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00)
검은 머리 영국 의사-400화(400/505)
400화 안과 [2]
고백하건대, 나는 전생에 안과를 정말 무시했더랬다.
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외과에 비하면 좀 뭐랄까…….
너무 얌전하다고 해야 하나?
기껏해야 실습이나 돈 주제에 뭘 그리 아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참 깊은 인상을 남겨 준 기억이 있다.
-어어! 피난다! 뭐 해!
피.
붉은, 물보다는 좀 더 끈끈한 액체.
난 그 기묘한 액체를 볼 때마다 신의 존재를 떠올렸더랬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딱 보자마자 X됐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겠나.
내가 외과라서 더 그렇긴 했을 거다.
출혈이라니…….
수술하면서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 아닌가.
-네, 교수님!
자칫 잘못해서 큰 동맥 건드리기라도 하면 거짓말 아니고 피가 천장까지 튄다.
그걸 좀 더 방치하면 당연히 덜 튀게 되는데 그게 다행인 상황을 말하는 건 아니다.
혈압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건 말 그대로 피가 많이 나서 환자가 죽게 생겼단 뜻이니까.
꼭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출혈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복강경 시에는 시야를 가려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만들고…….
삭삭.
허나 안과에서는 출혈이 나면 면봉으로 닦더라고.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내가 본 출혈은 그랬다.
‘역시…… 사람은 뭐든 겪어 봐야 하는군.’
그래서 그냥 무시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발.
눈이라는 곳에 칼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날카로운 것을 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왜 그러나? 그냥 훅 돌려 따게.”
“그러다가 못 보게 되면 어떡해요.”
“어차피 그쪽 눈은 장님인데?”
“그…… 그렇긴 한데.”
지식의 저주라고, 이 자리에서는 나만 그렇긴 했다.
사실 백내장이라고 하면 아, 실명이구나 하는 시대지 않겠나.
단지 백내장뿐만이 아니라 정말 많고 많은 병들이 체념의 대상이다.
허나 내게는 아니다.
21세기 현대 의학도 모든 사람이 신뢰하는 건 아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병들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구나 싶은 게, 백내장 걸렸다고 해서 ‘아, 나 이제 실명이구나’ 하는 사람은 없잖아, 거긴…….
“후.”
그렇다 보니 부담이 너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냥 두면 런던의 안과 의사라는 놈들이 지속적으로 이상한 짓을 할 거라 그랬다.
푹.
해서 나는 한숨과 함께 고민을 털어 버리고, 아트로핀을 부어 놔서 확장된 동공 끝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확실히 시신 찌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단단하다고 해야 하나?
일부러 백내장 있는 시신들로 골라서, 포르말린 처리도 하지 않고 연습을 했는데도 다르다.
‘보통은 사람으로 연습한다고 했지.’
그나마 내가 나은 거다.
이 시기 의사들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면서 배우니까.
여담인데, 예전 교수님이 클래식 마니아라 진짜 별사람을 다 좋아하고 들으셨는데, 그중에서 딴 사람들은 잘 모를 만한 음악인을 하나 꼽자면 몰리에르라고 있다.
살리에르가 아니라 몰리에르인데 프랑스 사람이고 그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의 사랑을 받은 극작가이며 혹자는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부를 만큼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아직도 동숭동 극장에 가면 매년 ‘수전노’라는 공연을 하는데 그게 몰리에르 거다.
교수님 손에 끌려가서 보고 했는데, 나름 재밌는데…….
그 사람이 남긴 명언이 당연히 꽤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의사는 합법적인 살인자라는 말이다.
‘21세기에 들었다면 억울하겠지만 이 시기 의사들에게는 저 말도 과하긴 하지.’
합법적이라잖아.
솔직히 말하면 불법 같다.
사람을 그렇게 막 죽이는데…….
심지어 몰리에르 동료 중에, 나중에는 좀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장 바티스트 륄리라고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이자 마랭 마레의 스승이자 한때 프랑스 음악의 지배자라는 평까지 들었던 사람이 있다.
당시에는, 19세기도 그렇지만 직업적인 지휘자가 없고 지휘 체계도 다르기도 했고 또 행진곡 같은 경우에는 보이지도 않으니 깃발을 휘두르거나 땅을 찍으면서 지휘를 했는데 이 양반이 너무 신났는지 찍다가 자기 발가락을 찍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염증이 생겼는데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던 양반이니 얼마나 숱한 의사들이 왔겠나.
그렇게 의사들이 치료하고 나서 그냥 넘어갔을 법한 상처가 덧나고, 파상풍으로 사망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될 수는 없지.’
그거야 17세기의 일이고 지금은 19세기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보니 지금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나까지?
안 될 일이었다.
“후우…….”
“뭘 그렇게까지 해. 그냥 훅 돌려 따지.”
“머리 기억하세요.”
“아, 조용히 하겠네. 미안하네.”
나는 리스턴을 마법의 주문으로 속박한 후, 지속해서 바늘로 눈알을 따기 시작했다.
앨프리드는 그런 나를 보다가 말없이 끼릭 하고 가스를 더 틀었다.
수술 부위가 작다 보니 시간이 거의 안 걸릴 줄 알았던 모양이다.
조지프도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지만 그 이상 티를 내진 않았다.
왜?
내가 얘를 안과로 키워 보겠다고 공언한 덕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꼼꼼한 녀석이니만큼 안과가 맞을 거 같아서 그랬다.
“후.”
하여간, 나는 마침내 수정체 분리에 성공했다.
일부러 완전히 분리하진 않았다.
평소와는 달리 환자를 완전히 눕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칫 잘못하면 툭 하고 안구 안으로 수정체가 떨어질 거 같아서 그랬다.
