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화(41/505)
41화 두통을……? [2]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난 어찌 되었건 간에 의사니까.
‘하체로 피가 쏠리면서…… 저혈류성 의식 소실이 일어난 거야.’
저런 경우, 기억도 같이 잃게 되었다.
애초에 자신이 기절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전투기 조종사들이 중력 가속도 훈련할 때, 이미 실패한 이들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즉시 발살바 호흡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던가.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나도 공군 군의관 출신이고 또 비행단 출신이었기에 저런 훈련을 받았더랬다.
‘건강에…… 좋을 리가 없지.’
저게 좋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뭐가 되었건 머리로 피가 안 가는 거니까.
그 시간이 비록 지금 짧기는 했지만, 하여간에 짧은 뇌경색이 일어난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시밤…… 차라리 다른 치료를 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19세기 의학은 진짜 중구난방이지 않나?
이것보다 나은 게 있을 수도 있어 보였다.
“어우. 아무튼, 머리가 아프진 않구만.”
그 사이 로버트 박사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면서도 좀 띵해 보였다.
일부러 다른 거대한 고통을 주어서 두통을 잊은 느낌이었다.
“그래, 직빵이라니까.”
“아직도 피 뽑는 놈들은 이거 보면서 반성해야 해. 방혈이라는 게 이런 식의 방법도 있는데 말이야.”
그러곤 토마스 박사와 더불어 껄껄 웃었다.
다른 의사들을 비난하면서였다.
그럴 주제인가 싶었다.
“가서 그 뭐야, 말 좀 해 주게. 제멜이 제일 문제야. 피 뽑는 데 아주 환장을 했어.”
“그럴까. 말 나온 김에 잠깐 갔다가 가지 뭐.”
“그래. 그러자고.”
과연 로버트 박사님이 있어서 그런가, 일행은 단순히 뒷말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앞담화를 계획했다.
상대가 절대로 상해를 입힐 수 없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럴 터였다.
물론 동행자인 나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었다.
마침 궁금하기도 했다.
제멜이라는 의사는 대체 무슨 치료를 하는지.
‘그 의사가 프랑스 출신이라고 했었나.’
대체 왜 프랑스에서 영국까지 왔나 싶었다.
말을 들어 보니 나름 실력파로 이름을 날린다던데…….
‘그때 그 치료는…….’
그 새끼, 전에 배 아프다던 환자 배에서 피를 뺐다.
그렇다면 머리 아프다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할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아마 머리에서 피를 빼겠지.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그래?”
그런 나를 보며 로버트가 물었다.
나름 걱정하는 투였다.
“머리가 아픈가? 걱정 말게나.”
토마스도 말을 걸어 왔다.
솔직히 말하면 머리가 아픈 건 사실이었다.
원래 두통이라는 건 굉장히 흔한 증상 아닌가.
살면서 머리 한번 안 아파 본 사람은 없을 정도일 텐데, 나처럼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저기 들어갈 수는 없지.’
속도가 느려서, 버틸 자신은 있었다.
난 훈련받은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럴 이유는 없다고 봐야 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아닌데? 얼굴이 좀 창백해, 자네.”
“아픈 거 같아. 들어가면 바로 나아지네.”
지랄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 내면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로 괜찮습니다.”
“그래, 뭐. 본인이 괜찮다는데 어쩌겠나.”
“아쉽구만. 바로 좋아질 텐데.”
다행한 것은, 두통에 대해서만큼은 21세기에서도 딱히 진단 툴이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기질적 원인이 있는 경우라면야 당연히 영상의학적 검사를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좀 애매했다.
이 시대에는 진짜 환자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 보니 대충 우기니까 넘어갔다.
“머리가 아프다고?”
“네.”
하여간 제멜의 진료실에 가까이 다가가니, 마침 두통 환자가 왔는지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가져오게.”
“저, 저게 뭡니까?”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환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왔다.
