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0)
검은 머리 영국 의사-40화(40/505)
40화 두통을……? [1]
‘이 미친놈이…….’
나는 내 팔을 바라보고 있는 로버트 박사를 바라보았다.
번뜩이는 눈을 보자마자 부러진 느낌이 들었다.
허나 정작 그가 노리고 있던 것은 제 팔이었다.
“내가 부러지는 게 낫겠지.”
그게 합리적인 생각이긴 했다.
내 팔을 부러뜨린다고 뭐가 되겠나.
마취는 솔직히 그거, 가스통 돌리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마취 자체를 폄훼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내 수준이 그렇단 말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었다.
‘수술이라면 또 얘기가 다를 텐데…….’
지금 이 사람들은 내가 수술 잘하는 걸 모르니, 로버트 박사님 팔이 부러지는 게 맞겠지.
‘근데 이 양반, 부러지고 제대로 붙일 수는 있으려나?’
정형외과.
힘깨나 쓰는 친구들이 주로 가지만, 중요한 건 힘만 쓰는 친구들이 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 성적은 나보다 훨씬 좋은 놈들이 많았다.
돈을 잘 벌거든.
왜 잘 벌까.
환자도 많겠지만 그리 쉬운 일도 아니라 그랬다.
일단 나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대로 리타이어해 버리면…….’
이 사람이 비록 사람 백정처럼 보이긴 하지만, 훌륭한 의사지 않나?
게다가 내 편이었다.
이런 사람을 잃을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하면 위험 부담을 질 수는 없다, 이 말이었다.
“어어, 잠시만요!”
마침 로버트 리스턴은 망치를 들고 있었다.
그걸로 뭐 하려고?
자기 팔 내려치려고.
미친놈…….
팔 가지러 온 사채꾼도 망치로 내려치진 않겠다.
방금 위팔의 구조를 봐 놓고도 저런 식의 손상을 주고 싶을까?
‘인마…… 위팔뼈 잘못 부러지면 동맥 찢거나 신경 찢는다고…….’
동맥이 찢긴다?
그럼 죽는다.
신경이 찢긴다?
그럼 수술은 못 한다.
“왜 그러나?”
그런 나를 로버트 리스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좀 억울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널 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혼비백산하니, 뭐 이런 얼굴이었다.
‘하아…….’
이 새끼들…….
진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나는 꾀를 내보기로 했다.
사실 꾀병 만드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문제가 있다면 이곳은 19세기고 어지간한 증상은 병으로 인지하지도 않는 세계관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노화로 인한 증상은 증상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러운 변화 정도?
“팔이 부러졌다가 제대로 안 붙으면 어쩌시려고요!”
나는 머릿속으로 핑계를 떠올리면서, 일단 질렀다.
그러자 로버트 리스턴은 어쩐지 좀 감동받은 얼굴이 되었다.
“자네가 날 그렇게 걱정해 줄 줄은 몰랐는데.”
“그.”
걱정이라.
그래, 어떻게 보면 걱정이 맞았다.
내 걱정이 주된 것이지만 하여간, 로버트 리스턴에 대한 걱정도 있었으니까.
“당연하죠! 제 형님이신데!”
하여간, 오해를 했다면 그 오해를 더 강화시는 게 유리하지 않겠나.
그래서 형님을 운운했다.
일부러 아주 큰소리로 했다.
다른 놈들도 다 듣게.
특히 학생 놈들.
이 새끼들이야말로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들이지 않나?
‘내 뒤에 로버트 형님이 계시는데 니들이 뭐 어쩔 거냐.’
약간 뒷세계 느낌이 나는 생각이었지만, 사실이니 달리 말할 방도도 없었다.
“으음. 그럼 어쩐다?”
로버트 리스턴은 그렇게 내게 감동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하간에 이렇게 두었다가는 당장 내일부터 사람들 다리 자르는 공장 차리게 생기지 않았나.
이전의 로버트였다면 좋아했겠지만.
