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0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06화(406/505)
406화 망막박리 [3]
팬 서비스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줄 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한다는 뜻인데.
전생의 나야 뭐 그런 것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먼 삶을 살긴 했지만서도 팬 서비스가 좋다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에 대해 들으면 나도 모르게 호감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도 인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 또 인기인이 되면 나는 잘해야지 했던 때도 있다.
“후우우우…… 오신다.”
또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다.
옆에서 너무 기대하면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제 그런 레벨은 다 지났잖아?
해서 일부러 하늘을 보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테오도르가 역시 역시 하면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와…… 진짜…… 진짜구나, 이게. 여러분들은 안 놀라십…… 하긴, 맨날 보는 거겠군요.”
그에 비해 내 제자들이나 리스턴, 블런델 그리고 원장님은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맨날 이래서라기보다는 내 큰 뜻에 공감하기 때문일 거다.
내가 설마하니 나 하나 잘 되자고 이러겠나.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면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냥 이 시대 전체가 구원을 받는 거다.
아, 본인이 구원자라는 얘기는 아니고 내 말을 더 잘 듣게 되면 구원을 얻게 된다, 이 말이다.
내 말이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까.
“눈알 벌리고.”
“네.”
아무튼, 내가 지랄을 하건 뭘 하건 제자들은 가르친 대로 잘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 훈련이 꽤 빡세다 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아, 빡세네 뭐하네 하면 ‘뭐 얼마나 빡센데’ 할 수도 있겠다.
근데 원래 병원은 21세기에도 빡센 곳이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너무 윗사람에게 충성하려는 성향의 인간들이 모여 있기도 하고…….
허나 제일 큰 건 사람이 죽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너 뒈질래?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다른 사람에게 ‘뒈질래’라는 말을 하는 건 지금도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저 짓을 당한 것이 나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보편적인 상식이 그렇다, 이 말이다.
말이 잠깐 샜는데, 21세기도 그랬으면 19세기는 어떻겠나.
심지어 여기 교수는 나만 있는 게 아니라 리스턴도 있다.
우리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해 보이는 블런델조차 무서운 인간이다 보니 우리 제자들을 보고 있으면 얘들이 정말 의사인지 아니면 군인인지 잘 모르겠을 지경이다.
“자 이제 너는 눈알 고정하고.”
“네.”
좋다는 뜻이다.
말만 하면 딱딱 된다.
콜린이 눈꺼풀을 벌리고, 조지프가 눈알에 날카로운 갈고리를 걸어 움직이지 않게 했다.
시야와 고정은 모든 수술에 있어 기본이기에 보조의에게는 이것부터 훈련시켰다.
“허어…… 과연…… 이렇게 하면 훨씬…….”
기본이라고 해서 그 개념 잡기가 쉽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나 기본으로 불린 것이지 19세기 땐 아예 상상도 못 했을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옛날 사람들에게는 역시 지능 이슈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나도 그랬지만, 와 보면 억울한 면이 있다.
일단 마취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그전까지 눈 수술은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니까, 진짜…….
-눈알 굴리지 마! 어어! 눈알 굴리면 눈 뽑…… 아이고. 그러게 왜 굴려 가지고.
뭐 이런 식이었다고 들었다.
실제 상황은 이거보다 훨씬 더 끔찍했는데 내가 순화한 거다.
그런 얘기 여기저기 자세하게 돌려서 뭐 하겠어.
하여간, 나는 테오도르가 감탄하는 것을 보면서 남몰래 후후 웃었다.
이제 독일에도 내 이름이 더더욱 퍼지고 또 사람들이 더 살아날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이렇게 말하다 보면 좀 뒤에 붙는 말을 억지로 갖다 붙이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인류의 미래만을 생각하고 있다.
“칼.”
“네.”
나는 그렇게 고정된 눈에 칼로 절개창을 내었다.
아마…….
21세기에서는 안 하는 짓일 거다.
눈에 칼이야 대긴 하겠지만 고작해야 망막에 접근하겠다고 이렇게 큰 절개창을 내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
-그런 수술은 연습할 게 아니라 무조건 개선을 해야지.
언젠가 우리 교수님이 이비인후과 수술을 보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청신경초종 제거술을 하려면 접근법이 좀 골 때려서 그랬는데, 확실히 수술하는 부위는 작은데 거기까지 가려고 째는 부위 범위가 너무 큰 건 문제긴 하다.
그때는 같이 욕하기도 했다.
‘역시 이비인후과는 좀 문제가 있네요’라고.
지금은 후회한다.
‘내가 그 짓을 하고 있네. 그것도 눈에.’
이게 몇 센티야.
이놈들이야 1인치 정도 되나 하고 있겠지만, 인치는 좀 그렇다.
여기 산 지 이제 꽤 됐는데도 딱딱 계산이 안 되고 가늠도 안 돼.
“자…… 벌려.”
“네.”
아무튼, 거의 3센티는 되는 절개창을 내고 그걸 벌렸다.
그러자 눈꺼풀을 벌리고 있던 콜린이 눈치 좋게 등불을 가져다 댔다.
만약 환자가 누워 있었다면 아마 그림자만 지고 화만 났을 테지만 앉아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도 다 미리미리 안과 수술을 어떻게 하나 본 덕이라 할 수 있다.
미래에서 왔다고 그 미래 지식만 믿고 안주하지 않는 사나이, 그게 바로 나다.
“탐침.”
“네.”
“잘 벌려. 이러다 눈알 닿으면 다 탄다.”
“네.”
조지프는 절개창을 있는 힘껏 당겼다.
