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1화(411/505)
411화 지옥 [1]
덜컹.
문밖을 보고 있었는데 곧 닫혔다.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내면서였다.
창문도 있긴 한데, 있어 봐야 산부인과 병동처럼 아주 높게 위치해 있다 보니 밖이 보이진 않았다.
그냥 해만 비출 뿐이었다.
그리고 10월의 런던 햇빛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을 햇살과는 차이가 좀 있는 데다가, 19세기 런던의 대기는 스모그 그 자체다 보니 감방은 그저 어둑했다.
햇빛만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안에 있으면 눈 나빠지겠네…….’
최근에 하도 안과 환자들을 봤더니 눈 생각이 난다.
물론 여긴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긴 했다.
“끄아아아…….”
“주, 죽을 거…….”
“죽어 그럼.”
불이 모자라다 보니 기둥과 벽면에 횃불이 걸려 있었는데, 그 불빛이 참 묘해서 더더욱 안쪽 분위기는 공포스러웠다.
그 와중에 고문이라도 하는 거냐?
나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답이 의외였다.
“네? 아뇨. 저거 노동입니다.”
“노동……?”
“물론 벌주는 것도 있지요.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죄수라는 것들이 너무 편하게 있지 않았습니까.”
“그…… 그런가요?”
“그럼요. 야외 노동이 맨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거 일감 따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공장 돌리는 곳도 있긴 한데, 아시잖습니까. 그런 일 하기 싫어서 사람 죽이고 한 놈들이 잡혀 들어왔다고 얌전히 하겠습니까. 폭동 일어납니다.”
“그건…… 그렇긴 하죠.”
고문이 아니라 노동이란다.
노동치고는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나도 그랬다 처음엔.
하지만 경찰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또 그러는 와중에 교도관들하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그런 말을 들어 보니 이게 참…….
죄수들이 진짜 괜히 죄수가 아니다.
죄지어서 들어온 건데, 폭동까지 심심치 않게 일으킨다더라고.
먹을 것도 감자나 주고 하는데, 뭔 힘이 나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근데 이걸 하니까 폭동은 무슨…… 하하. 다들 비실비실합니다.”
“그래. 그래 보이긴 하는데…… 저게 뭐 하는 건가, 대체.”
나는 간수에게서 눈을 돌려 다시 죄수들 쪽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죄수들에게 딱히 동정심을 가져 본 적은 없었더랬다.
장발장 같은 케이스가 아주 없으리라는 법은 없겠지만, 대부분은 진짜 개새끼들이라 그렇다.
받을 만한 벌을 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건…….
“이게 말입니다. 윌리엄 큐빗이라는 분이 도입한 건데…… 그분이 시골에서 소나 말이 물레를 돌리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아…… 그럼 지금?”
“네. 밑에 맷돌이 있어요. 그걸로 물을 긷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양을요.”
“그렇겠네. 허어.”
거대한 천국의 계단이 돌아가고 있었다.
죄수 열 명 정도가 나무로 된 물레방아 위에 올라가 오로지 인력으로 그 거대한 나무를 돌리는데, 반대편으로 물이 솟아나는 형태였다.
저런 물은 사람이 먹기는 어려우니 아마 근처 가축들에게 먹이게 될 텐데…….
“지역 사회에서도 아주 좋아합니다. 막말로 물 긷는 거 이거 보통 일이 아니긴 하거든요. 저도 어릴 때 해 봤는데, 여기서 받는 돈 정도로 물 안 길어도 되면 무조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간수의 말처럼 반대편에 가축 끌고 온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좋다.
문제는 가축들도 물을 먹으니 기분이 좋은지 이리저리 똥도 싸고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내에서 똥을 싼다.
소나 말이.
그런데도 나는 이 사람이 말해 주기 전까지 몰랐다.
소똥이나 말똥이나 냄새가 지독해야 정상인데 왜 몰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사람들이 하도 땀을 흘려 대서 그랬다.
