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0)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0화(410/505)
410화 화재 [4]
아편이 좋긴 좋다.
아, 오해하진 말고…….
진통 효과는 참 좋다는 거다.
사실 21세기에도 이거 보다 더 진통 효과가 강한 약은 만들지 못했다는 게 충격이다.
다 아편 유래 약물이야, 어떻게 된 게.
‘안 아프고 중독도 안 일으키는 약은 없나?’
아, 그렇게 광고했던 약이 하나 있긴 하다.
옥시코돈이라고…….
진또배기 마약성 진통제인데, 제조사인 퍼듀사에서 ‘이건 의사 처방에 따라 먹으면 중독률이 1%예요!’라고 광고를 해 대고 거기에 FDA랑 의사들이 넘어가고 또 환자들도 속아 버리는 바람에 미국에서만 수백억 정이 팔려 나갔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보증하고 의사들이 딜러 역할을 해서 마약을 팔아먹었다는 건데…….
지금 펜타닐로 난리가 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에서 넘어오는 원료 탓도 있겠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 내부 문제도 있다는 거다.
“뭐, 자네도 하나 하려고?”
“아니, 아니. 미쳤어요?”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블런델이 기습적인 모함을 걸었다.
해서 부리나케 아니라고 하고 다시 환자 등판을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척추 쪽이 다친 건 아니었지만…….
이미 피부가 다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
감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깨끗한 물질로 적셔서 드레싱을 해 준다면 예방이 될 테지만 그게 되겠나.
심지어 이렇게 피부가 사라진 상태에서는 탈수도 쉽게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도 방지를 해 줘야 한다.
“어디 보자, 양파가…….”
“아니, 아니.”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건데. 양파는 아니다.
해서 나는 양파를 어느 틈엔가 칼로 삭삭 베어서 깍둑썰기로 마련해 둔 리스턴을 말렸다.
누가 소드 마스터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베어 왔다.
“아니, 왜 자꾸.”
“그만하라고 양파.”
“후우.”
하지만 머리만 보면 쭈그리가 되기 때문에 괜찮았다.
나는 그렇게 런던 제일검을 만류하고는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화상이 심한 면적은 대략 20cm×15cm 정도다.
작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제대로 된 처치만 있다면 반드시 살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단 드레싱 제제는 없다고 해야겠지.’
연고?
이게 진짜 생각보다 만들기가 더럽게 어려운 물건인 모양이다.
내가 런던에 존재하는 모든 연고를 다 들고 와서 까 봤는데 뭔 놈의 구리랑 비소를 그렇게 처넣어서 만드는지 모르겠다.
아니, 아니지.
그 정도면 그래도 성의가 있는 놈이다.
뭐가 되었건 구리랑 비소 넣으면 색이 영험해 보이긴 하거든.
‘똥은 시발 왜 바르는 거야.’
한국에서는 박쥐가 그렇게 흔하지 않지만 영국에서는 꽤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 봐야 런던 근처에서는 대기 오염 때문인지 뭔지 씨가 마른 모양이지만…….
아무튼,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가 있다면 자꾸 박쥐 똥 같은 걸 영험하다고 하면서 구해 온다는 건데…….
‘바르기 좋은 재질이긴 하지.’
이런 생각 나도 하기 싫은데, 연고는 일단 피부에 펴 바르기 좋아야 하지 않나.
너무 묽으면 휙 씻겨 내려가 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면 애초에 발리지도 않는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똥이라는 게 한 번쯤 발라 보고 싶게 생기긴 했다.
어쩌다 손에 묻으면 그것참 잘 묻어 있잖아?
하지만 제대로 된 문명이라면 바르면 죽는구나 하고 다시는 안 발라야 하는 것도 맞다.
헌데 이놈들은 왜 이러는지 당최 모르겠다, 진짜.
“일단 조지프!”
“네.”
“네가 책임지고 이 사람 상처로 미아즈마 안 들어가게 해. 깨끗한 천으로 막고, 물로 적셔 놔. 마르면 이거 다 뜯어질 테니까 절대 그렇지 않게 해.”
