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화(4/505)
4화 19세기 [4]
이번에도 역시 기절은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내 멘탈이 엄청 튼튼한 모양이었다.
세상에, 이 꼴을 보고도 멀쩡할 줄이야.
“이쪽으로 오게.”
로버트 리스턴은 그런 나를 보면서 손짓했다.
아저씨는 이미 저 멀리 도망가 버린 후여서 조지프랑 단둘이 따라가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따라가기 싫었다.
‘불은 이거 뭔데.’
19세기는 생각보다 발달한 시대이기도 해서 전등이 있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전등하고는 좀 많이 달랐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곧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불빛이랄까?
심지어 진짜 시신들이 줄줄이 누워 있는 곳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자, 와서 보게. 이게 우리 몸이라네.”
로버트 리스턴에겐 익숙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두목 같은 외모긴 해도, 나름 여기 교수 아닌가.
게다가 외과 의사이기도 하니 해부가 다른 의사들에 비해 중요하기도 했을 테고.
‘근데 이런 식으로 배우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리스턴 박사인지 하는 놈이 가리킨 시신은 배가 열려 있었다.
일단 절개를 엑스자로 해 놓았다는 것부터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가능한 절개이긴 했다.
부검이 목적이라면.
허나 아까 다리 자르는 걸 봐서 그런가…….
‘수술도 이렇게 하진 않겠지? 응? 설마. 응?’
자꾸 실제 환자한테도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이 너무 들었다.
“이게 그…… 어? 비장이라고 하는 거야. 아직까진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능이 있긴 있겠지.”
비장.
음.
그거 원래 그렇게 안 생겼는데.
이 시신이 과연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원형이 파괴되어 있었다.
“이건 간.”
그나마 간은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건 위. 그 밑으로 장이 이어져 있지. 뒤로 보면 이 흐물거리는 이상한 게 있고.”
그게 췌장이라는 겁니다.
“어쩌다 빨리 들어오는 시신을 보면 이 췌장을 확인할 수 있다네.”
아, 알긴 아는구나.
존나 다행이었다.
난 또 모르는 줄 알았지?
그래, 하긴. 19세기 의학이 아주 엉망은 아닐 것 같았다.
여기서 딱 100년만 지나면 20세기잖아.
나도 나름 20세기에 태어났던 사람이라구.
“이 뒤에 보자…… 어디…… 옳지. 이게 신장이고. 관 보여? 여기서 소변이 내려가는 거야.”
그 뒤로도 계속 설명이 이어졌다.
그걸 보면서 뭔가 굉장히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하도 이상한 걸 많이 봐서 그런가,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 당장 떠올리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읍…….”
나야 뭐, 원래 구조를 알고 있고 리스턴 박사 뺨을 서너 바퀴 돌려도 좋을 만큼 해부학에 능한 것도 있으니 대충 과거를 회상하면서 버티는 중이지만.
조지프도 그럴 수는 없지 않겠나.
이놈에게 해부란 기껏해야 새우나 개구리가 다였는데.
그나마도 자르고 보여 주는 건 내가 다했고, 얘는 보기만 했다.
“으으읍!”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하다 할 수 있었다.
“여기다 하게.”
“와…… 이런 게 있어요? 어우.”
리스턴 박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기특하단 얼굴로 시신 테이블 밑에 있던 양철통을 들이밀었다.
와.
나에게는 그게 더 힘들었다.
안에 제대로 안 닦은, 선배들의 흔적이 얼핏 보였거든.
시발놈들아.
아무리 해부학실이 더러워도 그렇지.
니들도 나름 의대생이고 의사가 될 몸인데, 위생 관념 정도는 몸에 박아 놔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여기 교수였으면 교수형시킬 놈들 여럿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흔적 하나를 더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조지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오래 버텼다, 너도.’
조지프도 어지간한 놈은 아니었다.
애가 좀 괜찮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어? 강단도 있잖아.
일단 토만 하고 기절은 안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솔직히 이건…….
