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0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03화(403/505)
403화 안과 [5]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나 필요한 희생이라고 하더니만 본격적으로 설명에 들어갔다.
이상하게 자꾸 나를 쳐다보면서였다.
“이게 다 피영시인 덕분입니다.”
뭐가 내 덕분이라는 건지 이상했다.
덕분이라고 하면 당연히 좋은 일이어야 할 텐데 느낌이 그게 아니라서 그랬다.
뭔가…… 불안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일단 물어봤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지금이야 뭐…….
감히 내가 묻는다고 뭐라 할 놈은 없지 않겠나.
오히려 ‘히익’ 하면서 바로바로 답할 놈들뿐이라고 보면 된다.
“왜……? 제 덕분인지.”
“인류의 진보를 위한 실험에 앞장서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차피 죽을 놈들이라는 개념이 참…… 저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고 하던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인체 실험도 나 때문이라고 할 줄이야.
‘미친놈들 아니야?’
치료라는 명목으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짓을 하지 않았나.
그걸 깨부수기 위해…….
그래, 설득하기 위해 겨우 떠올린 방편이 그거였는데 이걸 이렇게 받다니?
배신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지만 아쉽게도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내 제자이자 내 덕에 오늘 처음 수술을 해 본 조지프조차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덕분이죠. 런던 범죄율도 줄고 있다지 뭡니까.”
“하긴…… 제깟 놈들이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끔찍하게 죽고 싶진 않겠죠!”
“그렇네. 내가 한때 자경단으로 활동했었는데, 그때보다 확실히 범죄자들이 줄었다고 해.”
“역시…… 피영시인…….”
심지어 내가 대가리에서 머리로 만들어 준 리스턴마저 저따위 소리나 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라고 반박해 봐야 나만 꼴이 우스워질 거라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말마따나 후대의 평은 포기한 지 오래기도 하다.
‘일기…… 믿을 수 있는 건 일기뿐이다. 아니, 아니야. 다른 수도 써야겠어. 이거 이러다가 희대의 악인으로 기록될 거 같아…….’
뭐,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은 19세기고 또 20세기로 들어서게 되면 1차, 2차 세계 대전이 있는 만큼 유야무야 잊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될 거 같지가 않다.
이미 너무 많은 짓을 했어.
심지어 나는 이제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참이다 보니 이대로 멈추기도 어렵다.
‘자서전을 쓰게 하자.’
이렇게 된 이상 좀 조작을 해야 할 거 같다.
다행히 나는 글솜씨가 아주 뛰어난 사람을 몇 알고 있지 않나.
빅토르 위고나 알렉상드르 뒤마 그리고 브론테.
그중에서도 브론테 자매는 내 후원금을 받고 있으니 부탁을 거절하진 않을 거 같다.
세상에, <폭풍의 언덕>을 쓴 사람이 내 자서전을 쓴다?
이거야말로…… 대역전극 아니겠나.
나는 내일 아침에 날 밝는 대로 오랜만에 자매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으면서 일단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여간 피영시인 덕에 인체 실험의 길도 열리고…… 또 그 정신을 본받아 많은 젊은 의사들이 뛰어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취가 있으니 두려움 없이 사람 살을 째 볼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
나는 마취가 환자의 고통을 종식시켰다고만 생각했지, 저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꾸며 대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아무래도 독일 놈들이 나치가 된 것이 순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가운데, 테오도르가 말을 이었다.
“덕분에 눈도 막 째 볼 수 있게 되었고…… 저희가 만든 검안경 덕에 망막박리를 진단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수술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게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이 있습니다.”
시행착오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인데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새끼들이 시행착오라는 말까지 들먹거리는 건 진짜로 뭔가 일이 크게 벌어졌기 때문일 거라 그랬다.
어지간한 일은 그냥저냥 넘기는 놈들이지 않나.
사람이 죽어도 필요한 희생이었네 어쩌네 하는 놈들이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우선…… 좀 소심한 친구들은 그냥 환자를 쉬게 하더군요. 그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눈이 다 멀지.”
“그거야 그렇겠죠.”
나도 쉬는 건 반대다.
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나은 시대이긴 한데, 그래도 나라면 뭔가 하긴 할 거라 그랬다.
21세기 의사가 자존심이 있지 어찌 그저 쉬라는 말만 하겠나.
이거야말로 오후만 되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그럼 오후에는 쉬라고 하는 돌팔이가 되는 길 아니겠나.
“그래서 저는 우선 눈에 구멍을 내 봤습니다.”
“응?”
우선이라는 말과 눈에 구멍이라는 말이 서로 붙을 수 있는 말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아마 처음 19세기로 돌아왔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면 꽤 크게 놀랐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아주 강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넘길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리스턴, 조지프 그리고 블런델 또한 그럴 수 있지 하는 얼굴이었다.
“아, 그냥 낸 것은 아니고요. 뭔가 압력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근데 그랬더니 눈에서 유리체액이 막 흘러나오더니 눈알이 작아지더군요. 환자는 실명했습니다.”
“어차피 실명할 환자였는데…… 죽진 않았고?”
“열이 좀 나다가 말았습니다. 살았죠.”
“그럼 뭐…….”
리스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동의를 구하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우선적으로 이 인간에 한해서는 최대한 척을 지지 말자고 결심한 참이었기 때문에 같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뭐 어쩌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 앞에 있는 환자도 아니고…….
‘나도 배웠네.’
