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8)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8화(398/505)
398화 백내장 [5]
나는 내 부하들과 함께 서너 군데를 더 돌았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것은…….
끔찍하기만 할 뿐, 딱히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놈이 대체 뭘 보면 끔찍함을 느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아마 무서운 영화나 징그러운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 내게 공감할 수 있을 거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그 존재를 인식하는 부위가 손상되면…… 더 끔찍함을 느낀다고 했지? 그래서 얼굴을 찌르거나 훼손시키는 범죄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교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어.’
내가 이러한 것을 어찌 아느냐?
의대 수업에는 법의학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렇다.
난 처음에 당연히 부검을 해 보려나 싶었고 그래서 마음이 좋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일개 학생들에게 그런 교육을 다 해 주기에는 우리나라의 법의학에 대한 지원이 형편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PPT만으로 넘어갔는데, 그것만 해도 다른 의과 대학 학생들에 비하면 난 편이었다.
우리는 그래도 법의학 교실 교수님이 따로 계시는 데다가 나름 유명한 분이시다 보니 경찰청 과학 수사대랑 일도 같이 하지만 다른 곳은 아예 교수님이 없는 곳도 많다고 나중에 들었다.
아무튼, 그 인맥 덕에 우리는 법의학 수업 때 교수님 수업 외에도 여러 현업에서 종사하시는 분들 강의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퍽 유명한, 나 여기 오직 직전쯤에는 티브이에도 자주 나오게 되신 프로파일러분이었더랬다.
-제가 유영철 사건을 담당했던 프로파일러입니다. 반갑습니다.
원래 외부 강사는 참 고달픈 일이기 마련이다.
직접 성적을 주는 것도 아니다니 보니 어지간히 재밌는 강의가 아니고서는 애들이 관심이 없어서 그랬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의대 강의는 재밌기가 어려웠다.
물론 내과의 전설 이수혁 교수님은…… 세상에 의학보다 재밌는 것이 어딨냐면서 호들갑을 떠시지만, 그건 그 사람이 그냥 어느 정도를 넘어서 잘하는 사람이라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위에 상술한 이유로 외부 강의는 거의 낮잠 타임이나 심할 때는 땡땡이 시간이 되곤 했는데 그날만은 예외였다.
소개부터 벌써 흥미가 딱 있어서 그랬다.
‘실제로 그날 강의가 의대 6년 다니면서 들었던 강의 중에 손꼽히게 기억에 남는 강의였어.’
자료도 상당한 편이라, 담당 형사가 아니면 접해 보지 못했을 법한 사진들이 많았다.
거기에 더해 이어지는 설명도 상세했을뿐더러 흥미로워서 딱히 성적에 중요했던 과목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늘 안과 의사들이 훼손시킨 부위가 다름 아닌 눈이라는 점이다.
서양 놈들은 눈보다는 입으로 표정을 읽어서 그런가 별 망설임이 없었는데, 우리 동양은 그렇지가 않지 않은가.
그 유명한 고양이 캐릭터인 키X만 해도 입은 없어도 눈은 있잖아?
해서 서양에서는 별 인기가 없고 동양에서만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상대의 눈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온 나라서 그런가 오늘은 유독 좀 그랬다.
‘아오. 속 안 좋아…….’
세상에. 눈에 별짓을 다 했다, 진짜로.
바늘로 눈알 딴 거 정도는 댈 것도 아니다.
별의별 약품 처리를 해 대는데…….
치익 소리가 났다.
눈에서!
알고 보니 질산 은을 부어서 그랬는데,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거 백내장 방치하면 눈이 아파서 안 됩니다.
녹내장을 방지하기 위해 수정체를 녹인 거다.
그렇게 하면 딱딱해진 수정체가 다시 말랑해지기 때문에 녹내장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녹내장이 뭔지도 모르는 시절의 일이지만, 아무튼, 효과는 있는 모양이었다.