의사가 보기에 끔찍한 게 아니라, 그냥 보기에도 끔찍한 광경인데.
어쩐지 일반인들이 해부학실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광경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을 지경이었다.
덜커덕!
그때, 문이 열렸다.
우리가 열고 들어온 문은 아니었다.
저기 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후미지고 어두운 곳의 문이 열렸다.
“오, 자네들은 운이 아주 좋아.”
“네?”
그러곤 진짜 안 좋은 일만 일삼을 것 같은 무리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런데 운이 좋다니.
뭐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는 건가?
하긴, 저것들이 당장 덤벼든다고 해도 우리 리스턴 박사님 한 분만 있으면 될 것 같긴 했다.
다리를 통으로 자르는 데도 30초 컷이신데, 그보다 얇은 목은 1초면 따시지 않을까?
드르륵-
하여간 그 무리는 마차 같은 것을 끌고 들어왔다.
아니, 마차라기보다는 리어카였다.
그 위에는 거적때기가 덮여 있었다.
아래로는…….
‘시신이네.’
그래, 어떻게 봐도 시신인 것이 덮여 있었다.
“실합니다, 교수님.”
실해?
저게 시신이 아닌가?
뭐 다른 걸 거래하는 건가?
훌러덩-
허나 리스턴이 거적때기를 벗겨 내자, 역시나 시신이 누워 있었다.
시발.
이 개 같은 놈들아.
“오. 그렇구만.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식지도 않았어.”
“네? 아, 네. 그렇죠. 바로 구해 왔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교수님?
식지도 않은 시신을 들고 왔어요.
이 새끼들 이거 살인범들 아닐까요?
일단 얼굴을 증거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이게 편견이기는 한데, 솔직히 말해서 20년 경력 형사도 얘들 보면 일단 구속부터 시킬걸?
“잘했네. 잘했어.”
“네, 그럼…… 얼마나…….”
“여기 있네. 상태가 아주 좋아. 젊기도 하고. 우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되겠네.”
“아이구, 늘 감사합니다.”
“아닐세. 내가 감사하지. 우리 학생들이 다 자네들 덕에 의사가 되는 거야. 자부심을 가지게.”
“네! 교수님!”
아니, 돈은 주면 안 되죠. 교수님.
얘들이 이거…… 어?
이 시신을 어디서 들고 오는 건 줄 알고.
아니지.
들고 오는 건 맞습니까?
뭐 이렇게 슥삭 하는 거 아니고?
“런던엔 의문사가 아주 많다네.”
그러니까, 이놈아!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의문사라는 말로 모든 죽음을 퉁치지 말라고!
“그래도 저 친구들은 믿을 만한 친구들이야. 다른 놈들은 떡하니 배에 칼침이 있거나 목에 교살 흔적이 있는 시신들을 들고 오는데…… 보게나.”
듣다 보니 화가 좀 풀렸다.
하긴, 리스턴 박사님이 런던 최고의 명의라 하지 않았나.
이 정도 되는 사람이 설마 살인자들에게 시신을 공급받지는 않겠지.
그게 상식이잖아?
“깨끗하지?”
“아. 네. 깨끗하네요.”
“그래. 병원에서 대기하다가 가망 없는 환자가 사망하면 데려온다고 알고 있네. 자세한 건 뭐 나도 잘 모르지만.”
“음, 그렇군요.”
자세한 걸 모른다는 말이 좀 불안하긴 했다.
모르고 싶어서 모르는 느낌이잖아?
자세한 걸 알면 다칠 거 같아서?
“하여간 바쁘게 됐구만.”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건 간에 관계없이, 리스턴 박사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싶었다.
지금 급할 게 있나?
“자네들은 이제 그만 가게. 아버님 부르고.”
“아, 네.”
잘된 일이긴 했다.
여기서 너무 나가고 싶었거든.
근데 막 너무 티 내면 무례하다고 화낼까 봐 무서웠고.
저 얼굴에 저 몸을 보고 있다 보면 누구나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될 터였다.
“나가자.”