그러자 나름 잘 보이기 시작했다.
‘오…… 이게 이렇게도 보이네.’
21세기면 안에 카메라를 뚫어 넣었을 텐데, 이게 참 뭐 하는 짓인가 싶다가도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뭔가 되는 거 같으면 희열이 느껴진다.
아무튼, 나는 찢어진 부위에 뜨겁게 달군 탐침을 가져다 댔다.
치이익.
그와 함께 눈알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지옥에서 올라온 고X트 라이더라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엔 눈에서 연기라니.
이런 것도 아마 나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장면이 아닐까?
“주여…….”
테오도르조차 처음 보는 것인지 하늘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약간 내가 신성 모독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필요한 일이란 생각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무엇보다 눈알 외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시간도 없었다.
“좋아. 다시 불 대 봐.”
“네.”
21세기에는 지지면서 동시에 환부를 살필 수 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지기 전까지는 지질 부위를 볼 수 있지만, 막상 지질 때는 깜깜한 데서 지져야 한다.
“휴.”
그렇다 보니 과하게 지져질지 아니면 모자라게 지져질지 좀처럼 알 수가 없는데, 다행히 잘된 거 같다.
사실 과하게 지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쇠는 빨리 식거든.
물론 붉게 달구면 오래가겠지만 그렇게 된 탐침을 사람 눈알 안에 집어넣는 건 하면 안 되는 짓이다.
그러다 옆에 구조물까지 다 타면 눈알 뽑는 것으로도 못 살릴 거다, 아마.
“바늘.”
“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탐침 넣느라 생긴 눈알 구멍을 이제 꿰매야 했다.
“이거…… 소독 열심히 했지?”
“미아즈마 하나도 없을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눈에 염증이 생기면 이게 참 골 때린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말 그대로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외상외과다 보니 더더욱 희한한 환자를 많이 봤다.
그중에는 나뭇가지가 눈에 박힌 환자도 있었는데 그 환자는 염증까지 생겨서 진짜…….
안구 적출까지 했는데도 주변으로 감염이 퍼지는 바람에 수술을 네댓 번인가 했을 거다.
“좋아.”
그래서 조지프에게 한 번 더 강력하게 말했고, 조지프는 소독을 위해 살아가는 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열과 성을 다했더랬다.
그렇다고 한들 시대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고 또 없던 항생제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뭐가 되었건 최선을 다하긴 해야 하는 법 아니겠나?
툭.
그렇게 준비된 실과 바늘로 나는 공막을 최대한 단단히 봉합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 시기 주로 쓰이던 봉합법, 즉 바느질에서 유래한 것보다는 훨씬 발전한 형태다 보니 테오도르는 이번에도 감탄을 터뜨렸다.
“와…… 주여.”
뒤에 자꾸 주님을 붙이는 것이 불안했지만, 뭐 어쩌겠나.
내 걱정과는 달리 이제는 이단 심문관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좀 약해진 모양이더라고.
그래도 대놓고 저러다가는 성난 대중들에게 죽겠지만…….
내 기억에 다윈이 19세기 사람인데 천수를 누리고 죽은 것을 보면 그것도 얼마 안 남았다.
“끝이긴 한데. 잘 보도록 하죠.”
“네.”
“병원에서 제작한 안약을 넣기로 하고요.”
“안약이라면 저도 있습니다.”
수술이 끝나자 테오도르가 안주머니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통을 꺼냈다.
“산화 구리…… 그런 거 쓰지 마세요.”
“네? 전통의 안약인걸요.”
쓰지 말라면 쓰지 마 하고 대갈통을 그냥 부숴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명색이 대영제국의 귀족이고 또 런던 최고의 명의이자 주님의 사자인데 그럼 되겠나.
그렇다고 또 산화 구리는 중금속이라 인체에 해롭고 특히 눈과 같은 점막에 넣게 되면 오히려 충혈과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상하다기보다는 거기다 대고 ‘또 왜요?’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이유는 모르거든.
“주님의 말씀입니다. 쓰지 마세요. 대신 이 성수를 뿌리세요.”
해서 이런 논리를 만들어 왔다.
“어…… 성수?”
“이 물로 말할 거 같으면 저기 업턴에서 난 샘물을 길어다 만든 물로, 제가 직접 축복도 하고 처리도 한 물입니다. 심지어 이 물로는 목욕을 해도 깨끗해지기만 할 뿐 병도 안 걸려요.”
“허…… 아, 그. 소문의?”
“네, 그렇습니다.”
원래의 지구였다면 이런 말을 하는 순간 최소 사이비 종교 다큐멘터리에 섭외되거나 감방에 투옥되었겠지만 여긴 아니다 보니 오히려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내가 증인이네.”
리스턴 또한 자신의 깨끗해진 팔꿈치를 보여 주었다.
늘 시커멓게 때가 타 있던 곳인데 지금은 그냥 어린애 피부 그 자체였다.
어쩌면 때 때문에 오히려 해를 보지 못해 노화가 덜 되었나 싶을 정도였다.
말하자면 천연 선크림…….
‘어?’
뭔가 돈벌이 방법이 하나 더 떠올랐는데, 이건 나중에 풀도록 하자.
“그렇군요. 허어…… 이런…… 이건 그럼 여기서만 생산이 되겠군요.”
“아무래도. 하지만 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독일에 간다면, 얼추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오, 꼭 좀 그렇게 해 주십쇼. 독일에도 눈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요. 내 생각해 보죠. 아무튼, 환자는 차도가 있는지 좀 보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은 사업이 아니라 환자가 중요하니까.
이렇게 내가…… 환자밖에 모른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