“아…… 네!”
이럴 때 제일 믿음직한 건 역시나 조지프였다.
모든 치료에 있어서 소독과 멸균이 중요하긴 한데 화상은 특히 더 그렇거든.
해서 나는 조지프를 이번 사태의 수석 보조의로 생각하고 지시를 딱딱 내렸다.
다행히 이후로 다친 사람은 딱 한 사람만 더 나왔다.
그 사람은 화상을 팔에 입었고 범위가 그렇게 크진 않아서, 등에 난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치료가 수월할 듯싶었다.
“근데 불은 왜 난 거래요?”
궁전?
궁전은…….
내가 사람들을 동원해 입구 쪽은 많이 껐지만 그 외의 부위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니 홀랑 다 타 버렸다.
전소가 되었다, 이 말이다.
‘나 때문인가?’
묻는 지금도 자꾸만 이 생각이 든다.
내가 비록 전생에 영국에 와 본 적이 있던 건 아니지만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영상으로 본 적도 있다.
뭐 어떻게 생겼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21세기도 멀쩡히 있던 궁이 홀랑 타 버리다니…….
나비 효과를 다룬 영화가 막 생각이 난다.
“아…… 그 블랙 로드의 집무실에서 불이 났다고 하더구만.”
원장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온 런던에 리스턴과 내 이름을 알렸기 때문에 원장님은 꽤 순종적이었다.
뭐…… 의사로서라기보다는 리스턴은 힘으로 나는 사람을 조용히 시키는 주술로 유명해지긴 한 건데, 아무튼, 환자는 더 몰려오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닌가 싶다.
“블랙 로드? 치안 담당 아니에요?”
“그렇지.”
“근데 그 사람 방에서 불날 거리가 있나……?”
아는 사람이다.
그날 죽은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경찰하고 가까운 관리다 보니 자주 보는 사인데, 어제도 병원 놀러 와서 용돈을 받아 갔다.
말이 용돈이지 뇌물이긴 한데, 아무튼.
“미친놈이야.”
“네, 아니…….”
그 말은 곧 나 김태평조차도 어느 정도 잘 보일 필요가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원장님이 미친놈이라고 하는 게 그리 적절한 일은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해서 그를 말리려 했지만 원장님은 작심하고 욕설을 더 내뱉었다.
하여간…….
이 시대 의사라는 것들은 깡패랑 다를 바 없는 놈들이라 해도 좋다.
몰랐는데 애초에 몸이 좀 좋은 놈들로 뽑아야 된다는 조항도 있다고 들었다.
사람 몸에 칼을 대는 위험한 직업이니 그래야 한다는 괴랄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뭐 수술이라는 이름의 살해를 밥 먹듯이 저지르고 있었으니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 새끼가 방에서 부절을 태웠대.”
“부절이 뭔데요?”
“아…… 자네는 모르겠구만. 요새야 다 읽고 쓸 줄 알지만 옛날에야 그게 되겠나? 귀족들 중에서도 글자 모르는 놈들이 많았는데,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달랐겠나 이 말이지.”
“아…… 하긴, 그랬겠죠.”
영어가 한글보다 어려운 문자라는 건 별로 이의가 없을 거다.
다시 말하면 한글이 참 좋은 문자라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문맹률은 거의 80%였다.
높을 때는 90%였고.
교육열 높은 우리나라도 그런데 이 무식한 영국 놈들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어?
“그래서 부절이라는 걸 썼네. 도장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나도 써 본 적은 없는데 문맹자들도 그게 있으면 뭔가 기록하기가 쉬워진다더구만.”
“아…… 뭐 순서대로 찍고 그러는 건가?”
“그럴 거야. 아무튼, 그게 나무로 만든 건데, 요새야 뭐 많이들 읽고 쓸 줄 알게 되지 않았나.”
“그렇죠.”
빈민들이야 문맹률이 그렇게까지 낮아지지 못하고 있지만 좀 살 만한 사람들은 나름 읽고 쓰는 세상이 되었다.