마취라는 인류의 위대한 진보를 일궈 낸 마당에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단 핑계를 만들기는 해야 하는데…….”
“팔을 부러뜨리는 게 제일 확실하지만…… 그건 자네 말대로 좀 위험하구만.”
“그렇죠. 팔은 좀 그래요.”
“그럼 다리를 부러뜨릴까?”
“아니, 자꾸 부러뜨릴 생각만 하지 마시고요…….”
다리라면 허벅지 뼈를 얘기하는 것일 텐데.
거기는 이제 진짜 생명과 연관이 있을 수 있었다.
일단 거기가 부러질 정도로 골밀도가 약해져 있다면, 노화가 진행되어도 아주 심각하게 진행했다는 얘기거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 즉 근육도 약화가 되어 있다는 얘기고.
“그리고 부러뜨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당연히 로버트 리스턴은 30대의 강건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중에서도 하체가 좋았다.
저기는 망치로 쳐 봐야 멍이나 들지 부러지진 않을 터였다.
차라리 망치를 부수는 차력쇼가 낫겠어.
“어렵겠군. 남 다리나 팔은 많이 부러뜨려 봤는데…… 내 것은 어렵구만, 역시.”
뭔가 무서운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내과적인 질환으로 가면 어떨까요.”
“내과……?”
“네, 내과.”
“아, 머리가 아프구만. 그래. 고민을 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
로버트 박사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의긴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했던 치료라고 해 봐야 심플하기 그지없는 거 아닌가.
다리에 문제가 생기면 다리를 자르고, 팔에 문제가 생기면 팔을 자르고.
그러던 인간이 고민하기 시작했으니 머리가 아픈 건 당연했다.
“으음…… 치료를 좀 받아야겠는데.”
“네?”
“아, 내가 가끔 이렇게 두통이 심할 때가 있거든. 너무 걱정 마.”
“그…….”
무슨 치료를 받는다는 걸까?
이 새끼들 또 뭔가 엄청 신기한…… 아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료를 할 거 같은데.
“뭐, 자네도 같이 가겠나? 시간이 좀 걸려. 그사이에 고민을 더 해 보지.”
“아, 네.”
시간이 걸린다니, 더 불안해졌다.
하여간에 이 새끼들이 정성을 더하면 더할수록 더 위험해진다는 걸 내가 두 눈 똑똑히 보지 않았나.
“설사병을 일으켜 볼까요?”
“어떻게?”
“아.”
가는 길에도 일단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설사병이 어떻게 유발되는지 안다는 게 이 시대에서 꽤 대단한 지식에 속한다는 건 몰랐거든.
아는 게 너무 없는데, 심지어 이상하게 아는 건 너무 많은 시대다 보니 진짜 어려웠다.
덜커덕.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는 로버트의 주치의라고 할 수 있는 신경학의 대가, 내과 의사 토마스를 만날 수 있었다.
‘대가라…….’
소개를 듣자마자 불안감은 더없이 커지고 있었다.
단지 말만 들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눈앞에 놓인 기계는 누가 봐도 존나 수상했다.
사람이 들어가서 누울 수 있는데, 암만 봐도 그게 돌아갈 거 같단 말이지.
“머리가 아파서 왔나?”
“그렇네.”
“거참. 자네도 그거 고질병이야.”
“그래도 뭐…… 이거 한번 하고 나면 나아지니 다행 아닌가.”
“그건 그렇지. 하하. 옆에는…… 아, 그 소문이 자자한 제자로구만. 걱정 말게, 나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매우 적어.”
“네, 감사합니다.”
둘은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다가 나도 소개하고 뭐 그랬다.
살짝 기분 나쁜 말도 들었지만,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끼이익.
중요한 건, 지금 로버트가 어떤 기계에 들어가 누웠다는 점이었다.
중앙 쪽으로 머리가 가게 해서 누웠는데…… 암만 봐도 고문 기계 같았다.
“자네는 이걸 처음 보겠구만.”
