴…….’
헐벗고 못 먹은 티가 너무 나는 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채 마차를 보고 있다.
누군가는 그 틈을 타 옆에 있던 이의 호주머니를 털기도 했는데, 걸려서 얻어맞는 놈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우연찮게 보인 골목에서는 칼 든 놈 둘이 행인과 대화 중이었는데, 그리 좋은 내용을 나누고 있진 않을 거 같았다.
다행인 것은 이 모든 살풍경을 흐릿하게 해 주는 런던의 대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게 처음 보면 기겁할 수도 있는데 자꾸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멀리 떠 있는 해가 낭만파 그림에 나오는 그것처럼 멋져 보이는 것도 그렇고…….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
“다 왔습니다. 여기가 꽤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 보이네.”
하여간, 얼마 달리지 않아 우리는 한 건물 앞에 멈추어 설 수 있었다.
앞에는 의사의 유명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안과다 보니 제법 사는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도 있었다.
새치기하기가 어렵다는 얘긴데, 그래도 괜찮았다.
“피영신…….”
“피영시인이다.”
“어쩐 일이지?”
“눈이 안 좋나?”
“그건 안 될 일인데. 런던의 보물 같은 존재가…….”
“야야,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그러다 저주받아!”
다들 나를 아는데, 무섭게 알아서 그렇다.
나는 그렇게 일말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건물 안은 뭐 이 시기 건물들이 그러하듯 고즈넉한 느낌이 있었다.
“줄을 서셔야…… 아.”
“안에 있나?”
“네네. 약속은…….”
“그냥 왔는데, 그럼 못 보나?”
“아니…… 아닙니다. 들어가십쇼.”
내가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동안 내 부하들이 대신 대화를 나눈 덕에, 나는 별 제지 없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에는 환자가 있었는데, 일단 첫인상은 생각보다 밝다는 것이었다.
‘보통 안과는 어둡지 않나?’
생각해 보니까 안과에 가 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던 거 같다.
알레르기가 있다 보니 간혹 결막염을 앓아서 그렇다.
하여간, 그렇게 가 보면 다른 진료실과는 달리 좀 어둑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여긴 그냥 밝기만 했다.
“어…….”
“응.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환자 봐요.”
“아니…… 그, 네.”
안과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키다가, 내가 손짓을 하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내 말에 따라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구경했다.
“근데 어떤 환자입니까?”
“아, 네. 이 환자는 단순 염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넣어 주고 있죠.”
“기름을……?”
“네. 장미 기름에 제 특제 약을 섞었죠.”
“그런 거…… 안 하면 안 되나……?”
내가 봐도 결막염 환자 같았다.
이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나도 많이 겪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의사가 넣어 주고 있는 안약은 맹세코 처음 보는 종류의 안약이었다.
일단 색부터가 좀 불안했다.
안약이 왜 붉냐고.
“하하. 안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말만은 맞기는 해서 일단 닥치고 있었다.
‘그래, 뭐…… 관찰하러 온 거니까.’
그사이 환자는 으악 하더니 ‘이제 낫겠죠’라고 말하곤 나갔다.
다음으로 들어오는 환자는 훨씬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뭔가…….
불안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아, 오셨구만. 그래…… 오신 김에 수술도 구경하시겠습니까?”
“아, 수술? 무슨 수술을 하죠?”
“백내장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심하죠.”
그러거나 말거나 안과 의사는 환자를 우악스럽게 자리에 앉히고는 등불로 눈을 비추었다.
그러자 윌리엄 터너에게서 관찰했던 눈동자와 거의 흡사한 형태의 눈동자가 떴다.
‘이러면 백내장이구나.’
그와 동시에 안과 의사와 내 부하 놈들의 눈도 봤는데 확실히 색이 달랐다.
환자의 눈은 하얗게 변색되고 있었다.
“수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네. 여기서 해야죠.”
“음…… 그래.”
다시 한번 불만이 생겼지만 기왕 닥치고 있기로 한 거 계속 있자는 생각에 일단 잠자코 있었다.
그사이 의사는 수술 도구를 들고 왔다.
아무리 봐도 바늘 하나밖에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