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2)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2화(412/505)
412화 지옥 [2]
“왜 그렇게 웃나. 자네도 죄수들이 벌 받는 거 보니까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
리스턴은 내 미소를 보면서 자신도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지금 보니까 웃고 싶은데 간신히 참고 있던 모양이었다.
참고로 난 아니다.
남들 고통받는 거 보면서 좋아하는 건 이상하잖아.
“아니, 아뇨.”
“에이. 뭐가 아닌가. 인정하게. 자네 안에도 군자스럽지 못한 마음이 있네.”
“소인배다, 이거에요?”
“머리는…… 보지 말게. 치사하지 않나.”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제이미 경을 한번 돌려 보려고 해요.”
“응?”
리스턴뿐만 아니라 다른 모두의 얼굴에 ‘?’가 떴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이 상황이 좀 이상하긴 하잖아.
죄수들이 죽도록 고생하고 있는데 그걸 공작님께 시킨다고 하면 이거 혹시 역적모의인가 싶을 수도 있다.
“오해하지 말고요.”
“오해를…… 어떤 부분에서 내가 안 해야 하는 거지……?”
리스턴은 죄수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19세기긴 해서 방금 사람 하나가 죽어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무섭다, 19세기식 자본주의.
“일단 여기는 천장에 밧줄 달라고 해요.”
“왜? 즉석에서 교수형 처하게?”
“아니, 그거 붙잡고 밟으면 아무래도 균형 잡기가 훨씬 좋을 거 아니에요.”
“오…… 과연 평신이야.”
그들이 안쓰러워서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을 제시해 주었다.
뭐 얼마나 나아질는지는 모르겠지만…….
밧줄만 튼튼한 걸로 달아 두면 적어도 방금 전처럼 낙사하는 경우는 없어질 거라는 게 내 기대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감방 사태를 해결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렇게 힘들게는 안 시키죠. 시간도 뭐 30분? 1시간?”
“그걸 그러니까 왜 하냐는 얘기지, 내 말은.”
“운동이죠, 운동.”
“노동인데…… 저건? 제이미 경이 대체 왜 물을 기르고 곡식을 빻겠느냐는 말일세.”
“그런 게 아니라…… 보세요. 여기 사람들, 어때요.”
내 말에 리스턴과 나머지 일행은 다시 한번 감방 안을, 그러니까 지옥을 둘러보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이곳이 지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곧 죽게 생겼다, 이 말이다.
나도 눈이 있다 보니 아차 싶었다.
“아, 이건 좀 아닌데.”
“그래, 제이미 경이 이 꼴을 봤는데 이걸 하라고 하는 걸 알았다? 아무리 자네라도 가만히 두지 않을걸.”
“역시 실험뿐이야.”
“응?”
“적당한 강도와 정도를 제가 알아내겠습니다. 형님은 런던에서 뚱뚱한 걸로 유명한 사람 중에 만만한 사람들을 수배하세요.”
“아니…… 뚱뚱한 게 죄도 아니고 왜…….”
“다 건강해지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머리 뽑아?”
“다녀오겠네.”
리스턴은 마음으로는 납득을 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머리로는 납득을 한 상태로 감옥을 떠났다.
나 포함해서 나머지 일행도 여기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뒤이어 감옥을 떴다.
윌리엄 터너만 남기고서였다.
“잘 좀 그려 주십쇼. 얼굴은 좀 악랄하게. 한번 보면 잊히지 않게.”
“그러니까 지금 경처럼 말이죠?”
“그…… 불빛 때문에 그렇습니다.”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불 지른 범인들의 얼굴을 잘 그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돈도 받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뭐…… 영감을 주는 곳이긴 합니다. 제가 궁전이 불타는 거 본 이후로 또 이렇게 끔찍한 건 보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여기가 더 하네요.”
그는 영감도 받았는지 시키지도 않은 감옥 전경도 그릴 기세였다.
저렇게 되면 저 범인들에게 다소 동정심을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거까지 막는 건 진짜로 악랄한 거 같아서 말리진 않았다.
일부러 불 지른 건 아니라지 않은가.
그냥 좀 게으르고 멍청해서 저지른 일일 뿐이다.
그 결과로 영국의 국보가 불에 홀랑 타서 그렇지.
몽골군도 아니고 왜 궁전을 태워, 그러게.
“아…… 병원으로 바로 가지 말고, 브론테 자매 쪽으로 가지.”
“아, 네.”
사돈 남 말 할 때가 아니므로 나는 서둘러 자서전 자판기…… 아니, 역사에 남을 명작가 자매들을 만나러 달렸다.
“어어.”
“비켜, 비켜!”
요즘 내 마차는 나만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환자들도 타고 다니기 시작했더랬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렇게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마차 놀리는 게 좀 아깝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까 의사가 환자를 보기 위해 집으로 가는 시스템이 비효율적이기도 해서 그랬다.
왕진 다니는 의사는 그럼 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소신 발언 한다.
왕진은 한계가 명확하다.
아예 의료 오지에 속하는 곳이라면 의사 얼굴 보는 것도 힘드니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또 환자가 거동이 불가한 상태인데 도와줄 사람도 없다면 왕진이라도 해야겠지만…….
병원에는 기구도 있고 다른 인력도 있잖아.
게다가 왕진을 하기 위해 병원을 비우게 되면 그사이 병원으로 오는 환자들은 무의촌에 있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앰뷸런스다, 이건데…….’
하여간, 환자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한 마당인데 골목에 낑겨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해서 여기엔 응급 환자가 있으니 비키라는 신호로 마차를 좀 꾸몄다.