“어? 어어.”
“괜찮은 거야?”
“응? 어. 그런 거 같아.”
“외과 의사 할 수 있겠어?”
“하고 싶어.”
“어…… 그래.”
그러면서 조지프를 챙겼다.
입가에 묻은 토나 좀 닦고 말하지.
그런 몰골로 하고 싶다고 하면 인마, 신빙성이 없잖아.
끼이익-
문을 열고 나가자, 잠깐 사이에 초췌해진 몰골이 된 아저씨가 서 있었다.
솜으로는 냄새를 막는 게 여의치 않았는지, 거기에 더해 팔뚝으로도 코를 꽉 틀어막고 있었다.
“아, 리스턴 씨.”
“그,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아닙니다. 하하. 하여간 둘은 재능이 있어 보입니다.”
“네? 정말요?”
정말요?
점쟁이세요?
지금 우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이랑 얼굴밖에 없는데 재능을 운운해?
“특히 이 친구는 아주 대범한 게, 외과 의사에 제격이에요. 아드님도 이만하면…… 보통은 아버님 같은 반응을 보이거든요.”
“허허. 그럼…….”
“입학하셔도 좋겠습니다. 돈만 내시면 됩니다. 마침 다음 달에 신학기가 시작되니 그때 오시죠.”
네? 입학이요?
여길 온다고?
아니…….
안 될 거 같은데?
애초에 의대를 시험도 없이 이렇게 얼렁뚱땅 들어갑니까?
“오. 그러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내 생각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돈 내는 사람 의중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나?
“와! 만세!”
게다가 애가 저렇게 좋아하고 있었다.
조지프 이놈아.
여길 보고도 그런…… 그런…….
‘와…… 그러고 보니까 이 사람 이거, 아주 대단한 사람인데?’
이제야 눈치챘다.
내가 왜 뭔가 이상하다 느꼈는지.
이 인간.
리스턴 박사님.
맨손이다.
‘수술도 해부도 맨손으로…….’
맨손으로는 제발 무술만 했으면 좋겠는데.
‘손은 닦았나?’
그랬을 것 같진 않았다.
안에 아예 수도 시스템이 없는 것 같거든.
물소리도 못 들었고.
근데 여길 오는 겁니까?
“자, 여기 일단…… 부족하지만 첫 후원금입니다.”
아저씨는 확실히 사업가라 그런가, 나 같은 쫄보랑은 달리 호탕한 면이 있었다.
그만 호탕하면 좋겠는데.
벌써 돈을 건네주었다.
적은 돈도 아닌 듯했다.
슬며시 안쪽을 살핀 리스턴 박사의 얼굴이 아주 그냥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하하하! 아주 훌륭한 학생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훌륭한 학생이 되었다.
다그닥-
돌아오는 길엔 힘이 쭉 빠져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아저씨랑 조지프 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아버지. 준비할 건 따로 없을까요?”
“일단 책을 좀 사야겠지? 런던에서 지내려면 방도 필요할 거고.”
“아, 그럼 따로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걸까요?”
“지척인데 뭘. 그리고 매주 오니까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너보다는 얘가 걱정이다. 태평아. 신부님이 너 태평하게 지내라고 이름도 그렇게 지어 줬는데 왜 그렇게 울상이냐?”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니까 그렇지, 이 양반아…….
아까 그 꼴을 보고도…… 어?
돈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의과 대학이…….
그 꼴이 그게…….
‘아니지. 아니야. 내 주제에 어딜 들어갈 수 있겠어.’
하지만 좋게 생각하래서 좋게 생각해 보니까 이게 또 나쁜 일은 아니긴 했다.
동양인을 사람이 아니라 뭔가 다른 동물로 여기는 놈들도 있는 시대지 않나.
암만 내가 똘똘하다 해도 의대를 들어갈 수 있겠나?
없을 것 같았다.
고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얘기였다.
“아니, 뭐. 잘된 일이죠. 잘된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늘 본 모든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맴돌았다.
“어, 야야!”
마침내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