실제로 남자들은 60%가 읽고 쓴다더라고.
19세기에 벌써 이렇게 되었다는 거부터가 영국의 국력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결국, 교육받은 시민들의 숫자가 곧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들의 숫자로 연결되는 시대가 열려 버렸으니까.
“그래서 폐기하라고 벌써 100년 전에 명령이 내려온 모양인데, 그걸 아직도 그냥 두고 있던 모양이야.”
“그거 나무면 땔감 대신 쓰라고 빈민가에 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국력이 강하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비참해지고만 있었는데, 이유가 있다.
내 말에 원장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 그게…… 불법이라고 하더구만.”
“빈민 구제가요?”
“나도 잘 몰라. 왜 나한테 그러나. 아무튼, 그거 모아서 공터에서 태우려고 했는데 알잖아. 그 주변은 다 잘사는 사람들뿐인 거. 연기 나면 싫지.”
“어차피 사방 천지에 매연인데?”
“매연? 뭔 소리야. 아무튼, 그래서 방에서 태우기로 했다더구만. 그러다 사고가 난 거지.”
“미친놈들이, 그럼 부절 태우다 궁전을 태웠다고요?”
“그래.”
“이름은 알아요?”
요즘 들어 부쩍 후세의 기록이 걱정이 된다.
포기했다고 했지만…….
하필 나 어릴 적에 위인전이 유행했었거든.
그래서 그런가 인물평에 아주 민감한데, 이게 완전히 포기가 안 된다.
‘궁전 태운 놈들보다야 내가 낫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과 함께 물었더니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럼. 벌줘야지. 아, 지금 감방에 있을 텐데 구경이나 갈까?”
거기서 어떻게 구경이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나 싶었지만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홀랑 태워 버린 희대의 악인들.
이런 제목으로 역사책에 그림 하나 딱 넣으면 좋잖아?
아무 그림이나 하면 유명해지지 않을 거 같아서 윌리엄 터너도 불렀다.
그는 당연하게도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감방이라니…… 거긴 낭만이 없단 말이요.”
낭만파의 거두라 그런가 낭만은 더럽게 찾는다.
물론 부탁하는 입장이니만큼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겠지만, 괜히 심술이 나서 이렇게 대꾸했다.
“궁전 불타는 곳에는 낭만이 있었고요?”
“응? 뭔 소리요.”
“그거 그렸잖아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다 봤지. 건너편에서도 다 보이더구만.”
“아…… 뭐…… 불에는 늘 낭만이…….”
“지랄 말고 갑시다.”
“알겠어요.”
그렇게 나는 윌리엄 터너까지 대동한 채 감방으로 향했다.
내가 늘 가던 곳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감옥이었다.
물어보니 새로 지었다고 했다.
뭐…… 그럴 만하긴 했다.
런던에 범죄자가 좀 많아야지.
인구 과밀화만 문제가 아니라 죄수 과밀화도 문제다.
죽일 놈들이 죽을 만큼 힘들게 지내는 거야 괜찮은 일이지만, 가벼운 경범죄 저질러서 잠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건 안 될 일이지 않겠나.
“와…… 엄청 크네.”
“그렇지? 사업 수완이 있어.”
“사업……?”
“아, 여긴 사설이야.”
새로 지은 감옥은 엄청나게 거대한 곳이었다.
딱 보자마자 입이 벌어질 정도로.
원장님의 말을 들어 보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은 아니고 민간에 아웃소싱한 곳인 모양이었다.
따로 돈을 많이 줄 만한 나라가 아닌데 굳이 왜 죄수를 제가 알아서 모아두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끄어어…….”
“6시간 채워!”
“으아아…….”
모두 이상한 기구 위에 올라가 걷고 있었다.
간수들은 채찍을 든 채 걷기를 거부하거나 쓰러지는 이들을 후려 패고 있었고.
‘나 지옥문 열고 들어온 거 아니지……?’
나는 나도 모르게 문밖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런던이 오늘따라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