왜 그런고 했더니만 의문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해소되었다.
‘저게 뭐야, 시발.’
제멜은 조수가 들고 온 괴이한 도구를 들고 있었다.
한의학에서 주로 쓰는 장침 수준도 아니었다.
그 침보다 더 두꺼운 것들이 한 뭉텅이로 박힌 무엇이었다.
“두통은 머리에 피가 몰려서 생기는 것이죠.”
“어…… 그럼 이걸……?”
“아, 아뇨. 바로 머리를 찌르진 않아요. 발 뒤를 찌르면 됩니다.”
“어……?”
“여기 누워 봐요.”
“어어, 마취는 없어요? 요즘 마취도 된다던데.”
“뭐 이까짓 걸로 마취를 한다고 합니까.”
“어! 어어어!”
조수들은 아주 숙달된 솜씨로 환자를 옆에 있던 더러운 침대에 눕혔다.
묘하게 짧아서, 발끝이 침대 밑으로 나왔다.
“으어어!”
조수들은 환자를 눕힘과 동시에 환자의 몸을 억눌렀다.
흡사 고문의 한 장면 같아 보였는데, 그때 토마스가 끼어들었다.
“괜한 짓 해서 환자 괴롭히지 말고, 내 기계에 들어가라고 하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개하기 짝이 없는 기계로 여겨졌지만, 이 꼴을 보고 나니 진짜 선진 의료였다.
허나 제멜은 퉁명스러운 얼굴이었다.
“거기 들어가서 죽은 환자가 한둘인가?”
죽음으로 응수했다.
아까는 하나 죽었다고 했는데, 한둘이 아니라고?
나는 좀 배신감이 느껴져서 토마스를 돌아보았다.
토마스 박사는 뻔뻔한 얼굴이었다.
“네가 죽인 환자도 한둘은 아닌데?”
“원래 죽을 환자였네. 건강한 사람은 피 좀 난다고 해서 죽지 않아.”
“그야 그렇지만, 확률이 올라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안 드네.”
이제 보니 이쪽도 비난할 만한 근거는 충분히 있었다.
둘 다 한둘이 아닐 정도로 사람을 죽인 참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사람을 숱하게 죽였다 이건데……?’
심지어 둘 다 사람 죽였다는 말에 발끈하지도 않았다.
그냥 당당했다.
푹.
그사이, 제멜은 바늘 묶음인지 뭔지로 환자의 발뒤꿈치를 찔렀다.
“끄억.”
꽥 하는 비명과 함께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혈관을 건드린 건 아닌지, 새어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 아픈 건 좀 어떻소?”
“아직…… 아직 모르겠는데.”
제멜은 그렇게 피를 내놓고는 물었다.
눈치가 있는 환자였다면 아파도 안 아프다고 했을 것 같은데.
환자는 고집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만 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 말에 제멜은 고집스러운 얼굴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칼…….’
칼로 어딜 따려나.
이쯤 되니 무섭다기보다는 황당했다.
머리 아프다고 온 환자에게 대뜸 칼부터 들이밀 생각을 하다니.
저 미친…….
“이럴 바엔 진짜 기계 돌리는 게 낫지 않나?”
“닥터 로버트…… 자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무슨 뜻이지?”
“아니, 아닐세.”
로버트 박사가 거들었다.
그 말에 제멜이 발끈했다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진료실 바닥에 놓인 양동이로는 피가 흘러 내려오는 중이었다.
“피가 부족한가…….”
그러더니 무슨 흡혈귀 같은 말을 중얼거리곤 칼 쪽으로 향했다.
“거참.”
나는 로버트 박사가 이렇게 말하고 말릴 줄 알았다.
헌데 그냥 그 말만 하고는 뒤로 돌아 나왔다.
“저 미개한 치료를 언제까지 할 건지 원.”
토마스 박사도 그랬다.
‘안 말려? 지금 사람 죽이겠는데?’