땀내만 지독하게 나고 있다.
“그리고 저희도 뭐 이놈들이 이렇게 일을 해 주니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고요. 무엇보다 폭동 같은 건 꿈에도 못 꿉니다요.”
“이걸 몇 시간을 하는데?”
“뭐…… 대강 6시간? 그 이상 시키면 죽더라고요. 일꾼이 죽으면 안 되죠.”
간수는 이미 이 사람들이 죄수인지 노예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었다.
뭐…….
나도 엄벌주의에 공감하는 편이긴 하다.
특히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은 너무 약해 빠진 거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판사 가족이나 국회의원 가족이 저런 꼴을 당해도 과연 ‘심신 미약’에 의한 ‘정상 참작’을 할까 싶을 때가 많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럼 하루에 6시간 돌리는 거구만.”
“네? 아니죠. 이거 놀리면 뭐합니까. 18시간 돌아갑니다. 3교대로.”
“아…… 그럼 정말 여기 있는 죄수들은 매일매일 돌리겠네.”
“그렇죠. 이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곡식 빻는 게 더 많습니다. 근처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해 주는 데다가, 보십쇼.”
간수는 와서 물 먹이고 있는 농부들을 가리켰다.
농부들은 그들의 소중한 가축들을 보는 대신 죄수들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대부분은 맥주를 마시면서였다.
아주 즐거워 보였다.
원래 나만 아니면 되는 법이긴 하다.
사실상 현대 사회 이전에는 서민들이 즐길 만한 거리가 거의 없기도 했고.
일종의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이 말이다.
“여기 펍이 아주 잘됩니다. 그나마 여긴 가축들이 똥을 싸니까 냄새가 나서 인기가 덜한데, 곡식 빻는 쪽으로 가면 장난 아니에요. 빻을 일 없는 사람들도 그냥 와서 맥주 사 먹고 합니다.”
“맥주도 파는구나.”
“그럼요. 맥주만큼은 다른 가게들보다 비싸게 파는데…… 이게 불티나게 팔립니다요.”
“여기 대표가 아주 천재네.”
“네, 천재죠. 바쁘셔서 잘 나오진 않습니다.”
“바빠?”
“네. 정치하시려고…… 하하. 이렇게 인기가 많으니 하실 만도 하죠.”
간수는 말 그대로 껄껄 웃었다.
앞에서는 정말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토록 호탕한 웃음이라니.
말 그대로 지옥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또 천국 같아 보이기도 했다.
죄수들 말고는 다들 즐거워 보여서 그랬다.
간수들은 폭동 걱정 없이 안전하게 따박따박 월급 받아 갈 수 있는 직장이 있으니 좋고, 농부들은 값싸고 간편하게 가축들 물 먹이면서 무료한 일상을 달랠 수 있어서 좋고, 죄수들은 그들의 죄에 맞는 벌을 받고 있으니 미안해하는 사람도 없다.
‘으음…… 이게 맞나?’
확실히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긴 하다.
맞긴 한데…….
나는 물레방아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형태가 물레방아인 것이지 전체적인 설계는 천국의 계단 그 자체라고 보면 되었다.
물론 그냥 올라가는 게 아니라 거대한 나무통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힘이 들긴 할 터였다.
‘한 칸의 높이가…… 아니 이게 대체…… 엄청 높잖아. 이걸 6시간……?’
이건 자랑인데, 나는 머리가 꽤 좋은 편이다
그러니까 전생에도 의대에 간 거다.
뭐…….
천재급은 아니긴 하다.
이상하게 퍼즐 같은 건 잘 못 하겠더라고.
수학도 딱 수2까지가 내 한계라 공대는 겁나서 못 간 거기도 한데.
아무튼, 계산을 해 보니 이 사람들 하루에 걸어 올라가는 높이가 대략 4km는 될 거 같다.
‘미친…… 이틀이면 에베레스트네.’
