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1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13화(413/505)
413화 지옥 [3]
“걱정할 게 있으신가……?”
를 쓰실 샬럿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너무 좋으신 분인데.”
을 쓰실 에밀리가 볼에 과자를 잔뜩 넣은 채 이렇게 말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좀 귀엽기도 하면서도 안쓰럽기도 했지만, 제일 크게 일어난 감정은 ‘이 썩으면 안 되는데’였다.
가뜩이나…….
얘네는 몸들이 허약한 집안이지 않나.
위에 첫째, 둘째 모두 일찍 가 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분들도 그리 오래 살진 못하지.’
그나마 샬럿이 장수해서 38살에 간다.
에밀리는 30, 여동생 앤도 그쯤 갈 거도.
무식한 놈이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냐고?
부끄럽지만 내게도 한때 낭만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중2병에 걸렸던 시절에 나는 내가 문학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더랬다.
굶어 뒈지고 싶으면 계속 글을 쓰란 말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아무튼, 그때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글 중 무려 둘을 이 자매가 썼다.
“이것도 쓰고.”
해서 나는 비누와 칫솔, 죽염 그리고 미국에서 건너온 진짜 불소수를 건넸다.
사람 차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차별 맞다.
나도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어.
전생과 조금이라도 이어져 있단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는 약해진다는 말이다.
“이게 뭐예요?”
“몸 씻고 이 닦는 거.”
“아…… 요새 씻는 게 유행이라더니. 그것도 아저씨가 만든 일이죠?”
“그렇지.”
동갑내기한테 아저씨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다.
오래오래 살렴.
그러다 보면 혹시 아나.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한두 작품 더 나올 수도 있다.
“아, 그건 그렇고. 자서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럼요. 제가 써 드릴게요.”
“저도요.”
“저도.”
그중의 하나가 내 자서전이면 더 좋겠다.
-김태평, 인류의 수명을 증진시키다.
캬…….
어떠냐.
모든 의사들의 꿈이라 할 수 있다.
“근데 딱딱한 글은 좀 자신이 없어서…… 소설로 써 볼게요.”
“저도요.”
“저도.”
“소설? 소설…… 괜찮을까?”
약간 불안해지긴 한다.
소설…….
소설 주인공이 다 잘되던가?
웹소설은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이 친구들은 웹소설 작가가 아니지 않나.
명작을 쓰신 분인데 그중에서도 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쓰신 분이 계신다.
‘히스클리프…… 그 새끼, 개쓰레기 새끼 아닌가?’
그리고 그 주인공인 히스클리프 또한 문학사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인물인데, 그냥 미친놈이다.
인간말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복수도 온전히 복수할 대상에게만 악행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식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행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제 친자식도 버린다.
“아니, 아니. 소설보다는…… 아니, 그래. 에밀리. 너 말고 언니가 쓰는 건 어떻겠냐.”
중2 때 제일 미워했던 인물 중 하나가 이놈일 정도다.
내가…….
솔직히 아주 떳떳한 사람은 또 아니지 않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부분에서 좀 걸린다.
물론 난 복수가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이런 대사도 약간 클리셰잖아.
-흐흐…… 나는 인류를 위해서 한 거야!
미친 과학자가 낄낄거리면서 읊을 법한 대사다, 이 말이다.
해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에밀리 대신 샬럿에게만 부탁하기로 했다.
‘제인 에어…….’
여기 주인공이 훨씬 사정이 나아서 그렇다.
묘사되는 부분을 보면 주인공하고 작가랑 거의 똑같이 생겼다는데, 그걸 그렇게 꾸며 놓은 것을 보면 이쪽으로도 일가견이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니…… 왜요. 섭섭한데…… 저 무조건 쓸 거예요!”
“아니, 야! 쓰, 쓰지 마!”
하지만 역효과가 났다.
일단 샬럿은 쓸 거 같지만, 에밀리도 쓸 거 같다는 말이다.
그것도 악의를 가지고.
그냥 쓴 소설 주인공이 히스클리프였는데 악의를 가지고 쓰는데 그 대상이 동양인이다……?
푸 만추가 좀 더 일찍 등장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아, 가 버렸네.”
“걱정 마세요. 쟤도 글 잘 써요.”
“아니, 그거야 알지. 잘 쓰지.”
너무 잘 써서 문제다.
현실적으로 쓰면 안 된다고…….
특히 세간에 알려진 대로 쓰면 거의 뭐 최악이다.
20세기에 히틀러, 스탈린, 도조 히데키가 있다면 19세기에는 김태평이 있다는 식의 밈이 퍼질 수도 있어 보일 지경이다.
뭐…… 대비를 안 한 건 아니다.
툭.
나는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작성한 일기를 고대로 베껴 쓴 자료를 건네주었다.
양은 상당히 많았다.
소설 쓰려고 앉으면 그렇게 안 나오던 글이 변명하려고 하니까 쭉쭉 나오더라고.
참, 사람이란 재미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뭐예요?”
“나에 대한 글이지. 내 일기야.”
“어…… 일기를 그냥 막 주셔도 돼요? 이건 비밀 같은 거잖아요.”
샬럿의 지극히 상식적인 말에 나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일기를 써 본 적은 없는 거 같아서 그랬다.
애초에 출판할 생각으로 쓴 것이니 당연했다.
뭐…… 그럴 만한 퀄리티가 아닌 거 같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긴 한데, 아무튼, 내용은 나무랄 데가 없다.
“너를 믿으니까 주는 거지.”
“와…… 그렇게까지 저희를?”
“그러니까 후원도 해 주는 거지. 나는 너희들이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어.”
“그……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써 볼게요.”
나는 집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건 되겠다고.
왜?
