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7)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7화(397/505)
397화 백내장 [4]
“흐으으…….”
환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눈앞에서 바늘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제는 마취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고집쟁이 런던 놈들이 다른 것들은 그렇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안 바꾸면서 마취는 곧잘 쓰고 있다는 것도 위안이었다.
‘뭐…… 이건 완전 수술 유인책이니까.’
‘시방부터 네 팔다리를 자를 텐데, 그냥 참아야 합니다’랑 ‘마취가 있습니다’는 많이 다르지 않나.
만약 마취가 없는 세상이었다면 우리 교수님들도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그렇게 초연하진 못했을 거 같다.
세상에 눈 수술을 마취도 없이 그냥……?
물론 국소마취로 그냥 막 한다고 듣긴 했지만, 하여간 통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끼리릭.
마취 안 하는 병원은 다 ‘망했다’로 귀결이 되는데, 이 병원은 망하기는커녕 꽤 장사가 잘되는 병원이었으므로 당연히 마취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스 마취를 쓰고 있었는데 어째 좀 어설펐다.
앨프리드가 같이 왔었다면 아마 뭐라고 했을 거다.
선배는 마취 부심이 있으니까.
‘뭐…… 마취는 되겠네.’
양이 좀 많기는 할 텐데, 그래도 마취가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앨프리드의 보조 기구가 없다 보니 가스가 좀 옆으로 샜다.
의사보다 더 떨어져 있던 내게도 가스 냄새가 날 정도였는데, 의사는 아예 좀 취한 것처럼 보였다.
말리려고 했는데, 직원들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늘 그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음…….’
나는 원래 한번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다.
아까 말리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있었다.
뭐…….
남들이 망하면 내가 더 두각을 나타낼 수 있으리란 계산이 없지는 않았다.
환자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맨정신에 바늘로 눈알 후빔을 당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그런 마음이 싹 가셨다.
아무튼, 환자는 가스를 흡인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였기 때문에 약간 비스듬할지언정 자세가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보통은 누워서 하지 않나……?’
빛을 위에서 쏘니까, 그게 더 편할 터였다.
일단 나는 단 한 번도 환자를 앉혀 놓고 수술해 본 적이 없었다.
아, 이비인후과 같은 과에서는 피가 기도로 넘어갈 수 있으니 국소마취 수술을 할 때 간혹 앉혀서 한다고 듣기는 했다.
편도 수술을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
나는 우연찮은 기회에 학회 발표용 영상이 아니라 원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으아아아아아.
-어어, 혀 가만히 있어요! 입 다 날아가!
발표용 영상은 음 소거가 되어 있던 반면에 원본은 대화가 담겨 있었다.
어쩐지 모골이 송연해져서, 나는 내가 언젠가 편도 수술을 받게 된다면 반드시 전신마취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더랬다.
그 대신에 트럭에 치여서 19세기로 오게 되었지만 아무튼…….
“덕분에 마취도 하고, 많이 편해졌어요. 예전엔 바늘만 집어 들면 환자가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반대편 눈을 찌른 적도 있다니까요, 하하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의사가 웃음 가스를 마셔서 그런가 상당히 풀어진 얼굴로 껄껄 웃었다.
취한 것이 틀림없다 여겨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대편 눈을 찔렀다는, 명백한 의료사고에 대해서 이렇게 함부로 고백할 리가 없다.
‘아니, 아닌가?’
19세기임을 감안하면 뭐…….
사람 죽은 것만 아니면 바늘로 눈알 좀 찌른다고 문제가 생길 거 같진 않다.
상대가 지체 높은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마취가 없던 시절에도 높은 사람들은 적어도 반대편 눈이 찔릴 일은 없었을 거 같다.
사비를 털어 힘이 장사인 사람들을 데려오거든.
수술할 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잡아 달라고 하려고.
참…… 새삼스럽게 끔찍한 세상이었다 싶다.
마취가 없는 세상이라니.
‘그래서 내가 외과 하면서 회귀 꿈을 접었던 것도 있지…….’
중학교 때 보면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겹치게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낑겨 놓고 보던 애들 꼭 한둘은 있지 않나.
그게 나였다.
그러다 가끔 내가 주인공처럼 다른 세계에 간다면 어떻게 할까를 상상하면서 시간을 때운 적도 많은데, 거긴 마취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몰입도가 확 떨어졌더랬다.
그래도 어찌저찌 참으면 되지 않나 했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역시 아니다.
안 돼, 그건.
“자, 보십쇼. 이 바늘이 이게 특제입니다.”
“음, 그런가……?”
“그럼요. 끝이 엄청 뾰족하죠?”
“아, 그렇구만. 주삿바늘 같네, 꼭.”
딴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의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까부터 들고 있던 바늘을 보여 주면서였다.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아주 날카로웠다.
바늘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 시기 세공 실력을 감안해 보면 이건 꽤 신경 쓴 물건이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날카롭지 못하다.
이렇게 얇지도 않고.
“자, 보세요. 백내장이라는 게 수정체가 하얗게 변색이 되는 거거든요. 모자란 놈들이 꼭 그럼 하얗게 된 걸 다시 검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물감을 넣기도 하고 하는데…….”
“그런 짓을 합니까?”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까보다 더 정중해진 태도를 취하고서였다.
그러자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는 웃음 가스에 의해 좋은 기분이 이어지고 있는 의사가 하하 웃었다.
“별짓 다 하죠. 근데 해부해 보면 수정체가 원래는 투명하지 않습니까. 헛짓이지.”
“그게 맞죠. 못 하게 해야 할 거 같은데……?”
“그게 되겠습니까. 어차피 떠돌이들이 하는 짓인데요.”
