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399)
검은 머리 영국 의사-399화(399/505)
399화 안과 [1]
나는 곧장 윌리엄 터너의 눈을 수술하고 싶었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던 게 아니라,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
화가라는 사람이…….
앞을 제대로 못 봐서야 어디 쓰겠나.
지금이야 런던 낭만파의 대부니 뭐니 하고 있지만 사실 전생에서는 윌리엄 터너 했을 때 생각나는 건 터너증후군뿐인데…….
‘백내장 때문에 잘 못 그려서 그런 거 아닐까?’
뭐 이런 걱정이 들었다.
눈만 고쳐 주면 어? 혹시 아나?
우리 대영제국에도 반 고흐가 나오고 피카소가 나오고 고갱이 나오고 모네가 나올지?
아, 모네는 근데 백내장을 앓았다는 오피셜 기록이 있긴 하다.
심지어 수술도 받았다고 했다.
뭐 그 양반은 20세기에 받았으니 지금 이런 수준의 수술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발전 속도를 보면 도긴개긴이었을 것도 같고.
참…….
아무튼, 나는 어제 윌리엄 터너가 보여 준 반응을 떠올렸다.
말은 떠올린다고 하지만 그냥 떠오르는 거다.
-제발…… 연습해 보고 하면 안 되나? 처음이라면서? 살려 주게…….
-우리 전능하신 태평에게 수술을 받게 되었으면 영광으로 여겨야지.
-리, 리스턴 경…… 살려 주시오…….
울며불며 매달리는데, 마음이 약해지더라고.
물론 ‘감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리스턴 말마따나 전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
내가 해 주겠다고 하면 그냥 넙죽 엎드려서 감사합니다 할 것이지…….
뭐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아직 내게 부족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해서 일단 봐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윌리엄 터너가 런던 유명 인사들 초상화들 그려 주느라 인맥이 두터운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다.
‘그 인간이 꽤 능력이 있지…….’
생긴 것도 되게 잘생겼다.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서 많이 무너지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미중년? 미할배? 느낌이 있다.
아마 성격만 좀 더 부드러웠으면 더 큰 성공을 거머쥐었을 거다.
“교수님. 환자들 왔습니다.”
“아, 그래. 보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환자들이 온 모양이다.
요새 불소수 실험하느라 바쁜 존 스노 대신 콜린이 보조로 나섰다.
애초에 수술을 하려면 콜린이 있는 게 맞기도 해서 콜린을 고른 것도 있다.
존 스노는…… 똑똑하긴 한데 손이 좋진 않더라고.
확실히 의학은 딱 하나로 퉁쳐 버리기에는 길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러한 전공이 딱딱 나뉘어 있지 못한 지금이 그래서 더 끔찍하다는 생각도 들고.
안과니 산부인과니 나름 세부적인 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게, 당장 블런델이 나 내일부터는 안과 할까? 하면 안과가 되는 거다.
학회도 대강 있고 하지만 아직 법적인 제도가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
‘당장 뭐…… 이 시기 천재라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다 하니까…….’
전생에서는, 그러니까 21세기에 살 때는 옛날 천재라는 사람들은 진짜 얼마나 머리가 좋았을까 싶었더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은 미술도 하고 수학도 하고 발명도 하고 해부도 하고 막 다 하잖아?
근데 와서 보니까…….
그럴 만한 시대였다는 게 내 결론이다.
내가 감히 그만큼 천재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발전에 따라 켜켜이 쌓인 지식이 있어서 하는 소린데…….
아직은 각 분야에 쌓인 지식의 총량이 보잘것없다.
“교수님?”
“어, 어어.”
콜린의 말에 나는 어느새 내 앞에 앉아 있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무려 조선 주술사이자 왕의 의사인 나 김태평이 무료로 봐 주겠다는 말에 몰려온 환자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형편이 어려운 환자였다.
아, 대상을 아예 이스트엔드 쪽으로 한정한 것도 있다.
돈 많은 사람들도 공짜라고 하면 다 오더라고.
참 공짜 좋아하다가 머리 벗겨진다는 속설을 퍼뜨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 머리보다 돈이 소중한 사람만 올 테고 자연스레 부자들은 이럴 때만큼은 발길을 끊을 거 아닌가.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부자가 있다면 그건 인정이다.
“눈이 안 보여서 왔죠?”
“네.”
“자, 이거 읽어 봐요.”
“네?”
“아…… 맞다. 조지프! 그림으로 된 거 들고 와!”
하여간, 나는 빈민가에서 온 사내에게 시력 검사를 하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 시기 런던의 문맹률은…… 어마어마하기에 그랬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주일 학교 덕분이다.
뭐 갑자기 중세 시절 우민화 정책에 힘쓰던 교회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이제는 시민들이 글자를 알고 교육을 받는 게 경제에 보탬이 되고 더 나아가 지배층에 도움이 되기에 그렇다.
아무래도 산업화가 일어난 후의 일들은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많잖아?
“이거 뭐예요?”
“어…… 오리……?”
“네, 이건?”
“개?”
“이건?”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안 보이는 사람만 온 게 맞는 거 같다.
애초에 눈 수술을 한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아무리 나한테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생눈알을 어찌한다고 하면 겁이 나지 않겠나.
무엇보다 나에게 오기 전에 우리 부하들이 거르는 것도 있다.
어떻게 하는진 모르겠는데 하여간, 귀신 같은 방법을 쓰는 거 같다.
“음.”
나도 지금까지 런던에서 하던 짓과는 다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 검안경…… 나름 쓸 만한데?’