토마스는 경악한 나를 두고, 아마도 최신 의학 앞에서 경건해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뿌듯한 얼굴로,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두통이란 게 왜 발생한다고 생각하나?”
“그…….”
심각하게는 뇌출혈이나 뇌종양 등이 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편두통도 있고, 군집성 두통도 있고…….
‘이 양반은 그냥 긴장성 두통일 것 같은데…….’
아세트아미노펜,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타이레놀이라고 부르는 약의 성분이 들어간 약 아무거나 먹으면 나을 두통 같았다.
그게 아니면 목의 긴장을 풀어 주는 마사지를 하거나 머리 자체를 지압해도 좋아질 터였다.
의사라면 숨 쉬듯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난 입을 놀리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런 이유라면 이따위 기계를 동원하진 않겠지.’
다시 말하면 뭔 말을 해도 얘는 못 알아들을 것이고, 그럴싸해 보이면 그럴싸해 보일수록 공격받을 확률이 있다는 점이었다.
“하하! 외과 의사 지망이라 그런가, 두통에는 영 관심이 없구만. 하지만 말일세. 머리가 너무 아프면 머리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어.”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수술이라.
뇌출혈에 대한 수술을 말하는 걸까?
그럴 리는 없었다.
그것보다는 훨씬 끔찍할 게 뻔했다.
“다행인 건 대개의 경우 이렇게 내과적인 치료만으로도 낫는다는 것이지. 자, 두통이 왜 생길까? 대부분의 질환과 같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토마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도 된 것처럼 팔을 크게 휘둘러 댔다.
사실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맞기도 해서 나는 진짜로 입을 꾹 다물었다.
자고로 미친놈은 팰 수 없으면 가만히 두는 게 상책 아닌가.
괜히 어설프게 건드리다가 이쪽이 당할 수도 있었다.
“피가 몰려서 그래, 피가! 그렇다고 머리에서 피를 빼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 그래서 우리 위대한 과학자 에라스무스 다윈 경이 발견한 방법이 있네. 바로…… 원심 분리기를 돌리는 걸세. 그럼 머리에 있는 피가 원심력에 의해 발로 가겠지.”
“아.”
와…….
진짜 미친놈이구나.
이게 진짜 돌아가는 거구나.
미쳐 돌아가네…….
위이잉.
토마스는 그렇게 말을 하곤 기기를 작동시켰다.
진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안에 든 로버트 박사는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벌써 여러 번 이 짓거리를 해 온 모양이었다.
“다만 그때는 기술이 부족해서 이렇게 전기로 돌아가는 걸 만들지 못했네! 사람이 돌려야 했고, 종종 원심력이 부족해 치료가 되질 않았지! 지금도 그럴 때가 있기는 한데! 언젠가 이 기계를 더 빨리 돌릴 수 있다면 다 치료할 수 있을 걸세!”
시끄러워서 토마스 박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진짜 개미친 소리를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해 댔다.
‘더 빨리 돌리게 되면…… 새꺄…… 환자 죽어…….’
지금도 봐라.
얼핏 보이는 로버트 박사님…… 표정이 사라졌잖아?
기절했다는 뜻이었다.
키도 큰 만큼 애초에 발로 쏠리는 피가 많을 텐데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어찌 버틸까?
물론 버틸 생각으로 발살바(Valsalva)를 한다면, 그러니까 흉압을 끌어 올려서 머리에서 피가 못 내려오게 한다면 이 정도 속도는 견딜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완전히 힘을 풀고 돌았으니 버틸 재간이 있나.
“자, 멈추겠네. 너무 길게 돌리면 환자가 죽더라고?”
죽었단 말에 나는 토마스 박사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원심 분리기로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는 의사라니.
‘평행우주인가…….’
이런 걸 볼 때마다 여기가 지구가 아닐 거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두두두두둥.
그때,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기계가 멈췄다.
잘못된 건가 싶었으나 다들 평온했다.
“일어나게.”
“으, 으음.”
“어떤가?”
“여긴 어딘가?”
“치료실일세.”
“아, 내가 두통이 있었지.”
도망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