“아, 그렇군.”
떠돌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진짜로 이 시기 의사들 중에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특히 지방에는 그런 놈들이 진짜 많았는데, 말이야 아픈 사람 찾아 떠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한자리에 계속 있다가는 맞아 죽을까 봐 도망 다니는 거다.
생각해 봐라.
사람 눈알에 검은색 물감을 넣으면…….
일단 안 보이는 건 둘째치고 살 수 있겠나?
가뜩이나 이 시기 물감은 그 자체로 독극물인데?
“그 대신 제가 따르는 방식은 수정체를 제거하는 겁니다.”
“아…… 그건 옳게 된 방식 같은데. 자세히 봐도 되나요?”
“그럼요. 보시죠.”
“감사하네요.”
그에 비하면 이렇게 런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실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해리조차도 지방에서는 그 인간 얼굴 보려고 올라오고 그랬다더라고.
아무튼, 나는 수정체 제거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왜 앉혀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등불로 빛을 비춰야 하다 보니 누워 있는 거보다는 이게 더 나아 보였다.
우리 수술이야 큰 수술이고 수술방이 따로 있어 사방에 등불을 띄워 놔서 그림자 지는 걸 최소화하지만 이렇게 사람 하나가 서서 등불을 비춘다면, 그렇게 하면 그림자 때문에 하나도 안 보일 거 같다.
푹.
사람이 다른 사람 눈에 뭔가 한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오감이 다 중요할 텐데, 시각이 그중에서 제일 중요하잖아?
이건 이비인후과 의사였던 친구도 인정한 바다.
눈이 안 보이는 것과 귀가 안 들리는 것.
둘 다 너무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전자의 난이도가 훨씬 높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진짜 별 망설임 없이 푹 찔렀다.
‘와…… 후련하게 찌르네.’
어떤 표현이 어울릴까 고민했는데, 후련하다는 게 맞을 거 같다.
세상에…….
“잘 보세요.”
“아, 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으려니 의사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사이 의사는 바늘로 계속 눈을 찔렀는데, 잘 보니 홍채 옆으로 찔러 넣고 있었다.
문제는 등불 때문에 홍채가 수축했다는 점인데, 이렇게 되면 정작 수정체는 잘 안 보일 텐데도 망설임 없이 푹푹 찔렀다.
바늘로 점을 계속 찔러가면서 칼처럼 쓰는 모양인데…….
푹.
그렇게 찔린 수정체가 점점 너덜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흔들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빼나?’
어떻게 살살 잡고 흔들면 빠질 것도 같았다.
일반 수정체와는 달리 백내장에 걸린 수정체는 딱딱하니까.
수술 시점을 놓치면 아예 실명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지 않나.
딱딱해진 수정체 때문에 안압이 오르면 2차 녹내장이 오면서 시신경이 죽어 버린다.
“응?”
허나 의사는 겸자 비슷한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아까부터 들고 있던 바늘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해서 주변을 돌아봤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기구라고는 바늘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바늘 소독은 아까 그게 단가?’
불로 잠깐 달구었다가 물에 식혔는데, 조지프가 봤다면 아마 살인 났을 거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기로 하기도 했지만, 일단 수정체를 제거할 거니 괜찮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옳지, 이제 끝이네.”
그때 의사가 바늘을 고쳐 쥐고는 뒷면을 이용해 지금껏 분리한 수정체를 밀기 시작했다.
제거하려면 당겨야 하는데, 밀고 있었다.
“뭐 하시는……?”
“아, 해부해 보면 알 텐데…… 눈 안은 유리체라는 액체밖에 없어요. 그 안에 가라앉히면 됩니다.”
“아니, 빼야죠.”
“빼? 아, 하하. 잘 모르는구만. 이 홍채라는 기관 때문에 안 나와요. 다 잘라야 하는데 그럼 피가 많이 나고 성가셔. 그냥 밀어 넣으면 환자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좋지.”
“아니.”
나는 마침내 내 맹세를 꺾고 제지하려고 했으나 너무 늦은 참이었다.
이미 수정체는 똑 소리와 함께 환자의 눈알 안으로 떨어지고 없었다.
“아.”
“이제 됐네. 휴. 안약 가져와.”
“네.”
내 탄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는 아까 다른 환자에게 넣어 주었던 정체불명의 붉은 안약을 환자의 눈에 넣어 주었다.
수정체가 사라진 참이었기 때문에 이게 공막으로 흡수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눈알로 들어가는 것인지 헷갈렸다.
“이렇게 하면…… 환자 괜찮습니까?”
“한 절반은 삽니다.”
“절반은……?”
“수술이 원래 그렇죠.”
문제는 그게 아니라 감염이었다.
수정체가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건 원래 있을 자리에 있기 때문 아니겠나?
그걸 눈알 안에 밀어 넣는 순간,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그나마 현대에는 항생제도 있고 정 안 되면 안구 적출이라도 되겠지만 여긴…….
모든 사람이 하후돈처럼 강한 게 아니지 않은가.
해서 물어보니 역시나였다.
의사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다음 환자를 불렀다.
그렇게 안과 진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어지고 있었다.
“이걸로 또 합니까?”
“그럼요.”
“소독이라도 해야지.”
“불로 달구지 않습니까. 이거 교수님 병원에서 알려 준 지침대로 하는 겁니다.”
“하…….”
소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뭐…… 할 말은 없었다.
어차피 제대로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할 거 같아서 최소한의 방법이나마 알려 주고 있었는데, 그걸 따르고 있었으니.
게다가 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수술법이지 않은가.
“다른 데도 가 보자.”
“네.”
일단 여긴 글렀으니 다른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나조차 문제점만 보일 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