이미 있던 현미경을 개조해 검안경을 만들었다.
뭐 그래 봐야 아직 전구가 있는 시대는 아니기 때문에 결국, 광원은 등불을 이용해야 하지만 거울로 등불의 불을 반사시켜 눈을 비추고, 그 눈을 약간 확대해 보는 것만으로 진단율이 크게 올라간 느낌이다.
내가 안과를 정식으로 수련했다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이제 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여기서 만족하는 것도 있긴 하다.
문제가 있다면…….
‘백내장이 없는 거 같은데…… 눈이 안 보이네.’
생각해 보니 눈이 안 보이는 이유가 딱히 백내장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일 흔한 이유는 역시나 근시인데…….
‘안경은 비싸지.’
안경이 있는 시대이긴 하다.
심지어 어떻게 생겼나 하고 보니까 나름대로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대체 왜 다리를 안 달고 눈알에 끼워서 계속 흘러내리게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는데…….
이 역시 나중에 보니까 이미 18세기에 다리 달린 안경, 즉 현대적인 형태의 안경이 만들어진 지 오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퍼지지 않았던 것일 뿐이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니다.
‘이걸로 돈 좀 만질 수 있겠는데……?’
전생에도 의사가 아니라 사업을 했어야 했나 보다.
이렇게 머리가 팽팽 도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나는 돈을 벌겠지만 눈앞에 환자는 도움을 받기 어려울 거란 점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빡센데 뭔 놈의 안경인가?
그래도 뭐 이리저리 알게 된 유리 세공사가 있어 최대한 원가로 공급하겠단 생각으로 묻자 이런 말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아이고…… 제가 책 보는 것도 아닌데 뭔 놈의 안경입니까? 수술로는 안 됩니까?”
그래.
책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안경이 필수는 아닌 거 같다.
고도 근시인 사람들은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고도 근시인데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조차 어렵기 때문에 내가 직접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21세기에 보면 서구 국가들이 막 복지도 좋고 장애인 배려도 좋고 해서 계속 그랬을 거 같지만 19세기만 해도 동양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배려가 없다.
아니, 차별이 있다.
심지어 장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거리로 만드는…….
프릭쇼가 19세기 최고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 성행하고 있을 지경이다.
“수술은 안 됩니다.”
“하아…….”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밥이나 먹고 가십쇼.”
“아! 감사합니다!”
그런 시대라고 해도 근시가 있는 사람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안경 사업이 돈이 될 거라는 걸 며칠간 이어진 안과 외래를 통해 확인했다.
물론 원래 목표였던 백내장 환자 모집에도 성공했다.
우리에게는 확실히 성공이지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상하게 윌리엄 터너 수정체 따려고 할 때는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진짜 따려고 하니까 자신감이 좀 줄어든 느낌이라고 할까.
“자, 여러분들에게는 특전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보상을 내걸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벌어질 내 안경 사업과도 연결이 되어 있긴 한데…….
“이번에 수술을 받게 되면 안경을 세 벌 줄 겁니다. 팔면 안 됩니다. 팔면 저주가 있을 겁니다.”
“오…… 안경을……?”
이들에게는 안경을 주기로 했다.
상당히 비싼 물건인데 공짜로 주는 것이니 대단한 특전 같겠지만 사실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다.
왜?
아직 인공 수정체가 없으니까.
뭐 21세기에 넣어 주는 인공 수정체도 안경이 필요하긴 하다.
인공 수정체는 진짜 수정체와는 달리 스스로 굵기를 조절할 수 없어서 잘 보이는 거리가 딱 정해져 있거든.
물론 다초점 렌즈가 있긴 한데…… 그것도 만능은 아니라고 들었다.
다른 누구한테 들은 게 아니고 수술받은 이비인후과 친구에게 들었으니 확실할 거다.
녀석은 안타깝게도 그 눈에 망막박리까지 생겨서 제대로 써먹진 못한 거 같지만.
“이걸 팔면 수술 받아도 앞을 못 봐요. 왜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렌즈가 망가져서 그걸 제거하는 게 이 수술이거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자인 제가 다시 드리는 렌즈, 즉 안경을 껴야 수술 후에 그래도 잘 보일 겁니다.”
“오…… 역시 피영시인이시다.”
아무튼, 안경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 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뭘 말해도 다 팔아먹겠구나 싶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김태평, 이제는 감히 스스로를 주님의 사자니 선지자니 뭐니 해도 십자가에 매달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열성적인 신도들만이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다들 안경을 끼겠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긴 했다.
오히려 꽤 많은데 요약해 보면 두 가지로 압축이 될 거 같다.
‘일단 내가 수술을 잘할 수 있을까?’
시신에서 수정체 빼는 건 꽤 쉬운 일이었다.
그냥 바늘로 따서 집게로 집어 빼면 되더라고.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과 시신은 아무래도 좀 많이 다르지 않겠나?
‘안경을 끼면 정말 보이나……?’
수정체가 없는 눈으로 앞을 본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안과 놈들에게 물어보거나, 혹은 이미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내가 볼 때는 안경이랍시고 끼고 있는 것이 너무 그지 같아서 그럴 거 같기도 했고, 또 수술 자체가 엉망이라 눈이, 특히 홍채가 다 망가져서 그런 거 같기도 한데…….
‘맨눈으로, 산동도 안 하고 눈알을 후벼 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최선을 다해 자기 합리화에 성공한 나는, 심지어 어제 꿈에 주께서 현몽하시어 나는 될 거 같다고 하셨으니 그대로 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