내가 다니던 태화 의료원은 제법 좋은 병원이다.
지하에 엄청 커다란 헬스장과 수영장도 있을 정도인데, 솔직히 수영장까지 다녀올 짬밥은 아니었다 보니 헬스장만 가 봤다.
물론 헬스장도 진입 장벽이 있긴 했다.
인턴 레지던트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이야, 정 선생. 체력이 남아도나 봐?
-아주 요즘 친구들은 허허. 나 때는 남는 시간에는 공부하느라 바빴는데…… 치프 연락처가 어딨더라.
교수님들이 꼰대들이다 보니 이런 경우가 너무너무 많았다.
펠로우라고 해도 비슷하긴 한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교수님 일정을 꿰고 있다 보니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무튼,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지닌 헬스장에서 제일 인기 많은 기구 1위가 러닝머신이었고 2위는 계단이었다.
근육 운동도 당연히 건강에 중요하긴 한데, 아무래도 체력적인 측면만 보면 유산소가 제일 효율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칠 일도 적다.
“으아아……!”
“떨어졌네. 병신인가.”
물론 그것도 정도껏 할 때 얘기다.
먹을 것도 변변찮은 거 먹이면서 이틀에 한 번씩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킨다면……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다.
“틀렸네. 목이 부러졌어.”
방금처럼.
리스턴은 부리나케 달려가 맥을 짚어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봐도 떨어지는 모양새가 영 나빴더랬다.
보통 이렇게 되면 폭동이 일어나야겠지만…….
“흐아…….”
“허어…….”
같이 돌리던 나머지 죄수들은 솔직히 말하면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망 사고로 인해 잠시나마 노동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김에 물이나 먹지.”
간수는 선심 쓰듯 가축들이 먹던 물을 대강 떠서 그들에게 주었고, 놀랍게도 감사하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방금 사람이 죽었을 정도로 벌을 주고, 물도 소나 말이 먹는 더러운 물을 줬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이것이야말로 19세기식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쉽게도 우선순위는 아니다.
“그 불 지른 사람은 어딨어요?”
“아, 저기요.”
“벌 받고 있네, 아주 제대로.”
“그럼요. 그래도 재판 전까지만 있다 나갈 겁니다.”
“재판이 언젠데?”
“한 2주?”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요?”
“보통은요. 열에 일곱은 삽니다.”
“허어.”
나는 인간은 역시 강한 동물이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궁전 태운 미친놈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왔다가 진기한 구경을 해서 그런가 생각이 많아졌다.
딱히 이 사람들을 구원해 줘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각기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 사람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사정이 훨씬 딱하지 않겠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비질란테를 지지하는 편이다.
‘이거…… 조금만 개선시키면 운동 기구로 쓸 수 있겠는데……?’
그보다 나는 제이미 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둔 주제에 지금까지 생을 이어 나가고 있는 분이었다.
대부분 탕약을 먹지만 그분은 소 불알 주사까지 맞고 있는데…….
솔직히 볼 때마다 좀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대영제국의 공작님인데 왜 고환을 잘라 가지고 그런 꼴이 되었단 말인가.
‘운동한다고 집 나간 남성 호르몬이 돌아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좋을 거야. 우리 국왕 폐하도 그렇고.’
골칫덩이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윌리엄 4세도 떠올랐는데, 솔직히 이 양반도 만만치 않은 분이다.
내가 뒷구멍으로 구해 오는 불소수로 가글도 시키고 양치도 감독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이 하나 뽑았다.
임플란트가 없는 시절 이가 하나 없다는 건 그만큼 소화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니, 수명에 불이익이 생겼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식습관이 엉망진창이지…….’
전에 홍차 먹는 거 보고 진짜 깜짝 놀랐다.
솔직히 홍차 향 나는 설탕물이야, 그건.
‘도무지 고치질 않으니…… 벌을 줘야지.’
건강해질 둘을 생각하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