사실 함부로 눈알 째고 놔두면 저렇게 되는구나 싶기도 해서 그랬다.
확실히 시대를 발전시키는 건 미친놈들인 거 같긴 하다.
안 해 봤으면 모를 거 아니야?
안 하고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겠지만…….
글쎄,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라는 게 지금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인간은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 먹어 봐야 만족하는 동물이니까.
“다행히 망막박리라는 게 그렇게 드문 질환은 아니더군요. 수소문해서 찾아보니 머지않아 또 기회가 왔습니다.”
“기회라…… 그걸 기회라 표현하는군요.”
“왜 그러나.”
“아니, 참 귀한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안과로 진로를 정하게 된 조지프가 광장에서 팔다리 자르던 리스턴을 동경하는 눈으로 보던 때처럼 이제는 테오도르를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하고 싶었지만 뭐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긴 해서 일단 있었다.
확실히…….
외과 의사라면 케이스를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 좋구만. 젊은 친구가. 아무튼, 다음 케이스에서는 좀 더 신중히 봤습니다. 그래서 눈알 안을 들여다보는데…… 이게 아무래도 떨어진 부위가 너덜거리는 거 같단 말입니다.”
“그렇겠죠. 망막은 엄청 얇으니.”
이번엔 내가 대꾸했다.
꼭 해부를 해 봐야 알게 되는 사실도 아니긴 했다.
우리 몸에서 막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들은 다 얇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망막은 그중에서도 종이보다 얇은 조직으로 유명하다.
뭐…… 그러니까 별짓 안 해도 저 혼자 찢어지고 구멍 나고 하는 걸 거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럼 눈알 안에 물 같은 것을 채워서 누르면 되지 않나?”
“오.”
이건 혁신인 듯했다.
확실히 대단한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지혈도 솔직히 제일 쉽고 효과 좋은 방법은 피가 나는 부위를 꾹 누르는 거잖아.
숙련된 외과 의사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인 태화 의료원 외과 교수로서 이건 좀 효과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랬더니 환자가 엄청 아파하는 겁니다.”
“아프기야 하겠지. 근데 눈 보이려면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눈알을 들여다보면서 더 넣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딱 붙는 시점이 오더군요.”
“오오! 그럼 그렇게 치료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 그게.”
망막이 떨어졌던 걸 붙였으면, 그게 치료 아닌가?
해서 나는 눈을 반짝이면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의외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를 이룬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 말이었다.
“저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눈이 초록색이 되더군요.”
“녹내장이 생겼다는 건가?”
“네. 그래서 환자는 실명했습니다.”
“아…… 그럼 안 되는 모양이로군?”
“네. 너무 아파하기도 하고요. 환자가 그렇게까지 소리 지르는 건 처음 봤습니다.”
“팔다리 자를 때보다도?”
“아, 네. 저도 소싯적엔 마취 없이 좀 잘라 봤는데, 그때보다도 더 아파하는 거 같았습니다.”
과연 그럴 만했다.
녹내장…….
백내장이 눈동자가 하얗게 되어서 백내장인 것처럼 녹내장은 눈동자가 초록색이 되어서 녹내장인데, 안압이 올라가서 생기는 거다.
‘하긴, 눈알에 뭘 넣으면 안압이 올라가겠구나.’
안압이 올라갈 때 생기는 안구 통증이나 두통은 그 정도가 아주 극심하다고 들었다.
안과에서 수술도 안 했는데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케이스가 녹내장이라고 했으니 뭐…….
‘안 해 보길 잘했네.’
이런 치료를 떠올려 본 것은 아니지만, 얘기 듣지 않고 망막박리 환자를 봤다면 아무래도 이 치료를 해 봤을 거 같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머리 긁적이던 것을 멈추고 어딘지 모르게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피영시인께서도 그 치료를 생각했군요. 영광입니다. 제가 도움이 되다니…….”
“들켰군요.”
“하하. 정말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아무튼…… 이것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저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의사들은 좀 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미친놈들이 왜 사람이 자꾸 죽는데 굴하지 않는 걸까?
아, 테오도르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이 사람은 그래도 이리저리 치료법을 바꾸고 있잖아?
-음. 환자가 너무 약했군.
보통의 의사들은 그러는 대신 환자만 바꿔서 죽인다.
치료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러니까 자기 생각이 틀렸다기보다는 환자가 틀렸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다.
“그래서…… 이번에는 찢어진 망막을 직접 꿰매 봤습니다. 아니, 꿰매려고 했다고 해야겠군요.”
“아…… 그거 바늘로 뚫으면 더 찢어질 텐데.”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해 보셨습니까?”
“아니…… 원래 너무 얇은 건 그렇게 되지…….”
“하하, 역시 피영시인입니다. 네, 그렇더군요. 그 환자는 죽었습니다.”
이 사람도 뭐…….
좀 낫긴 하지만 결국, 19세기 사람이긴 한 게 사람 죽었다는 말을 하면서 이렇게 해맑게 웃는다.
아무튼, 우리는 그 외에도 다른 치료법을 몇 개 더 들었지만 결론은 다 실패였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온 테오도르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피영시인 경께서 묘수를 내주실 수 있을는지요. 도움을 청하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환자도 이미 준비가 되어 있으니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해 보시면 됩니다.”
“음…….”
이건 내게도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다.
다행한 것은 지금까지 이 친구에게 들었던 실패담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 같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