이 상황에서 내가 뭘 어쩌겠나.
같이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으, 으아아아!”
어딜 째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복도를 지나오는 사이 비명이 울렸다.
내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며 로버트가 물었다.
“궁금한가?”
“네?”
“다음은 어디서 피를 낼지 궁금하냐고.”
“아, 네.”
“그래. 사실 기계만으로는 난치성 두통을 치료하기가 어렵네. 아무래도 이게, 피가 잠시 몰리는 것이거든.”
로버트의 말에 토마스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감히 끼어들지는 못했다.
입술을 달싹인다는 말이 뭔지 알려 주는 느낌만 들었다.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피에 그만 집착하라고…….’
물론 고혈압으로 인한 두통이라면 잠시 효과가 있을 수도 있긴 했다.
긴장성 두통도 기절을 시킨 다음이라면 좀 나을 수도 있고.
더 심해질 가능성도 비슷한 확률로 있을 것 같지만, 이쪽은 의학적 추론이 불가하기도 하고 의미도 없어서 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대개의 두통에서 피를 내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팔을 째네. 여기 동맥 뒤로 정맥이 있지 않나.”
“네?”
“거기서 살짝 피를 내는 것이지.”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살해에 해당하니까.
‘그래도 살 사람은 사는구나.’
물론 저게 원론적인 치료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안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1세기에 있을 때 좀 더 열심히 치료해 볼 걸 싶었다.
사람 목숨이 엄청 질기다는 얘기 아닌가.
“그래도 안 나으면, 이마에 여기를 째네.”
“어…….”
“그래도 안 되면.”
또 있나?
그래도 안 되면 죽이나?
이미 죽이는 과정에 있는 거 같은데.
“머리를 밀고 직접 찌른다네. 예전엔 두피를 태우기도 했는데, 너무 아파해서 그건 좀 그래.”
“아…….”
그 사람이 되게 큰 잘못을 저질렀던 건 아닐까.
두피를 태운다는 건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감도 안 왔다.
머릿속으로 재생된 장면은, 왕좌의 게임에서 칼 드로고가 사람 머리에 끓는 금을 붓는 것뿐이었다.
거의 즉사였지 아마.
“기계가 좋은 거네요.”
그래, 그것보다는 기계가 낫겠다.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거잖아.
그것보다는…… 통 속으로 들어가서 빙빙 도는 게 낫지…….
“그럼, 아주 진보한 치료일세. 물론 요새 시도 중인 치료가 따로 있기는 해.”
“어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허나 로버트는 신이 났고, 덩달아 토마스도 신이 났다.
새로운 시도라는 말에 입을 열고 떠들기 시작한 건 토마스였다.
“신경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알지?”
“아, 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원리를 묻는 건 아닐 터였다.
그러니까 신경 전달 물질이 내부 농도에 의해 분비되고 하는 복잡다단한 생리적인 현상을 묻는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보단 그냥, 전기가 통했더니 개구리 다리 움직인 수준에 머물러 있겠지.
‘아, 듣기 싫다.’
전기 얘기 나올 거 같아…….
전기의자는 아니겠지 하는데, 토마스가 허허 웃었다.
“전기로 움직인다네. 그럼 그 신호를 주면 머리가 안 아파지지 않을까 하는 연구가 있어. 뱀장어를 이용한 건데…… 남미산 장어의 전기가 아주 세다더구만.”
“그, 그렇군요.”
장어에 정력 얘기가 아니라 전기 얘기가 나오다니.
확실히 여긴 한국은 아니었다.
“그걸로 전기를 통하게 하다가…… 인위적인 의자를 만들었네.”
“네?”
“그 의자에 앉고 머리에 전기를 흘려주는 거야. 그럼 두통이 나아진다는 보고가 있지. 좀 있으면 내가 하나 마련할 테니, 그때 한번 와 보게.”
“아…… 그.”
지옥이었다.
진짜로 전기의자를 만들어 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