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0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07화(407/505)
407화 화재 [1]
망막이 참 막막한 부위라더니…….
정말로 그런 거 같다.
일단 오래 걸린다.
“어…… 보입니다!”
“이건?”
“안 보이는데…….”
“여기 보라니까?”
“아, 보입니다. 어? 아까는 여기가 안 보였는데?”
“어쩔 수 없어, 이게.”
백내장은 그에 비해 훨씬 낫다.
내가 했고, 렌즈도 안 넣었는데도…….
그래도 보이긴 한다.
아니, 이전에 비하면 아주 잘 보이는 거 같다.
대신, 아직 다초점 렌즈는커녕 압축 렌즈도 없는 시절이다 보니 유리알 같은 안경 세 개가 필요한 것은 단점이다.
“가까운 거, 중간 거, 먼 거. 이렇게 쓰라고.”
“아이고…… 이게 헷갈려서…….”
“헷갈리면 앞을 못 보는데 이정도는 익혀야지.”
“아이고…….”
아마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가가 시력인데 3개 아니라 5개도 잘만 꼈을 거다.
하지만 이 시기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 공공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주일 학교와 같은 형태로 제한적인 교육이 슬금슬금 시작되고 있지만…….
진짜 슬금슬금이다.
그마저도 부모들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일이라 하라는 통에 잘 못 나가는 애가 부지기수라고 들었다.
그런 시대니 뭐…… 어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뭔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가 본데…….”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다.
말로 안 되면 뭐 어쩌겠어.
협박이라도 해야지.
“내가 니들 집 다 알거든. 알지? 우리 허락 없이는 도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거.”
“어…… 갑자기 그게 무슨.”
“불심 검문으로 봤는데 안경을 제대로 안 썼다? 그럼 곤란해지는 거야.”
“허어…….”
“심지어 안경을 팔았다? 그럼 진짜 뒈져.”
“히익,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표정들이 그래서 하는 말이지. 설마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하면 안 된다.
이러다가 자칫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라고 물을 거 같거든.
지금도 하마터면 할 뻔했다.
“그래, 잘 알아들었으리라고 믿어.”
“네!”
“나는 믿음을 배신당하면 배교자로 규정하니까 그리 알고.”
“네, 네!”
해서 대강 정리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안경사와 유리 세공사가 따라 나왔다.
잔뜩 흥분을 한 채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던 사람들이 지금 앞을 보게 되지 않았나.
비록 수정체 렌즈를 삽입한 거만큼 잘 보이지도, 그렇게 편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주님의 사자시군요…….”
“어찌 이럴 수가…….”
지금까지 행해졌던 백내장 수술을 아니, 눈 수술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거의 무슨 돌려 돌려 돌림판을 굴려서 운 좋으면 앞에 빛이라도 보는 거고 아니면 눈 뽑는 거였는데 지금은 어떤가.
저 사람들이 글씨를 몰라서 그렇지 아마 글씨도 읽었을 거다.
꽤 작은 그림도 구분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하, 뭐…… 그렇지. 기도하는 거 들었지?”
“네, 네.”
“저희도 덕분에 기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요.”
“그래, 생각보다 잘해 주었어. P.S. 마크를 달 수 있는 자격을 주겠네. 하지만 알지?”
“네네. 개인적으로 팔다 걸리면 죽는 거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이렇게 돈을 주시는데!”
이만하면 명품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저기 있는 환자들에게는 공짜로 풀었지만 앞으로는 어림도 없다.
‘뭐…… 수요 자체도 부유층이 많긴 할 거야.’
돈 많은 사람에게만 치료를 하겠다고 하면 너무 세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억울하다.
비난하기 전에 이 시기 인구 구조를 봐야 한다.
평균 수명이 아직도 50이 안 되는데, 21세기에도 그러한 경향을 보였던 것처럼 잘 사는 사람들의 수명이 더 길다.
그나마 21세기는 기술로 인한 상향 평준화가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차이가 몇년 정도에 불과한 데 반해 이 시기는 어마어마하게 난다.
‘일하다가 죽을 위험이 너무 높은 시대기도 하고…….’
21세기도 공장 주변 응급실은 늘 바쁘다.
내가 있어 봐서 아는데 진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을 하나만 꼽아 보라면 목에 칼이 꼽힌 채로 온 환자다.
천장에서 떨어졌다는데 대체 왜 그런 물건이 천장에 있는지…….
같이 온 동료에게 설명을 듣고 또 들었음에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도 일반 직장인은 모르는 위험천만한 현장이 제법 있었을 거란 얘긴데,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미친놈들이 아직도 수은, 납을 그냥 처리한다고 했지?’
중금속, 그중에서도 독성이 강하다고 분류되는 물질을 맨손으로 다루는 거야 뭐 일상다반사다.
비소나 백린처럼 내가 직접 독이라고 증명해 준 물건조차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함부로 다루고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럼 화학적인 위험만 있냐.
아니다.
물리적인 위험은 오히려 더 크다.
벌써 건물을 꽤 높이 올릴 수 있는 기술이 나왔는데, 그걸 지을 때도 안전 장치가 아예 없다.
뭐…… 20세기 뉴욕 사진만 봐도 그랬으니 그거야 당연하다.
문제가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일을 담당하는 건 가난한 이들이라는 거다.
‘백내장은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데 노동자들이 노인이 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야.’
차라리 농촌에 가면 좀 있다고 들었다.
