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0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02화(402/505)
402화 안과 [4]
망막이 떨어지는 병.
공교롭게도 내게는 좀 익숙한 병이었다.
동기 중에서는 제일 친한 녀석이 그 병에 걸렸었으니까.
망막박리인데…….
녀석은 의사인 주제에 좀 늦게 가서 황반까지 떨어졌다가 붙인 케이스다 보니 나중에도 변시증이 있어 고생깨나 했었던 거 같다.
뭐…….
나처럼 비명횡사하진 않았으니 나보단 나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정말 그게 맞냐는 거지.’
환자들 중 이런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왜 의사들은 지들끼리만 알아듣는 말로 떠들고 쓰냐는 건데…….
그게 어쩔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의학 용어란 것은 전 세계 의료진이 별문제 없이 소통하기 위해 만들고 익히는 새로운 언어니까.
순우리말 용어를 만들자는 운동도 있지만 잘 안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의학이라는 건 더 이상 천재 한 명이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필연적으로 전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과 학회 발표를 서로 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걸 우리만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되겠나.
바로 갈라파고스 되는 거다.
‘지금은 내가 갈라파고스지. 아니…… 다들 갈라파고스라고 봐야 할까?’
19세기 의학은 아직 그러한 단계를 거치지 못한 상황이다.
의사마다 하는 말이 다 다른데 그중에는 맞는 말도 있지만 대개는 틀린 말이고, 설령 맞는다고 해도 표현이 달라서 알아듣기가 참 어렵다.
“망막이 떨어져요? 그게 무슨 말이죠?”
해서 나는 이 사람이 뭔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짐짓 모르는 척을 해 봤다.
그랬더니만 이미 우리 사이에 껴서 잘만 얻어먹고 있던 양반이 잠시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잔을 내려 두고는 입을 닦았다.
아무래도 독일에서 좀 살던 양반인가 본데, 뭐가 되었건 우리 일행도 의사들이다 보니 의학적인 내용을 듣는 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기대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들 먹던 것을 멈추고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뭐…… 독일이 아무래도 뭔가 다르긴 하지.’
아직 통일 제국은 아니긴 하다.
비스마르크가 태어나긴 했겠지만 그 철혈 재상이 나랑 동년배일 테니 뭐…….
활약하기엔 멀었다고 할 수 있는 데다가, 독일이라는 나라가 프랑스 옆이고 또 영국하고도 그리 멀지 않은데 게르만족 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사분오열시켜 둔 상태기도 하다.
나도 처음에는 역시 영프…… 혐성국들답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인이라 프랑스를 안 좋게 보는 거 아닌가 할 수도 있을 텐데, 프랑스 얘네가 진짜 숨겨진 보석 같은 놈들이다.
‘독일 사람들이 무섭다니까, 이거.’
그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도록 하고, 영프가 저렇게 공을 들여 독일을 탄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 지금 내 생각이다.
유전자가 좀 다른 것인지 문화적으로 뭐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19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저 독일은 과학적으로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쓰는 수술 기구 대부분이 독일산이라니 말 다 한 셈이다.
19세기 영국이면…… 진짜 세계 최강대국임에도 독일산이 더 좋다는 거 아닌가.
“폰 그래페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1805년에 부검을 하다가 망막이 자연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신을 확인했어요.”
“떨어졌다는 게 뭔 소린가?”
그러한 인식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리스턴도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보통 상황이었다면 이런다고 가르쳐 주진 않았을 터였다.
뭔가 좀 차가운 구석이 있거든.
날씨 탓이라는 사람도 있고 한데, 하여간,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하지만 리스턴이 물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 사람이 유독 괜찮은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아…… 망막이 원래 안구 뒤에 딱 달라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최근에 눈 해부를 좀 해서 구조는 잘 알고 있네.”
“잘된 일입니다. 아무튼, 그게 떨어진 겁니다. 사이에는 물이 차 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어허…… 근데 그럼 문제가 있는 건가?”
“네. 확인을 해 보니 그 시신이 생전에 눈이 안 보인다고 했다고 합니다.”
“백내장은 아니고?”
“20대라.”
“아…… 호오…….”
젊은 백내장도 있긴 하지만, 이 시기 의사들에게는 상식이 아니다 보니 둘 다 그렇게 넘어갔다.
나도 유병률이나 이런 걸 정확히 모르다 보니 일단 넘어갔다.
게다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랬다.
‘설마…… 정말로 망막박리를 말하고 있는 건가?’
망막박리…….
옆에서 봐서 아는데, 진짜 황당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다.
진짜 한순간에 시력을 잃더라니까?
이 시기라고 해서 없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사람들의 시력을 조금이라도 지켜 낼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이…… 우리는 망막박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망막이 어떤 액체에 의해 박리가 된 것으로 보이거든요. 혹시 두 분 박사님께서 더 적절한 단어가 있으시면 알려 주십쇼.”
테오도르의 말에 리스턴이 넌지시 나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심기 전에도 대강 그러한 편이었지만 그 후로는 아예 내 뜻에 따르기로 맹세했기에 그렇다.
그래 봐야 리스턴은 리스턴이다 보니 간혹 대들지만 그럴 때마다 머리를 바라보면 또 교정이 되곤 하니 참 편리한 일이다.
아무튼, 이 말은 우리 시대에서도 쓰이던 말이니만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말 같군요. 저도 그 비슷한 케이스를 해부하다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시력에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확실히 망막이 시력에 지배적인 영향이 있다고 보는 게 맞겠군요.”