앞이 보인다는 건 아니다.
이런 걸 붓는데 앞이 보일 수가 있겠나.
안압이 너무 올라가면 안구 통증이 생기니 그걸 예방하는 차원에서 한다는 건데…….
솔직히 나도 안압 올라가는 걸 이 시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 보니 대안을 낼 수가 없어서 닥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닥치고 있는 동안 환자들의 눈알이 아작 나고 있다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아, 평. 찾았다고?”
“네. 뭐…… 있어요?”
그중에서 제일 빨리 응한 건 내 연구실에서 일하는 화학자 아저씨였다.
지금까지 이 양반이 낸 실적을 돌아보면 딱히 기대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의외로 홈런을 터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코카잎에서 코카인 추출하는 거, 그거 보통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카인의 창조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고, 후대의 평가를 포기하게 된 상당히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뭐가 되었건 이 양반이 실력이 있다는 거 하나는 분명한 사실이다 보니 나는 좀 간절하게 물었다.
“있긴 있네. 근데 난 이게 도통 어디에 쓰일지 모르겠는데.”
“뭔데요?”
하여간, 부를 때마다 뭔가 들고 오긴 하는 양반인 만큼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거긴 했다.
내가 개같이 돈을 벌고 있기는 하잖아?
정체가 불분명한 탕약도 만들어 팔고 있고, 요새는 심지어 맹물을 불소수라고 속여 팔고 있다.
나라고 해서 왜 양심의 가책이 없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떳떳할 수 있는 건, 정승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브론테 자매 같은 이들을 위한 후원뿐만 아니라 연구에도 어마어마한 돈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페니실린은커녕 비슷한 것도 안 튀어나오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나오고 있다.
“이게 사실은 독초에서 나온 거야.”
“독초요?”
허나 독초라는 말에 내 흥미는 싹 식어 버리고 말았다.
약초도 아니고 독초에서 약이…….
‘아니, 아니지. 이 시대는 약이 독이고 독이 약이야.’
상식 때문인데 나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는 독초 기반으로 뭔가 찾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그랬다.
“그래. 벨라도나(Belladonna)라는 약초에서 나온 건데, 우리 연구실에서 추출한 건 아니고 독일인가? 어디서 나온 거야. 방법은 코카인 추출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서 원하면 쭉쭉 뽑을 수 있어.”
“약효가 뭔데요? 이름은 있고요?”
이미 다른 데서 나온 거라면…….
그리고 그게 21세기에도 쓰이는 성분이라면…….
이름을 내가 알지 않겠나.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서 물었고, 화학자 아저씨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답했다.
“아트로핀.”
“아트로핀!”
“왜?”
“아니, 아닙니다.”
이전부터 이 사람들이 시큰둥해하는 것일수록 귀한 물건이라는 건 알고 있긴 했더랬다.
일단 마취제가 그렇잖아.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나온 지 거의 수십 년이 된 물건을 가지고 기껏해야 파티에만 썼다는 게…….
심지어 수술을 아예 안 했던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이 때문에 여전히 나는 이 세계가 내가 원래 있던 지구가 맞기는 한 건가 싶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로구만!’
아트로핀이 이미 있었다니…….
“하긴, 자네라면 알 거 같긴 했네. 이게 독하지 않나. 알게 모르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더구만. 혹 저주에 썼나?”
그리고 그게 독약으로만 통용되고 있다니…….
원 역사에서도 그랬을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미 있다면 그건 다행이었다.
“말을 가려 하게. 나와 평은 한 몸이야.”
“소, 소문이 사실이었나.”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한 몸을 주장하는 리스턴이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좀 정도를 지나쳐서 수어지교를 맺자고 하고 있는데…….
그러다 잠도 같이 잘 거 같아서 일단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제 또 왔어.’
이 큰 덩치를 하고서 비밀스럽게 다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무림인이 맞다.