거기서야 뭐 어릴 때 운 좋게 살아남고 크면서 병만 피하면 죽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병이야 당연히 더 많이 돌고 있고, 병원에 가도 아직까지는 의사라는 이름의 살인자들이 포진해 있으며, 공장이나 건설 현장도 위험천만한데 거리에서 파는 약은 태반이 독이다.
얘기가 길었는데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백내장 유병률이 아무래도 상류층에서 높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 말은 곧 이제부터 엄청나게 비싼 값을 받을 거라는 얘기였고.
“뭔 생각을 그리하나?”
그때 리스턴이 내게 와서 물었다.
솔직하게 얘기하기에는 너무 길기도 하고 오해할 만한 여지가 있어서 말을 좀 바꿨다.
“망막 환자 때문에요. 눈이 보이긴 하려나요?”
“그야 신께 달렸지. 그래도 테오도르의 말에 따르면 보통은 벌써 눈이 멀어야 할 텐데, 그래도 반은 보인다고 하니 다행 아닌가?”
“그렇긴 하죠. 근데…….”
“왜?”
나는 거대한 리스턴 뒤로 보이는 연기를 가리켰다.
명색이 런던이다 보니 매일 검은 연기가 치솟긴 하는데, 오늘은 좀 그 정도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불났나?”
“불이요? 아, 그러고 보니 불 같네?”
하필 가을이라 좀 헷갈렸다.
여름엔 난방을 아예 안 해도 되지만 가을엔 해야 되는 날이 좀 있다 보니 공기가 늘 우중충하거든.
하지만 리스턴의 말을 듣고 나니 과연 불이 난 듯싶었다.
뭐…… 런던에 불나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보일러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난방이란 행위가 언제나 불이 날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불이 아닌 거 같은데?”
“네, 저건…….”
하지만 저 정도 연기는 나도 처음이었다.
보아하니 리스턴도 처음인듯 했다.
그는 실로 드물게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 보세. 불구경은 놓치면 안 돼.”
“네? 아니, 그래도 우리는 의산데.”
“뭔 상관이지?”
“그…… 화상 치료할 거리는 챙기죠.”
“호.”
리스턴은 내 말에 좀 감동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네야. 하긴 마냥 구경만 하면 좀 이상하긴 하지.”
“그럼요. 이게 보통 큰불이 아닐 거 같은데요.”
나도 어지간하면 맞장구치면서 웃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화상…….
현대 의학조차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분야이지 않은가.
그나마 우리 병원에는 미 해군 트라우마 센터에서 2년인가 연수하고 오신 분이 있어서 국내에서는 제일 잘 치료하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명확했다.
‘화상 치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범위와 깊이…….’
치료에 범위와 깊이가 중요하다는 건, 얼마나 다쳤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결국 치료에 한계가 있다는 말 아니겠나.
나는 그것을 여러 번이나 몸소 체험했던 바 있다.
‘드레싱 할게…… 연고가 마땅한 게 없어. 그나마 알로에가 나으려나. 그리고…… 잘라 낼 수 있으면 잘라 내야 하니까 수술 도구. 음. 그리고 연기에 질식이 되면, 산소를…… 산소는 없군.’
가끔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처음 여기 왔을 때에 비하면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좋아지지 않았나.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화상 치료를 하려고 보니까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양파, 양파 여깄네.”
“응?”
대신 쓸데없는 게 생겼다.
리스턴과 그를 따라온 블런델, 앨프리드, 조지프와 같은 제자들을 말하는 건 아니다.
얘네는 레벨업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처음엔…….
-아편을 줄까?
-칼 가져와 사혈하게!
나 아플 때 이게 치룐지 살인인지 뭔지 모를 짓을 하려던 놈들이지만 이젠 그래도 나름 의사다울 때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양파는…….
이게 대체 뭐지?
“뭘 모르는 척 하나! 닥터 파레 이후로 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아니……?”
“그리고 이 붕대. 양파를 바르고 그 위에 붕대를 덧대 주는 것일세!”
“어어.”
정신이 혼미해진다.
양파……?
왜 이렇게 동양이나 서양이나 양파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새집 증후군 예방에도 양파가 쓰이질 않나…….
심지어 어떤 아저씨가 자기 비염 고쳐 보겠다고 코에 양파 꽂고 지내다가 점막 벗겨져서 외래로 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가세. 좀 더 늦으면 발 디딜 틈도 없을 거야.”
“어어.”
마지막에도 뭔가 이해가 안 되는 말이 있었지만, 리스턴은 벌써 나를 무등 태우고 달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마차를 탔을 텐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을 거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야, 불났대!”
“큰 불이다!”
“다 탄다! 런던 인 헬!”
“헬영국 다 타 버려라!”
불구경 나온 인간들로 가득 차 버렸다.
그만큼 평상시에 할 일이 없다는 뜻이고 또 재미난 게 도통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인명 피해만 없다면…… 이거 사실상 거대한 캠프파이어 아닌가.
헌데 가면 갈수록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쪽…… 이거 국회 의사당 쪽 아닌가?”
“아 나만 그 생각한 게 아니군요?”
“아니, 분명히 그쪽인데. 연기가 거기서 나는 거 같아.”
“허…… 누군가 쳐들어온 걸까요?”
아무리 봐도 웨스트민스터 궁전 같아서 그랬다.
지금이야 궁전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국회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런던의 가장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정말로 그 궁전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원래…… 원래도 이런가?’
나는 어쩐지 내가 와서 뭔 짓을 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언제나 그렇듯 잘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