“아하, 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든든합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해도 안 듣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아, 저는 선생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미술을 배웠었는데…… 미술만 해도 망막이 핵심이라는 건 확실해지죠.”
“미술? 미술이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시기 사람들이 잘 나가다가 이상한 소리하는 거야 뭐 당연한 일 아니겠나.
이 양반도 결국 19세기 사람이구나 싶어서 ‘네네’ 하고 있다 보니 의외로 그럴싸한 얘기가 나왔다.
원근감이 가능하려면 상이 반대로 맺혀야 할 텐데 그러려면 이전의 개념처럼 우리 인간이 물체를 수정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안구 뒤편에 있는 망막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거란 얘기였다.
듣다 보니 과연 그래서 나는 이 테오도르란 인간을 좀 더 신뢰해 보기로 했다.
“오호…… 그렇군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하하 가당치도 않습니다. 가르침이라뇨. 피영시인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니, 평생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요점이 뭡니까. 이 병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아아. 네, 제 환자가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환자……라기보다는 동행인인데 지금 환자가 된 거죠.”
“그렇군요. 아니, 가만.”
환자가 되었다는 건 이 양반이 상대가 망막박리라는 걸 봤다는 뜻 아니겠나.
그 말은 곧 망막을 봤다는 건데…….
나는 산동을 하고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망막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맨눈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랬다.
검안경이 있어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아직 우리가 만든 검안경은 내부 관찰이 쉽지가 않았다.
‘설마.’
이 독일 놈들이……?
이러다 세계대전이 보다 빨리 나는 거 아닌가를 걱정하면서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본 겁니까? 망막은 안구 뒤편에 있어서 산 사람 것을 보기는 쉽지가 않은데.”
“아.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냥 보기는 어렵죠. 하지만 이게 있으면 됩니다.”
그러자 테오도르는 씩 웃으면서 어떤 물건을 꺼냈는데 딱 봐도 검안경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쓰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이건……?”
“검안경이라고 하는 건데, 이걸 쓰면 안이 그래도 보입니다. 사실 피영시인이 아니었으면 만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응……?”
“미아즈마를 현미경으로 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랬죠. 논문으로 냈죠.”
논문을 낼 때 원장님과 리스턴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더랬다.
학계라는 곳이 원래 인맥이 중요한 곳이라 서로 끌어 주고 밀어주고를 해야 하는데 내가 뭐가 있나.
이 둘이 아니었으면 아무도 받아 주지도 않았을 거다.
해서 리스턴을 바라보니 그가 ‘후후’ 하고 웃었다.
그러는 동안 테오도르가 검안경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현미경 붐이 일었습니다. 헌데 저는 좀 원대한 계획이 있거든요.”
“원대한 계획……?”
“네, 높으신 분들 품에 들어가 호의호식하는 겁니다. 피영시인이 딱 제 롤 모델입니다.”
“아, 으음.”
뭐…….
지금 내 상황을 돌이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너무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좀 불쾌하다.
약간 간신배라도 된 거 같고 그래.
그래서 인상을 썼지만 테오도르는 누군가 이미 점 찍어 놓은 인물이 있는 건지 내가 아닌 허공을 보고 있어서 별 소용은 없었다.
“아무튼, 저는 그분이 눈이 안 좋다는 걸 알거든요. 그래서 안과로 튼 것도 있습니다. 그러다 검안경을 만든 김에 은인이라 할 수 있는 피영시인을 찾아 영국으로 온 겁니다. 오는 길에 동행이 문제가 생겨 급히 찾아오게 되었고요.”
“아하…… 흐음 이거 내가 좀 봐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실은 선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하하.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잘 좀 봐주십쇼.”
“오, 그래요? 그래야죠. 하하.”
인상은 금세 풀어졌다.
출세를 원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아주 눈치가 빨라서 그랬다.
나는 그에게 받은 검안경으로 조지프의 눈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실내라 그리 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망막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나도? 아, 알겠네.”
리스턴은 잠시 거부를 하길래 머리를 바라보았더니 기꺼이 눈을 내주었다.
덕분에 나는 블런델의 눈까지 다 볼 수 있었다.
반복을 하다 보니 확실히 망막이 어디쯤 어떻게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에 웃고 있으려니 내가 이 짓을 다 하기까지 기다리던 테오도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망막박리 이거 어떻게 치료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 으음. 그건…… 일단 생각을 좀 해 봐야겠는데.”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됩니다. 제가 독일에 있을 때도 몇 번인가 봤는데, 오래 끄니까 눈이 멀더라고요.”
“그렇긴 하겠지, 아무래도.”
“물론 서둘러 치료했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후가 좋았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도 많아요.”
“응? 많다고?”
“네, 그렇죠. 뭐……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게……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사람 죽었단 얘기를 이토록 가볍게 할 수 있다니.
고백하건대, 방금 전까지 나는 테오도르가 19세기 사람답지 않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역시나 19세기의 전형적인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손에 환자의 피를 잔뜩 묻힌…… 그러면서도 그걸 그리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그렇지. 하하.”
“진보의 대가랄까.”
물론 거기다 대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내 친구들도 다 동조하고 있는데 분위기 깰 수야 없지 않겠나.
대신 나는 그가 어떤 수술을 왜 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걸 알아야 나도 뭔가 더 나은 걸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