에밀리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눈이 그냥 순수하기만 한 데 반해 샬럿은 너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될 뻔한 아이다 보니 눈에 벌써 자본주의가 박혀 있다.
어른이 되었다 이 말인데, 어른은 거래를 할 줄 아는 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평.”
“네, 형님.”
“잡아 왔…… 아니, 데려왔네.”
우리 리스턴처럼 말이다.
머리 한번 심어 줬다고 이렇게 충성을 다하고 있지 않나.
물론 당연하게 여길 생각은 없다.
주기적으로 체크도 해 주고 정 뭣하면 굿이라도 할 생각이다.
사실 나중에 다 빠지긴 할 테니 면피는 해야 할 거 아닌가.
‘나도 할 만큼 다 했는데 주께서 머리카락을 다 앗아가셨다’, ‘아마 무슨 큰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머리에 무슨 신의 뜻이 있을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당장은 생각 나는 게 하나도 없다.
괜찮다.
지금까지 여기 살면서 느낀 건데, 나 천재야.
둘러대기, 구라의 천재.
그리고 뭐…….
세월이 더 흐르면 내게 관록도 더 쌓이겠지?
“오…… 훌륭하군요.”
아무튼, 나는 형님을 따라 그가 잡아 온 사람들을 보기 위해 방을 나섰다.
새로 마련한 센터 2호점에는 우리가 종종 하는 실험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당 같은 가건물을 정원에 만들어 놨는데, 거기에 다들 갇혀 있었다.
“어후. 추워…….”
“저희 왜…….”
“살려 주십쇼.”
런던에 살집 있는 사람들은 다 모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난방 시설이 없다 보니 추운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꼭 펭귄 같아 보였다.
뭐 그걸 꼭 입 밖으로 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성 박살 난 사람은 아닌 만큼,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맨 앞에 있던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팍.
그러자 그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무도인이여, 뭐여.’
예상했던 동작도 아닌 데다가 예상했던 속도도 아니라 좀 놀랐지만, 오히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침착한 거 뭐여.’
누군가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또다시 오해가 쌓이는구나 하면서 말을 이었다.
“뭐, 죽이려고 데려온 건 아니니까 그만들 무서워하시고. 병원이 사람 살리는 데지 죽이는 데가 아니지 않습니까.”
“네네. 그러문입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죽이려고 든다면 죽어야지, 뭐 별수 없긴 할 거다.
아무리 의사라 해도 살인을 하면 안 되겠지만 병원에서 죽인 건 또 정상 참작이 되는 세상이라 그렇다.
게다가 내가 그랬다?
그럼 아마 백주 대낮에 칼로 배를 찔러도 무죄일 거다.
우리 피영시인이 설마하니 죽이려고 찔렀겠냐!
만약 그랬다 한들 죽일 놈이긴 했을 거다!
이러면서 바로 풀어 줄 것이 뻔하다.
“제가 여러분을 부른 건 살을 빼 주기 위함입니다.”
“아…….”
“살이 빠지는 겁니까?”
비만이 미덕이었던 때도 있다.
21세기 현대인들이야 이해가 도저히 안 되겠지만, 실제로 부자의 상징이었던 때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도 19세기만 되면 슬슬 옛말이 되기 시작한다.
아니, 유럽에서는 그리스·로마 시대 때 벌써 지나친 비만을 경계했더랬다.
특히 로마는 무력으로 선 제국이다 보니 높은 사람이 살이 찌면, ‘저 사람은 군사 활동도 안 하는구만’ 하면서 무시했다는 말이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신 소크라테스도 알고 보면 대단한 전사였다지 않나.
물론 중세 시절엔 하도 가난해서 비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귀족이나 성직자들뿐이었으니 뭐라 하는 분위기가 거의 사라졌지만 19세기는 이미 설탕 혁명이 일어난 이후다.
‘사탕무에서 설탕이 나온다고 하지.’
사탕수수에서 나오는 것과는 맛이 좀 다르다곤 하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 가격이 푹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 봐야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는 건 요원한 일이지만 적어도 중산층만 되어도 얼마든지 비만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얘기다.
그 말은 곧 마음 놓고 비난할 수 있는 뚱뚱한 대상이 생겼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뚱뚱하면 게으른 것이네, 남에 대해 베풀지를 않네 뭐네 하면서 온갖 음해가 들끓기 시작했다.
“네, 뺄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라면요.”
“허어…….”
“그게 되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태까지 비만은 거의 없었던 상태다 보니 그에 대한 대처법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랬다.
‘후후.’
나는 그들을 보면서 한때 유행했던 다이어트 챌린지 프로의 호스트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짝.
그러곤 박수를 쳐서 다른 감방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 놨던 물건이지만 권력으로 빼돌린 결과물을 강당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것은 러닝머신이라기엔 너무 크고 거대했기 때문에 완성품이 들어오진 못했다.
여러 인부들이 수레에 끌고 들어온 것을 나와 리스턴의 눈치를 보면서 조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원래 살을 빼려면 공복에 하는 게 맞지.’
문제가 없는 건 아니긴 했다.
과연 이 강도가 노동이 아닌 운동 목적으로 하는 데에 적절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
나야 그래도 전생에 계단도 타 보고 했으니 어느 정도 감이 있긴 하지만 저 위에 올라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명색이 런던 제일의 명의고 또 조선 주술사인데 체면이 있지.
해서 일단 모여든 이들에게 먼저 시켜 보기로 마음먹은 채 편하게 앉아서 기다렸다.
“아, 난 잠시만.”
“왜요?”
“팔 자르러 가야 해.”
“아, 네.”
그사이에 리스턴은 무려 팔과 다리를 합쳐서 5개나 자르고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러닝머신이 완성되었다.
완성품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의외로 그리 좋지 못했다.