일단 색을 붉게 칠하고, 옆면에는 녹색 십자가를 달았다.
-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도 비키질 않아요.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조차 앰뷸런스니 뭐니 와도 안 비켜 줬잖아.
시민 의식이라는 건 정말 천천히 자라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궁여지책으로 마차 위에 리스턴칼을 달았다.
나름 근대 의학의 상징이기도 하거니와 잘못하면 뒈질 수 있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히익.”
“리, 리스턴이다!”
효과는 지금 보는 것처럼 실로 대단하다.
다들 못 비켜서 안달이야.
후후.
저걸 사실 뗐다 붙였다 해야 하는데, 용접을 해 놔 가지고 그럴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마치 응급 환자라도 있는 것처럼 질주하는 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오.”
하여간, 브론테 자매의 집에 도착했다.
원래 진짜 그지 같은 동네에 있었는데 내 후원을 통해 집도 옮겼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좋은 곳으로 옮기진 않았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아까워서도 아니다.
‘혹시 그러다가 문학적 소양이 없어지면 어째.’
나비 효과가 두려워서 그렇다.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쓰고,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쓸 텐데 그게 나 때문에 안 나온다?
만고의 역적이다.
아…… 여동생이 하나 더 있는데, 걔도 글을 쓴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내가 아는 이름이 아니다 보니 뭘 쓸지는 모르겠지만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 꽤 훌륭한 글을 쓰지 않을까?
“음.”
해서 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이 집이 내가 후원하는 집이라는 표식이 문 앞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주변은 한산하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했다.
물론 표식만 붙인다고 해서 혼자서만 배곯지 않고 사는 집에 집적대지 않을 리는 없으니,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아 주고 있는 내 부하들의 역할이 실로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아직 영국은 법보다 주먹이 훨씬 가까운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아, 오셨어요? 연락도 없이!”
문이 열리자, 샬럿부터 나를 반겨 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랑 동갑인데, 태도는 상당히 깍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이미 거물이고 이 친구는 아직 성공하려면 멀었으니 뭐…….
“어어,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부탁이요?”
“어려운 일은 아니고…… 글을 의뢰하려고 하는데, 아직도 쓰나?”
“네? 물론이죠! 글이야 저희 다 쓰죠! 얘들아 나와 봐!”
아이 아빠는 낮엔 없다.
어디 끌려간 건 아니고 내가 일을 주었다.
꽤 편한데 돈 많이 받는 곳이다.
딴 뜻보다는 애들을 패지 말라고 그랬다.
물론 그랬는데도 패면, 그때는 아빠도 맞을 거라고 말은 해 뒀다.
아, 밥도 좀 애들 먹고 싶은 만큼은 먹이라고 했다.
‘미친놈들이지.’
돈이 없어도 애를 먹이는 건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 마음 아닌가.
특히 대한민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다 공감할 텐데…….
영국은 아니다.
이상하게 음식 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것인지 도저히 먹지 못할 만한 것을 내놓기도 하고 그런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거의 아동 학대에 가까운 훈육을 한다는 건데, 그중에는 식사량 제한도 있다.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가뜩이나 애들 다 죽어 나가는 시절에 먹을 것도 안 주면 어쩌라는 거야.’
어릴 때 읽었던 <제인 에어>에 나오는 묘사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놀랍다.
집에서만 패는 게 아니라 교회 같은 곳은 더하는데, 아직도 중세적인 종교 교리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다.
그런 주제에 구제 사업을 한답시고 애들은 긁어 가고 있으니…….
우리 브론테 자매의 아버지도 성공회 사제다 보니 아동 학대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다른 일자리를 주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돌아가신 사모님 대신 다른 분 만나 보라고 소개도 시켜 주라고 했는데, 사랑만은 찐 사랑이었는지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쁜 사람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더 환장한다.
“아, 이거 좀 먹어라. 고기랑 빵인데. 고기는 이따 굽…… 얘들아, 굶었니?”
“굶지는 않았는데 배고파요!”
“와아!”
“으아…….”
“흐어…….”
세 자매에 더해 남자애 하나까지 빵에 달려들고 있다.
배불리 먹이라고 했는데 또 가정 교육 운운하면서 모자라게 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까 넷 다 말랐어.
‘아니…… 애를 안 잃어 본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여기 아버지만큼 불우한 사람도 없다.
첫째, 둘째 딸 모두 11세, 10세 죽고, 와이프도 죽었으니 뭐…….
물론 이 시기 사람들에게 자식 한둘 잃는 것쯤은 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그의 심정이 어떨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쯧.
“다 먹었으면 얘기 좀 하자.”
“아, 네.”
나는 애들이 먹는 동안 세간살이를 살폈다.
그래도 샬럿이 이제 꽤 나이가 있다 보니 나름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고 있는 듯했다.
가구도 한번 싹 갈아서 거의 새것이거나 새것과 다름없는 수준이고.
‘주기적으로 사람 보내서 직접 먹여야겠구만.’
식량도 없는 게 아니라는 게 참 그렇다.
있는데 못 먹게 하는 거다.
미친놈.
아무튼, 나는 아버지 욕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그…… 내가 말이야. 나에 대한 위인전이랄까? 그런 걸 좀 써 줬으면 해서.”
“벌써요?”
“나이 어리잖아요.”
“천천히 쓰는 거지. 천천히. 좀 걱정이 돼서. 나중에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조선 주술사니 하는 거…… 모를 나이는 아니라서 그랬다.
어쩌면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에 주술을 부리는 동양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