그랬다간 나도 19세기 의사 되는 거잖아.
해서 좀 남겨 놓고, 이번에 따로 마련한 작은 집게로 수정체를 잡았다.
“휴.”
그러다 또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튼, 그렇게 잡은 후 나는 조지프에게 눈짓을 보냈다.
조지프 또한 긴장 섞인 한숨을 쉬면서 바늘을 집어 들었다.
멸균 개념이 나보다 뛰어난 놈답게 조심스레 쥐고는 툭툭 내가 일부러 남겨 둔 부분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뚝.
그렇게 잠깐 시간이 지나자 수정체가 떨어져 나왔다.
동시에 눈알에 구멍이 났다.
참…….
이게 보고 있기가 좀 그랬다.
하지만, 마냥 끔찍하게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선천성백내장인 경우에는 21세기에도 수정체만 제거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
아이가 자라는데 렌즈를 넣어 놨다가 나중에 안구가 커지거나 예상보다 안구가 길거나 하면 어쩐단 말인가.
해서 그냥 두고 안경으로 버틴다는 얘기를 들어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수업 시간에 들은 거 같은데…….
안과는 마이너 서저리인 과다 보니 학점이 낮아서 그냥저냥 무시했던 게 천추의 한이다.
“자, 병실로 보내자.”
“네.”
하여간, 여기서 뭘 더 해 줄 것은 없었다.
감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조지프가 개발한 철제 안대를 끼워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안약?
안 넣는 게 낫다.
나중에 보니 그 미친놈이 쓰던 붉은 안약 그거 구리더라고 재료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눈이 멀지…….
그러고도 나은 사람은 그냥 바이러스성 결막염이라 나은 걸 거다.
당연히 인간이 존나 셌을 거고.
툭.
아무튼, 우리는 지속해서 수정체 제거 수술을 했다.
한 5명 하니까 내 눈알이 빠질 거 같아서 중단하긴 했다.
“나머지는 내일 합니다.”
“아니…… 기다렸는데요.”
“일당 쳐 드려요.”
“감사합니다. 내일도 기다립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들에게 돈을 줘 가면서 멈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가진 못했다.
유리 세공사들과 안경 제작자들을 불러 회의를 해야만 했기에 그랬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보이게만 해 봐요.”
“오…….”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대신 품질이 완벽해야 해. 그래야 내 이름을 걸고 하지.”
“설마…….”
“저희가 만드는 안경에도 P.S. 마크가 들어가는 겁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긴 했다.
나는 이미 명품 시장을 선점한 사람이기에 그랬다.
사실 명품이라고 하면 패션부터 점령해야 했을 거 같긴 하지만, 내가 뭐 패션을 아나?
신경이라도 쓰고 살았다면 미래 지식을 이용해 이때는 이런 게 유행하지 하고 막 풀어서 돈깨나 만졌겠지만 아쉽게도 전생에 나는 별명이 단벌 신사였다.
딱히 주관이 명확한 것도 아니라 어떨 때는 초록 티만 입어서 별명이 네이버였고 어떨 때는 후드 티만 입어서 별명이 비질란테였다.
“잘 만들면. 정식으로 우리 전속 장인이 되는 거지.”
“오…… 오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태도를 불러일으키려면 리스턴이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협박을 해야 열심히 한다, 이 말이다.
하지만 브랜드가 생기고 나서는 다 옛말이 되었다.
일단 우리 브랜드 자수 뜨는 장인들 월급이 상당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인들 사이에서 부러움도 사는 데다가 가끔이지만 유명인이나 유력자들을 만날 기회도 생긴다.
너무 속물 같아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19세기 런던에서는 이런 게 성공의 기회라고 보면 된다.
아니, 온 유럽이 그렇다.
당장 아까 언급했던 장 바티스트 륄리도 원래는 이탈리아 태생인데 마침 이탈리아 여행 중이던 기즈 대공의 눈에 들어 프랑스로 온 거다.
실력 이전에 인맥과 운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이다.
‘그건 21세기에도 비슷한 거 같긴 한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100% 실력만으로 되는 게 있나 싶다.
솔직히 나는 노오력충이긴 했는데, 오히려 대가들은 자기가 운이 좋았다고 하더라고.
대가도 아닌 놈도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그 이비인후과 친구, 의사 그만두고 웹소설 작가로 살고 있거든.
걔는 내가 봐도 운이 좋았던 거 같긴 한데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래. 내가 잘하면 폐하도 소개시켜 줄 테니, 폐하의 안경도 만들 기회가 생길 수 있네.”
“허어…….”
“흐어…….”
그런 시대에 왕 얘기를 꺼내니 어찌 소용이 없겠나.
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이 시기 안경에 대해 이것저것을 더 들었다.
일단 놀라운 것은 내 기억보다 안경이 훨씬 두껍다는 점이었다.
“왜 이렇게 크지?”
“이렇게 안 하면 볼 수가 없습니다요.”
“네네. 더 얇게 하면…… 그만큼 먼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압축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게 되면 19세기가 아니긴 하다.
‘그래도…… 이건 렌즈라기보다는 유리알인데……?’
안경다리를 보다 무겁게 하거나 뒤에 뭔가 달지 않으면 툭 떨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알이 뭐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떨어지면 깨질 것이 분명하고…….
“좋은 생각이십니다.”
“과연…… 피영시인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나는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리스턴의 호위를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냐.”
“고생이 많다.”
아저씨랑 어디 갔다가 돌아온 부모님이 계셨다.
얘기를 들어 보니 슬슬 아픈 곳이 늘어나는 모양인데…….
‘이런 젠장.’
아들이 영국 최고의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은 그저 시대가 내 지식을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