보법이라도 익힌 게 아니고서야 어디…….
아,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그거 만들 수 있어요?”
“아, 만들어 왔네. 빈손으로 오겠나, 내가.”
“잘했습니다. 흐음…….”
아트로핀이 진짜 내가 아는 아트로핀인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무식하게 찔러 넣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 위험할 수 있긴 하거든.
정맥 주사를 하게 되면 심박수가 팍 뛰면서 죽을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거는 저주랑 증상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개를 뒤로 젖혀 보세요.”
“응? 아니, 왜. 나를?”
“본인이 만들었잖아요. 한번 써 보죠.”
“아니, 이건 독이라니까? 아니, 평! 이보게! 저주 운운한 것은 아까 사과했잖아!”
눈에 넣는 것만으로는 산동밖에 일으키지 않는다.
너무 많이 넣게 되면야 눈물샘을 통해 코로 넘어가고 그게 결국, 목구멍으로 들어가 전신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지만 내 방에는 스포이트가 있다.
소독이 되어 있진 않지만 눈에는 눈물이라는 게 있어서 균이 자라진 않을 거다.
자라봐야 결막염일 테니 뭐…….
‘아프다 말겠지.’
나는 최대한 좋게 좋게 생각하는, 긍정적인 인간이기에 리스턴의 도움을 받아 아저씨의 오른쪽 눈알에 아트로핀 두 방울을 넣었다.
“아야!”
좀 따끔한 모양이었다.
살짝 뜨끔했는데, 일단 잠자코 있었다.
기억에 백내장 수술 받은 내 친구가 산동제가 좀 따갑다고 했던 거 같아서 그랬다.
“좀 기다려 보죠.”
“아니…… 빨리 씻어 내야지! 살려 주게! 눈이 아프다니까?”
“기다리라지 않나. 어른이 참을성이 없어.”
“눈, 눈이라고!”
“하하하. 머리도 나게 하는 평인데 설마 눈 하나 다시 못 자라게 하려고.”
“이런 미친!”
물론 당사자까지 여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런가 이런저런 지랄을 했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리스턴이 꾹 누르면 곰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어야만 하니까.
언젠가 코카인에 웃음 가스 하다가 골로 갈뻔한 중년의 런던 아저씨 정도는 리스턴이 아니라 조지프만 나서도 문제없는 게 정상이었다.
“어…… 어! 눈이 안 보여! 흐릿해!”
“응? 평, 이건?”
“예상대로입니다.”
“악만가? 자네는 악마야?”
“역시 예상을 했구만. 이놈이 여러 잘못을 하긴 했지.”
“그게 아니라…… 불 좀 주세요.”
하여간, 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동공 반사를 봐야 했기 때문에 불을 받아 들고서였다.
“살려 줘! 불로 지질 필요는 없지 않나!”
“그만큼 자네가 잘못을 했겠지!”
“미쳤어? 미쳤냐고! 내가 얼마나 헌신과 봉사를…… 내 별명이 헌봉이야, 지금!”
“지랄하지 말게. 마약이나 만든 주제에.”
눈을 봐야 해서 얼굴로 가까이 등불을 가져다 댔더니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리스턴 덕에 아예 꿈쩍도 못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상대의 눈동자…… 즉 홍채가 고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님.”
“응? 태워?”
“아뇨, 눈을 보세요.”
“눈을 태워? 아니. 어……? 뭔가…… 다른데?”
확실히 리스턴은 눈썰미가 남다른 사람이었다.
동공 반사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도 딱 보자마자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잘 보세요. 왼쪽은 불을 대면 눈동자가 수축하죠?”
“그렇네.”
“오른쪽은 안 그래요. 눈동자가 여전히 넓어요.”
“허어…… 그렇구만. 신기하네. 그렇긴 한데…… 이걸 어찌 쓰려고?”
어쩌긴.
윌리엄 터너 수정체 따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